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에서 생긴 일
그날 아침에 우리는 모두 설렘과 기대감으로 약간을 들떠 있었다. 오늘이 연수원의 마지막 밤이고 내일이면 일선 사업소로 발령을 받아 명실공히 사회 진출의 첫 발을 딛게 된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로스토우의 경제발전단계설에 의하면 도약단계(take off)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경제의 성장이 국정의 최대 과제였고 국가의 온 역량이 그 쪽으로 쏠려서 국민경제의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던 시기였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수출에 드라이브가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래서 유수의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우수한 경력 사원들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각 기업체에서는 인력의 부족 사태가 심각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각 기업체에서는 신입사원의 채용 인원을 늘리고 횟수도 1년에 2회 씩 이나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 보니 우리들은 비교적 쉽게 입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합격자 발표와 거의 동시에 연수원에 입교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입생들, 학교의 입학식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연수원 교육도 첫 날은 모두 서먹서먹하였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나는 그런 분위기를 한 번에 제압했다.
쉬는 시간, 모두 조용조용히, 소곤소곤 옆에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나는 쓱- 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알고 있던 ‘야한 유머’ 한 방으로 우리 반 친구들을 초토화 시키고 분위기를 완전 장악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서서 분위기를 선도했고, 우리들 사이에는 ‘입사 동기’라는 묘한 유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뭔가 좀 빠진 듯 서운한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젊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한 잔의 술이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어느 정도의 통제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시절이었기에, 아침 6시 기상하여 하루 일과를 구보로 시작하는 분위기에서, 비록 피교육자들이 모두 성인이기는 했어도, 외출, 외박도 안 되는데 연수원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한 20년 후에 연수원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매점에서 캔 맥주를 팔아서 저녁 식사 후 가볍게 한 잔 씩 마시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었다.)
또 규칙이 엄하기로, 우리 반 친구 몇 명이 친구 생일 축하 해 준다고 하필 사감실 앞 화단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부르다 걸려서 ‘주의장’을 받은 바도
있었다.
그렇기는 했지만, 매일매일 시간외 근무를 달아가면서 원래 2주 과정의 교육을 1주로 줄이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내일이면 서로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정확하게 콕 집어서 뭐라 말 할 수는 없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생활실 9명에게 슬슬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헤어지면 언제 또 얼굴 한 번 볼 수 있겠노?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얼마나 좋겠노.” “딱 한 잔만 했으면 좋겠는데......”이러자 한 친구가 쓱 나선다.(어디 가나 나 같이 선동하는 사람이나 장단 맞추는 이런 친구는 꼭 있다.)
안 그래도 자기가 저녁 먹고 보니까 연수원 너머에 상점이 있는데 통하는 개구멍이 있고 옆방 친구들은 벌써 술 봉지를 들고 가는 것을 자기가 보았단다. “그래, 그러면 우리도 한 잔 하자.” 그러자 몇몇 쫄보 친구들은 반대를 한다. 그런데 분위기를 잡고 있는 내가 박박 우기니 못 이겨서 따라 온다.
그 친구, 자기가 갔다 오겠단다. 오! 댕큐. 그래서 돈을 갹출하여 그 친구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고 나니, 술 한 잔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완전 생활실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서로 조잘 대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진다.
그런데 그 친구,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늦지?’ 애를 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이 나온다. “딩동, 사감실에서 알립니다. 각 생활실에 있는 교육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연병장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집합을 하라는 것은 뭔가 큰 일이 났다는 이야기다. ‘혹시 무장공비라도 침투했는가?’(우리 연수원이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투덜거리며 연병장으로 가는데, 저쪽 연단 앞에 술을 사러갔던 그 친구와 몇 명이 불룩한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크! 걸렸구나. 큰일났네......’
교육생들을 연병장에 모아놓은 사감은 한 사람, 한 사람 앞을 일일이 다니며 킁킁거리고 냄새로 음주 측정을 하여 음주자를 모조리 색출하였다. 그리고 음주자와 개구멍을 들락거리며 술을 산 사람들은 응분의 조치를 하겠다며 모두 확인서를 받아 갔다.
‘하이고, 이거 인사위원회 회부 시키겠다는 얘기 아이가?’ 우리 생활실의 다른 친구들은 아직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이니 관계가 없었지만, 개구멍을 넘나든 그 친구. 내가 선동해서, 사업소 가서 첫 근무도 하기 전에 벌부터 받게 할 것 같아 미안해서 죽을 것 같다. 그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런다. “거 보이소, 내가 뭐랍디까? 하지 말자니까.” ‘이 친구 이거, 누구 약 올리나?’
그런데 그 친구, 내가 미안함을 표시하자 괜찮단다. 속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는 대범함을 보이니 나는 더 미안했다.
알고 보니, 상점 주변에 살던 주민이, 개구멍으로 하도 많은 교육생들이 들락거리니까 사감실로 민원을 제기해서 단속이 시작되었는데, 하필 우리 생활실의 그 친구가 술을 사서 개구멍을 나오다 첫 번째로 딱 걸리게 되었던 것이란다.
그렇게 신입사원 연수원 교육의 마지막 밤을 평생 잊지 못할 찝찝함으로 보내고 다음 날 나는 그 친구와 같은 사업소로 발령을 받았는데, 다행히 그 이후에 연수원의 그 사건으로는 문책을 받지는 않아서 내 미안함을 다소는 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후, 부인과 함께 전도사가 되겠다고 회사를 그만 두었는데, 20년도 더 지나, 내가 은퇴하기 칠, 팔 년 전에 우리 현장 직원들을 통해 자신이 목사로 있다는 연락을 해 와서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인연이란 참 그렇게 끈질긴지......? 그리고 우리는 그때의 그 추억을 얘기하며 한 참을 재미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