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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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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읽다만 솔 벨로 작가들의 책들이 제법 된다. 분량이 상당해서 도전에 나섰다가 나가 떨어졌다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오늘을 잡아라>도 수배해 두었는데 미처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새단장을 하고 나와서 또 사들였다. 책쟁이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깊어가는 10월에 <오늘을 잡아라>를 읽는데 성공했다.
채 200쪽이 되지 않은 단편 소설 분량의 <오늘을 잡아라>는 왠지 연극 대본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올리면 딱이지 않을까.
1956년에 발표된 솔 벨로의 네 번째 작품인 <오늘을 잡아라>의 주인공은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깡그리 실패한 44세의 남자 토미 윌헬름이다. 부유한 의사 아버지 애들러 씨를 둔 유펜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할리우드에 데뷔시켜 주겠다던 협잡꾼 모리스 베니스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배우로 성공하겠다며, 성까지 애들러에서 윌헬름으로 바꾸며 7년이나 할리우드 허송세월했지만 토미는 배우가 되는데 결국 실패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별 볼 일 없는 그런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그가 만난 재앙은 아내 마거릿과의 결혼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멋쟁이 아가씨 마거릿에게 진심이었지만, 결혼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 참, 그전에 금발의 호남자 그리고 약간 곰처럼 생긴 토미 윌헬름의 결정적 약점에 대해 말해야지 싶다.
자신도 고백하듯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어쩐지 오랜 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었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배우 데뷔부터 그랬다. 숱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토미는 포주에 가까운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거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토미의 할리우드행은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고 그건 배우에 올인해서 성공하지 않는 이상,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의미했다. 배우로도 그리고 대학 학위를 가진 여동생 캐서린이나 부모님과 다른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토미의 삶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결국 사랑하는 두 아들과 댕댕이 시저스마저 마거릿에게 빼앗긴 채, 글로리아나 호텔에 거주하는 신세가 된 토미 윌헬름. 그나마 다니던 로잭스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사장 사위에게 밀려나 버렸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때려 치우는 바람에 현재 실직 상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꼴이 없는 게 바로 토미의 현재 상태였다.
그에게 닥친 마지막 재앙은 바로 탬킨 박사라는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아버지 애들러 박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토미는 가진 돈 700달러를 털어 넣어 탬킨 박사의 말을 듣고는 선물시장에서 라드에 투자한다. 현재 암담한 미래에 절망한 청춘들이 코인에 투자를 했다면, 66년 전에는 선물시장이 그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손 쓸 수 없는 과거,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이 상존하는 미래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대는 어느 세대에나 준비되어 있었던 걸까.
누가 봐도 개똥철학자 사기꾼 그 이상도 아닌 탬킨 박사는 현재 절망에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토미에게 썩은 동앗줄을 던진다. 뱀의 혓바닥을 능가하는 탬킨의 요사스러운 언설에 우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얼치기 주인공 토미는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몰랐단 말인가? 자신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누가 자신을 호의만으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토미가 할리우드행을 결심하던 이십대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도 이런 잘못된 결정을 잇달아 내렸다는 점에서, 결국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솔 벨로 작가는 확인사살한다.
토미가 문제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애들러 박사가 애써 아들의 곤란한 상황을 외면하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토미가 자신의 탬킨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다는 점도 그리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 토미가 아버지의 불퉁스러운 태도에 질린 나머지 폭주하다가 결국 싸움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부자 간의 갈등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의 변주라는 점이 좀 아쉬웠다. 유사 이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언제 평화가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잘 따르는 아들이 있었다는 말도 못 들어본 것 같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던 탬킨이 왜 자신의 돈도 아닌 토미의 돈으로 라드 선물투자에 나서 물주에게 일확천금을 안겨 주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볼 만하다. 선물시장에서 라드 값이 떨어지고, 호밀 값이 오를 때 왜 손절하자는 토미의 의견을 탬킨은 따르지 않았을까? 바닥을 치는 주식이 언젠가 오를 거라는 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듣지 않았던가? 손절의 기회가 오거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경우를 과연 탬킨은 몰랐을까? 아니면 좀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결국 망한 게 아닌지. 믿었던 탬킨이 메인으로 튀었다는 말에 토미는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지푸라기라도 같은 심정으로 토미 윌헬름이 매달렸던 탬킨은 메피스토펠레스의 현현이다. 자고로 타인을 현혹시켜 사적 이익을 편취하는 인간 군상은 인생에 있어, 그리고 문학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그런 디폴트 같은 존재였다. 하필이면 나락으로 추락하던 순간의 토미에게 현란한 언변과 기발한 아디이어를 구사하는 탬킨의 출현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트리거가 준비되었으니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토미는 이번에도 역시나 심사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생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터뜨린다. 인생의 막장에 선 남자의 깊은 성찰과 카타르시스 교차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 과연 토미 윌헬름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도시쥐 토미는 계속해서 각박하기 짝이 없고, 아내 마거릿을 포함한 모두가 자신을 벗겨 먹으려고만 하는 뉴욕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과연 중년의 도시쥐 토미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자식들을 볼모로 삼은 아내가 요구하는 돈을 시골에서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넣고는 했다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서 돈을 벌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토미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돈은 모두 늙은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이 쓸 돈이 없다는 자각은 또 어떤가. 그중에는 자신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 닥터 애들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에 아들 토미에게 더 이상의 돈을 쓸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들이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고, 주관이 뚜렷한 아들 토미가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거라는 토미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입 부분에 나오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냐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명제를 나의 책사랑에 대입해 보면, 과연 나는 책을 사랑하여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관적인 입장에 선 내가 그것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 읽는 책에, 그 책에 나오는 문장과 서사 그리고 구조에 담긴 것들에 집중할 따름이다. 과연 토미 윌헬름이 그때그때의 순간마다 사랑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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