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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바람


 윗니는, 발치 4개월 보름 만인 지난주에 상악동거상술로 임플란트를 심는 수술을 하였다. 수술은 잘 된 것 같은데, 아랫니와는 달리 수술 시간도 많이 걸렸고 붓기와 통증이 좀 더한 것 같았다. 이제는, 코 속에서 목구멍을 통해 나오던 핏덩이도 멈춘 것 같고 붓기가 빠지면서 입 주위로 나타났던 멍도 조금 엷어지는 것 같다.


 당분간 무리한 운동은 삼가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집에만 있으니 갑갑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할까하고 집을 나서서 시민공원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개똥아! 개똥아하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허둥댄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나?’했는데 손자를 찾는단다.


 할머니 역시 바람이나 쐬려고 손자를 데리고 나왔는데 중간에 동네 사람을 만나 잠깐 얘기를 하다 돌아보니 그 사이에 손자가 사라지고 없다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며 급히 저쪽 골목으로 사라진다. ㅎㅎㅎ 그 녀석, 별명도 개똥이라니 꽤나 개구쟁이인 모양이다.


 「개똥이, 똥개. 참 정겨운 별명이다. 하 많은 세월을 질병과 전쟁과 천재지변을 겪어온 우리의 부모들과 그 이전의 선인(先人)들은 자식들이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고 이름에 복 복() 자와 목숨 수() 자를 많이 붙였다.


 그러고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거나, 이름에 복 자나 수 자가 없는 사람들은, 천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탈 없이 오래 산다하여 별명을 돼지, 개똥이, 똥개」 등으로 붙여 온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여 한 동네에서만 돼지, 개똥이, 똥개가 여러 명이 되기도 하였는데, 어릴 때야 뭐 스스럼없이 부르고 듣기가 정겹기까지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 대놓고 별명을 부르기가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그렇게 불러온 습관 때문에 그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으면서, 본명조차 점점 잊어 간다는 것이 문제인데,


 어느 날, 손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한 잔 걸친 다음 배웅을 하면서 합승 택시에 손님을 태우고 작별을 하는데 기사가 나를 부른단다. 고개를 돌려보

,

 ‘오잉!? 고향에서 같은 동네에 살던 국민학교 동창생, 똥개 아이가?’


 그런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별명은 퍼뜩 생각이 나는데, 교류도 없이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었지만 순간, 무척 당황했다. 그렇다고 손님도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 똥개야 오랜만이다.” 이럴 수도 없고,

 “, , , , 니 오랜만이네.” 얼버무리며,

 옛날 동창생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바쁜 시간 때문에, 기약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서면서 나는 똥개의 별명이 좀 더 멋진, 대감이라든가 시인이라든가, 솔로몬까지는 아니더라도 달팽이정도만 되었어도 남들 앞에서 별명 한 번 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달팽이 아이가, 손님 모시고 좀 빨리 가 도하고 ㅋㅋㅋ


 아이 때 어른들이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고 붙여준 별명 말고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별명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주로 이름이나 신체적 특징, 행동거지 등을 감안한 작명이 이루어진다.


 머리 크기나 모양을 빗대어 짱구꼭뒤라고 부르기도 하고 눈이 크다고 왕눈이, 뽈래기(볼락의 사투리), 몸이 야위었다고 갈비, 행동이 느린 아이를 거북이」 「굼뱅이등으로 명명하였는데, 대개가 썩 좋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별명을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한다하는 개구쟁이들이나 말썽꾸러기들은 꼭 걸맞은 별명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얌전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럴듯한 별명이 없었다. 기껏해야 몸이 말랐다고 갈비, 명태정도였는데 그것도 대중성이 없어서 몇몇이 잠깐 그렇게 불렀을 뿐 금방 사그라졌고, 인기 있어서 오랫동안 회자되거나 한 별명은 없었기에, 별명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 때는, ‘나도 남들처럼 좋은 별명이 있었으면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


 회사에 입사하여 처음 발령 받은 부서가 총무과였고 첫 보직이 일반서무였다. 회사의 업무가 좋고 나쁜 것이 어디 있겠냐만, 일반서무. 좋은 점은, 회사의 용도품 등을 구매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모두 나에게 뭐 좀 달라’, ‘뭐 좀 해 달라라고 숙이고 아쉬운 소리를 할 때 끗발을 좀 잴 수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그 이외에 전부다. 남이 안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이 모두 일반서무의 몫인데, 업체를 부를 시간이 없을 때, 책상서랍 안 잠기는 것, 캐비닛 안 열리는 것, 타자기 활자 떨어진 것 수리는 기본이고 행사의 준비와 뒷정리 및 하기식 방송에 사옥 청소 관리까지 타에 속하지 않는 일은 모두 일반서무의 몫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 슬슬 관록이 붙을 때 쯤, 연말 종무식이 있는 날이었다.


 10시쯤에 강당에서 시작한 종무식을 마치고 뒷정리를 한 다음 총무과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자체 송년회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때는 종무식이 끝나면 그 해의

일은 모두 마무리되는 거라 모두 퇴근을 하였다.)


 다른 직원들이 책상을 모으고 음식을 세팅하는 사이, 나는 총무과에만 방송이 되도록 방송시설의 ‘ON’, ‘OFF’ 스위치를 점검하고 마이크 점검을 시작했다.


 “! ! ! !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하면서 볼륨을 조절하는데 갑자기 마이크 든 김에 노래가 하고 싶었다. 잠시 후에는 우리끼리 노래도 한 곡씩 하

고 할 건데 먼저 좀 하면 어떠랴? 우리끼리만 듣는데.


 하지만 아쉬운 것은 반주가 없어서 생음악이라는 점이었다. 목청을 가다듬고 하나, 둘 셋, ,


 “낙동♩♬ 강바아라아아암이♪♫ 치마폭을 스치면∼♬하고

 <처녀 뱃사공>을 멋들어지게 뽑고 있는데, 우리과 책상 위의 전화벨들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지?’하고 전화를 받는데, 전화기 저편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목청 좋다.”

 “앵콜등등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 무슨 일인가 하여 방송시설을 보니 맙소사! 전 사무실로 나가는 회선의 스위치가 꺼지지 않고 ‘ON’ 상태로 있다. 분명히 끈다고 생각했는데 꺼지지 않은 상태로 온 사무실로 내 노래가 흘러나간 것이

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종무식이 끝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을 하였지만 아직

도 잔무를 정리하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나의 생음악을 들은 터였다.


 ‘아이고, 챙피해라ㅋㅋㅋ


 이후로 내 별명이, 한 동안 낙동강 강바람이 되었다가 낙동강으로 줄여서 불리다가 사그라들었는데, 내가 옛날에 있었으면 하고 원했던 멋진 별명에 대한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었을까?


 「낙동강 강바람, 괜찮은 별명 아닌가? 낙동강 오리알도 장마철에 홍수가 나 떠내려가더라도 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데, ㅋㅋㅋ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면서 혼자 실실 웃으며 집으로 오는 길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손자를 찾아서 집에 간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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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09 17: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인 별명입니다. ㅎㅎ 어릴 적엔 보통 이름으로 별명 붙였던 기억이 나요 황씨면 황소 횡소개구리. 개똥이. 전 할머니가 우리 강세이. 라고 불헜는데. ㅎ

하길태 2021-08-09 21:07   좋아요 4 | URL
낭만적인 낙동강 강바람, ㅍㅎㅎㅎ 뭐 나쁘진 않네요.ㅎㅎ
우리 강세이는 엄청 사랑받은 느낌의 별명이네요.^^

바람돌이 2021-08-10 0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낙동강 강바람 굉장히 낭만적인 별명이예요. ㅎㅎ 그때는 조금 부끄러우셨겠다. ㅎㅎ

하길태 2021-08-10 07: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조금 쑥스러웠지요.^^

han22598 2021-08-18 0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툽에서...찾아봤어요. 낙동강 강바람~~~ 구성진 노래네요 ㅎㅎㅎ
앵콜 요청까지 있는거 보면 노래를 잘 부르셨나봐요. ^^

하길태 2021-08-18 1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일부러 찾아보셨군요.
한 때는 이 곡이 국민 애창곡이었습니다. 이후에 투 에이스(금과 은)가 약간 경쾌한 리듬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었죠.
젊었을 때는 노래를 꽤 잘 했었습니다.ㅎㅎ^^
 

시련의 계절

 

 어릴 때부터, 요행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유난히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 가옥이었다. 물이 들었다가 빠지면 생기는 바닷가 모래톱에서 20미터나 됐을까? 문 밖 골목에 나서면 파도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자연히 바다와 친할 수밖에 없었고 바닷가가 우리들 놀이의 터전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바닷가에서 함석 조각을 가지고 놀다가 이끼를 밟아 미끄러지면서 함석 조각에 눈썹 위가 찢어져 네 바늘을 꿰맸는데, 그때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죽다가 살아난 경험도 있었지만(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달리는 어머니 등에 업혔는데 정신을 잃었다가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를 반복한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여전히 나의 놀이터는 바닷가였다.


 일본 놈들이 우리 동네 왼쪽으로는 바다에 면하여 길게 석축을 쌓고 야적장 비슷하게 넓은 공간을 만들었고, 그것이 부두로 연결되게 해 놓아서 그 넓은 곳이 우리들이 놀기에 아주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라면 그곳에는 제방이 없어서 공놀이를 할 때 공이 바닷물에 자주 빠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사라호 태풍이 오는 바람에 모두 깨어져 버려서 놀이터를 잃었는데 얼마 후 피해 복구공사를 하면서 우리 동네 앞에만 제방이 설치되니 이제는 완벽한 놀이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공굴 마당’(아마도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당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이라 하면서 맨날 그곳에서 아이들과 놀게 되었다.


 그날도 공굴 마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공놀이를 하는데 마침 그 시간에 만조가 되어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와 있었다.


 한참을 신나게 공놀이를 하며 노는데 한 아이가 실수로 공을 제방 넘어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이 어디에서 간짓대를 구해 와서 공을 건지려는데 길이가 약간 짧다. 그러자 아이들이 삼식이 저거 집에 긴 간짓대가 있다며 가지고 오라고 삼식이를 꾄다.


 살던 동네가 바닷가이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뱃일들을 하였고, 뱃일을 안 하더라도 거의 모든 집에서 처마 밑 선반에 낚싯대 한 두 대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싫다던 삼식이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집에 있던 낚싯대를 가지고 왔다. 낚싯대는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였고, 초릿대 부분은 불로 구어서 곧고 똑 바르게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아이들은 낚싯대를 들고 공을 건지려 안간힘을 쓰지만 낚싯대 윗부분이 너무 가늘어서 둥근 공을 제대로 건질 수가 없다.


 ‘에이 머리 나쁜 녀석들.’

 “내가 건져 볼게.”하고 나는 낚싯대를 건네받아 낚싯대의 가느다란 쪽을 손에 쥐고 두툼한 손잡이 쪽으로 공을 살살 방파제 제방 쪽으로 몰고 왔다.


 ‘, 역시 사람은 머리를 쓸 줄 알아야 돼.’


 이제 한 번만 공을 몰아오면 애들이 건질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한껏 고무된 나는 마지막 필살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낚싯대를 힘껏 쳐들었다. 순간, ‘우지직하면서 낚싯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낚싯대를 거꾸로 들고 가느다란 부분에 너무 힘을 준 탓이었다.


 ‘아이쿠, x됐다. 이일을 우짜노?’

 

 아이들 모두 공놀이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실망과 경악과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다 삼식이는 죽을 상이 되어 울먹인다.


 ‘! 이런 낭패가 있나?’


 그 낚싯대는 자기 삼촌의 것인데, 삼촌이 애지중지 다듬어 놓고 뱃일을 나갔는데 사흘 후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단다. 큰일이다. 삼식이 삼촌이 돌아오면 삼식이 뿐만 아니라 나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아! 나에게는 어찌 이런 일만 자꾸 생기는지? 지난주에는 누나 친구들이 고무줄놀이 하는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다 누나 친구가 던진 돌에 맞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것도, 누나 친구가 돌을 던지는 것을 보고 피한다고 폴짝 뛰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돌에 맞도록 얼굴을 들이대는 꼴이 되어 왼쪽 눈에 돌이 정통으로 맞아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었다.


 어쨌거나 이 위기를 모면하려면 새로운 낚싯대를 구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삼식이를 달래놓고 옆집에 사는 수곤이를 꼬셨다. 함께 낚싯대를 찌러 가자고.(찌다 : 나무나 풀 따위를 베어 내다.) 마침 자기도 낚싯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것을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나와 수곤이는 낫과 식칼을 챙겨서 남의 대나무 밭으로 대나무를 훔치려 출발했다. 우리 동네에는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야산 모롱이에 대밭이 있었는데,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대나무들이 무성했다.(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주인 없는 곳이 틀림 없었는데.)


 평소에도 그곳은 외진 곳이라 귀신이라도 나올 듯 좀 으스스하였는데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 보니 물불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무서움과, 남의 것을 훔친다는 죄책감까지 더하여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밭으로 들어가 각자 대나무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나무는 밑에서 보면 위가 똑 바르게 곧은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각자가 마음에 드는 것들을 선택하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고, 당장 주인이 나타나 뒷덜미를 움켜잡을 것 같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낫과 식칼을 이용해 손발을 덜덜 떨어가며 어렵게 하나 씩 대나무를 찌고 옆으로 난 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급지급 대나무를 정리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대나무 밭을 빠져 나왔다. 한 참을 도망치다시피 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뒤를 돌아보았지만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안심을 하고 가지들을 정리한 대나무를 보니, 수곤이 것은 초릿대 부분이 곧고 바른 것이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내가 찐 대나무는 초릿대 부분이 마디마다 비뚤비뚤한 것이 영 시원치가 않다. 내가 부러뜨린 낚싯대에 비하면 어림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다시 다른 나무를 찌러 가기에는 대나무 주인이 곧 잡으러 들이닥칠 것 같아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수곤이에게 낚싯대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사실 우리가 찐 낚싯대는 아이들이 들고 낚시하기에는 너무 길고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수곤이 싫단다. 아무리 꼬셔도 안된다. 딱지를 얹어 줄께, 구슬을 얹어 줄께, 해도 모두 싫단다. 아니, 같이 놀다가 낚싯대를 부러뜨렸는데 혼자 책임을 지게 되니 좀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싫다니 뭐, 할 수 없었고.


 그길로 나는 삼식이를 만나서 낚싯대 상태를 모른 체하고 낚싯대를 건넸다. 비록 허접한 것이었지만 낚싯대를 본 삼식이는 그제야 비로소 얼굴에 화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후 며칠 동안 대나무 주인이 우리집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삼식이 삼촌이 혼내려 오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는데,


 어느 날 공굴 마당에 나가보니 삼식이 삼촌이 불을 피워놓고 내가 쪄다 준 대나무를 열심히 손질하고 있었다. 삼식이한테 넌지시 물어보니, 자기 삼촌도 낚싯대

가 이상하다며 얘기를 했지만 삼식이는 시치미를 뚝 땄단다. ㅋㅋㅋ 기특한 녀석.


 운수도 나쁘면서 그렇게 가슴 졸이던, 시련의 계절은 그렇게 흘러갔지만 당시를 회상하면 - 모든 일이 해프닝이었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거침없이 실행하는 법도 배운 반면, 내 것이 아닌 것을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인지를 일찍 경험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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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08-02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길태 2021-08-02 16:04   좋아요 2 | URL
ㅎㅎㅎ 졸필 읽어주셔서 감사힙니다.^^

바람돌이 2021-08-02 18: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닷가의 삶.... 저도 섬 출신이라 어릴적 바닷물에 몇번 빠져서 죽을뻔 했어요. 집의 문 열면 바다였죠. 그래도 남자아이들은 정말 다치는게 장난 아닌게 다들 그래도 살아남는게 신기 신기요. ^^

하길태 2021-08-02 20:47   좋아요 2 | URL
오, 그러셨군요.
바닷가가 위험하기는 위험하죠? 우리 동네에도 매년 여름이면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꼭 한 명 이상은 생기곤 했어요.^^

붕붕툐툐 2021-08-0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하길태님은 왤케 잼난 스토리가 많으신겁니까?ㅎㅎ
저는 도시 태생이라 자연에서 자라신 분들 넘 부러워요~ 물론 위험한 순간들도 많겠지만, 저도 오토바이 사고로 응급실에 간 적이 있느니 어디든 아이들은 위험한 걸로?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하길태 2021-08-03 07:07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릴적 기억으로는 그런 일들이 저에게는 엄청난 불행이었습니다.ㅎㅎㅎ ^^
 

내가 먼저다


 매년, 사창립 기념일이 되면 본사에서 사장 공로상이 내려온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자는 1등급 상을 받게 되는데, 수상자는 인센티브도 가급되며 승진 심사 시 가점이 부여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예를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상이다.


 그런데 이 상은, 본사에서 지사별로 인원을 할당하고 지사는 또 예하 사업소별로 인원을 배정하여, 공적조서와 이전의 수상 이력 등을 검토하고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자를 결정한 다음 이를 본사에 상신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짜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간부는 이 상을 안 받는다. 직원들의 승진 가점에 꼭 필요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직원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거의 선례가 되어 있으며 또 간부들 대부분은 공로상 1등급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사업소에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간부가 상을 받겠다며 공적조서를 올려왔다. 옛날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서 내가 잘 아는 간부였는데, 주로 보안, 소방, 예비군, 민방위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고, 그런 업무들이 또 대외 기관의 상을 받을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해서, 그 분의 인사기록을 확인하니, 맙소사! 대통령상을 비롯해서 국무총리상, 장관상, 시장상, 사장상 등 온갖 상들을 다 수상하여 인사 기록의 상벌 란이 모자라 별지로 수상 내역을 덧붙여 놓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기록을 가진 분이, 간부들이 구태여 안 받아도 되는 상을 받고 싶어 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그 사업소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다른 상은 다 있는데 사창립일에 주는 사장 공로상이 없어서 구색을 맞추려고 신청을 했단다. 내일, 모레 퇴직을 할 사람이 하도 자기가 받겠다고 주장을 하니까 아무도 다른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신청이 되었단다. 하이고, . 한숨이 나올밖에. 다른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받을까 말까하는 그런 상들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최후의 순간에까지 욕심을 내다니.ㅉㅉㅉ


 결국 그 분의 공적조서는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수상에 실패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그 분 때문에 직원 한 사람이 상을 못 받게 되었고, 또 당해 연도에 포상 인원 배정을 받은 사업소는 다음 해에 포상에서 배제되는 원칙에 따라 그 사업소는 3년을 사경일 사업소장 상도 받지 못하는 사업소가 되고 말았었다.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상황 파악은 좀 하고 살아야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나 후배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


 어쩌다 보니 그 분과 또 다른 여러분의 합동 퇴임식에서 내가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그 분의 수상 경력을 소개할 때는 시간 관계상, “대통령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로 간략하게 끝내야 했었다. 그런데도 그 사장상 1등급이 뭐

그리 필요가 있었던지......(또 한 번 ㅉㅉㅉ)


 상 얘기가 나온 김에 나의 경우를 보면, 나도 참 상복은 없었다. 하도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오버타임 해 가며 힘들게 보고서 만들어 줬더니, 칭찬도 지들이 듣고 내려온 상도 지들이 타먹어 버리고, 입 싹 닦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분명히 다음이 내 차례인데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어 다시 후 순위로 밀리고. 하여, 막상 내가 상이 필요할 때에는 내부에서 주는 상은 아예 포기를 하고 외부에서 주는 상의 루트를 뚫어 수상을 하였는데, 그것도 그 방법을 간파한 다른 직원의 방해 공작으로 시도 첫 해에는 뺏기고 다음 해에서야 겨우 수상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로 포상이 내려오면 관련도 없는 인간들이 서로 먹겠다고 작당들을 하여 기어코 뺏어가지 않나,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 능력도 없는 것들이 남의 떡을 뺏어 먹는 데는 얼마나 영악하고 도가 텄던지. 남 눈치 보지 않고, 얼굴에 철판 깔고 지가 먼저라고 덤비는 인간들을 보면 가엾기도 하고, 가 양보를 해야지. ㅉㅉㅉ


 그래도 나는 뭐, 꼭 필요한 상에 교육우등상까지 있었으니까 더 욕심은 없어서 상이 내려오면 나는 유별나게 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을 많이 하였고 그리고 상이 많이 내려왔다 - 무조건 직원들에게 모두 돌려주어서 그걸로 승진까지 한 직원이 있었으니 대신 만족을 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인사철이 슬슬 다가오고 자리를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동 신청을 한 다음 밀린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랫동안 전임들이 손도 대지 못하고 묵혀왔던 업무 관련 내칙을 정비하고자 완벽한, 내가 보기에도 멋진계획을 수립하여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결재를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그 계획서 아직 다 안 봤냐고 물으니 상사란 인간이 책상 속에서 슬 꺼내 놓으며 여기 있단다. 엥∼! -한 느낌. 결재해 달라는 뜻인데 답변이 여기 있다는 무슨 시츄에이션? 그 이후로도 몇 번 독촉을 하였지만 그 인간은 내가 발령 나는 날까지 끝끝내 결재를 하지 않았다.


 나쁜 인간! 내가 조만간 발령이 날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만 개기면 지 꺼가 된다 이거지? 나는 그 인간의 의도를 즉각 눈치 채고 언짢은 얼굴로 내 자리로 돌아와서 죄 없는 책상만 걷어찼다. 이제는 상을 뺏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실적 자체를 뺏겠다는 몰염치가 아닌가. ‘그래 인간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일 잘하는 내가 죄인이다.


 결국 나는 그 서류가 미결인 상태로 두고 사업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얼마 후, 내가 다 해 놓았던 그 일이 지가 한 것으로 둔갑하여 사업소에 통보되었다. 역시 내가 먼저다. 남 줄 것 뭐 있어, 몰인정은 잠시고 가로챈 실적은 영원한 것인데.


 ㅎㅎㅎ 허탈하기는 했지만 그런 꼴을 하도 많이 봐 오다 보니 감흥도 없었다.

그 인간은 이후에도 요리조리 줄도 잘 타서 승진도 귀신같이 하더만. 그래도 나만 보며는 미안한 건 아는지, x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는 체를 하던지.ㅋㅋㅋ 야이, 인간아!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라. 그 지은 죄를 언, 어떻게 다 갚을래?’


 그래도 오늘 같이 새벽에 잠이 깨어 온갖 잡생각이 다 들 때는 나는 기도한다. ‘! 신이여 이 같이 비열하고 능력 없는 인간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저의 죄 또한 사하여 주시옵소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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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길태님 가끔 살아온 이야기들 해주시면 너무 재밌어요.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셨어야죠. ㅎㅎ

하길태 2021-07-27 06: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 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행복한독서가 2022-01-15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이 글을 읽으니 세상만사가 다 비슷한 경험을 안겨주는 느낌입니다. 슬며시 동화되어서 재미있게 읽었고 그 느낌 알기에 화도 나고 그렇습니다. ^^
 

대하소설에서의 지루함에 대하여


 대하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즐겨 읽는 편이다.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

니고 그냥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한 가지 요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옛날에 공부할 때, 한 참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능률도 오르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슬럼프 극복의 한 방법으로 그 기다란 장편 무협소설을 밤새 읽으며 컨디션을 조절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잠재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

기도 하고,


 그리고 또, 구태여 이유를 밝히라면, 이유야 많지. 우선은 재미있고, 그 재미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겠지만 단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은, 살 때는 두툼한 책이 보기에 기분도 좋고 마음이 뿌듯하지만 막상 읽으려면 그 두께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대하소설은 그런 것을 전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그런 걸 보면 정말 대하소설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대하소설이라 하면, 길이로만 보면, 통상 원고지 700, 3권 이상의 소설을 말한다고 한다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3백 페이지, 5권 이상이면 대하소설이라고 칭해도 크게 잘 못된 생각은 아닐 것 같다.(물론 요즘은 대하소설도 점점 상업화의 영향을 받아 활자를 키우고 페이지를 줄이고 하여 10권 이상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인 추세지만 3권짜리로 노벨상을 받은 훌륭한 대하소설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대하소설도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읽은 책들이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널리 알려진 고전 소설, 유명 작가의 소설,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소설 등 - 작품들인데도 말이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지? 별 할 일 없는 사람이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해 본

.


 1. 축약본

 대하소설의 축약본은 독자를 지루하게 한다. 독자가 원한 것도 아니고 원저자가 축약본을 따로 집필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역자가 출판사의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내놓은 듯한 경우이다. 역자가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원작을 훼손한 것이 분명한 것 같고 원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독서의 시작부터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원작을 읽어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2. 반복되는 사건의 진행

 특히 전투 장면이 많은 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비슷한 상황의 전투가 비슷한 방법으로 특징 없이 반복되면 갈수록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발생하는 사건도 없이 긴 여정만 설명하는 경우, 산을 넘고 숲을 헤치며 강을 지나 덤불을 뚫고 등이 반복적으로 설명되면 그 부분은 책을 건너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 속에서의 그런 자연환경들의 변화를 어떻게 상상 속에서 특징을 달리해 가면서 형상화할 수 있단 말인지?


 3.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

 상기 2항과 관련된 얘긴데, 반복되는 상황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선지 억지 상황을 만들고 앞뒤가 맞지 않은 지나친 방법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삼가야할 방법이다. 독자들은 그것이 억지로 끼워 맞춰졌다는 것을 다 알고 있, 그런 것을 식상해 하기 때문이다.


 4. 이야기의 전개가 처음의 주된 사건에서 점점 멀어져 갈 때

 처음의 사건이, 진행이 계속되면서 가지를 치고 또 쳐서 처음의 사건과 서로의 관련성이 너무 희석되었거나 전혀 다른 사건이 되었을 때. 이런 부분들은 빼버려도 전혀 작품의 진행에 지장이 없다. 그런 부분들이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독자는 흥미를 잃고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5. 지나치게 복잡한 사건의 전개

 동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일정한 간격의 시간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전개할 때. 이런 경우는 시작부터 너무 복잡하여 읽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데, 최소한 2-3권은 읽어야 작품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6. 이념 편향적인 소설

소설 속에서는 전지전능한 작가가 무슨 짓을 못할까만, 등장인물들을 딱 양쪽으로 편 가르기를 해놓고 노골적으로 선과 악으로 대비시킨다. 우리편은 선, , . 상대편은 악, , . 그것도 정도가 있지,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지루함을 넘어 짜증스럽기조차 하다.ㅉㅉㅉ


 뭐, 내가 느낀 대하소설의 지루함은 대충 이런 것들인데, 나의 생각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해 본 이야기인데 세금 내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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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소설의 지루함에 대해 부분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일부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은, 대하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하소설은 전체적인 기승전결 속에서 또 각 권마다 아기자기한 기승전결이 들어있어서 이야기를 길고 재미있게 끌어가는 힘을 가진, 훌륭함을 간직한 문학의 한 장르이다.


 물론, 대하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부피만 보고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대하소설은, 그 분량과 구성에서, 사전 자료를 준비하고 집필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나는 독서 전, 후에 반드시 그런 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대하소설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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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무더운 장마철이다. 이쯤에서는 시원한 것들이 먹고 싶고 등골이 오싹한 공포영하도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듣고, 겪은 실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본다.


 어릴 때는 외갓집이 참 좋았다. 외할머니도 계시고 이모도 있었는데, 내가 외갓집에 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반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

니나 이모를 졸라서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듣기를 즐겼다.


 외할아버지께서 겪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젊은 시절에는 기골이 튼튼하셨고 담도 컸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 일 때문에 멀리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떠났지만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몇 개의 산길도 지나야 했다.


 깜깜한 산길을 더듬어 가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자시(子時)나 되었을까? 얼마 전부터 숲속에서 외할아버지 뒤를 따르는 뭔가의 기척을 느꼈단다.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귀신인가? 산짐승인가?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장죽에 담배를 재서 한 모금씩 빨면서 주위를 살펴도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단다.


 그러기를 몇 번, 길이 반나마 줄었을 무렵, 산모롱이를 도는데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외할아버지께 흙을 한 삽 정도를 확 끼얹었다. 놀란 할아버지는 머리가 쭈삣 서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정신을 가다듬었고, 상대가 호랑이임을 직감했다. 산짐승은 불을 무서워한다고 외할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재촉하는,


 이놈의 짐승이 다시 흙을 뿌리며 장난을 한다. 멈춰 서서 숲속을 보니 주먹 만한, 새파란 두 개의 불꽃이 외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공포심으로, 이미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을 하며 호랑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마을에 가면 살찐 암캐가 있는데 같이 가면 제가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하면서 계속 어르고 달래고, 불붙인 담뱃대를 빙글빙글 원

을 그리듯 돌리며 떨리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마을이 보이는 산모롱이를 도는데 멀리 마을에서 캥-하는 개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이 조용한 적막에 휩싸였다.


 외할아버지는 온통 땀에 젖고 흙을 뒤집어 쓴 험한 몰골이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 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집에서 키우던 개가 밤사이에 사라지고 없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단다.


 우리 외갓집은, 우리집에서부터 어른이 걸어도 40분은 넘게 걸리는 시골이었는데(옛날에는 그랬다. 시내만 벗어나면 바로 시골이었다.), 아이 때 내 걸음으로는 족히 1시간 반은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그 중간에, 밤에는 혼불도 자주 나타나는 공동묘지가 있고, 오색 깃발에 알록달록한 커다란 조화들로 장식된 낡은 상여집이 있었으며,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산모롱이를 지나야 해서 낮에도 좀 으스스했다.


 그런데 꼭 외갓집에서 정신없이 놀다보면 해가 져야 집으로 출발했다. 깜깜한 밤길을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따라 아이 혼자 바작바작 걸으면서 누군가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한 50미터 저 만큼 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가고 있다.


 같이 걷고 싶어 급히 따라간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어간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녀와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갈 밟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맙소사! 그녀는 발이 없다.


 그러더니 소복의 여인은 산모롱이 상여집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더니 상여집 앞에 딱 멈추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기겁을 하고 놀라 죽을힘을 다해 그곳을 벗어났다.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한 번도 정직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다시는 외갓집에 못 가게 할까 봐. 그 일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과외공부를 시작하면서 외갓집에 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것을 겪고 성장해서인지, 보기와는 달리, 나는 별로 겁이 없고 무서움을 타지 않는 강심장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항상 낚시를 같이 다니던 후배 파트너가 있었는데, 은퇴를 하고 보니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낚시를 다녔다.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까지 언제나 놓치지 않고 볼락 밤낚시를 다니는데, 깜깜한 밤에,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바닷가에 앉아 탈탈거리는 손맛을 느끼며 볼락을 낚아 올리는 재미는 거의 환상이다.


 그 손맛을 못 잊어서 항상 찾아가는 나만의 낚시 포인트는, 뭍에서 도선을 타고 섬으로 건넌 다음 1시간가량을 산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서 섬 최남단의 갯바위로 가야하는데, 중간에 공동묘지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단다.(내 낚시 포인트는 물때, 바람,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내 시간이 허락하고 비만 오지 않으면 항상 조과가 보장되는 명당이다.) 그래서 장비를 챙겨 낚시터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을 재미있게 볼락을 낚아 올린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씨알 좋은 볼락이 그렇게나 물어대던지 정신없이 낚고 있는데 멀리서 마른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천둥이 울린다. 볼락 입질이 뚝 끊어지고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변덕 많은 봄날 날씨라니’, 투덜거리며 바위 옆으로 비를 피하는데 좀처럼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번개는 계속 친다. 이런 날 낚시하면 큰일 난다. 낚싯대

가 카본 소재이기 때문에 벼락 맞아 죽을 수가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고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면서 가랑비로 변하는 것을 보고 철수를 결정했다. 큰놈들을 꽤 많이 잡아 무거워진 쿨러를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철벅철벅 비에 젖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어디서 꽹과리, 장구북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이 비 내리는 야밤에 누가 굿을 하나? 무슨 소린가 하고 공동묘지가 보이는 마루로 올라서는데, 맙소사! 공동묘지 위에서 사발만한 파란 불덩이들이 널뛰기를 하고 하얀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귀신들이 무슨 잔치를 벌이는 듯 꽹과

, 장구, 북을 치며 야단이 장난이 아니다.


 허걱! 나는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었다. 내가 무서움을 모르는 강심장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그 때 만은 뒷머리가 곤두서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덜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지도 가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데, 귀신들의 대화가 귀에 들려온다.

 “오늘 최 서방 댁 막내딸을 데려오면 다음은 누구 차례고?”

 “, 다음은 김 주사네 셋째 아이가?”

 “가만있자, 오늘이 그믐이니까 얼마 안 남았네.”

 “그래, 그래. 아무튼 우리한테는 경사니까 신나게 놀자.”

 “그래, 그러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


 나는 정신을 수습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잡귀들아 물렀거라. 인간을 이기는 귀신이 어디있냐?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어떻게 이겨?’

 “어이, 어이, 물렀거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공동묘지 위를 지나는데, 그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흡사 귀신들이 어깨를 가로챌 것 같은 느낌으로 등골이 섬뜩섬뜩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공동묘지를 지났고, 옛날에 사람들이 많이 살 때, 도선의 매표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 간혹 낚시객들이 이용하는 콘테이너 박스에 도착하여 랜턴을 켜 놓고 몰골을 보니 이건 뭐, 사람의 꼴이 아니다. 비에

젖어 식은땀에 젖어,


 대충 정리를 하고,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좀 붙일까?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귀에서 계속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비몽사몽간에 새벽녘에 설풋 잠이 들었는지 날이 희뿌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찌뿌둥한 눈을 뜨는데, 분위기도 어색하고, 느낌도 조금 서늘하고 축축한데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 같으면서 바닥에 뭔가 시커먼 것들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 랜턴을 켜고 보니, 이크! 이게 뭐야!? 손가락 굵기 만한 지네들이 바닥에 버글버글 거리는데 징그러워 소름이 쭉 돋는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또 뭐지?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매표소 콘테이너가 아니고 웬, 다 쓰러져 가는 폐가의 헛간 같은 곳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짐을 챙겨 후다닥 그곳을 벗어났는데, 나오고 보니 약 20미터 전방에 매표소 콘테이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간밤에 분명히 매표소 콘테이너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폐가의 헛간이었다니, 틀림없이 그 밤에 나는 귀신에게 홀렸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하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언제 비가 왔더냐는 듯이 날씨가 화창하다.


 부스스한 몰골로 도선을 타고 출발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앉았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 최 서방 댁 딸이 갔단다.”

 “아이고, 안됐네. 도회지 나갔다가 병을 얻어 왔다는 그 딸 맞제?”

 “.”

 “그 아이가 몇째고?”

 “막내 아이가.”

 “몇 살인고?”

 “올해 스물다섯이란다.”

 “아이고, 한창 나이에 정말 안됐네. ㅉㅉㅉ


 뱃고동이 뭍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집에 돌아오니 할매가 몰골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핀잔이다. 비를 맞아서 그렇다고 해야지 귀신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다음부터 낚시하러 못 가니까.


 그래도 그날 잡은 굵은 놈들은 손질을 하여 굵은 소금 철철 뿌려 구어서 시원한 맥주 안주로 맛있게 먹었고, 그 후로도 나는 변함없이 혼자 그 곳으로 낚시를 다

녔는데,


 어느 날은, 함께 낚시를 하러 가는 노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혼자 낚시 다니면

위험하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조심하란다. ㅋㅋㅋ

영감들아, 지가 하고 싶어 하던 일 하다 죽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지는 모르

?’ㅋㅋㅋ


 코로나 때문에 낚시도 못 가고 있는데 내 포인트는 잘 있는지? 그때 백화현상으로 인해서 몰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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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는 아니겠죠? ㄷㄷ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네요 😐

하길태 2021-07-12 16:2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가 소설책을 너무 많이 보았을까요? 아니면 꿈을 꿨을 까요?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제가 겪은 일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달았지요 ‘믿거나 말거나‘ ㅎㅎㅎ

thkang1001 2021-07-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일을 경험하셨군요. 하길태 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길태 2021-07-12 21:13   좋아요 0 | URL
ㅎㅎㅎ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꼬마요정 2021-07-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고모할머니한테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졸라서 들은 얘기 중에 호랑이 얘기도 있었어요. 결론은 사람이 젤 무섭다였지만요. 역시 여름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입니다. 요즘 심야괴담회 보는데 정말 재밌더라구요. 하길태님 사연 들으니까 막 상상하게 되네요. 정말 촛불 44개 켜 드리고 싶어요!!!

하길태 2021-07-13 07:09   좋아요 0 | URL
오! 요즘 그런 프로가 생긴 것 같네요. 미처 몰랐습니다.
어릴 때는 호랑이, 도깨비, 귀신 이야기가 최고였지요.
촛불 감사합니다.^^

samadhi(眞我) 2021-07-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모롱이, 혼불, 신작로... 예스런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이 글을 초안으로 해서 단편소설 쓰셔도 좋을 듯합니다. 멋진 경험담 잘 들었네요. 역시 이야기는 언제나 좋아요. 정말 강심장 맞네요. 그날 잡은 고기도 맛있게 드시고 다시 또 가셨다니.

하길태 2021-07-13 07: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단편소설까지는 많이 부족하지요.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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