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영화


 우리 때에는 학칙이 엄청 엄해서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는 외에는 극장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미성년자 관람가, 불가를 막론하고 무단으로 극장 출입을 하다 걸리면 최소 처벌이 정학 처분이었다. 그리고 매일 밤 학교 선생님들이 교대로 극장으로 단속을 나갔었다.


 그래서 선생님 몰래 살금살금 가서 보는 영화를 도둑 영화라 칭했는데, 경찰이 있다고 도둑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학생들은 심심찮게 도둑 영화를 관람하고 무용담과 감상평을 자랑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였던 것 같다. 앞에 앉은 작은 녀석이 며칠째 영화 보러 가자고 살살 꼬신다. 나는 밤에 과외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딱 잘라 거

절했다. 하지만 녀석은 끈질겼다.


 그 녀석은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해서 아르바이트로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시내 두 곳 있는 극장 모두에 신문 배달을 하기 때문에 기도 아저씨들을 잘 알아서 자기가 데리고 오는 친구 한, 두 명은 공짜로 입장 시켜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단다.


 그 녀석과는 새 학년이 되어서 만났고,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접근해 오면서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 제의를 하게 된 것 같았는데 비록 거절은 하였지만, 영화 감상, 그것도 공짜 영화. 그것은 나에게 호기심과 스릴을 모두 갖춘, 피해가

기 힘든 너무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당시에는 청소년들이 여가를 보낼 마땅한 거리가 없다보니 영화 감상이 최고의 흥밋거리였는데 그걸 또 못하게 강력하게 막으니 숨어서라도 할 밖에. 그래서 나는 일탈을 감행하기로 작정을 하였고, 다음에 과외가 빠지는 날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녀석에게 영화 보러 갔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어떡하나?”하고 물으니, 녀석이 그런다. “선생님들은 영화 시작 전에 이층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보고 학생들을 찾아내기 때문에 영화 시작하고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면 불이 꺼져 깜깜하니까 선생님도 모른다.” 이런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그날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영화 제목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영화가 아니었는데, 그때는 영화 감상보다 도둑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서 더 스릴을 느꼈던 것 같았다.


 저녁을 든든하게 챙겨먹고 시간에 맞추어 극장 앞에서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나를 잠시 기다리게 해 놓고 표도 끊지 않고 기도에게 인사를 하더니 극장으로 쓱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러더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단다.


 과연, 녀석의 말대로 그는 극장을 공짜로 들락날락하는 능력자로 내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극장으로 들어간 녀석이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 시작할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만 영화 시작 시간이 지나도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모처럼 나온 시간이 아까워 매표구에서 극장표를 사서 입장한 다음 얼른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영화가 시작되어 불이 꺼져 깜깜할 것이니 얼른 객석으로 들어가면 만사 OK. 그렇게 허겁지겁 계단으로 올라가다 이층에서 내려오던 사람과 딱 마주쳤는데 허걱! 우리학교 농업 선생님이다.


 큰일 났다. 딱 걸렸다. 그 선생님은 고향이 섬인데 혼자 뭍에 나와서 생활하신다고 했고 농업 선생님이다 보니 항상 화단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 둣했는데 혼자라서 외로우셨는지 극장 단속은 도맡아놓고 하시는 것 같았다.(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그 선생님이 성병에 걸려서 가족과 같이 못사는 것 같다는 유언비어가 퍼져있었다.)


 그런데 우리 한 해 위의 선배들은 실업 시간에 농업을 배웠고 우리는 상업을 배웠기 때문에 그 선생님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아서 나를 몰랐다. 하지만 내가 학생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고 심문하기 시작했다.


 요즘 같아서는 다른 학교 학생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때는 너무 큰일이 발각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고, 원래가 내가 또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그때는 너무 고지식해서 곧이곧대로 학교와 학번을 술술 진술하고 말았다.


 그래놓고 선생님은 내가 가족과 함께 영화 보러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도 없고 너무 쫄려서 우물쭈물 대답도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땅만 쳐다보며 고개를

쳐박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선생님은 아무 조치도 없이 가버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다가 한참 후에 객석에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그 상황에 영화가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영화를 보다니 나도 참 ㅉㅉㅉ. 당연히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걱정만 눈덩이처럼 부풀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담임 선생님께 교무실로 불려가서 다시 심문을 받고 실컷 꾸중을 들었다. 다행히 그 영화가 미성년자 관람가 등급의 영화여서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정학은 면하였고, 나의 중학생 시절의 스릴을 만끽하기 위한 과감한 일탈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한 번 하지 못한 채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런데 괘심한 것은 그 녀석은 내가 그런 수모를 당하는데도 변명 한 마디 없었고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쁜 넘, 거짓말쟁이, 나를 물 먹이다니. 나는 이후 그 녀석과는 일절 상종하지 않았고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는 절대 좋아하면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는데, 방학 때 고향에 와서 보면 그 녀석은 보디빌딩을 한답시고 자기만큼 짜리몽땅한 선배들과 어울려 가슴 빵빵하게 부풀리고, 어깨 각 잡고 이상하게 팔을 옆으로 벌린 어정쩡한 폼으로 할 일없이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바보 같은 넘, 그 키에 옆으로만 퍼지기만 하면 그게 얼마나 꼴불견이냐고???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ㅉㅉ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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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31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 자체도 미스터리네요ㅋㅋㅋㅋ 도대체 왜 사라져서 나타나지도 않더니 학교에선 모른척? 🤨

하길태 2021-05-31 21:27   좋아요 3 | URL
ㅎㅎㅎ 그 녀석, 자기가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뻐기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잘 안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미안하니까 시침미 뚝 따고 있었던 것 같구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5-31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모범생 중딩의 수난기네요~ 아니 영화가 얼마나 좋은데 예전에 왜 그리 못하게 하는게 많았을까요? 그래도 역경을 통해 큰 교훈을 얻으셨네요~^^

2021-06-01 07:16   좋아요 2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그때는 효율적인 관리가 오직 통제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요즘도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하길태 2021-06-01 0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때는 효율적인 관리가 오직 통제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요즘도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잉크냄새 2021-06-0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긴장하며 본 영화여서 그런지 그때 본 영화 제목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플래툰, 노틀담의 곱추, 용형호제2, 인디아나 존스3.
이 건전한 영화들을 못보게 감시했다니....

하길태 2021-06-01 16: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좋은 영화들 감상하셨네요.^^
 

연수원에서 생긴 일

 

 그날 아침에 우리는 모두 설렘과 기대감으로 약간을 들떠 있었다. 오늘이 연수원의 마지막 밤이고 내일이면 일선 사업소로 발령을 받아 명실공히 사회 진출의 첫 발을 딛게 된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로스토우의 경제발전단계설에 의하면 도약단계(take off)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경제의 성장이 국정의 최대 과제였고 국가의 온 역량이 그 쪽으로 쏠려서 국민경제의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던 시기였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수출에 드라이브가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래서 유수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우수한 경력 사원들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각 기업체에서는 인력의 부족 사태가 심각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각 기업체에서는 신입사원의 채용 인원을 늘리고 횟수도 1년에 2회 씩 이나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 보니 우리들은 비교적 쉽게 입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합격자 발표와 거의 동시에 연수원에 입교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입생들, 학교의 입학식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연수원 교육도 첫 날은 모두 서먹서먹하였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나는 그런 분위기를 한 번에 제압했다.


 쉬는 시간, 모두 조용조용히, 소곤소곤 옆에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나는 쓱- 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알고 있던 야한 유머한 방으로 우리 반 친구들을 초토화 시키고 분위기를 완전 장악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서서 분위기를 선도했고, 우리들 사이에는 입사 동기라는 묘한 유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뭔가 좀 빠진 듯 서운한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젊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한 잔의 술이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어느 정도의 통제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시절이었기에, 아침 6시 기상하여 하루 일과를 구보로 시작하는 분위기에서, 비록 피교육자들이 모두 성인이기는 했어도, 외출, 외박도 안 되는데 연수원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20년 후에 연수원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매점에서 캔 맥주를 팔아서 저녁 식사 후 가볍게 한 잔 씩 마시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었다.)


 또 규칙이 엄하기로, 우리 반 친구 몇 명이 친구 생일 축하 해 준다고 하필 사감실 앞 화단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노래를 부르다 걸려서 주의장을 받은 바도

있었다.


 그렇기는 했지만, 매일매일 시간외 근무를 달아가면서 원래 2주 과정의 교육을 1주로 줄이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내일이면 서로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정확하게 콕 집어서 뭐라 말 할 수는 없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생활실 9명에게 슬슬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헤어지면 언제 또 얼굴 한 번 볼 수 있겠노?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얼마나 좋겠노.” “딱 한 잔만 했으면 좋겠는데......”이러자 한 친구가 쓱 나선다.(어디 가나 나 같이 선동하는 사람이나 장단 맞추는 이런 친구는 꼭 있다.)


 안 그래도 자기가 저녁 먹고 보니까 연수원 너머에 상점이 있는데 통하는 개구멍이 있고 옆방 친구들은 벌써 술 봉지를 들고 가는 것을 자기가 보았단다. “그래, 그러면 우리도 한 잔 하자.” 그러자 몇몇 쫄보 친구들은 반대를 한다. 그런데 분위기를 잡고 있는 내가 박박 우기니 못 이겨서 따라 온다.


 그 친구, 자기가 갔다 오겠단다. ! 댕큐. 그래서 돈을 갹출하여 그 친구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고 나니, 술 한 잔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완전 생활실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서로 조잘 대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진다.


 그런데 그 친구,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늦지?’ 애를 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이 나온다. “딩동, 사감실에서 알립니다. 각 생활실에 있는 교육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연병장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10시가 넘었는데 집합을 하라는 것은 뭔가 큰 일이 났다는 이야기다. ‘혹시 무장공비라도 침투했는가?’(우리 연수원이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투덜거리며 연병장으로 가는데, 저쪽 연단 앞에 술을 사러갔던 그 친구와 몇 명이 불룩한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크! 렸구나. 큰일났네......’


 교육생들을 연병장에 모아놓은 사감은 한 사람, 한 사람 앞을 일일이 다니며 킁킁거리고 냄새로 음주 측정을 하여 음주자를 모조리 색출하였다. 그리고 음주자와 개구멍을 들락거리며 술을 산 사람들은 응분의 조치를 하겠다며 모두 확인서를 받아 갔다.


 ‘하이고, 이거 인사위원회 회부 시키겠다는 얘기 아이가?’ 우리 생활실의 다른 친구들은 아직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이니 관계가 없었지만, 개구멍을 넘나든 그 친구. 내가 선동해서, 사업소 가서 첫 근무도 하기 전에 벌부터 받게 할 것 같아 미안해서 죽을 것 같다. 그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런다. “거 보이소, 내가 뭐랍디까하지 말자니까.” ‘이 친구 이거, 누구 약 올리나?’


 그런데 그 친구, 내가 미안함을 표시하자 괜찮단다. 속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대범함을 보이니 나는 더 미안했다.


 알고 보니, 상점 주변에 살던 주민이, 개구멍으로 하도 많은 교육생들이 들락거리니까 사감실로 민원을 제기해서 단속이 시작되었는데, 하필 우리 생활실의 그 친구가 술을 사서 개구멍을 나오다 첫 번째로 딱 걸리게 되었던 것이란다.


 그렇게 신입사원 연수원 교육의 마지막 밤을 평생 잊지 못할 찝찝함으로 보내고 다음 날 나는 그 친구와 같은 사업소로 발령을 받았는데, 다행히 그 이후에 연수원의 그 사건으로는 문책을 받지는 않아서 내 미안함을 다소는 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후, 부인과 함께 전도사가 되겠다고 회사를 그만 두었는데, 20년도 더 지나, 내가 은퇴하기 칠, 팔 년 전에 우리 현장 직원들을 통해 자신이 목사로 있다는 연락을 해 와서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인연이란 참 그렇게 끈질긴지......? 그리고 우리는 그때의 그 추억을 얘기하며 한 참을 재미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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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배

 

 곡명은 이미 정해졌다. 현제명 작사, 작곡의 희망의 나라로. 지난 주에 선생님은 이미 예고했었다. 이번 음악 시험은 실기시험이라고. 그리고 학교 스피커를 통해 이 노래를 계속 들려주면서 학생들이 시험에 대비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 편 언덕에∼, 등교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틀어주면 걸음걸이도 씩씩해지고 활기도 넘친다.


 그런데 문제는 옵션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가사를 못 외워 책을 보고 부르는 사람에게는 10점의 페널티가 부여된단다. 근데 뭐 워낙 유명한 노래고, 자꾸 들으니 일부러 가사를 안 외워도 저절로 외워져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대()에는 국민학교 때부터 경쟁이 일상이어서 - 받아쓰기부터 시작해서 - 거의 매일 시험을 쳤다. 그래서 시험에 익숙해지고, 그런 분위기에 많이 면역이 되었을 것인데도, 시험이란 항상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두들 긴장한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씩 나가서 선생님의 풍금 옆에 서서 노래를 불렀

. 모든 반 아이들이 옵션은 모두 안 보고.


 꾀꼬리가 아니면 어떠랴? (돼지에게는 미안하지만) 돼지 멱따는 목소리라도 가사만 틀리지 않으면 된다. 두근두근 무사히 내 차례를 마치고 안도하고 있는데, 제는 내 몇 번 뒤에 있던 팔봉이었다.


 씩씩하게 걸어 나가 선생님 곁에 섰다. 옵션은 안 보고.” 붕짝붕짝선생님 풍금 소리에 맞춰, 시작! “배를 저어가자 깊은 산 속으로......” ! 거의 순서가

다 끝나 갈 때쯤이라 분위기가 다소 산만해지던 교실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우리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귀를 의심하고 있던 순간에, 팔봉이, “아이다, 아이다. 선생님 다시 하겠습니다.”한다. 아이들 빵 터졌다. 선생님도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치며 그래, 다시 해라. 책 안 봐도 되겠?” “, . 관계없습니다.”


 다시 한다. 아이들 이번에는 귀를 기울인다. 붕짝붕짝시작! “배를 저어가자 깊은 산 속으로......” 아이들 이번에는 구르고 난리다. 온 교실이 폭소의 도가니다. 그런데 우리의 팔봉이는 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완전 포커페이스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제 그만 책을 보고 부르라는 선생님의 권유와 아이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 번째의 시도에서도 꿋꿋하게 배를 저어 산 속으로 가고 말았다. 으이구 팔봉아∼.(하루에 세 번 씩이나 배를 산으로 보내다니, 대 다 나 다.) ㅋㅋㅋ


 하지만 그날의 팔봉이의 시험 점수에 페널티가 부여되었는지? 아니면 초지일관한 용기를 가상히 여겨 선생님께서 선처를 베풀었는지?는 궁금해 한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알지 못하고 말았는데,(그 후 언젠가 명절 때는 우리 친구들 노름을 하는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서는 9땡을 잡고 계속 배팅을 하며 깝죽대다 장땡을 잡은 나에게 탈탈 틀린 적도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그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 동안 그는 사업에 성공하여 고향의 경제단체의 장을 맡아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팔봉이 파이팅! 그런데 만나면 꼭 물어 볼 말이 있다. “팔봉아! 그때 왜 그랬니? 사공

도 많지 않은 배가 왜 산으로 갔냐?”


 근데 그때 그 떠나간 그 배는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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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삼각함수를 풀다

 

 공자님 말씀인데, 논어에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란 말이 있다. 모두 아시겠지만 이 말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는 이 구절 속에 자가 많아서 구절을 계속 빨리 읽으면 지지배배하고 우는 제비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서 사람들은 제비가 논어를 안다고 했단다.


 우리는 한자 공부도 열심히 해서 배우면 꼭 써 먹는다. 안 잊어먹으려고.


 어제 과음을 한 모양이다. 어릴 때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게 되면, 양조장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꼭 주전자 꼭지에 입술을 대고 몇 모금 빨아 먹었다. 어린 나이에 술 맛을 알았겠냐만, 호기심에, 재미도 있고, 그때 아이들이 다 그랬으니까 나도 그랬다.


 어쩌다 측량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금 더 마시게 되어 아버지께서 양이 적다고 말씀하시면 뛰어오다가 조금 쏟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ㅋㅋㅋ


 그런데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담배는 안 피워도 막걸리는 종종 한 잔씩 했다. 담배는 피우면 불량 학생이지만 술은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심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분위기였다.(나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래서 우리는 미리 사회 경험을 한다는 핑계를 대며 종종 막걸리 집으로 갔.


 전날은 막걸리에 생고구마, 번데기 안주로 친구들과 인생을 논하고, 진로를 걱정하며 꽤 마신 것 같다. 다음 날까지 술이 덜 깨어서 알딸딸하니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첫 시간인 수학시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문제를 풀란다. ‘? 이 장은 삼각함수의 미분으로 아직 다 안 배웠고 오늘 배워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야 걱정할 것 없다. 내가 그래도 수학하면 수학박사로 학교 안에서 한 수학 하지 않나. 그런데 덜 깬 술로 아직도 머리 속이 멍하니 삼각함수의 미분

공식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 생각이 없다.


 혹시 지명을 받을까? 조마조마, 두근두근 거리는데. ! 머피의 법칙은 오늘도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출석부를 뒤적이던 선생님께서 내 번호를 부르신다. ‘아이쿠, 엿 됐다.’ 주섬주섬 책을 들고 칠판 앞으로 나가 문제를 판서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락가락 모르겠다는 단어만 머리 속을 맴돈다. ‘에라이 모르겠다.’ 칠판에 갈겨

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그리고 답 : 모름.


 써 놓고 쓱- 선생님 눈치를 살피는데 가차없이 날아오는 선생님의 출석부 뒤통수 한 방.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약간의 힌트에 일사천리로 좍-- 풀어재끼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다시 출석부 뒤통수 한 방. 알면서도 제대로 안 풀었다고. ㅋㅋ 술이 웬수여


 그래도 뒤통수 두 방에 제비가 삼각함수를 풀었다. 지금 생각하니, 잊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낭만과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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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1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배우신 분 답게 모르는 것도 문자를 써가면서 모른다고 하시네요. 한문을 사랑하시는 엄마 성화 덕분에 어릴때 사자소학이랑 측우집 읽었습니다. 정말 음으로 배우는 옛날 방식으로 배웠었는데ㅠㅠ 어릴때는 너무 너무 싫었는데...지금도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 사자어랑 문구들이 있어서 생각나는게 신기하더라고요.

하길태 2021-05-11 07: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제가 어릴 때는 신문이 온통 한자 투성이라 한자를 모르면 까막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요즘도 한자를 알면 생활에 편리한 점들이 많더라구요.^^
 


청춘만세(靑春萬歲)

 

 우리 아파트에 입주자 대표 회장 선거가 있었다. 후보자 3명 중 602명인데 그 중 한 분은 전직 회장이었고, 나머지 한 분은 40대가 출마했다. 은퇴한 이후로는, 나하고 관련이 없는 일이라 생각되는 일들에는 거의 관심을 끊었기에 무심코 지나다녔다.


 그런데 우리 할매가 선거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무조건 젊은 사람을 찍으라고 권했다. 그런데 자기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받아서 전직 회장을 찍겠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100세 시대라는데 40대는 청춘이다. 너무 젊어서 경험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발언권은 있지만 투표권이 없다. 우리집의 의사결정권은 모두 할매가 가지고 있는데, 할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 보고, 자기 혼자,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


 입주 10년이 갓 넘은 우리 아파트는 그 동안 쭉 은퇴한 60대들이 회장직을 맡아왔다. 이력들이 찬란했다. 나도 이전에 현직에 있으면서 작은 아파트 단지의 회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신축 아파트여서 인지 할 일도 많고, 말도 많고 해서 재임 기간 동안 입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는 후임도 결정되기 전에 회장직을 던져버린 경험이 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부담스러워 하던 회장직을 서로 하겠다는 것을 보고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이 아니니까 그 속을 알 수는 없다. 그들의 찬란한 경력들과 우리 아파트가 대단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회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어스대면서 어깨 힘도 좀 주고 싶었을 것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좋은 점이 더 있을 지도 모르겠,


 왜 그런 생각을 하냐 하면, 그들이 집권하는 10년의 기간 동안 입주자를 위해서 특별히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장이 바뀔 때 마다 기껏 한다는 일이 재활용 폐지 배출일 변경이다. 수요일, 일요일이었던 배출일을 월요일, 목요일로 바꿨다가, 다시 또 수요일, 일요일로 바꾸고, 또 바꾸고 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 있는 일인지? 조사모삼(朝四暮三)이나 조삼모사(朝三暮四)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일주일에 두 번 업체에서 폐지를 수거하기 때문에 한 동에 큰 부대 두 개를 놓아두었지만 수거일이 가까워지면 부대가 넘쳐서 보기에

좀 지저분하기는 했다.


 한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되니 10년 동안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폐지 배출일이 바뀐다. 안내문까지 써 붙여 가면서 입주자를 귀찮게 한다. ‘뭐 그까짓 것하면 그만이지만 매번 그러니까 슬슬 짜증이 난다.


 아니 이넘의 동대표들은 입주자들 입장에서, 입주자들 편하게 일 처리할 생각은 안 하고, 모여서 한다는 일이, 저거 마음에 안 든다고, 저거 보기 좋아라고 입주자들을 귀찮게 하다니. 우리가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 본 행정 편의 위주’, ‘권위적인 일 처리등이 생각나 한 번만 더 바꾸면 관리실에 쳐들어가 한 번 따져?’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어쨌든, 이외로(?) 투표 결과 40대의 젊은 사람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우리 할매는 아쉬워하며 또 걱정이다. “젊은 사람이 경험도 많지 않을 텐데 잘 할 수 있을까?” “야이 사람아, 씰데 없는 걱정을...... 산도 무너진다는데 운동하러 산에는 어찌 다니노?”


 어릴 적 시골에서는 나이 40대면 사랑방을 차지하고 장죽 물고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에헴 에헴하고 노인 행세 했다. 자고로 공자 말씀이 안 그러더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이라고. 경험이 부족하다니......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After a man reaches forty, he is responsible for his face.”(남자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

.)라고 했고,


 어린 시절이었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봉쇄 뉴스를 어른들로부터 전해 듣고 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려는 기도를 사전에 원천 차단하여 소련을 굴복시킨 그는, 그때 40대였다. 그런데 경험이 부족하다고?


 그런데 우리의 젊은 회장님, 취임하자마자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정문 한 옆에 커다랗게 현수막을 내 걸더니 전 입주민이 희망하던 일들에 착수하였고 그 성과가 즉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할매가 좋아하며 얘기한다. “당신 말이 맞았어, 시 일은 젊은 사람이 잘 하네


 ‘그럼, 그럼. 젊은 사람들의 사고가 훨씬 유연하고 발상이 기발하잖아.’ 으쓱 해 본다. 그런데 오늘이 폐지 배출일이라 운동 가는 길에 박스 등을 들고 재활용 장으로 향했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폐지를 담는 부대가 두 개에서 다섯 개로 늘어나 있다.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날짜 정하지 않고 입주자들 편할 때 아무 때나 버려도 지저분할 것 같지 않다. 자세히 보니 온 벽에 붙어있던 폐지 배출일 안내문도 싹 사라졌다.


 현직에 있을 때는 직원들에게 항상 고정관념을 버려라’, ‘유연한 사고를 가져라하면서 내 자신, 누구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건 내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완전히 KO패다.


 와우! 십 년을 넘게 입주자들을 귀찮게 했던 폐지 배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다니, 역시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젊은 회장님, 초심을 잃지 마세요. 오늘까지는, 청춘만세(靑春萬歲).


(이 글은 절대 노인을 비하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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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0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습니다!(입주자 대표가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나가야하나 고민하는 1인이!ㅎㅎ)

하길태 2021-05-04 06:24   좋아요 1 | URL
참여가 세상을 바꿉니다. 아무 말도 안하면 자기들이 다 옳은 줄 압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폐지배출일 없애는 것도 가능하군요. 일머리 끝내주는 젊은이네요^^

하길태 2021-05-04 06:2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럴 때는 ‘세상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하는가 봅니다.ㅎㅎ^^

mini74 2021-05-04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파트는 전직교장선생님 ( 우리 애가 다닌 초등학교) ㅠㅠ 만나면 훈화말씀 들어야 하고 우리 아이의 일상도 보고해야 합니다. ㅎㅎㅎ 너무 부럽습니다 *^^*

Falstaff 2021-05-04 10:03   좋아요 2 | URL
제가 사는 집 아래아래 층엔, 작은 아이가 다닐 때 총장님으로 재직하셨던, 이제 은퇴하신, 게다가 목사님이시기까지한 선생님이 사십니다.
근데 우연히 제가 성서 읽는 걸 보셨답니다. 이게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하는 생략하겠습니다. 흑흑흑....

하길태 2021-05-04 17:54   좋아요 1 | URL
ㅎㅎㅎmini 님 곤란한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나이 먹어 가면서 눈치가 없어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라구요. ㅎㅎ
위기 상황을 극븍할 스킬을 개발하는 것도 재미있겠는데요.^^
Falstaff 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