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解脫)을 미루다

 

 풍치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이제 제법 다리에 근력도 붙은 듯하다. 오전 운동을 산으로 향한다. 이제껏 다녔던 시민공원 길과는 반대쪽 길로 나서는데, 아파트 화단을 돌아 산으로 접어드는 길이 온통 화란춘성(花爛春城)에 만화방창(萬化方暢).


 자연이란 참, 며칠 전에는 살인적인 황사와 미세먼지로 뒷산의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지옥을 선 보이더니 오늘은 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덩달아 봄의 정취를 흠뻑 만끽한다.


 가을이 우리에게 결실과 풍요와 쓸쓸함을 준다면 봄은 시작과 희망과 따스함을

선사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복이다.


 벌써 지난 이야기지만, 마치 오래 묵혔던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쌓였던 마음 속의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버리고, 단출해지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비운만큼 여유로움과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감이 채워지는 듯하다.


 이러다 해탈을 하고 도통(道通)하여 승천(昇天)하는 것은 아닌지?ㅋㅋㅋ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즐겁지 않겠는가? 10년을 넘게 매일 가던 산인데도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많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화초와 나무와 풍경들, 미처 못 보았던 길들......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산이지만 그 속에 정중동(靜中動)이 있었다.


 숲길을 돌아 훌훌 마음을 털고 내려와 신발과 바짓가랑이의 흙먼지도 털어낸다마지막으로 들르는 근력운동 기구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장도 잦은데, 어라! 웬 두 아저씨 기구에 매달려 용을 쓰고 있는데 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한 사람은 앉아서 당기는 역기 내리기 기구를 아래로 끌어내려 무리한 힘으로 내리 누르며 푸시업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하는 가슴 운동 기구를 이상한 자세로 서서 무리하게 내리 누르며 당기고 있다.


 원래가 정상적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역학적으로 설계된 기구라 저렇게 무리한 힘을 가하면 백발백중 고장이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그러는지 슬며시 화가 난다. 젊었을 때 같으면 한 소리 하겠는데, 한 참 운동 중에 자꾸 비켜달라는 이상한 사람과 싸울 뻔한 경험도 있고, 더욱이 나이 먹어 가니 쫄보가 돼서 참는다.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에이, 이럴 때는 안 보는 것이 약이다. 작전 상 후퇴를 하고 집으로 내려오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중얼거려도 영 ∼ 기분이 개운치 않다. 좀처럼 욕을 않는 성격이지만 아무래도 해탈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욕이라도 좀 해야겠다.


 “야이 양반들아! 그래 그걸 그렇게 하면 고장이 안 나나? 이뷁!@#$%^&*. 그기 니꺼 같으면 그렇게 하겠나? 이 좀*&^%$#@!”ㅋㅋㅋ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eremy 2021-04-05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해탈하셔서 승천하는 것 미뤄주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지난 4년 간 TV News (Mr. Former President) 볼 때마다
어찌나 저절로 욕이 나오던지 저의 욕쟁이로서의 숨은 본능과 재능을 발견했답니다.
맘껏 욕이라도 하는게 정말 확실한 Catharsis 되긴 하니까요.

하길태 2021-04-05 21:1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욕쟁이 아줌마 ㅋㅋㅋ
우리 동네에도 TV에 나오는 그런 사람 있어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4-0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하루 하루 해탈을 미루고 있는지라 공감이 됩니다!ㅎㅎ

하길태 2021-04-06 07: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질긴, 속세의 일에 연연함이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