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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 The Figh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가족이란 무엇일까. 형제란 어떤 관계일까. 챔피언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가족의 힘과 형제간 믿음, 그리고 챔피언의 의미에 대해 이 영화는 말한다. 챔피언도 형제와 함께라면 가족모두 행복한 것이라고... 끝내, 행복해지는 영화였다. 드라마틱한 연출이나 강요된 감동없이 드라마는 투박하고도 수줍게 감동을 이끌었다. 막이 내리고 나는 썩 감동받지 않은 척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어쩌면 늘상 마주하는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는지 모른다. 어제 본 가족이, 내일 다르지 않을 그들이 오늘이라고 유난히 반갑지 않은 일상의 마음가짐이었다. 어쩌면 남들 앞에서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감동을 드러내는 것이 겸연쩍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돌아와 그들 몰래 아주 어릴 적 촌스럽게 찍었던 몇 장 안되는 흑백 가족사진을 들쳐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마음이었달까. 지긋지긋해도 내 살처럼 편하고 티격태격해도 내 체온처럼 미더운. 어쩌면 아주 익숙해 잠시 눈물을 미루어 두었을지도. 형제...사실 난 형제가 없다. 무엇을 놓고 경쟁해 본 적도 협동해 본 적도 양보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일까. 내게 이 영화는 못해 본 정겨움이자 못다 핀 그리움이었다.
알려졌듯이 이 영화는 쌍둥이 복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며, 이번 아카데미 남녀 조연상을 석권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이 영화선택을 이끌었던 건 아니다. 실화가 아니고 상을 받지 못했어도 나는 이 영화에 자석처럼 끌렸다. 뭐랄까 대단하진 않지만 든든한 밥심같은, 조금은 거칠고 퉁명하게 새삼스러워도 속마음은 뜨거워 질 것 같은. 크레딧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형 디키역의 크리스찬 베일은 (너무 살이 빠져)알아보지 못했을 뻔 했고 동생으로 분한 마크 윌버그와 엄마역의 멜리사 레오의 이름도 쉽게 기억하지는 못했다.(물론 그들의 대표작조차도) 꼭 얼굴은 익숙한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한국 드라마의 연기파 단골 조연배우들 같았달까. 하지만 그동안의 우리사이 세월이야말로 작품의 흥행과 관계없이 무언의 신뢰를 제공하는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의 배우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몸에 힘을 빼고 로웰마을의 실제 주민들처럼 울고 웃었다. 표면상 주인공이었던 동생 미키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특이하게도 스포츠 소재의 영화에서 승리의 주인공이 빛나는 순간 더 눈부신 형과 엄마가 밟히던 것은 아마도 이들의 오래된 익숙함이자 신비한 연기력이었나보다. 모두들 얼마나 실제 인물을 연구했을지 그들의 제 몸같은 연기가 가끔 인간극장류의 휴먼 다큐멘타리로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 그 애틋함이 스크린을 보면서도 꽤 오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영화로서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만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가 거의 한국의 미니시리즈식 드라마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특이했던 건 바로 시작과 끝이 동생과 함께인 형의 감정상태였다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 감독의 확실한 연출의도가 구성상 ‘to be continue’의 드라마가 아닌 ‘the end’ 의 영화로 보이게 했다. 이 수미쌍관식의 인터뷰 촬영장면은 이 영화를 더욱 리얼하게 전달하는 일등공신이기도 했는데 내겐 마치 어떤 근사한 그림의 액자이자 개성있는 선물의 케이스와 같이 느껴졌다. 유명 스포츠 채널인 HBO에서 왕년의 복서 형의 영화를 촬영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 형의 인터뷰가 마지막에는 이 영화는 ‘내 영화가 아닌 동생의 영화’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엔 껄렁껄렁하게 잡담하듯 대답을 내뱉다가 마지막에 목이 메어 눈물을 글썽이던 형의 목소리는 이 영화에서 동생의 승리만큼이나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옛날엔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동생이라고, 동생이 로웰의 자랑이며 인생은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나처럼 되고 싶어 했던 동생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느냐고. (물론, 그런 형의 눈물에 굳이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한 일이라는 동생의 첨언도 기억한다)


"동생에겐 제 전부를 가르쳐줬죠" "예전엔 저였지만 이젠 동생이죠"
형은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울음으로 영화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처음 웃음은 자만이었고 마지막 울음은 겸손이었기에 우린 형이 울어도 행복했다. 형은 자신의 영화를 찍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동생의 영화로 끝이 난 것에 슬픔이 아닌 감격의 눈물을 흘림으로써 결국 자신의 영화를 더 드라마틱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승리는 동생의 것만이 아닌 망가져가던 형의 승리였고, 형에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가족 모두의 것이기도 했다. 혹시 동생이 실패하고 형 역시 폐인이 되고 그로 인해 가족이 절망한다고 했어도 나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가족인 것, 서로 미워하고 부담주고 상처를 주었다 해도 그들이 가족이라는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지막에 위로가 될 것은 가족밖에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영화라는 현실은, 아니 영화같은 현실은 우리를 울리지 않았다. 대신 웃고 있어도 가슴에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다. 형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동생의 이야기이며 알고 보니 엄마의 이야기도 누나들의 이야기도 어쩌면 아빠와 여자친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가난하고 할 줄 아는 게 한가지 밖에 없는, 어쩌면 특별히 아무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유달리 부지런하지도 않은 우리들 이야기일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욕심은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
그랬다. 그들은 변두리 마을에서 소시민의 욕심을 가졌기로 남들에게 절대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다. 남들만큼 실패했고 나이만큼 실수했다. 적당히 위법하고 요령껏 반칙한다. 한번 영웅이면 영원한 영웅이듯 그때를 회상하며 오늘을 소모한다. 상금이 될수록 많으면 좋겠고 내 아이한테 존경받고 싶다. 그리곤 내 방식대로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려든다. 가족이 잘못되면 남의 탓을 하고 어떨 땐 구성원의 희생에 침묵한다. 이들은 너무 영화적이어서 완벽하거나 절대적인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족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또 기특하게도 귀여운 장점들이 있었다. 내 어머니처럼 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내 아버지처럼 능력이 없었고 내 형처럼 허풍이 많았고 내 동생처럼 가족을 지겨워했고 내 누나처럼 여자친구 탓을 했다. 하나같이 거짓말처럼 영화속에 등장할만한 인물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를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감동을 선사한 요인이 되었다.
형제들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아홉 남매의 어머니, 육십대에도 미니스커트와 화이트 스키니진이 어색하지 않은 글래머 몸매에 화려한 옷차림, 외향적으로는 가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서 두 형제가 어렸을 적 부터 권투경기의 매니저 역할을 해온, 아버지와 싸울 땐 후라이팬을 집어 던지고 누나들과 협심해 아들의 여자친구를 찾아가기도 하는, 그녀야말로 이 영화의 파이터가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말한다. 우린 가족이라고. 형도 네가 잘되길 원한다고. 당신보단 내가 더 아들을 잘 안다고. 장남에게 많은 기득권이 주어지는 대신 막중한 역할이 기다리는 우리네 가족관계의 그것처럼 형의 성공은 곧 우리 가문의 자랑이고 마을의 영광이니 가족모두는 대 가정의 행복이라는 대의에 따라야 하느니. 고시 공부를 하는 우리네 큰 형들을 위해 동생들이 무언가 해야 한다면 그건 우상같은 형과 기둥이 될 오빠를 위해 부모님의 욕망을 기꺼이 수용하는 일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서 그건 차별이 아니라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같이 복서를 했지만 설사 동생이 형의 연습상대로만 존재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져주는 경기를 해야 할 지라도 가족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형이 주로 좌충우돌 사고를 유발하는 '트러블 메이커'였다면 어머닌 작품내에서 그들의 가정내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긴장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메이커'였달까. 하지만 나는 그녀를 미워할 수 없었다. 언제나 구경꾼처럼 소파에 모여앉아 사태를 관망하던 일곱명의 누나들, 무능력해 보이던 딸기코 아버지와는 달리 그들 가운데 유일한 아들은 열 두살때부터 열 여덟살이라 속이며 경기를 해온 권투유망주, 속칭 인생 역전, 한방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주먹 하나로 세계를 제패할 수도 있는 기특한 마법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자자손손 마을의 영광이 될 수 있는 자랑스런 아들을 낳은 당사자였던 것이다. 그녀가 시원하게 날리고 싶었던 건 혹시 다른 건 별볼일 없었던(?) 자신의 인생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다른 가족들도 저마다 세상을 향해 무언가 날리고 싶었던 무엇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인생은 한 방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조롱하고 무시해온 그들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인 결말이었다는 것이 참 반가운 영화였다.
가만 보면 이 작품은 형을 통해 동생을 말하는 영화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형은 처음부터 인터뷰할 때 자신의 이야길 바로하기 보다 동생과 함께인 자신을 설명하려 했다. 동생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 맞아 준다고, 자신은 바깥쪽을 선호하는데 동생은 안쪽을 선호한다고. 은연중에 내비친 자신과 동생이 많이 다르다는 형의 진술(?)은 의미심장한 예언이기도 했다. 형의 소개처럼 영화내내 안쪽에서 한방을 준비하던 동생은 시종일관 과묵했고 바깥쪽에서 치명타를 날리는 형은 수다스러웠다. 둘 다 돌주먹이었지만 이들의 권투성향은 서로 반대이기에 조화로울 수밖에 없는 필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챔피언 도전에 나선 동생에게 형은 말한다. 이건 네 무대이고 온전한 네 시간이니 당하고만 있지 말라고. 혹시 형의 주문은 네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너는 해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주먹은 있고 힘도 세지만 자신있게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던 동생은 늘 최선의 방어를 공격으로 삼지 않고 최선의 공격을 방어로 삼은 선수였다. 동생에겐 늘 그래왔듯이 형의 전술대로 형이 파악한 상대만큼 형이 지켜볼 때 경기를 하는 것이 가장 쉬웠고 형없이 경기를 하고 형없이 이긴다는 건 상상할수 조차 없었다. 제발 형없이 자신만으로도 이겨보고 싶었지만 그는 감옥에 있는 형을 찾아가 형이 알려준 조언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마치 형이라는 자기 내부의 우상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는 것이 이 영화의 궁극적 가치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예상을 깬 실제 형은 영화속 동생보다 나았다. 형은 동생에게 반드시 필요했고 형에게도 동생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 그래서인지 동생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형이 동생 자신을 이기도록 독려하는 마지막 영혼의 주문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무리 옆에서 훈수를 두어도 결국 사각의 링안에서는 자신만이 상대의 주먹을 막아내야 하는 잔인하고도 고독한 시간들을 동생은 알고 있었다. 다만 형은 잠시 그 사실을 잊은 동생의 자존감을 가장 뜨거운 강도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자극할 수 있었던 존재였다. 결국 가장 공격적이라는 건 그러한 고독한 시간을 깨달으며 누구의 도움없이도 자신의 두려움을 깨부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 그것은 형과 동생이 내게 함께 알려준 교훈의 한방이었다.
그렇다면 못다한 형의 꿈을 이루면서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은 동생은 세계챔피언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스포츠에서의 최대 적은 결국은 나와 경기를 하는 상대선수가 아닌 상대가 마주하는 내 자신이었을을 다시금 깨우쳤다. 아무리 막강한 선수와 맞붙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연습한대로 자기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야말로 어떠한 전략보다 더 공격적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건 우리가 인생이라는 스포츠를 행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챔피언이 되고 마는 동생을 보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링위에 서있던 형의 얼굴을 기억한다.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영웅심리와 마약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형, 교도소에서 까지 전화로 동생의 경기 중계를 듣고는 환호성을 울리던 형. 그의 표정은 흡사 자신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제자가 당당하게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버린 광경을 보고 잠시 만감이 교차되던 오서코치의 눈물을 생각나게 했다. 그 눈물은 동생과 제자의 승리가 누구보다 기뻐서 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 어느 개그맨이 그랬다. 스타와 슈퍼스타의 차이는 바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신감에 있다고.
90년대 초라고는 하지만 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 한편으로 봄날의 우울을 이겨보고 싶었다. 사는 건 왜이리 극복해야 할 일이 많은지 나이들면서 점점 이제는 날씨마저도 이겨야 할 상대가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오늘 모처럼 예년 기온을 웃돌며 햇살좋은 봄날씨에 마음이 바빠진 하루였다. 봄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이미 깨달은 나는 서둘러 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다. 나 역시 이 봄이 다가기 전에 이 두려움에 지기 싫어 가족의 힘을 빌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굳이 가족영화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분명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그건 내가 꼭 지난시절 가족 때문에 힘을 얻었다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없었다하면 가장 먼저 힘이 빠지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형을 확인하고 동생을 확인하고 부모님과 기타 가족을 확인하러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가족은 굳이 확인하며 신분과 역할을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형의 이름과 어머니의 고집과 누나의 응원과 동생의 상처를 가슴으로 확인하였을 때 세상엔 내 가족도 있었음이 거짓말처럼 벅차게 고마울 날도 있다는 것. 가끔은 그렇게 고마운 눈물 한 방울로 다시 다가오는 계절도 반가울 수 있다는 걸. 화창한 봄날, 속으론 울었지만 태연한 척 찡긋하며 삐죽거릴 수 있는 오늘, 당신도 공평하게 자기 인생의 파이터로 살아감이 짠해지는 오늘, 불어오는 봄바람을 핑계로 얄미운 사람의 어깨를 툭 쳐봐도 좋을 오늘, 우리 다시 파이팅하자. 삶이 두려운 건 당신과 내가 마찬가지인 오늘, 서로의 한방을 응원하는 우리 목소리가 기분좋은 오늘, 똑같이 내일을 기다리는 도전자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준비하며 기다렸기에 언젠가 터지고 말 그 한방의 파이팅으로.
이봐요, 앞 일은 누구도 모르는거죠?
포기하면 안되죠,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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