요술(樂術)


 오잉!? 요술(妖術)도 아니고 웬 요술(樂術)? 사전에도 없는 말이고 내가 지어낸

말이다.


 국어 선생님은 도회지에서 전근을 오신 선생님이셨고, 시인이라고 했으며, 혼자 사신단다. 그렇게 도시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이 모닝커피를 마시러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시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다방 앞을 서성이던 모습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어린 눈에는 그것이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였고, 또 키도 크고 잘생긴 선생님이라 우리 모두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강의 시간에 진도 외에 또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을 생각해 봐라. 예수님은 무엇을 위하여 고난의 짐을 지셨는가? 우리의 인생도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


 언덕을 오르던 나그네는 맹수를 피해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칡넝쿨에 매달렸지만 우물의 벽 틈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의미한다. 나그네의 운명은......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다.”  이렇게 침을 뛰기며 열변을 토하시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선생님 시간은 딴 생각에 사로잡히고 집중이 안 될 수밖에. ‘우리가 인생을 알게 뭐야, 시험 점수나 잘 받고, 부모님이 용돈이나 좀 많이 주면 그것이 최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당시에는 인생보다 시험 점수가 중요했고, 용돈이 더 궁했으니까.


 그렇게 나에게는 별 영양가 없는, 인생 얘기도 듣고, 진도도 나가고 하는데 그렇게 얼마쯤 지나다 보니 필기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정확히 콕 집어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시험시간은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국어 시험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오셨다.


 다른 문항들은 선다형이라 대충 찍어도 된다. 하지만 주관식(요즘은 서술형)은 답을 쓰지 않으면 꼭 앞니 빠진 것처럼 휑한 것이 엉터리라도 답을 써 넣어야 우선은 마음이 편하다.


 문제는 즐길 락() ‘이 좋아할 ’()로 쓰이는 경우를 쓰란다. 생각날 턱이 있나? 덴장, 인생과 용돈이 오락가락하고, 선생님께서는 언제 또 심각했던 인생이 즐겁게 바뀌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 내 쪽으로 쓱- 와서 빈 답안을 보시더니 힌트를 주기 시작하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말씀은 공자님 말씀인데 생각이 나야지......아이들은 답을 가르쳐 준다고 원성이다. 그런데 공부 시간에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딴 생각하고, 딴 짓하고 있었던 나는 뭐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이다.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 생각을 해 보자......,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그래, 그래, 사람들이 이것도 좋아하기는 하지, 에라 모르겠다. 사람들이 좋아한다잖아.’ 요술(樂術). 딱 이렇게 쓰고 답안을 제출하고 나오다 뒤통수 한 방 얻어맞았다. '아이쿠!' 리고 20세기의 세종대왕으로 등극하는 영예을 안았다나 뭐라나......ㅋㅋㅋ


 나는 아직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지 못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내용이 있는지, 뜻이 그렇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요술(樂術)이 틀렸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ㅋㅋㅋ


 나이 먹어가니 요산요수(樂山樂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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