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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다


 매년, 사창립 기념일이 되면 본사에서 사장 공로상이 내려온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자는 1등급 상을 받게 되는데, 수상자는 인센티브도 가급되며 승진 심사 시 가점이 부여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예를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상이다.


 그런데 이 상은, 본사에서 지사별로 인원을 할당하고 지사는 또 예하 사업소별로 인원을 배정하여, 공적조서와 이전의 수상 이력 등을 검토하고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자를 결정한 다음 이를 본사에 상신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짜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간부는 이 상을 안 받는다. 직원들의 승진 가점에 꼭 필요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직원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거의 선례가 되어 있으며 또 간부들 대부분은 공로상 1등급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사업소에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간부가 상을 받겠다며 공적조서를 올려왔다. 옛날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서 내가 잘 아는 간부였는데, 주로 보안, 소방, 예비군, 민방위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고, 그런 업무들이 또 대외 기관의 상을 받을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해서, 그 분의 인사기록을 확인하니, 맙소사! 대통령상을 비롯해서 국무총리상, 장관상, 시장상, 사장상 등 온갖 상들을 다 수상하여 인사 기록의 상벌 란이 모자라 별지로 수상 내역을 덧붙여 놓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기록을 가진 분이, 간부들이 구태여 안 받아도 되는 상을 받고 싶어 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그 사업소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다른 상은 다 있는데 사창립일에 주는 사장 공로상이 없어서 구색을 맞추려고 신청을 했단다. 내일, 모레 퇴직을 할 사람이 하도 자기가 받겠다고 주장을 하니까 아무도 다른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신청이 되었단다. 하이고, . 한숨이 나올밖에. 다른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받을까 말까하는 그런 상들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최후의 순간에까지 욕심을 내다니.ㅉㅉㅉ


 결국 그 분의 공적조서는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수상에 실패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그 분 때문에 직원 한 사람이 상을 못 받게 되었고, 또 당해 연도에 포상 인원 배정을 받은 사업소는 다음 해에 포상에서 배제되는 원칙에 따라 그 사업소는 3년을 사경일 사업소장 상도 받지 못하는 사업소가 되고 말았었다.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상황 파악은 좀 하고 살아야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나 후배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


 어쩌다 보니 그 분과 또 다른 여러분의 합동 퇴임식에서 내가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그 분의 수상 경력을 소개할 때는 시간 관계상, “대통령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로 간략하게 끝내야 했었다. 그런데도 그 사장상 1등급이 뭐

그리 필요가 있었던지......(또 한 번 ㅉㅉㅉ)


 상 얘기가 나온 김에 나의 경우를 보면, 나도 참 상복은 없었다. 하도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오버타임 해 가며 힘들게 보고서 만들어 줬더니, 칭찬도 지들이 듣고 내려온 상도 지들이 타먹어 버리고, 입 싹 닦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분명히 다음이 내 차례인데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어 다시 후 순위로 밀리고. 하여, 막상 내가 상이 필요할 때에는 내부에서 주는 상은 아예 포기를 하고 외부에서 주는 상의 루트를 뚫어 수상을 하였는데, 그것도 그 방법을 간파한 다른 직원의 방해 공작으로 시도 첫 해에는 뺏기고 다음 해에서야 겨우 수상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로 포상이 내려오면 관련도 없는 인간들이 서로 먹겠다고 작당들을 하여 기어코 뺏어가지 않나,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 능력도 없는 것들이 남의 떡을 뺏어 먹는 데는 얼마나 영악하고 도가 텄던지. 남 눈치 보지 않고, 얼굴에 철판 깔고 지가 먼저라고 덤비는 인간들을 보면 가엾기도 하고, 가 양보를 해야지. ㅉㅉㅉ


 그래도 나는 뭐, 꼭 필요한 상에 교육우등상까지 있었으니까 더 욕심은 없어서 상이 내려오면 나는 유별나게 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을 많이 하였고 그리고 상이 많이 내려왔다 - 무조건 직원들에게 모두 돌려주어서 그걸로 승진까지 한 직원이 있었으니 대신 만족을 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인사철이 슬슬 다가오고 자리를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동 신청을 한 다음 밀린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랫동안 전임들이 손도 대지 못하고 묵혀왔던 업무 관련 내칙을 정비하고자 완벽한, 내가 보기에도 멋진계획을 수립하여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결재를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그 계획서 아직 다 안 봤냐고 물으니 상사란 인간이 책상 속에서 슬 꺼내 놓으며 여기 있단다. 엥∼! -한 느낌. 결재해 달라는 뜻인데 답변이 여기 있다는 무슨 시츄에이션? 그 이후로도 몇 번 독촉을 하였지만 그 인간은 내가 발령 나는 날까지 끝끝내 결재를 하지 않았다.


 나쁜 인간! 내가 조만간 발령이 날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만 개기면 지 꺼가 된다 이거지? 나는 그 인간의 의도를 즉각 눈치 채고 언짢은 얼굴로 내 자리로 돌아와서 죄 없는 책상만 걷어찼다. 이제는 상을 뺏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실적 자체를 뺏겠다는 몰염치가 아닌가. ‘그래 인간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일 잘하는 내가 죄인이다.


 결국 나는 그 서류가 미결인 상태로 두고 사업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얼마 후, 내가 다 해 놓았던 그 일이 지가 한 것으로 둔갑하여 사업소에 통보되었다. 역시 내가 먼저다. 남 줄 것 뭐 있어, 몰인정은 잠시고 가로챈 실적은 영원한 것인데.


 ㅎㅎㅎ 허탈하기는 했지만 그런 꼴을 하도 많이 봐 오다 보니 감흥도 없었다.

그 인간은 이후에도 요리조리 줄도 잘 타서 승진도 귀신같이 하더만. 그래도 나만 보며는 미안한 건 아는지, x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는 체를 하던지.ㅋㅋㅋ 야이, 인간아!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라. 그 지은 죄를 언, 어떻게 다 갚을래?’


 그래도 오늘 같이 새벽에 잠이 깨어 온갖 잡생각이 다 들 때는 나는 기도한다. ‘! 신이여 이 같이 비열하고 능력 없는 인간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저의 죄 또한 사하여 주시옵소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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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길태님 가끔 살아온 이야기들 해주시면 너무 재밌어요.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셨어야죠. ㅎㅎ

하길태 2021-07-27 06: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 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대하소설에서의 지루함에 대하여


 대하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즐겨 읽는 편이다.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

니고 그냥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한 가지 요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옛날에 공부할 때, 한 참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능률도 오르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슬럼프 극복의 한 방법으로 그 기다란 장편 무협소설을 밤새 읽으며 컨디션을 조절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잠재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

기도 하고,


 그리고 또, 구태여 이유를 밝히라면, 이유야 많지. 우선은 재미있고, 그 재미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겠지만 단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은, 살 때는 두툼한 책이 보기에 기분도 좋고 마음이 뿌듯하지만 막상 읽으려면 그 두께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대하소설은 그런 것을 전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그런 걸 보면 정말 대하소설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대하소설이라 하면, 길이로만 보면, 통상 원고지 700, 3권 이상의 소설을 말한다고 한다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3백 페이지, 5권 이상이면 대하소설이라고 칭해도 크게 잘 못된 생각은 아닐 것 같다.(물론 요즘은 대하소설도 점점 상업화의 영향을 받아 활자를 키우고 페이지를 줄이고 하여 10권 이상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인 추세지만 3권짜리로 노벨상을 받은 훌륭한 대하소설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대하소설도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읽은 책들이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널리 알려진 고전 소설, 유명 작가의 소설,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소설 등 - 작품들인데도 말이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지? 별 할 일 없는 사람이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해 본

.


 1. 축약본

 대하소설의 축약본은 독자를 지루하게 한다. 독자가 원한 것도 아니고 원저자가 축약본을 따로 집필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역자가 출판사의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내놓은 듯한 경우이다. 역자가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원작을 훼손한 것이 분명한 것 같고 원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독서의 시작부터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원작을 읽어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2. 반복되는 사건의 진행

 특히 전투 장면이 많은 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비슷한 상황의 전투가 비슷한 방법으로 특징 없이 반복되면 갈수록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발생하는 사건도 없이 긴 여정만 설명하는 경우, 산을 넘고 숲을 헤치며 강을 지나 덤불을 뚫고 등이 반복적으로 설명되면 그 부분은 책을 건너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 속에서의 그런 자연환경들의 변화를 어떻게 상상 속에서 특징을 달리해 가면서 형상화할 수 있단 말인지?


 3.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

 상기 2항과 관련된 얘긴데, 반복되는 상황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선지 억지 상황을 만들고 앞뒤가 맞지 않은 지나친 방법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삼가야할 방법이다. 독자들은 그것이 억지로 끼워 맞춰졌다는 것을 다 알고 있, 그런 것을 식상해 하기 때문이다.


 4. 이야기의 전개가 처음의 주된 사건에서 점점 멀어져 갈 때

 처음의 사건이, 진행이 계속되면서 가지를 치고 또 쳐서 처음의 사건과 서로의 관련성이 너무 희석되었거나 전혀 다른 사건이 되었을 때. 이런 부분들은 빼버려도 전혀 작품의 진행에 지장이 없다. 그런 부분들이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독자는 흥미를 잃고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5. 지나치게 복잡한 사건의 전개

 동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일정한 간격의 시간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전개할 때. 이런 경우는 시작부터 너무 복잡하여 읽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데, 최소한 2-3권은 읽어야 작품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6. 이념 편향적인 소설

소설 속에서는 전지전능한 작가가 무슨 짓을 못할까만, 등장인물들을 딱 양쪽으로 편 가르기를 해놓고 노골적으로 선과 악으로 대비시킨다. 우리편은 선, , . 상대편은 악, , . 그것도 정도가 있지,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지루함을 넘어 짜증스럽기조차 하다.ㅉㅉㅉ


 뭐, 내가 느낀 대하소설의 지루함은 대충 이런 것들인데, 나의 생각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해 본 이야기인데 세금 내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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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소설의 지루함에 대해 부분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일부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은, 대하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하소설은 전체적인 기승전결 속에서 또 각 권마다 아기자기한 기승전결이 들어있어서 이야기를 길고 재미있게 끌어가는 힘을 가진, 훌륭함을 간직한 문학의 한 장르이다.


 물론, 대하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부피만 보고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대하소설은, 그 분량과 구성에서, 사전 자료를 준비하고 집필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나는 독서 전, 후에 반드시 그런 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대하소설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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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무더운 장마철이다. 이쯤에서는 시원한 것들이 먹고 싶고 등골이 오싹한 공포영하도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듣고, 겪은 실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본다.


 어릴 때는 외갓집이 참 좋았다. 외할머니도 계시고 이모도 있었는데, 내가 외갓집에 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반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

니나 이모를 졸라서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듣기를 즐겼다.


 외할아버지께서 겪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젊은 시절에는 기골이 튼튼하셨고 담도 컸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 일 때문에 멀리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떠났지만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몇 개의 산길도 지나야 했다.


 깜깜한 산길을 더듬어 가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자시(子時)나 되었을까? 얼마 전부터 숲속에서 외할아버지 뒤를 따르는 뭔가의 기척을 느꼈단다.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귀신인가? 산짐승인가?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장죽에 담배를 재서 한 모금씩 빨면서 주위를 살펴도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단다.


 그러기를 몇 번, 길이 반나마 줄었을 무렵, 산모롱이를 도는데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외할아버지께 흙을 한 삽 정도를 확 끼얹었다. 놀란 할아버지는 머리가 쭈삣 서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정신을 가다듬었고, 상대가 호랑이임을 직감했다. 산짐승은 불을 무서워한다고 외할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재촉하는,


 이놈의 짐승이 다시 흙을 뿌리며 장난을 한다. 멈춰 서서 숲속을 보니 주먹 만한, 새파란 두 개의 불꽃이 외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공포심으로, 이미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을 하며 호랑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마을에 가면 살찐 암캐가 있는데 같이 가면 제가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하면서 계속 어르고 달래고, 불붙인 담뱃대를 빙글빙글 원

을 그리듯 돌리며 떨리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마을이 보이는 산모롱이를 도는데 멀리 마을에서 캥-하는 개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이 조용한 적막에 휩싸였다.


 외할아버지는 온통 땀에 젖고 흙을 뒤집어 쓴 험한 몰골이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 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집에서 키우던 개가 밤사이에 사라지고 없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단다.


 우리 외갓집은, 우리집에서부터 어른이 걸어도 40분은 넘게 걸리는 시골이었는데(옛날에는 그랬다. 시내만 벗어나면 바로 시골이었다.), 아이 때 내 걸음으로는 족히 1시간 반은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그 중간에, 밤에는 혼불도 자주 나타나는 공동묘지가 있고, 오색 깃발에 알록달록한 커다란 조화들로 장식된 낡은 상여집이 있었으며,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산모롱이를 지나야 해서 낮에도 좀 으스스했다.


 그런데 꼭 외갓집에서 정신없이 놀다보면 해가 져야 집으로 출발했다. 깜깜한 밤길을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따라 아이 혼자 바작바작 걸으면서 누군가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한 50미터 저 만큼 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가고 있다.


 같이 걷고 싶어 급히 따라간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어간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녀와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갈 밟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맙소사! 그녀는 발이 없다.


 그러더니 소복의 여인은 산모롱이 상여집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더니 상여집 앞에 딱 멈추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기겁을 하고 놀라 죽을힘을 다해 그곳을 벗어났다.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한 번도 정직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다시는 외갓집에 못 가게 할까 봐. 그 일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과외공부를 시작하면서 외갓집에 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것을 겪고 성장해서인지, 보기와는 달리, 나는 별로 겁이 없고 무서움을 타지 않는 강심장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항상 낚시를 같이 다니던 후배 파트너가 있었는데, 은퇴를 하고 보니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낚시를 다녔다.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까지 언제나 놓치지 않고 볼락 밤낚시를 다니는데, 깜깜한 밤에,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바닷가에 앉아 탈탈거리는 손맛을 느끼며 볼락을 낚아 올리는 재미는 거의 환상이다.


 그 손맛을 못 잊어서 항상 찾아가는 나만의 낚시 포인트는, 뭍에서 도선을 타고 섬으로 건넌 다음 1시간가량을 산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서 섬 최남단의 갯바위로 가야하는데, 중간에 공동묘지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단다.(내 낚시 포인트는 물때, 바람,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내 시간이 허락하고 비만 오지 않으면 항상 조과가 보장되는 명당이다.) 그래서 장비를 챙겨 낚시터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을 재미있게 볼락을 낚아 올린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씨알 좋은 볼락이 그렇게나 물어대던지 정신없이 낚고 있는데 멀리서 마른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천둥이 울린다. 볼락 입질이 뚝 끊어지고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변덕 많은 봄날 날씨라니’, 투덜거리며 바위 옆으로 비를 피하는데 좀처럼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번개는 계속 친다. 이런 날 낚시하면 큰일 난다. 낚싯대

가 카본 소재이기 때문에 벼락 맞아 죽을 수가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고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면서 가랑비로 변하는 것을 보고 철수를 결정했다. 큰놈들을 꽤 많이 잡아 무거워진 쿨러를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철벅철벅 비에 젖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어디서 꽹과리, 장구북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이 비 내리는 야밤에 누가 굿을 하나? 무슨 소린가 하고 공동묘지가 보이는 마루로 올라서는데, 맙소사! 공동묘지 위에서 사발만한 파란 불덩이들이 널뛰기를 하고 하얀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귀신들이 무슨 잔치를 벌이는 듯 꽹과

, 장구, 북을 치며 야단이 장난이 아니다.


 허걱! 나는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었다. 내가 무서움을 모르는 강심장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그 때 만은 뒷머리가 곤두서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덜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지도 가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데, 귀신들의 대화가 귀에 들려온다.

 “오늘 최 서방 댁 막내딸을 데려오면 다음은 누구 차례고?”

 “, 다음은 김 주사네 셋째 아이가?”

 “가만있자, 오늘이 그믐이니까 얼마 안 남았네.”

 “그래, 그래. 아무튼 우리한테는 경사니까 신나게 놀자.”

 “그래, 그러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


 나는 정신을 수습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잡귀들아 물렀거라. 인간을 이기는 귀신이 어디있냐?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어떻게 이겨?’

 “어이, 어이, 물렀거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공동묘지 위를 지나는데, 그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흡사 귀신들이 어깨를 가로챌 것 같은 느낌으로 등골이 섬뜩섬뜩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공동묘지를 지났고, 옛날에 사람들이 많이 살 때, 도선의 매표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 간혹 낚시객들이 이용하는 콘테이너 박스에 도착하여 랜턴을 켜 놓고 몰골을 보니 이건 뭐, 사람의 꼴이 아니다. 비에

젖어 식은땀에 젖어,


 대충 정리를 하고,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좀 붙일까?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귀에서 계속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비몽사몽간에 새벽녘에 설풋 잠이 들었는지 날이 희뿌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찌뿌둥한 눈을 뜨는데, 분위기도 어색하고, 느낌도 조금 서늘하고 축축한데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 같으면서 바닥에 뭔가 시커먼 것들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 랜턴을 켜고 보니, 이크! 이게 뭐야!? 손가락 굵기 만한 지네들이 바닥에 버글버글 거리는데 징그러워 소름이 쭉 돋는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또 뭐지?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매표소 콘테이너가 아니고 웬, 다 쓰러져 가는 폐가의 헛간 같은 곳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짐을 챙겨 후다닥 그곳을 벗어났는데, 나오고 보니 약 20미터 전방에 매표소 콘테이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간밤에 분명히 매표소 콘테이너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폐가의 헛간이었다니, 틀림없이 그 밤에 나는 귀신에게 홀렸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하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언제 비가 왔더냐는 듯이 날씨가 화창하다.


 부스스한 몰골로 도선을 타고 출발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앉았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 최 서방 댁 딸이 갔단다.”

 “아이고, 안됐네. 도회지 나갔다가 병을 얻어 왔다는 그 딸 맞제?”

 “.”

 “그 아이가 몇째고?”

 “막내 아이가.”

 “몇 살인고?”

 “올해 스물다섯이란다.”

 “아이고, 한창 나이에 정말 안됐네. ㅉㅉㅉ


 뱃고동이 뭍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집에 돌아오니 할매가 몰골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핀잔이다. 비를 맞아서 그렇다고 해야지 귀신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다음부터 낚시하러 못 가니까.


 그래도 그날 잡은 굵은 놈들은 손질을 하여 굵은 소금 철철 뿌려 구어서 시원한 맥주 안주로 맛있게 먹었고, 그 후로도 나는 변함없이 혼자 그 곳으로 낚시를 다

녔는데,


 어느 날은, 함께 낚시를 하러 가는 노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혼자 낚시 다니면

위험하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조심하란다. ㅋㅋㅋ

영감들아, 지가 하고 싶어 하던 일 하다 죽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지는 모르

?’ㅋㅋㅋ


 코로나 때문에 낚시도 못 가고 있는데 내 포인트는 잘 있는지? 그때 백화현상으로 인해서 몰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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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는 아니겠죠? ㄷㄷ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네요 😐

하길태 2021-07-12 16:2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가 소설책을 너무 많이 보았을까요? 아니면 꿈을 꿨을 까요?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제가 겪은 일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그렇게 달았지요 ‘믿거나 말거나‘ ㅎㅎㅎ

thkang1001 2021-07-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일을 경험하셨군요. 하길태 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길태 2021-07-12 21:13   좋아요 0 | URL
ㅎㅎㅎ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꼬마요정 2021-07-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고모할머니한테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졸라서 들은 얘기 중에 호랑이 얘기도 있었어요. 결론은 사람이 젤 무섭다였지만요. 역시 여름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입니다. 요즘 심야괴담회 보는데 정말 재밌더라구요. 하길태님 사연 들으니까 막 상상하게 되네요. 정말 촛불 44개 켜 드리고 싶어요!!!

하길태 2021-07-13 07:09   좋아요 0 | URL
오! 요즘 그런 프로가 생긴 것 같네요. 미처 몰랐습니다.
어릴 때는 호랑이, 도깨비, 귀신 이야기가 최고였지요.
촛불 감사합니다.^^

samadhi(眞我) 2021-07-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모롱이, 혼불, 신작로... 예스런 분위기가 물씬 나네요. 이 글을 초안으로 해서 단편소설 쓰셔도 좋을 듯합니다. 멋진 경험담 잘 들었네요. 역시 이야기는 언제나 좋아요. 정말 강심장 맞네요. 그날 잡은 고기도 맛있게 드시고 다시 또 가셨다니.

하길태 2021-07-13 07: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단편소설까지는 많이 부족하지요.
좋은 하루되세요.^^
 

복수를 꿈꾸다


 그날 새벽은 참 이상했다. 꿈속에서 물에 빠진 듯, 축축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한 것이 영 잠자리가 불편했는데, 깨어보니 옆에는 아무도 없고 이런! 내 등과, 맞닿았던 이부자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이크! 큰일났다. 자다가 오줌을 쌌는가?’ 아랫도리를 만져보니 속옷은 젖지 않은 것 같다. 축축한 곳에 냄새를 맡아보아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이 뭐지? 뭔가 이상했다.


 우리는 국민학교 때부터 경쟁이 일상이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은 그룹으로 과외공부를 했다.


 그 넘은 6학년 3, 나는 6학년 2. 반에서 톱을 달리는 아이들이라서 같이 그룹 과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넘은, 엄마가 시장통에서 가장 큰 과일점을 했고, 우리집보다 큰 집에서 살았으며 가족들이 모두 훤칠하니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얀 것이 부르주아 냄새가 나는 집안의 아들이었다그리고 그 넘의 형제들은 모두 거의 성인이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넘은 늦둥이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안에서 엄청 사랑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넘이 자기 집에서 같이 자면서 공부도 하고 다음 날 새벽에 과외도 같이 하러 가잔다. 자기가 혼자 공부하면서 너무 외로워하니까 부모님이 허락을 하셨단다.(당시에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한 집에 전등 하나씩 켜고 살던 시절이었으며 그것도 특선, 일반선으로 구분하여 사용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려면 촛불을 켜고 해야 해서 불편하기도 하고 또 화재의 위험도 있고 해서 주로 새벽에 과외 공부를 했다.)


 우리집에서야 집도 좁은데, 좋은 집에서 친구와 공부한다니 허락을 하셔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자는데, 잠자리는 그 넘의 할머니가 펴주고 자다가 목 마르면 마시라고 물을 한 대접 상 위에 놓아주었다.


 그런지 2-3일 만에 이런 이상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니, 이 나이에 오줌을 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연하다. 나는 오줌을 가린 이후 그때까지 십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옷에 오줌을 싼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반드시 용변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용변을 보는 것이 아주 습관이 되어 있었고, 그날도 잠이 깨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이부자리와 내 옷이 젖어 있으니 아니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남의 집에서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화장실에는 가야하고 과외공부는 가야했기에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넘은 벌써 일어나서 마당에 서 있었고 그 넘의 할머니는 빨랫줄에 젖은 듯한 이불을 널고 계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방에 있는 내 요도 젖었는데 그럼 쌍으로 오줌을 쌌다는 말인지? 그런데 그 넘이고 할머니고 내 옷의 등이 젖은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곰곰 생각해보니 상

위의 대접도 비어있었던 것 같다.


 그때야 당연히 잠옷이 따로 없었다. 외출복이 잠옷이고 잠옷이 외출복이었다. 래서 등이 젖은 옷을 입고 과외공부를 하러 갔다.


 그런데 과외 선생님이 젖은 내 등을 보더니 ? 오줌 쌌나?”이런다. ‘아니,

생님, , 치과 집 순이하고 양조장 집 분이도 있는데 창피하게 와 이러십니까?’


 나는 그것이 오줌이 아니라고, 또 오줌이라 해도 내가 싼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강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은 창피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그 넘은 빙긋이 웃기만 한다. 그 넘 심성에 나를 오줌싸개라고 놀릴법한데(그 넘은 내

가 보기로 악간 심술이 있었다.), 그러지도 않았다. 그것이 나는 더 이상했다.


 그 넘이 나를 배려해서 한 행동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사실 그 넘

은 딱 두 번 나에게 오줌싸개했는데, 그것도 남이 없을 때 조용히 얘기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의 일은, 내가 공부도 잘하고, 그리고 옷에 오줌을 쌀 나이도 지났기 때문에, 같이 공부하는 그룹의 칠, 팔 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끌지도 못

하고 무사히 넘어 갔다.


 하지만, 그 일로, 그 넘이 나를 오줌싸개라 불렀기 때문에 나는 그 넘의 집에는 다시는 가지 않았는데, 며칠 후 그 넘이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느그 반 국어 시험 쳤나?”이런다 아니.” “우리 반은 국어 시험 벌써 쳤는데, 문제가 어렵더라. 내가 시험 문제 가르쳐 줄게.” 이러면서 아주 자세하게 문제와 답들을 가르쳐준다.


 나는 옳다구나, 이번 시험은 백점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그 넘의 설명을 외웠다그리고 드디어 우리 반의 국어 시험 날, 시험지가 배부되었는데 그 넘이 가르쳐 준 문제와 보기 그대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문제 뭐 더 읽어 볼 필요도 없다. 그 넘이 가르쳐 준 답을 하나도 틀림없이 콕콕 집어 써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시험 점수를 확인하시던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나를 부른다. 그리고 시험지를 보여주시는데, 허걱! 그 넘이 가르쳐 준 답이 모조리 틀렸다. !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그 넘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땅을 쳤다.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그 넘을 너무 믿은 나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아! 사악한 넘. 그러고 보니 오줌 싼 것도 나에게 덮어씌워 망신을 주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오줌은 지가 싸놓고 나에게 덮어씌웠거나, 아니면 지가 오줌 싼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등에 물을 부었거나. 아니 어떻게 오줌을 쌌는데 등만 젖느냐 말이다. 아무튼 지난 일을 밝혀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그 넘의 흉계요 음모라고 확신했다.


 나쁜 넘. 그러고 나서 그 넘은 내가 시험 잘 쳤는지도 묻지도 않았다. 나도 물론 시험 잘 친 듯이 시치미 뚝 떼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이 넘에게 언젠가는 두

, 세 배로 갚아 줄 것이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하지만 국민학교 시절 내내 복수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실, 나는 꽁하는 성격이 아니라 털털 털어버리는 성격이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그때뿐이었을 것이다 - 중학교부터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복수는커녕 지금까지 그 넘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이 세월만 흘려보냈는데,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참으로 바뀌기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항상 손해를 보지만, 아직도 나는, 남을 잘 믿는다. 그리고 그날의 오줌 사건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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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5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 친구분이 완전 장난아니셨네요. 그때는 분하셨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좋게(?) 추억하실수 있는거 같아요. 항상 믿는 사람이 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 결국 행복한거 같아요. ˝톱을 달리는 아이들˝에서 감탄을 합니다~!!

하길태 2021-07-05 21: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네요, 이제는 다 지난 일들이 되었네요.^^

붕붕툐툐 2021-07-05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등으로 싼 오줌이라닛! 확실히 음모가 느껴집니다!ㅎㅎ

하길태 2021-07-05 21: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런 것 같지요?
이제야 나의 결백이 밝혀지는 것 같군요.^^
 

족보 이야기 외전


 족보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우리 할아버지는 세도가 보통이 아니었으며 성질까지 대단해서 상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붙잡아서 곤장을 치고 재산을 뺏기도 했단. 그리고 양반입네 하고 신분상의 차별도 극심하게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일본 놈들을 피해 다니는 입장이 되었으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못하게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일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되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신의 섭리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자신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그것이 일본 놈들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자신이 선택한 것이든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 사촌 누나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 우리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벌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과는 생이별을 하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가산은 탕진되었고 당신께서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국을 떠돌다가 객사를 하셨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수십 년이 지난 후 풍문에 어디에 묻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인과응보다. 뿌린 대로 거두고 지은만큼 돌려받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남의 가족에게 그렇게 못 살게 굴고 재산까지 빼앗았다더니 당신께서도 똑같이 벌을 받은 셈이었다. 심지어 양반이라고 으스대더니 상민들도 하지 않는 족보까지 팔아먹게 한 것이 모두 남들에게 못되게 군 할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인 것이었다.


 그런데 지은 죄가 얼마나 컸으면 자신이 치른 죗값으로 부족했던지 나머지 죗값은 아래로 대물림이 되었다.


 큰아버지들 집안은 일찍이 끝이 좋지 않게 멸절되었고(그 과정에서 며느리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던, 술장사를 하기도 했단다.) 우리 아버지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데 그 어른의 다 갚지 못한 업보를 아버지가 몽땅 짊어지게 되었다.


 아버지 없이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자란 우리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어머니와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가셨다. 할아버지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쪽바리들의 밥은 얻어먹지 않는다던 말이 정반대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 왔으니 이것 역시 인과응보의 일단(一端)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귀국하여서는, 우리나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로 생때같은 두 아들을 잃었단다. 이 무슨 엄청난 저주였는지......? 그 아들들이 나의 형님들이신데 그래서 나는 우리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쨌든 아버지는 귀국 후 안정된 직장을 얻어 가족을 부양하셨고 덕분에 자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업보로 부터는 자유롭지 못하였다.


 내 기억으로, 어느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에, 아버지 고향 사람이라는 웬 분이 찾아와서, 할아버지가 자기네 산에 쓴 묘를 이장하라는 요청을 해 왔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세도를 믿고 우격다짐으로 남의 땅을 뺏은 결과인 것 같았다. 아버지

는 그분들께 백배 사죄하고 묘지가 들어선 땅을 사서 문중에 이전해 주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업을 거의 다 해결한 줄 알았는데 진짜는 아버지께서 은퇴를 하고 나타났다.


 호구지책이라도 마련하겠다고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여 적지 않았던 퇴직금과 살던 집까지 몽땅 날리고 말았고, 결국은 할아버지와 자식 대까지 알거지가 된 꼴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로, 남을 쉽게 믿었거나 사기를 당해서 입은 손해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할아버지의 업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그 어려움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기반을 잡을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세월들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나 모질고 힘들던지, ,......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버지나, 어릴 때, 성격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웠던 나를 본 사촌 누나가 생긴 모습에 성질까지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하던 말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겸손하고 배려하면서 사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아 왔기에,


 아버지나 내가 남에게 지은 죄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는데, 그렇게 겪은 어려움이 인과응보였다면 그 업은 할아버지의 것이 틀림없었다.


 ‘죄는 지으면 3대를 간다는 말을 나는 절감했다. 아버지와 내가 할아버지의 업보를 지고 살았고,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죗값을 치렀으니......


 그래서 내 머리 속에는 항상 업의 대물림에 관한 걱정들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짓지 않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으며, 우리 아이에게도 아직까지 선대가 지은 죄를 대물림 받은 징조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렇게 길고 지루했던 악업의 고리를 끊은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해방이 되고 일제의 압제가 풀리자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찾아서 부자 상봉을 하셨다는데, 아버지는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를 끝내 용납하지 않으셨단다. 그러나 그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풍문을 들은 어머니가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돌아가신 날을 몰라 음력 99일에 모시던 할아버지 제사를 할머니 제삿날로 옮겨 함께 지내고 있고 종종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항상 남

에 대한 겸손과 배려를 주문하면서 살고 있다.


 평생 할아버지의 업을 짊어지고 고생만 하다가 가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한데, 아직 현직에 있었을 때, 주중에 회사가 쉬는 날을 이용해 혼자서 아버지 고향, 아버지가 태어나셨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


 시골이었지만 듬성듬성 산재한 종씨들의 문패를 보면서 우리 성씨의 집성촌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태어나신 집은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위치만은 마을 한 복판, 양지바르고 배수 잘 되는 명당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씩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메어 오기도 하고...... 언젠가 조상 땅 찾긴가 뭔가가 있어서 조회를 해 보니 지리산 골짜긴가 봉우린가 어디쯤에 할아버지 명의의 땅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더 이상 할아버지의 업에 얽혀들기 싫어서. 세월이 가면 비연고 토지로 국가에 귀속될 것이다.


 일제에 항거하여 가족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하신 할아버지의 행적을 조사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오래 지난 일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도 막막하고 또 지금에 와서 조사해 본들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었다.(‘항거라고 썼는데, 글쎄 항거라고 쓴 표현이 가당찮을까? 남을 괴롭혔기 때문에? 피해 다녀?


 독립운동가들도 피해 다녔잖아? 그리고 남을 괴롭힌 것과 일제에 협조하지 않고 피해 다닌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닌가? 그래서 광의로 해석하여 항거’ ‘저항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래도 두자. 내 맘인데


 아니, 일본 순사였던 아버지를 독립군으로 둔갑시켜 국회의원도 하고, 매국의 거두의 자손도 떵떵거리며 국회위원도 하는데, 일제에 협조하기 싫어서 멸문지화를 당하다시피한 우리 할아버지의 행위를 항거라고 표현한 것이 뭐,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국회의원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


 (내가 우리 가계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하는 이유는, 내가 죽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가 지은 죄를 자식과 손자가 이제 모두 갚았다는 사실을 하늘과 만천하에 천명(闡明)하고 더 이상 우리 집안에, 우리 아이들에게 나쁜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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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8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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