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날 이달의 작가의 제이디 스미스다.

오래 전부터 제이디 스미스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책은 읽은 게 없더라.

누군가 오래전에 그녀의 데뷔작 <하얀 이빨>이 드랍게 재밌다 해서 관심을 몇 초간 지닌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중에 아주 시간이 흘러 중고서점에서 <하얀 이빨>을 만났다.

그 때 이미 책은 절판되었고(아마 판권 계약 소멸), 도무지 나머지 2권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제 다시 중고서점에서 비교적 신간인 <런던 NW>를 샀고 재밌게 읽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전에 사둔 책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 봤다. 온 뷰티 2권도 샀다고 하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우리 책쟁이들의 숙명이 아니던가. 일단 <런던 NW>를 읽고 나서 드랍게 재밌다는 <하얀 이빨>에 도전할 계획이다. 2권은 살 방법이 없기에 아마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골라봤다.)


제이디 스미스는 19751025, 영국 런던의 윌즈던에서 태어났다. 윌즈던은 소설 <런던 NW>에도 등장하는 지명이다. 역시나 작가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집필활동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어머니는 자메이카 출신 이본 베일리 그리고 아버지는 영국 사람 하비 스미스. 14살 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Sadie에서 Zadie로 바꾼다. 14살 짜리가 자기 이름을 바꿨다고? 자신의 의지인가 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의 결정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어머니 이본은 1969년에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민왔고, 스미스 부부는 제이디가 십대 시절에 이혼했다. 형제 중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래퍼로 활동하는 닥 브라운이라고 한다. 참고로 나는 누군지 모르고, 굳이 검색해 보고 싶은 마음도 쿨럭.

 

어려서 탭댄싱을 좋아하던 제이디는 뮤지컬로 커리어를 시작해 보려고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재즈 가수로 돈을 벌었고,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했지만 결국 그녀는 소설가가 되었다.

 

제이디 스미스 성공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25살 때, 그 유명한 전설의 <하얀 이빨>을 발표하면서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아니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출판사들에서 가능성을 엿보고 판권 계약을 위해 달려들 정도였다니(아니 그것도 만들어진 전설의 일부려나) 정말 대단한 출발이 아닌가. 그란타에서 그녀를 미래에 잘나갈 젊은 작가로 선정한 것도 한몫했지 싶다. 그랜타는 유료 잡지라 돈을 내야 기사에 접근할 수 있더라. 치사하다.

 

2000<하얀 이빨> 이래, 제이디 스미스는 모두 5권의 책을 발표했다. 2002년에는 <오토그래프 맨>, 2005<온 뷰티>, 2012<런던 NW> 그리고 2016<스윙 타임>. 물론 그동안 다수의 단편들과 에세이들도 꾸준하게 써오고 있다. 그러니 천상 글쟁이라는 말이겠다. 국내에는 <하얀 이빨>, <온 뷰티> 그리고 <런던 NW>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이 번역되었다. <하얀 이빨>은 판권 계약이 종료되어서인지 어쩐지 이제 절판되었다. 그리고 중고시장에서 엄청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더라. 1편이라도 건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어쩌나. 어쩌면 다른 출판사에서 곧 재개정판으로 나올 지도 모르는데, 업자들의 과욕이지 싶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신판이 나오면 중고책값이 팍 떨어지는 걸 수차례 보았으니 말이다.



원래 내 계획은 어제 사들인 <런던 NW>을 읽고 그렇게 드랍게재밌다는 <하얀 이빨>(제목부터 무언가 끝장 내주는 느낌이 들지 않은가!)로 직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출근길에서 <하얀 이빨>을 꺼내 들었다. 지난번에 도전했을 때 52쪽까지 읽었는데 이번에는 무사히 완독할 수 있길.


아직 <하얀 이빨><런던 NW>의 초반부를 읽고 있는 중이라,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는데 제이디 스미스는 주인공 아치 존스나 리아 한월에게서 비주류의 삶을 사는 군상들의 모습을 건져 올린다. 아치 존스는 초반 등장부터 이슬람 정육점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하지 않나. 29년 동안 같이 산 오필리아 디아질로는 마누라가 아니라 원수 같은 존재다.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인내를 평가해 주어야 하나. 리아의 엄마 폴린은 미용사 사위 미셸을 자기 맘대로 마이클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서구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주의 문제를 보너스로 추가한다. 스트레이트로 시원하게 읽어내야 하는데, 찔끔찔끔 읽으려니 독서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은 그런 느낌. 그래도 짬짬이 페이퍼를 추가하는 재미도 대단히 쏠쏠하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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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하얀 이빨>은 내게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느낌이다.

디킨지언 스타일의 대환장 파티를 기대했건만, 지금은 이미 새로운 밀레니엄이었던 2000년으로부터도 20년이 더 지난 시점이 아니었던가.

 

25세의 재기발랄한 제이디 스미스가 20년 전에 다룬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참신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지난 20년 동안 숱하게 발굴된 이야기의 전주곡이 아닐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어렵사리 구한 2편의 결말에 가서는 왜 이렇게 지치던지. 드라마의 결말하고도 상이한 그런 느낌이었고.

 

그런 다음 다시 <런던 NW>를 집어 들었는데 첫 번째 꼭지는 갠춘했으나 두 번째 꼭지에서는 그야말로 꼭지가 돌 지경이다. 필릭스 쿠퍼의 프로젝트 카 스토리에 진이 빠져 버린 느낌이다. 오늘까지 40%를 돌파한 시점에서 잠시 소강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대신 <온 뷰티>를 새로 읽기 시작했는데 출발이 좋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 런던 북부의 킬번이라고 했던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프가 살짝 배어 있는 그런 느낌도 들고...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두 가문의 적대적 결합에 대한 스토리라고나 할까. 아직 초반부고, 내러티브 전개와 등장인물간의 관계도를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온 뷰티> 1권은 신간으로 사고, 2권은 중고로 샀는데 출간된 지 두 달만에 반값으로 샀더라.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뉴요커에 실린 중편 <캄보디아 대사관>을 출력해 두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조지 손더스의 단편들처럼 링바인딩을 해서 보관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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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2-16 08: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NW 읽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 제이디, 재미있습니다. <하얀 이빨> 무쟈게 재미납니다. <온 뷰티>도 열라 잼납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12-16 09:15   좋아요 2 | URL
희한하게도 폴스타프님과 독서가 겹치더라는 -
조언해 주신 대로, 올해 남은 보름 동안

열라 재밌다고 하시니,
죽어라 제이디 스미스를 파보겠습니다. 추웅서엉.

mini74 2020-12-16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책들과 숨바꼭질을 합니다 ㅎㅎ 니클의 아이들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중. 래삭매냐님 조선시대였다면 최고의 서쾌가 되시지 않으셨을까요 ㅎㅎ 소개하시는 책마다 사고싶어요 *^^*

레삭매냐 2020-12-16 09:16   좋아요 2 | URL
최고의 낚시꾼이라 명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ㅋㅋㅋ

사실 <니클의 소년들>은 오래 전
부터 고대해 마지 않던 책이라
견딜 재간이 없더군요. 오죽했으면
교보에 바로드림하러 달려 갔겠습
니까 기래.

이따 퇴근한 다음에,
<온 뷰티> 2권을 찾아 고고씽 ~

유부만두 2020-12-16 08: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얀이빨 드랍게 재미있어요! 이분 엣세이도 엄청나지요!

레삭매냐 2020-12-16 09:19   좋아요 2 | URL
아니 영어 에셋이까정 !
참으로 대단하십네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런던 NW> 때려 치우고 <하얀 이빨>
부터 집어 들었네요 컹~

단발머리 2020-12-16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얀 이빨> 도서관에는 있던데 말입니다. 여기서 모두 한 목소리로 제이디 스미스 외치시니 정말 큰 일입니다! 너무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20-12-16 09:23   좋아요 0 | URL
당근 유명한 책이다 보니 도서관
에는 비치되어 있지요.

하지만 또 4B 연필로 밑줄 좍좍
긋고,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
붙이는 재미는 역시 산 책에 하는 게
쵝오더라구요...

이래서 책은 미리 사두어야 하는데
아숩네요.

페넬로페 2020-12-16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낚시꾼^^
최고입니다**

레삭매냐 2020-12-16 09:57   좋아요 1 | URL
앞으로도 용맹정진하야,
(책 읽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겠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아닙니다.

scott 2020-12-16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떻게 레삭매냐님 책낚시꾼이야 ㅋㅋㅋ151권에서 152권 스미스양 추천 하면 어떡해요 ㅋㅋㅋ포스팅읽으면서 스미스양 이북 열고 있는 1人

레삭매냐 2020-12-16 11:35   좋아요 2 | URL
얏호! 오늘은 만선이네요.

다시 한 번 세상은 넓고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나 2020-12-16 1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온뷰티 엄청 재밌게 읽었어요! 하얀이빨은 소설가들이 엄청 추천해서 샀었는데 저도 본가 가면 찾아봐야겠네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다시 제이디 스미스예요 🔥

레삭매냐 2020-12-16 13:55   좋아요 2 | URL
따스~ 책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저하고 아주 비슷하신 시츄 같네요.

저도 딴 집에 책이 엄청나게... 정리
도 되지 않습니다.

<온 뷰티>도 재밌다고들 하시니...
이달의 선택에 부심을 느낍니다.

몰리 2020-12-16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걸렸습니다. 전에 제이디 스미스 사둔 게 있긴 한데 뭐냐, 검색해 보니 On beauty네요. 더 사둘 책들을 고르고 있는데요. 그런데 레삭매냐님 bookdepository 쿠폰, 어떻게 구하나요. 예전 포스트에서 bookdepository 쿠폰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북디파지터리에서 가장 저렴하게 나온 책들을 사려고 하는데 그래도 비싸서... ㅜㅜ 10만원이 넘어가니 쿠폰이 절실해지네요.

레삭매냐 2020-12-16 13:56   좋아요 1 | URL
낚시꾼을 넘어 이제는 구매 상담
에까지 넘나드는 오지라퍼 등극
했습니다 ㅋㅋ

북디파지터리 쿠폰이가 가끔
날아 오더라구요. 전 마지막 책
주문했던 게 석달도 넘게 걸려서
당분간 자제 중이랍니다 :>

몰리 2020-12-16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쿠폰 검색을 해보니 여기 쿠폰이 자주 나오는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찾기만 하면 찾아지는 건 또 아닌 거 같기도 하고요. 확실히 특정 상품 한정 쿠폰이 다수인 거 같고 전상품 10% 같은 좋은 쿠폰은 단기간 한정인 거 같아 보이고 그러네요.

레삭매냐 2020-12-16 14:02   좋아요 0 | URL
정확하신 분석이십니다.

전 항상 10% 할인 쿠폰으로
책을 사곤 했답니다.

일단 살 책들로 구매 목록을
맹글어 두었다가, 10% 할인
쿠폰이 뜨면 바로 질러 !

그나저나 배송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무서버서 더
주문을 못하겠더라구요.

전 아민 말루프 선생의 <흑인
레오>가 땡깁니다.

몰리 2020-12-16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보가 정말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정보.
저도 일단 장바구니 담아 놓고
오데 있냐 10% 찾아 보던 중이었어요.

어딜 가입을 해야 날라오나요? 북디파지터리에서 보낸 쿠폰인가요?
금 왜 난 안 보낸 거냐 그들은, 이라는 의문이. ; 꽤 팔아주었건만. ;

전 한 달 안에 받았던 거 같은 기억인데
석달이나 걸릴 수도 있다면 (배편으로 ; 보내나요....) 저도 재고를 해보아야 하겠긴 한데, 그런데 여기 어쩌다 보면 정말 가격이 인터넷 서점들 중에서 가장 저렴하게 나오더라고요. 무슨 책이든 알라딘이 가장 저렴하면 얼마나 좋겠.....

레삭매냐 2020-12-16 17:14   좋아요 1 | URL
제가 보아 하니, 우편물이 스위스 우체국
을 거쳐서 오는 것 같더라구요 :)
아마 싼 편을 통해서 오는 것 같습니다.

북디파지터리에서 이메일을 보내주는데
가끔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더라구요...

예전에 알라딘인가 어디선가 책값이 다른
사이트보다 싸지 않으면 돈을 포인트로
주는 그런 서비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하네요.

coolcat329 2020-12-17 1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얀 이빨>이 드랍게 재밌고 거기다 귀하기까지 하다니 갑자기 행복해지네요. 😍이 책 동네 주민이 드림하셔서 민음사모던클래식이라 무조건 받아온거거든요. 넘좋네요😻

레삭매냐 2020-12-18 09:30   좋아요 1 | URL
대환장 파티까지는 아니더라도,
잔잔바리 유머가 소소하게 터지는
맛이 아주 즐겁게 읽고 있답니다.

모클로 드림을 받으셨다니, 더더욱
부럽삽니다.

전 오늘 알라딘 중고로 구간으로
2권이 떠 있길래 냉큼 주문했습니다.
배송료 2천원 아끼지 않습니다 네.
 
레닌의 키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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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산 책을 겨울에 읽는다.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었던가. 아니 해를 넘기지 않고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제목부터 수려하다, 무려 <레닌의 키스>란다. 지금은 영락해 버렸지만 한 시절, 세계를 주름잡았던 막스-레닌주의의 원조가 바로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가 아니었던가. 왜 레닌의 키스가 필요한지 27년 경력의 전 인민해방군 전사 옌렌커 선생이 말하는 소설 속으로 뛰어든다.

 

우선 소설은 전설부터 독자에게 시전해준다. 여말선초 같이 대단히 혼란스러웠던 원말명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우훠 마을의 전설이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 살던 부자가 박대한 호대해가 훗날 명나라 건국 시조 주원장의 눈에 들어 이주대신으로 변신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중원에 살 사람이 필요해진 홍무제는 호대해를 이주대신에 임명해서, 전제군주답게 강제 이주를 계획한다. 자신의 권력을 한껏 누릴 수 있게 된 호대해의 첫 번째 타겟은 바로 자신을 홀대했던 부자였다. 꼼수로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을 추려낸 뒤, 강제 이주 프로젝트는 가동된다. 그것은 마치 마오쩌둥의 실패한 인민공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리하여 생겨난 마을이 바로 고통 속의 즐거움이란 뜻을 지닌 서우훠 마을의 탄생이었다. 한편, 호대해를 잘 대해준 귀머거리 서우훠 할머니의 선행으로 이주대신은 그녀의 청을 들어준다. 그래, 서우훠 마을은 천하 장애인들의 집결지가 되었다나.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올해 69세의 마오즈 할머니다 십대 어린 나이에 홍군의 장정에 참여하기도 했던 혁명 원로 마오즈 할머니의 기백은 대단하다. 위세 높은 성에서 현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기도 하고, 바지까지 벗어젖힐 기세로 그들을 제압한다. 중국 고래의 전통을 대표하는 혁명 전사 출신의 마오즈가 할머니가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업둥이이자 임시노동자 출신의 현장 류잉췌가 버티고 서 있다.

 

류 현장은 대단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렇다 할 자원도 없고, 공장도 없는 솽화이현의 부흥을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이 인물은 덩샤오핑을 모델로 한 걸까.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자본)만 잘 잡으면 된다는 거 아닌가. 우선 남양 출신 사업가에게 읍소해서 솽화이현에 도로도 깔고, 상수도와 전기까지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한다. 배포가 커진 류잉췌 선생이 다음에 도모한 프로젝트는 거창했다. 그것은 바로 관광산업으로 자신이 지배하는 솽화이현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단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의 애물단지가 된 레닌의 유해를 구입해서 솽화이현 훈도산에 레닌기념관을 설립해서 거기에 안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과연 러시아를 대신해서 전 세계 사회주의를 선도하는 국가의 현장다운 발상이 아닌가?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문학의 역병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발칙한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옌렌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식 리얼리즘은 개혁개방의 물고를 타고 잠시 화려한 르네상스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국수주의적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쇠락해 가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바로 그 지점을 옌렌커 선생은 예리하게 타격하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 참 한국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스토리도 이어진다. 류현장과 눈이 맞은 마오즈 할머니의 딸 쥐메이는 서우훠 마을에서 듣도 보도 못한 딸 네 쌍둥이를 낳는다. 그러니까 류잉췌는 쥐메이의 딸 퉁화, 화이화, 위화 그리고 어얼의 생부인 것이다. 작가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자신의 대하소설을 위해 기기묘묘한 장치들을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 한편, 신사회의 대표선수인 류잉췌 현장은 구질서를 상징하는 마오즈 할머니의 권위를 야금야금 파먹어 들어간다.

 

때 아닌 열설로 봄기근을 맞게 된 서우훠 사람들에게 구호 지원금을 준다는 명복으로 그동안 마오즈 할머니가 주관하던 사흘간의 축제를 자신이 가로채서 진행한다. 서우훠 사람들에게 일인당 55위안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하사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과거 군주시절 황제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처세에 능한 스 서기는 막스-레닌-마오쩌둥 사회주의 지도자 반열에 당당하게 류잉췌 현장의 사진을 올려 현장의 눈도장을 찍기도 한다. , 이 지점에서는 현재 주석인 시진핑의 행로에 대한 풍자로 읽어도 될 정도다. 놀랍군 놀라워. 이런 신랄한 풍자와 해학의 무람없는 전개가 자신이 무려 반생을 보낸 인민해방군에서 옌렌커 선생이 쫓겨난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 출신 사업가 어머니의 장례를 빌미로, 레닌 유해 구입 프로젝트를 조기에 성취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 사업가에 사기를 당해 현장은 위기에 처한다. 조국 근대화 아니 서우훠 마을 근대화에 여념이 없는 류잉췌가 그만한 일로 기가 꺾일 인물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191명이 사는 서우훠 마을에 각종 기예를 지닌 장애인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들을 선발해서 묘기공연단을 만들어 전국 각지를 돌며,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 류현장으 끊임없는 도전에 그저 놀랄 지경이다.

 

한편, 오래전 혁명 전사로 서우훠 마을에 흘러들어 석공의 아내가 된 마오즈 할머니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채로 살아온 마을에 신사회 혁명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원조(?)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마오즈 할머니(당시 71)67명으로 구성된 묘기공연단이 출발하는 날, 자신이 직접 만든 아홉 겹 수의를 껴입고 류잉췌 현장에게 서우훠 마을의 합작회사 퇴사를 겁박해서 추인 받는데 성공한다. 그녀가 경자년 홍사 출신으로 옌안 멤버였다는 점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커리어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실하게 주지시킨다.

 

송화이현 현성에 도착해서 실전 연습에 들어간 서우훠 출신 묘기공연단의 서커스에 가까운 쑈는 모두를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는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허풍이 난무하는 묘기공연단의 대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소설의 엔딩은 희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레닌보다 앞선 마르크스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류잉췌 현장의 레닌 유해 구매 프로젝트는 묘기공연단이 그야말로 전국 순회공연에서 돈을 긁어모으면서 현실화되어 가는 모양새를 갖춘다. 소외된 이들이 모여 살던 서우훠 마을 사람들은 대처에 나가 공연을 하고, 평생 만져 보지 못할 그런 엄청난 돈을 벌면서 이전의 천당 같은 세월을 잊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에게는 돈이 다발째 굴러 들어오는 지금이야말로 천당 같은 세월이었으리라. 모두가 그렇게 자본의 세례를 받아 초심을 잃어 가고 있는 동안에도, 홍군 전사 출신의 마오즈 할머니는 연말까지 공연을 마치고 합작회사 퇴사라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옌렌커 선생은 돈맛을 알게 된 사회주의 국가 출신 인민들의 타락상을 자신의 작품 <레닌의 키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서로를 위한다는 사회주의 건설의 기본 이념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자신들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전개되었을 때의 비극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집어 삼킬지 알 수가 없었던 게 그들의 문제였다. 류잉췌 현장과 그의 부역자들이 도모하던 성공의 열매가 너무 달콤했던 것처럼, 그의 추락 또한 삽시간에 벌어졌다.

 

원말명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에, 민국 시절은 물론이고 장정, 항일투쟁, 해방, 신사회 건설, 대약진운동, 강철재앙, 대기근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지나 개혁개방의 시절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중국 현대사의 큰줄기들을 옌렌커 선생은 <레닌의 키스>라는 도발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제목 아래 녹여냈다. ‘문학의 역병이라는 표현을 들을 정도로,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민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지 묻는다. 마오즈 할머니로 대변되는 국가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장애 같은 불편함을 안고서라도 천당의 세월을 보내고 싶다고 온몸으로 항변한다. 모든 것을 혁명에 걸고 사람들을 선동했던 마오즈 할머니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수십 년을 애쓰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허무맹랑한 자신의 기획을 밀어 붙이던 기회주의자 류잉췌 현장의 추락은 희비극의 끝판왕다웠다.

 

700쪽이 넘는 대서사시에 잠깐 위축이 되었지만, 막상 몰입해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피니시라인에 서 있었다. 지난 4일 동안, 나와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서우훠 동지들이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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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15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폴스타프 님이 싫어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20-12-15 18:27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순전히 잠자냥님 덕분에 읽은 것으로 하렵니다.

scott 2020-12-15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만 갖고 있었는데 한국어판 700페이지! 레닌 키스, 레삭매냐님에 백오십 일번째 ㅋㅋㅋ

레삭매냐 2020-12-15 19:41   좋아요 4 | URL
최근의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웃기고 슬프고, 또 신랄한
풍자와 해학에 이르기까지...
옌렌커 선생이 계속해서 노벨
문학상 후보가 오르는지 알려
주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20-12-16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산 책을 요즘 읽는 페크도 있습니당~~~^^

레삭매냐 2020-12-16 13:07   좋아요 2 | URL
저도 몇 년 묵혀서 읽곤
한답니다.

올해는 그런 책들이 제법
많았네요.

쎄인트 2020-12-16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저도 올해안에 읽을생각이었는데..아무래도 내년으로 넘겨야할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0-12-16 17: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 판이었으나,
잠자냥님의 리뷰를 읽고서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야지 결단을 하고
읽었네요.

좋은 책은 내년에 만나도 좋으시
리라고 생각합니다.

scott 2021-01-09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옌레커가 새해 매냐님을
이달에 당선작으로 뽑히게 했음
추카~추카~

레삭매냐 2021-01-09 13:26   좋아요 1 | URL
제가 지난 달에 민 책은 <레닌의 키스>
보다 <니클의 소년들>이었는데 그것 참...

알 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초딩 2021-01-09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이 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멋져요~

레삭매냐 2021-01-09 13:27   좋아요 1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하들 해주셔서 알게 되었네요 :>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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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해 마지 않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 드디어 출간됐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알게 된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은 나의 2020년 독서를 마무리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기대는 충족되었다. 윌라 캐더 여사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와 더불어 올해의 책으로 꼽을 것이다.

 

남부 플로리다에서 예전에 감화원으로 사용되던 니클 아카데미의 부트 힐에서 43구의 시신이 발굴된다. 그 중 7명의 시신은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부트 힐의 비밀묘지를 파헤친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생들처럼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지상으로 끌어 올린다.

 

소설의 화자는 엘우드 커티스. 플로리다 탤러해시 출신의 십대 소년은 할머니 해리엇의 엄한 교육 아래, 자식을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도망친 부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한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대학에 진학헤서 고등교육을 받을 꿈을 키운다.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가 1962년에 사준 MLK의 선동이 들어 있는 레코드판을 들은 덕분이 아닐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1954년 브라운 재판으로 흑인들의 인권운동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짐 크로의 유령은 여전히 검둥이들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해리엇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손자에게 제발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호텔 주방에서 짝퉁 백과사전을 걸고 덤빈 설거지 내기에서 호되게 뒷통수를 맞은 엘두드는 열세 살의 나이에 마르코니 씨가 운영하는 담배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아마 선량하고 성실한 엘우드의 평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링컨 하이스쿨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던 엘우드는 힐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학 수업도 받게 된다. 장차 대학에 진학해서 영국 문학을 전공해 보겠다는 엘우드의 꿈은 공짜 차를 한 번 잘못 탔다가 수렁에 빠져 버린다.

 

그가 얻어 탄 플리머스는 장물이었고, 아직 청소년이었던 엘우드는 교도소 대신 악명 높은 감화원 니클 아카데미로 가게 된다. 니클 아카데미는 이름만 아카데미였지, 입소한 소년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장소였다. 모욕과 폭력은 일상이었고, 특히 교정이라는 이름 아래 블랙뷰티를 동원해서 진행되는 화이트하우스에서의 구타의 종착지는 종종 부트 힐, 비밀묘지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니클에 도착한 엘우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프 삼총사의 학대에 시달리는 소년을 위해 나섰다가 미친개 소리를 듣는 학생주임 스펜서에게 호되게 매질을 당한다. 그것은 과거 노예제도가 횡행하던 시절의 폭력과 다름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살갗이 찢어지는 매질을 견디지 못한 엘우드는 기절하고 만다. 그리고 보통의 검둥이들처럼 현실을 받아 들이게 된다. 다시 한 번, 무자비한 폭력이 정의와 진실을 가리게 된다는 현실이 등장하는 비극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의 1/3 지점을 지나가는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비극의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 한창 미국 남부를 달궈져 가던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료 청년들과 인종차별과 인종분리정책을 반대하는 시위현장에 나서는 자유세계의 체험을 했던 소년 엘우드에게 니클은 가장 나쁜 의미에서 신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엘우드의 눈에 그들은 사악한 용과 싸우는 거리의 기사들이었다. 아니 이런 문학적 표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계대전 이후, 고결한 개혁의 물결이 사방에서 넘실거렸지만 그 때 뿐이었다. 여전히 간이식당에서 흑인들은 식사를 할 수가 없었고, 백인들에게 거리에서 길을 비켜 주어야 했다. 해리엇 할머니가 일하던 탤러해시의 리치몬드 호텔에 일하는 검둥이들은 있었지만, 손님으로서 검둥이들은 존재할 수가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현재 미국의 현실은 달라졌을까? 지난여름, 미국 각지에서 벌어진 Black Lives Matter(BLM)운동을 보라.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과 법적 평등은 요원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짐 크로의 망령은 여전히 미국 사회를 활보한다.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해서, 사유를 조종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해리엣 할머니는 노인의 체험으로 후세에게 전달한다. 당시 현실도 그랬는데, 소년 감화원 니클 아카데미의 경우는 어땠을까.

 

명목상으로는 플로리다 주정부의 감시 아래 있었지만, 니클을 실제적으로 운영하던 하디 교장과 스펜서 일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니클은 그들에게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다. 인쇄소를 돌리면서 플로리다 주정부의 인쇄 업무를 독식하면서 25만 달러라는 거금을 챙겼고, 니클 소년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만든 벽돌은 잭슨 카운티 곳곳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짓는데 이용됐다. 그들의 부정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소년들에게 지원된 금품과 식품까지도 파렴치하게 횡령했다. 그들이 사방에서 저지르는 악덕과 부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그들은 KKK단의 후예로 가혹한 인종차별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한편, 클리블랜드 캠퍼스의 깡패 그리프는 백인 캠퍼스를 상대로 한 권투시합에 나설 대항마로 흑인 소년들의 우상으로 부상한다. 니클의 권투시합은 지역사회에서 초미를 관심사로, 흑인 소년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인종대결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그렇게 그리프란 녀석이 악행을 저질렀어도, 이번만큼은 모두가 일심단결해서 그리프를 응원했다. 백인 맞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바로 여기에 스펜서가 개입해서 승부조작에 나선다. 한 마디로 적당히 하고서는, 져주라는 주문이었다. 내기 도박에서 이기기 위한 백인들의 꼼수였다. 예상대로 결과는 비극으로 귀결된다.

 

니클의 상황에 절망한 엘우드는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자신이 그동안 기록한 것들을 기습감사(물론 사전에 니클에 통보되었다)에 나선 감사원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한 자료들을 넘긴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너무 위험하다며 절친 터너가 적극 말린다. 백인들의 선의에 기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하다는 걸 소년은 몰랐던 걸까?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양심과 격렬하게 갈등하면 장면은 소설의 백미였다. 엔딩에 포진한 반전은 왜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 왜 퓰리처상을 받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건 뭐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과연 이런 게 문학의 힘이란 말인가.

 

전작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서 미국사회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종주의 문제의 기원을 저격했다면, 이번 <니클의 소년들>는 중간점검 정도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MLK의 메시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MLK가 투옥되지 않고 검둥이로서 순응의 삶을 살았더라면, 과연 그가 저항에 나서라는 말이 동족에게 먹혔을 지도 궁금했다. 니클의 최고 악당들인 스펜서나 얼이 천수를 누리며 전혀 반성 없는 삶을 살았다는 지적도 뼈를 때린다.

 

<니클의 소년들>로 올해 목표 독서 150권을 채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야말로 자유 독서시간이다.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나의 엘우드 친구가 그리던 자유도 이런 것이었을까. 진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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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13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는 뭐 당장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억해 두겠습니다.
150권이라니! 가열차고 알차게 읽으셨네요.
축하합니다. 내년도 좋은 책과 함께 보람찬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0-12-13 20:58   좋아요 2 | URL
아, 근데요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볼라뇨의 <2666>인가 하는 5권짜리 말입니다.
그건 낱권으로는 안 파는 건가요?
볼라뇨가 하도 좋다고 해서 괜히 관심이 가서 말이죠. ㅋ

레삭매냐 2020-12-14 06:42   좋아요 2 | URL
<2666>은 낱권으로 팔지 않습니다.

저도 일단 3권까지는 부지런히 읽었는데
여적 완독하지 못하고 있네요.

고 책하고 그렇게 좋다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은 여전히 숙제네요.

감사합니다.

scott 2020-12-13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래삭매냐님, 2020년 독서왕!

레삭매냐 2020-12-14 06:43   좋아요 0 | URL
고저 변변찮은 독서일 따름입니다.

han22598 2020-12-16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짱입니다. 많이 읽으신 것도 그렇지만, 좋은 책 먼저 읽으셔서, 다른 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좋은 리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0-12-16 09:43   좋아요 0 | URL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읽고 쓸 뿐이데 즐거워 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욱 열심히 읽고 쓰고 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2-24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

레삭매냐 2020-12-24 18:22   좋아요 0 | URL
강력합니다, 후회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오후까지만 해도 다음 주에 발송된다고 해서...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서 바로드림으로

책을 받아왔다. 정성이다 정성이야.

 

예전에 반디에 가서 로베르트 제탈러의 책을 이렇게 받아온 이래

아마 처음있는 일이지 싶다.

 

책은 역시나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1/3 지점을 돌파했다.

 

주인공 담배 가게 소년 엘우드 커티스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처구니 없이

자동차 도둑으로 몰려 니클 아카데미에 끌려갔다.

아직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 주말에 부지런히 다 읽어야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람페두사의 <표범>도 절반 정도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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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20-12-11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잊고 있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레삭매냐 2020-12-12 07:34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수상작
같은 경우는 번역을 스피드~업
해서 신속하게 나와 주었으면
하는 고런 바램입니다.

페넬로페 2020-12-1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레삭매냐님은 제가 모르는 작가들을
수두룩하게 알고 계시네요^^
기다리지 못하고 나가서 살 만큼
대단한 작가인가 보네요~~
읽어 보겠습니다
언젠가는^^

레삭매냐 2020-12-12 07:35   좋아요 2 | URL
콜슨 화이트헤드 작가의 책은 국내
에 총 3종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
두 권이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라고
하니 적어도 품질(?)은 보증되지 않
았나 싶습니다. 언젠간 고고씽.

scott 2020-12-11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도 알아줬으면 레삭 매냐님이 얼마나 출간되길 기다렸는지 ,주말에 즐독 하셔요^*^

레삭매냐 2020-12-12 07:36   좋아요 2 | URL
뭔 놈의 사정이 그리 긴지 지난달
말부터 연기 연기... 속이 다 탔네요.
아주 즐겁게 읽고 있답니다 :>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
이연주 지음, 김미옥 해설 / 포르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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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팟캐를 통해 전직 검찰 출신 이연주 변호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저자의 육성을 들으면서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람은 곧 이루어졌다.


게다가 촛불혁명 이래 검찰 개혁이 시대의 화두가 된지 어언 두해 째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최근 사상 초유의 검찰 수장에 대한 징계가 시작되면서, 해당 사건이 모든 뉴스를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검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긴 하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도 퇴근길에 주진우 라이브를 들면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참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 개혁에 동의하면서도 다만 그 방법론과 절차 그리고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조직에서나 호루라기 불기(Whistleblowing;내부고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폐쇄적이고 상명하복식의 질서가 우선시되는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조리한 명령들이 넘실대는 조직의 실상을 깨닫고 저자 이연주 변호사는 1년 만에 조직을 떠났다. 저자의 동기였던 ‘그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조직을 떠나는 대신 조직에 남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수모에 가까운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킨 그 사람에게 빚진 마음으로 저자는 글쓰기에 나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갈라파고스라는 외딴 섬에 사는 새들은 모바일 시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들만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해서 섬 밖의 일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오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전혀 없다.


어제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관련해서 업자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현직 검사들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색어에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 짜리 불기소세트가 떠 있기에 무언가 봤더니, 김영란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세 명 중에 밤 11시까지 넘어 술자리에 있던 한 명만 불구속 기소하고(그것도 형량은 무거운 뇌물죄를 피했다) 나머지는 불기소 처리를 한 것이다. 저자 이연주 변호사는 책에서 버마 전선에서 일본군을 파멸에 몰아넣었던 무다구찌 렌야를 소환한다. 그가 한국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비밀독립군이라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찰이 자기 조직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전직 대통령에는 포괄뇌물죄를 적용하는 기개를 선보였던 그들이 내부 범죄에 대해서는 케이크 자르는 플라스틱 칼만도 못한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늘 당장 공수처 개정법안이 통과될 예정인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부고발자가 바라본 조직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그동안 간간히 언론을 통해 접해온 검찰 내부의 문제는 심각했다. 그런데 내부에 있는 이들은 그런 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모양이다. 소수의 검사들만이 이래서는 시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올바른 소리를 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2012년 검란 이래, 내부 자정과 개혁을 주장해 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주장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것조차 어느 검사의 실수로 소나기 피하자는 식의 위장이었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이연주 변호사의 주장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미래의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준사법조직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검찰 개혁을 위한 더딘 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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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10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찰개혁이 사실 우리의 삶과 얼마나 상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검찰의 폭주는 군사 쿠테타에 비견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의 견제와 감시를 무력화하겠다는 그 기개를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두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검찰 아닙니까. 누구든 잡아 넣을 수 있죠. 삼성 이재용과 자신들만 빼고요.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를테니 이번에는 꼭 검찰개혁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더딘 걸음에 속 터지지만 ㅠㅠㅠㅠ 저도 레삭매냐님과 같이 박수를 보냅니다.
리뷰에도 박수를 보내고요! 짝짝 짝짝짝!

레삭매냐 2020-12-10 16:57   좋아요 0 | URL
저의 후진 리뷰보다 댓글이 더 반짝반짝
하는 것 같습니다.

책은 진짜 금세 다 읽고 나서, 무언가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다고 근 열흘
을 버벅거리다가 쓴 것이... 그렇네요.

왠지 검찰개혁에 나서는 출사표 같은
덧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0-12-10 17:2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리뷰 읽고 너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속마음토크 해버렸네요@@
저, 아무데도 안 갑니다^^

서니데이 2020-12-10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레삭매냐 2020-12-10 21: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여느 때처럼 또 읽고 쓰고 그러다
보니 한 해가 다 지나가 버렸네요.

램프의 요정이 결산 하나는 진짜
끝장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