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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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피드인지 스레드에서 작년에 반응이 좋았다는 평을 듣고 캐런 제닝스 작가의 <>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작년 말에 수원 리브로 서점에 들렀다가 실물책을 영접하고 거의 살 뻔(?)하는 그런 순간도 맞이했었다. 하지만, 왠지 오기가 발동해서 구매 대신 대출하기로 마음 먹고, 살며시 책을 다시 서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난주에 의왕 책마루도서관 원정에서 드디어 빌려다 읽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대출해서 보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 <>의 주인공은 현재 등대지기로 일하는 중인 칠십대 노인으로 오랫동안 빵살이를 한 새뮤얼이다. 이 십몇년을 홀로 섬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상이 부서지는 걸 혐오한다. 그가 사는 섬에는 시신이 자주 떠내려 오는 모양이다. 어느 날 난민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시신을 수습하면서부터 새뮤얼의 일상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는 살아난다.

 

왠지 소설 <>은 현재의 이야기보다 새뮤얼의 과거에 대 중점을 두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그의 과거는 어떤가 살펴보자. 캐런 제닝스 작가는 정확하게 어느 나라라는 점이나 공간을 밝히지 않는다.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새뮤얼의 땅에 침입해서, 그들을 내쫓고 땅을 차지해 버린다. 어쩔 수 없이 새뮤얼의 가족은 도시로 이주해서 구걸로 생활을 영위한다. 새뮤얼의 아버지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총에 맞아, 불구자가 되었다고 했던가. 오랜 감옥생활을 했다는 새뮤얼 역시 그렇다면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 받은 후예란 말인가.

 

이야기는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현재에서 섬에 홀로 살면서 자신만의 작은 왕국의 건설한 새뮤얼은 낯선 타자의 등장이 불편하기만 하다. 자신이 제공한 음식을 게걸스레 먹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도 한 때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자는 새뮤얼의 일상을 끊임 없이 파괴하고, 또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존재다. 당연히 그런 새뮤얼의 태도는 나중에 망상과 피해의식을 만들게 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소설의 서사는 새뮤얼의 더 깊은 과거로 또 그 과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그의 조국은 백인 식민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독재자의 등장으로 자유를 억압받고, 식민지 지배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에 독재자에 대한 시민들이 저항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던가. 친구들 사이에서 댄디한 멋쟁이 아메리칸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새뮤얼은 우연한 기회에 메리아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새뮤얼의 애인 아니 동지가 되는 메리아는 폭력을 수반한 혁명으로 독재를 끝장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인민당 소속이다. 새뮤얼 역시 운명적으로 메리아들과 합류하게 되고, 독재 투쟁의 선봉에 거의 떠밀리듯 그렇게 서게 된다.

 

아니 인류 역사는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되는 건가.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위대한 문학의 힘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공유하게 되는 정신세계의 패턴은 동서를 떠나, 공유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하는 사유에 도달하게 된다.

 

새뮤얼은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시위대에 합류해서, 독재를 상징하는 동상을 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상에서 결국 떨어져 버렸고, 그들에게 총탄 세례를 날린 군인을 죽이려고 했다가 체포되어 장기형을 살게 된 것이다. 얼떨결에 그렇게 민주화 투사가 된 것인가. “왕궁이라 불리는 교도소에서 그는 고문을 피하고 살기 위해 자신의 동지들과 자식 레시를 낳은 메리아에 대한 정보를 죄책감 없이 불어 버렸다. 어쩌면 훗날 섬에서 보여주는 새뮤얼의 셀프-고립은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긴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지만, 자신을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대는 바뀌었고, 자신의 여동생 메리 마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신세가 된 새뮤얼. 레시는 열병으로 어려서 죽었고, 메리아에 대한 소식은 들은 지가 오래다. 그리고 부두가에서 만난 메리아의 처지는 참 그랬다. 청소부 일자리 제안도 받지만, 그가 전과자라는 이유로 철회된다. 새뮤얼의 삶은 실패의 연대기에 다름 아니다.

 

육지에서의 파란만장한 삶에 비하면, 섬에서 난민 아저씨와 벌이는 긴장관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억측에서 출발한 새뮤얼의 망상은 결국 비극적 엔딩을 예고한다.

 

새뮤얼은 섬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고독한 영혼이었다. 그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그런 부적응자였다. 그래서 섬은 고독한 영혼에게 완벽한 피난처가 아니었을까. 다만, 그가 좀 더 타자들과 같이 지낸 경험이 있었다면 엔딩인 확연하게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은 중반까지는 나름 괜찮게 진행이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력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이러다가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신간에 밀려 완독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막판 스퍼트로 마저 읽을 수가 있었다. 좀 더 실제 역사를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르포가 아닌 문학이 실제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그런 의무는 없지만 말이지.

 

어쨌든 다 읽었고, 비슷한 경로로 알게 된 김숨 작가의 <오키나와 스파이>도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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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1-19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내용으로 봐서는 흥미로운데 끝까지 유지되는 소설적 힘이 부족한가 봅니다.
저도 이런 책들이 많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 가곤 합니다.
어쩌면 저의 집중력 부족이 문제인 것도 같아요 ㅎㅎ

레삭매냐 2025-01-20 08:03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참 흥미로웠는데...
뒷심 부족이랄까요.

물론 저의 집중력 결핍도
한몫했구요. 그래도 다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읽다만 책들이 너무
많아서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