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치(風齒)


 시름시름 몸살 기운이 있다. 약을 먹는데도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쉽게 차도가 없더니 잇몸이 붓고 치아가 들떠 음식물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고 슬슬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풍치가 온 모양이다.


 몸살로 인해서 풍치가 왔는지, 아니면 풍치가 오려고 몸살 기운이 있었든지,

무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를 괴롭힌 것은 풍치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몸살의 경우가 있었는데 잘 참아 넘긴 적이 있다. 신호가 오기 시작할 때 즉시 치과에 갔으면 되었을 것을, 처음에는 몰랐고, 조금 심해지니까 만신이 아프고 귀찮아서 진통제만 먹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생활의 리듬도 깨

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좀 미련하기도 했고 치과에 가기 싫은 것도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치과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또 종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과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도 다 내가 겪은 직접경험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날, 소파에서 뛰어놀던 세 살 난 손녀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정통으로 앞니가 바닥에 부딪쳤다. 울고불고 난리는 고사하고 엄청나게 흐르는 피에 앞니 두 개가 거의 빠질 정도로 흔들렸다. 피를 닦아주고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어떡허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치과가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안으로 굽어 있는 이를 똑 바르게 펴고 얼음찜질을 하고 하며 부산을 떨다가 다음날 보니, 흔들림도 많이 나아지고 상당히 안정된 듯 했다. 어린이 치과에 데리고 갔더니 가만두면 큰 탈이 난다고 겁을 주면서 앞니 두 개를 뽑고 새로 해 넣어야 한단다.


 저 어린 것에게 간니도 아니고 젖니를 해 넣는다?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환자가 어디 있나? 1주일 뒤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후는 매일매일 손녀의 치아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는데, 이삼일 쯤 지나니 거짓말처럼 손녀의 치아가 정상화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예약은 노쇼(No-Show). 좀 괘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멀쩡해지는 치아를 뽑고 다시 하자니? 그 후로도 손녀의 치아는 큰 탈은커녕 앞니 빠진 개오지가 될 때까지 아무 일 없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나의 직접 경험도 몇 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무튼 이렇게 근거 있는 불신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었다각설하고.


 그래도 이러한 불신의 대가는 당연히 나의 몫이다. 안 먹을 수 없으니 밥상 앞에 앉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이가 흔들리니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 우물우물 삼킨다. 할매가 그런다 우리집에서 이를 제일 열심히 닦는 사람이 와 그라노?” “글쎄 말이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전에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야야, 이가 빠졌다.”하신다. 아들 녀석이 덧붙인다. “할아버지 이빨 빠졌는데 어금니란다.” “야이 녀석아 할아버지 이빨이 뭐고? ‘’, ‘치아라고 해야지하고 나무랐지만 정작 아버지의 빠진 치아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진 같은 곳에서 이 빠진 노인들 많이 보아왔는데 나이 먹으면 이가 빠지는 게 정상 아닌가? 아버님 연세가 그렇게 된 모양이다.’하고 가볍게 한 귀로 흘려들었다. 너무도 무심했었다. 이가 흔들려 기능을 못하니 이렇게 불편한 걸 그때는 몰랐었다. 아∼! 이 불효막심한......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모시고 살면서도 잘 해 드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살아생전에 잘 모셨어야 하는데......’ 회한이 밀려온다. ‘흑흑흑 ㅠㅠ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왜 항상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지? 할매 몰래 운다.


 그리고 다짐한다. 죽으면 아버지 곁으로 가서 언제까지나 모시고 실컷 효도할

것이라고. 고통은 또 다시 귀한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그런데 사실 늙으면 눈물이 메말라져서 감정은 북받치는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속으로 우니 할매는 모를 것이다.)


오늘의 교훈. 첫째, 이가 아프면 즉시 치과에 가자. 둘째,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하자.


(ㅋㅋㅋ 그래도 오래 살겠다고 더 열심히 양치질하고, 내가 만든, 열매로 우려낸 전래 비법으로 가글도 하고, 치과도 다닌다. 임플란트, 비싸고 오래 걸린단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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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빨은 아플때 빨리 가는게 좋은 거 같더라구요. 늦을수록 더 비싸지는 ㅎㅎ (전 다른병원은 가기 싫던데 치과가는 건 거부감이 없는 ㅋ)
풍치 치료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교훈 명심^^

하길태 2021-04-12 21:35   좋아요 2 | URL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치과는 대부분이 장사속이 너무 심해서 그게 참 싫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하셨네요. 이는 아프다 싶음 언능언능 치료해야 돈도 적게 들고 통증도 덜더라구요. 아, 아버지 하며 읽다 눈물 안나는 속울음 울었다는 대목서 풋. 웃고 말았어요. 길태님 은근 웃기셔요. 마지막 교훈은 지두 명심!!^^

하길태 2021-04-13 06:57   좋아요 0 | URL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별로인 것 같아요. 적당히 즐겁게 생각하고 사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mini74 2021-04-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치과. 제일 가기 싫은 곳 중 하나죠. 오늘의 교훈 저도 가슴에 새겨봅니다.

하길태 2021-04-13 16:08   좋아요 0 | URL
오늘의 교훈을 일찍 체득하지 못했던 저는 갈수록 더 많은 후회와 반성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ㅠㅠ

han22598 2021-04-15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눈물이 ㅠ 어른들에게는 이빨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도 배우고 갑니다. 이런 글 많이 써주세요.

하길태 2021-04-15 06: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라더니, 부모님 생각만하면, 잘 모시지 못한 회한으로 가슴 한 복판이 저려 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