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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치(風齒)


 시름시름 몸살 기운이 있다. 약을 먹는데도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쉽게 차도가 없더니 잇몸이 붓고 치아가 들떠 음식물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고 슬슬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풍치가 온 모양이다.


 몸살로 인해서 풍치가 왔는지, 아니면 풍치가 오려고 몸살 기운이 있었든지,

무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를 괴롭힌 것은 풍치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몸살의 경우가 있었는데 잘 참아 넘긴 적이 있다. 신호가 오기 시작할 때 즉시 치과에 갔으면 되었을 것을, 처음에는 몰랐고, 조금 심해지니까 만신이 아프고 귀찮아서 진통제만 먹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생활의 리듬도 깨

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좀 미련하기도 했고 치과에 가기 싫은 것도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치과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또 종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과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도 다 내가 겪은 직접경험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날, 소파에서 뛰어놀던 세 살 난 손녀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정통으로 앞니가 바닥에 부딪쳤다. 울고불고 난리는 고사하고 엄청나게 흐르는 피에 앞니 두 개가 거의 빠질 정도로 흔들렸다. 피를 닦아주고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어떡허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치과가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안으로 굽어 있는 이를 똑 바르게 펴고 얼음찜질을 하고 하며 부산을 떨다가 다음날 보니, 흔들림도 많이 나아지고 상당히 안정된 듯 했다. 어린이 치과에 데리고 갔더니 가만두면 큰 탈이 난다고 겁을 주면서 앞니 두 개를 뽑고 새로 해 넣어야 한단다.


 저 어린 것에게 간니도 아니고 젖니를 해 넣는다?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환자가 어디 있나? 1주일 뒤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후는 매일매일 손녀의 치아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는데, 이삼일 쯤 지나니 거짓말처럼 손녀의 치아가 정상화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예약은 노쇼(No-Show). 좀 괘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멀쩡해지는 치아를 뽑고 다시 하자니? 그 후로도 손녀의 치아는 큰 탈은커녕 앞니 빠진 개오지가 될 때까지 아무 일 없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나의 직접 경험도 몇 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무튼 이렇게 근거 있는 불신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었다각설하고.


 그래도 이러한 불신의 대가는 당연히 나의 몫이다. 안 먹을 수 없으니 밥상 앞에 앉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이가 흔들리니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 우물우물 삼킨다. 할매가 그런다 우리집에서 이를 제일 열심히 닦는 사람이 와 그라노?” “글쎄 말이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전에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야야, 이가 빠졌다.”하신다. 아들 녀석이 덧붙인다. “할아버지 이빨 빠졌는데 어금니란다.” “야이 녀석아 할아버지 이빨이 뭐고? ‘’, ‘치아라고 해야지하고 나무랐지만 정작 아버지의 빠진 치아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진 같은 곳에서 이 빠진 노인들 많이 보아왔는데 나이 먹으면 이가 빠지는 게 정상 아닌가? 아버님 연세가 그렇게 된 모양이다.’하고 가볍게 한 귀로 흘려들었다. 너무도 무심했었다. 이가 흔들려 기능을 못하니 이렇게 불편한 걸 그때는 몰랐었다. 아∼! 이 불효막심한......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모시고 살면서도 잘 해 드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살아생전에 잘 모셨어야 하는데......’ 회한이 밀려온다. ‘흑흑흑 ㅠㅠ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왜 항상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지? 할매 몰래 운다.


 그리고 다짐한다. 죽으면 아버지 곁으로 가서 언제까지나 모시고 실컷 효도할

것이라고. 고통은 또 다시 귀한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그런데 사실 늙으면 눈물이 메말라져서 감정은 북받치는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속으로 우니 할매는 모를 것이다.)


오늘의 교훈. 첫째, 이가 아프면 즉시 치과에 가자. 둘째,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하자.


(ㅋㅋㅋ 그래도 오래 살겠다고 더 열심히 양치질하고, 내가 만든, 열매로 우려낸 전래 비법으로 가글도 하고, 치과도 다닌다. 임플란트, 비싸고 오래 걸린단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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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빨은 아플때 빨리 가는게 좋은 거 같더라구요. 늦을수록 더 비싸지는 ㅎㅎ (전 다른병원은 가기 싫던데 치과가는 건 거부감이 없는 ㅋ)
풍치 치료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교훈 명심^^

하길태 2021-04-12 21:35   좋아요 2 | URL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치과는 대부분이 장사속이 너무 심해서 그게 참 싫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하셨네요. 이는 아프다 싶음 언능언능 치료해야 돈도 적게 들고 통증도 덜더라구요. 아, 아버지 하며 읽다 눈물 안나는 속울음 울었다는 대목서 풋. 웃고 말았어요. 길태님 은근 웃기셔요. 마지막 교훈은 지두 명심!!^^

하길태 2021-04-13 06:57   좋아요 0 | URL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별로인 것 같아요. 적당히 즐겁게 생각하고 사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mini74 2021-04-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치과. 제일 가기 싫은 곳 중 하나죠. 오늘의 교훈 저도 가슴에 새겨봅니다.

하길태 2021-04-13 16:08   좋아요 0 | URL
오늘의 교훈을 일찍 체득하지 못했던 저는 갈수록 더 많은 후회와 반성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ㅠㅠ

han22598 2021-04-15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눈물이 ㅠ 어른들에게는 이빨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도 배우고 갑니다. 이런 글 많이 써주세요.
 

해탈(解脫)을 미루다

 

 풍치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이제 제법 다리에 근력도 붙은 듯하다. 오전 운동을 산으로 향한다. 이제껏 다녔던 시민공원 길과는 반대쪽 길로 나서는데, 아파트 화단을 돌아 산으로 접어드는 길이 온통 화란춘성(花爛春城)에 만화방창(萬化方暢).


 자연이란 참, 며칠 전에는 살인적인 황사와 미세먼지로 뒷산의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지옥을 선 보이더니 오늘은 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덩달아 봄의 정취를 흠뻑 만끽한다.


 가을이 우리에게 결실과 풍요와 쓸쓸함을 준다면 봄은 시작과 희망과 따스함을

선사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복이다.


 벌써 지난 이야기지만, 마치 오래 묵혔던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쌓였던 마음 속의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버리고, 단출해지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비운만큼 여유로움과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감이 채워지는 듯하다.


 이러다 해탈을 하고 도통(道通)하여 승천(昇天)하는 것은 아닌지?ㅋㅋㅋ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즐겁지 않겠는가? 10년을 넘게 매일 가던 산인데도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많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화초와 나무와 풍경들, 미처 못 보았던 길들......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산이지만 그 속에 정중동(靜中動)이 있었다.


 숲길을 돌아 훌훌 마음을 털고 내려와 신발과 바짓가랑이의 흙먼지도 털어낸다마지막으로 들르는 근력운동 기구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장도 잦은데, 어라! 웬 두 아저씨 기구에 매달려 용을 쓰고 있는데 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한 사람은 앉아서 당기는 역기 내리기 기구를 아래로 끌어내려 무리한 힘으로 내리 누르며 푸시업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하는 가슴 운동 기구를 이상한 자세로 서서 무리하게 내리 누르며 당기고 있다.


 원래가 정상적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역학적으로 설계된 기구라 저렇게 무리한 힘을 가하면 백발백중 고장이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그러는지 슬며시 화가 난다. 젊었을 때 같으면 한 소리 하겠는데, 한 참 운동 중에 자꾸 비켜달라는 이상한 사람과 싸울 뻔한 경험도 있고, 더욱이 나이 먹어 가니 쫄보가 돼서 참는다.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에이, 이럴 때는 안 보는 것이 약이다. 작전 상 후퇴를 하고 집으로 내려오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중얼거려도 영 ∼ 기분이 개운치 않다. 좀처럼 욕을 않는 성격이지만 아무래도 해탈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욕이라도 좀 해야겠다.


 “야이 양반들아! 그래 그걸 그렇게 하면 고장이 안 나나? 이뷁!@#$%^&*. 그기 니꺼 같으면 그렇게 하겠나? 이 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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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04-05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해탈하셔서 승천하는 것 미뤄주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지난 4년 간 TV News (Mr. Former President) 볼 때마다
어찌나 저절로 욕이 나오던지 저의 욕쟁이로서의 숨은 본능과 재능을 발견했답니다.
맘껏 욕이라도 하는게 정말 확실한 Catharsis 되긴 하니까요.

하길태 2021-04-05 21:1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욕쟁이 아줌마 ㅋㅋㅋ
우리 동네에도 TV에 나오는 그런 사람 있어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4-0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하루 하루 해탈을 미루고 있는지라 공감이 됩니다!ㅎㅎ

하길태 2021-04-06 07: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질긴, 속세의 일에 연연함이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세근이 때문에 세근 들다

 

 경상도 사투리에 '세근'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철들다, 의젓하다, 분별력있는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끝 자인 자는 사람 이름에도 많이 쓰인다. 갑근이, 을근이...... 등등으로.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다. 우리집 골목 옆에 골목에 장세근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사람이 아니라 우리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기 전까지 그는 그냥 우리 동네 청년이었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은 세근아, 니 언제 세근 들래?” “세근이 뭐꼬, 세근이, 남자가 열 근은 돼야지” “니는 장(항상) 세근이라서 열 근은 못 채우겠제?”하고 놀리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우리도 그냥 우리끼리는 동네에서 세근이, 세근이하고 불렀다.


 그런데 이 장세근 선생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열다섯은 더 먹었고 매부리코에 찢어진 눈, 꼬리가 처진 팔자 눈썹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좀 무섭게 생겼고 실제로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런 세근이 선생님이 장가를 간다는 소문이 들리던 어느 일요일, 우리반 아이들과 조기 청소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쪽 삼거리 길에서 멋진 코트를 쫙 빼입은 세근이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일직을 하러 학교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아주 작은 소리로 , 저기 세근이 간다. 세근이 간다.”하고 속삭이다가 내가  세근아어디 가노하고 희희덕거렸다.


 그런데 저쪽에서 길을 가던 선생님이 멈칫멈칫 하더니 딱 뒤돌아서서 우리들을 부르신다. “, 너희들 이리 와 봐라.” 친구가 그런다. “, 니 목소리 들은 것 아이가?” “에이, 설마.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고는 주춤주춤 선생님 앞으로 갔다.


 선생님은 특유의 그 무서운, 찢어진 눈으로 우리들을 내려다보시며 조금 전에 내 이름 부른 애 나와.”하신다. 딱 걸렸다.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서 풀 스피드로 난무한다. ‘아이쿠, 죽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렇게 귀가 밝을 줄이야.’ 하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나 때문에 친구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장렬하게 전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쓱- 나서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했습니다.”했다. 그랬는데 세근이 선생님, 옆 골목에 사는 나를 알아 볼만도 했을 텐데, 아니면 정말 몰랐을까? 안면 몰수다. “따라와!”하신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만 두 번째로 학교에 등교했다. 교무실에서 실컷 벌 받고, 다음날 우리 담임 선생님께 고자질해서 불려가서 또 꾸중 듣고또 사과하고, 암튼 악몽 같은 이틀이었다.


 다행히 부모님께는 꼬지르지 않았는데 그 사건으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세근이가 듣는다, 그래서 이후로 나는 세근이 들었다. 절대로 남의 뒷담화를 안 한다. 큰소리로는,ㅋㅋㅋ


세근이 선생님 그때는 미안했심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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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31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 친구 이름이 세근인데...!
재미있네요~^^

하길태 2021-03-31 21:15   좋아요 2 | URL
나증에 선생님이 될려나? 성이 장씨는 아니겠죠?ㅋㅋㅋ

jenny 2021-03-31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근이라는 사투리 처음 알았는데, 세근이 때문에 세근들다 ㅎㅎ 재미있고 따뜻하네요

하길태 2021-03-31 21:17   좋아요 2 | URL
어른들은 아예 대놓고 ‘시근‘이라고도 한답니다.ㅎㅎㅎ

mini74 2021-03-31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근이가 아니라 열근쯤 됐음, 아님 새근이가 세근들었으면, 허허 웃으며 너그럽게 봐주시지 않았을까요 ㅎㅎ

하길태 2021-03-31 21:20   좋아요 3 | URL
제 어린 시절의 가장 치욕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ㅎㅎ

붕붕툐툐 2021-03-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안 듣는 데서 그런걸 가지고 너무 하시네~ 걍 모른 척 해주시지~ 귀들은 어찌나 밝으신지~ 저도 누구 얘기하면 그분이 다 듣고 있어서 정말 웬만하면 남의 얘기는 안해요!ㅎㅎ

하길태 2021-04-01 07: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절대 큰 소리로 하면 안돼요.ㅋㅋㅋ

han22598 2021-04-0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근들다가 그런 뜻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ㅎㅎ 세근 선생님 이야기 재밌어요 ^^

하길태 2021-04-01 07: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세근이 덜 들었을 때 이야기였습니다.^^
 

봄날은 간다

 

 어제, 반장이 되었다고 기분 좋아하며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가 물었다. “할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뭐 한 사람인데?”하고. “,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의 제자고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다. ?” “오늘 선생님께서 내한테 물었다.” “그래 뭐라 했노?” “, 유명한 사람이라 했다.” 그래 선생님이 왜 유명하다고 생각하냐기에 유명 안 하면 선생님께서 묻겠습니까?”했단다. ! 나는 뿜었다.ㅋㅋㅋ ’80년대 개그를 거침없이 시전하다

, 손녀, 싹수가 보인다.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화단의 목련꽃은 그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시민공원의 성질 급한 벚꽃은 반나마 활짝 피었다. 멀리, 산정을 따라 흐르는 능선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봄 아지랑이에 아롱거린다. 따스한 햇볕이 발걸음을 한결 활기차게 하는데, 덩달아 두꺼비 연못의 올챙이들도 새까맣게 무리지어 앙증맞게 꼬리들을 흔들어댄다.


 물이 빠진 하천 하류에는, 기웃거리던 왜가리가 제 주둥이 길이의 물고기를 쪼아 물고 하천 언덕으로 날아오르고, 작년 가을에 날아왔던 철새 중 게으른 몇 마리는 날아갈 의사가 없는지 열심히 물풀을 쪼고 있다.


 가고 싶으면 가고, 내가 싫으면 말고. 만끽하는 자유와 포근함. 그래서 봄이 좋은가?


 목에 맨 줄이 갑갑한지 댕댕이 한 마리가 유채 밭에 들어가 몸을 뒹굴더니 한 쪽 다리를 발라당 들고, 기댈 기둥이 없으니 허공을 향해 오줌을 찍찍 갈기며 영역 표시를 한다. ㅋㅋㅋ 저놈 하는 짓을 보니 댕댕이 몰고 나온 아가씨 부끄럽겠다.ㅋㅋㅋ


 어제는 드론 관리 어쩌구하는 조끼를 입은 젊은 남녀의 모습이 보였는데 아마도 요즘 말썽이 되고 있는 드론을 이용하여 남의 집의 사생활을 불법 촬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 요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은 보니 노인 두 명이 더 늘어나 있어 인원이 네 명인데, 어라이번에는 그들이 드론을 날리고 있다. ,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어리둥절 @.@ 

에이ㅉㅉㅉ(공공근로였구만ㅉㅉㅉ)


 반환점을 돌아 휘적휘적 올라온다. 앞에 가는 아주머니 왼손에 찐 고구마를 들고 오른손으로 정성스레 껍질을 벗긴다. 갑자기 내 앞으로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사람이 휙-하고 지나더니 아주머니의 오른쪽 어깨를 툭 친다. 아주머니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순간 왼쪽 손에 든 고구마를 한 입 싹뚝 베어 물고 가버린다. 와우, 전 고수다.ㅋㅋㅋ


 아주머니 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고구마 한 번 쳐다보고, 앞서 간 남자 한 번

쳐다보고, 어이없어 한다.ㅋㅋㅋ


 ㅎㅎㅎ 이렇게 또 유쾌하게 하루,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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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5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녀분의 센스가 대단하네요. 봄날의 기운이 물씬 느껴집니다^^

하길태 2021-03-25 21:24   좋아요 2 | URL
예, 손녀의 아재 개그 때문에 크게 웃었습니다.ㅎㅎ
좋은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1-03-25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구마 에피소드가 실화인거죠? ^^,,,,

하길태 2021-03-25 21:2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예, 저는 실화만 취급합니다.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3-25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밤 가기 전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꼭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하길태 2021-03-25 21:28   좋아요 1 | URL
일부러 노래 찾아서 들어 봤습니다. 영화도 있었네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3-25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구마 에피소드는 핑크팬더에나 나올법한 에피소드 같아요^^ ㅎ

하길태 2021-03-26 06: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세상엔 재미있는(?) 사람 많더라구요.^^

붕붕툐툐 2021-03-25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고구마 에피소드 대박인데요? 이걸 포착하시다니~ㅎㅎ
손녀분 반장된 거 축하드립니다!ㅎㅎ

하길태 2021-03-26 06: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시장통에서 어깨 너머 아이의 아이스크림 핥아 먹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과감하게 고구마를 베어 먹는 고수는 난생 처음 봤습니다.ㅋㅋㅋ
축하 감사합니다.^^

mini74 2021-03-2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감각은 반장감이 아니라 학생회장 ! 감입니다.ㅎㅎ 축하드려요.

하길태 2021-03-27 07: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칭찬과 축하 감사합니다.^^
 

3인칭(三人稱)과 우수마발(牛溲馬勃)

 

 대학 학장까지 지내고 은퇴한 후, 농사를 짓겠다고 과수원을 사서 시골로 내려간 자형(姊兄)이 한 날은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잠이 깨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그때는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는 말이라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풍치를 앓고 치과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 좋아하던 자기 전 수면제, 딱 한 잔을 하지 않아서 인지 꼭두새벽에 잠이 깬다. 일어나서 움직이기에는 눈치 받기 딱 좋을 시간이다. 원래 TV는 보지 않으니 그렇고, 그렇다고 독서를 하기에도 아직 눈이 워밍업이 되어 있지 않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데 온갖 잡생각이 다 떠오른다. 오랜만에 자형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씰데 없는생각들 중에 그래도 재미있는 기억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한창 시험 준비를 위해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서, 자칭 우리나라 국보 제1호요, 동양의 석학이신 양주동 박사의 수필, 면학(勉學)의 서()를 읽는다. 박사님은 글 속에서 공자의 논어를 들어 독서의 즐거움을 논하시고 독서의 방법론까지 설파(說破)하시더니 이렇게 끝을 맺으셨다.


 『끝으로 소화 일편(笑話一片)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距今) 50년 전의 일이다. 영어(英語)를 독학(獨學)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日課)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new heaven and earth)'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獨學書)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三人稱單數)'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고언(古諺)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項目)만 자꾸 염독(念讀)하였으나, 종시 '의자현(義自見)'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邑內)에 들어가 보통 학교(普通學校)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新任敎員)에게 그 말뜻을 설명(說明) 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往復)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


 나는 그 우수마발에 빵 터졌다. 약에 쓸려면 찾아도 없다는 그 유명한 개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 오줌과 말 똥이란 말이 아닌가. 푸하하하하


 한참 웃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신다. 웃음을 그치고 문을 여니 어머니의 표정에서 근심스러움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밤늦게 공부한다고 열심이더니 드디어 머리가 돌아버린 줄 아셨단다.ㅋㅋㅋ


 꼭두새벽에 일어나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다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은, 볼일이라도 있어 지하철이라도 이용하게 되면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우수마발의 지뢰밭 사이를 걸어야 하나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한다. 3인칭과 우수마발, ㅋㅋㅋ...... 오늘 생각해도 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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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22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수마발이란 말이 있었군요... 소 오줌과 말 똥...ㅎㅎ
결국 삼인칭은 나와 너 이외 상대적으로 별 중요하지 않은 대상이란 의미였을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하길태 2021-03-22 21:31   좋아요 1 | URL
원작 수필 속의 젊은 신임 교원의 재치있는 비유가 잠시나마 각박한 생활 속의 여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바람돌이 2021-03-2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마발의 뜻에서 빵 터졌습니다. 저도 막막 써먹을래요. ^^

하길태 2021-03-23 06:57   좋아요 0 | URL
이해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나시네요. ^^
우수마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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