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 Unkn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거의 개봉과 동시에 보았기에 지인들의 평을 들을 수 없었다. 결말의 보안 유지를 위해 전세계 동시 개봉을 결정했다는 아주 기초적인 정보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영화관에 가지 않으면서 책으로 선회한 나는 오로지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뿐. 그리고 영화를 보고 원작이 몹시 궁금해지긴 처음이라-이런 경우 원작이 영화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를 포함하여-그런데 또 막상 원작을 집어 들려니 이미 알고 있는 반전의 실체를 자꾸 분석하려 들 것이 뻔하므로-이상야릇한 기분으로 극장을 빠져나왔다.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언노운>의 영화관계자들의 비평을 보니 반전에 대한 실망이 많았기로 나는 비관계자 입장에서 좋았던 점을 기억해보고 싶다.

 먼저, 나는 이 작품의 배경인 베를린이 참 좋았다. 독일에 가보지 못했기에 겨울배경의 베를린은 회색 그 이상의 다크그레이였다고 할까. 마틴 해리스역으로 분한 리암니슨도 좋았지만 독일출신 다이앤 크루거(Diane Kruger, 1976 년생)는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찾아보니 약 5년 전에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2005>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했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사라진 여자친구로 등장하며 시종일관 차갑고도 지적인 매력을 잃지 않았다. 마틴 해리스의 아내로 등장한 미국배우 재뉴어리 존스는 낯은 익었지만 출연작이 생각나지 않았고 이번 영화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아무래도 영국풍보다는 독일풍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자체가 여주인공들의 대결구도나 로맨스를 말하는 장르가 아닌지라 여자 배우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미약해 보였지만 다이앤 크루거는 분량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 다이앤 크루거 주연,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 2005>


마틴 해리스 박사가 베를린에 도착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초반부 장면에서 바로 그가 타고 있던 택시를 운전한 여성이 다이앤 크루거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공항과 호텔앞에 즐비한 모든 택시는 화이트 벤츠였다는 것, 그리고 곧 처참하게 물에 빠져 박살이 났다는 것, 그런데 유리창을 무지막지하게 부수고 탈출하는 주인공도 바로 그녀였다는 것, 미모의 여기사는 설상가상 정신잃은 마틴 박사까지 구출했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특수 훈련을 받은 요원의 액션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활약덕에 그녀가 마틴 박사의 사건에 개입이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꽤 비중있는 조연이겠구나 하는 것. 후자는 맞았건만, 전자는 보기 좋게 아니었다.



박사는 72시간만에 깨어나 다시 호텔로 간후 아내와 재회하지만 아내는 자신을 몰라보고 누군가 엉뚱한 사람이 자신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나 혼자 바보 된 상황인 것이다. 처음엔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된 그가 기억을 더듬어 원래의 자신을 되찾기 위해 혼자 사건을 추적한다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운 발상은 아니었다. 박사가 죽어야 하는 이유 뒤에 무언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경우 대개 아내가 치정에 얽혀있거나 스파이와 관련되어 감쪽같은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오래전부터 실행되어온 계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 만약 극적으로 자신을 찾게 된다하면 주변인의 배신에 가슴아파 하며 그들에게 복수를 한 후 최초로 자신을 구해준 택시운전사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엔딩처리 될 것이 자명해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 공식과도 같은 '잃어버린(빼앗긴) 자아찾기'에서 두가지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하나는 배후조직의 음모(테러의 목적)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연출속에서 나름 21세기 적으로 신선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시 찾게 된 자아가 원래 자아대로 살지 않고 우리를 배반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를 위로한 결과가 된다는 것. 여기서 이 영화가 그토록 차별화를 선언한 ‘반전’의 물음표는 아마도 ‘지금 당신이 찾고 있는 자신이 진짜 자신인가’에 해당하는 질문이 아닐까. 지금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하는 음모와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전 당신이라는 인물을 만들어야 했을 음모도 있었다면, 하고 말이다. 혹시 그 음모의 희생양이 당신이라면 당신이 찾고자 하는 당신의 원래 모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 찾을 수 있기는 한 것일까에 대한 수수께끼 그것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찾고자 하는 당신이 당신이 찾아야 하는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입증 할 것인지, 하는 허를 찔린 듯한 이 질문은 영화 전반 내내 극적인 긴장감을 유도해 내는 데 성공한 듯 하다.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진짜가 아니라는 진실, 그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웃기지만 아니 웃기지도 않지만 슬픈, 아니 슬프진 않지만 우스운 정말 알 수 없는 비현실. 영화는 그것을 현실화하였다.

사실, 이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다이앤 크루거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돈을 모아 영주권을 얻고자 하는 불법체류자로서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해나가던 이방인이자 하층계급의 인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힘없고 능력없어 뵈는 젊은 처자가 해리스 박사에겐 유일한 의지가 된다. 그녀는 단순한 거래가 일단락 된 뒤에도 해리스 박사를 위험에서 또 한번 구출해내는 수호천사의 역할을 마다 않는다. 우연히 국제적 사건에 휘말리게 된 처자가 꼭 그러했어야 할 당위성을 나는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감성의 공감대를 두 배우가 잘 이끌어 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영상이 주는 시각적 개연성의 효과이자 영화만이 제공하는 매력일 것이다.

이 작품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파괴적이고 거대하진 않으나 과장없이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제공한 점이 장점인 영화였다. 박사가 헤메이는 눈내리는 베를린 거리는 아마 원작과는 상이한 연출인 듯한데(원작의 출장은 파리로 확인) 택시가 사정없이 다리밑으로 추락하는 신, 후진으로 도망치던 거리 추격신, 호텔 폭파신 등은 내 경우 아이와 관람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또 하나, 병원 간호가사 알려주었던 전직 동독 스파이가 동료에게 배신하지 않기 위해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는 설정도 의외로 여운을 던져주며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관객을 위한 각색의 묘미로 보여진다.

이번 영화에서 나는 늘 테러의 주체로 등장하는 이슬람계에서 벗어나 테러의 주체는 누가되었건 그 테러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임을 깨우치며 기분좋게 반전을 즐겼다. 반전의 파워가 어찌되었건 그건 보기드문 작품임에는 분명했다. 테러를 계획하는 이유에서도 단순한 보복이나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GMO'(유전자 변형농산물)과 같은 인류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 점도 의미있었다. 아마 원작에서였다면 사람의 기억과 자아의 합체,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간의 심도높은 성찰을 엿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로도 짧았지만 내 기억만으로 나를 증명할 수는 없으며,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가 제공하는 메시지를 무리없이 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원작을 먼저보고 영화를 보았다면 나는 어떠하였을까. 그때도 반전이 새롭지 않다는 평가에 반기를 들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할 때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주인공이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군지 알게 되었지만 갑자기 그와 일치되지 않게 정의로와진 위선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우리로선 당연한 반가움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로서는 자신이 찾게된 자신을 (원한다 해도)벗어나기 힘든 것이 더 당연한 인지상정 아닐까. 동료의 배신과 생명의 위협이라는 조건부와 상관없이 약간의 갈등도 없었던 주인공의 단호한 태도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같이 살던 여자로부터 다른 여자로 턴하는 방향인데 일말의 갸우뚱은 필요치 않냐는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미국영화의 옥에 티같은 한계이기도 한데 보스니아 내전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지나(다이앤 크루거)를 위해(?), 아니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그녀 때문에 마치 은혜를 베풀듯 갑자기 테러를 온몸으로 막아 내고 인류건강에 이바지 할 주인공으로 변모하게 되는 그 영웅심, 미국 영화의 만고불변의 진리, 그것은 어쩌면 가장 큰 이득을 위해 온갖 종류의 테러와 전쟁을 계획해 내는 미국 스스로를 향한 예술적 단죄이자 문화적 보상은 아닐런지. 그런데 더 큰 진실은 늘상 알면서도 그것에 울고 그것에 우는 우리네 정많은 인간됨은 아닐지.

그녀를 생각하며 독일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유난히도 겨울을 싫어하지만 만약 겨울에 꼭 가야할 여행지가 있다면 나는 그곳이 독일이길 소원할 것이다. 나는 지적인 눈물이 좋다. 리암 니슨은 우리 나이로 환갑일 터인데 다음에도 액션을 하실런지 궁금하다. 다이앤 크루거는 아무래도 미스터리 장르에 어울리는 외모인데 이번 액션도 근사했다. 두사람은 나이차와 상관없이 지적으로 잘 어울렸다. 가는 겨울이, 혹 아쉽다면 이 영화의 흩날리는 눈발에 스산한 마음을 맡겨보면 어떨까. 차도녀는 역시 겨울이 제격 아닌가. 다가오는 봄이 살며시 두려워진 이 변덕의 미련이야 누구를 탓하리오만은 삶은 다행히도, 나를 대신해주는 또 다른 인생이 있더라는 것. 겨울이여, 잠시만 기다려 다오. 아직은 더 쓸쓸해지고 싶었다네, 나 아직은 봄처녀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네.
 


-다이앤 크루거 - 독일, 금발, 선글라스 차도녀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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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 배경인 영화가 좋긴하지요.
근데 허리우드풍일 것 같아 일단 좀 꺼려져요.
책이 더 좋다는 말도 있고...
마지막 쓰신 글에서 풉~
저도 얼굴이 참 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문제는 도시적이지는 않다는 게 흠이어요.ㅋㅋ

한사람 2011-02-24 14:33   좋아요 0 | URL

얼굴은 찬데 도시적이지는 않다...음...
상상이 어렵다는^^
슬쩍 책 정보를 보니 영화와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완전 출장배경부터가 파리니까요
영화에선 아무래도 삭제된 서사가 많을듯 하구요

책을 먼저 봤어야 하는데....

그럼 반전은 완전 충격이었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