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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14/pimg_7234051034569694.jpg)
책 찾아 삼만리 아니 몇 킬로미터에 나섰다. 요즘 한창 읽는 재미에 빠진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구하기 위해 인접한 의왕 도서관으로 원정을 떠났다. 떠난 김에 캐런 제닝스의 <섬>도 같이 빌렸다. 정말 오랜 만에 들른 도서관은 아늑하고 뭐 좋았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앉아서 책도 읽고 싶었다. 생각과 달리 분주한 마음에 책만 빌려서 냉큼 튀어 나왔지만.
<얼음 속의 여인>에서도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니 이번 편은 지금까지 읽은 TCBC 시리즈 가운데 스케일 면에서 가장 압도적이지 않나 싶다. 1139년 11월 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스터 시가 모드 황후파에 선 글로스터 일당에게 약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에르미나와 이브 위고냉 남매가 난중에 실종된다. 이들을 찾아 보호해야 하는 미션이 이번 <얼음 속의 여인>의 주된 줄거리다.
내전의 상흔은 가혹했다. 황후 편에 선 악당들은 우스터 일대를 약탈하고, 무고한 이들을 살해했다. 이런 와중에 위고냉 남매가 과연 살아 있을지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해결사 캐드펠 수사가 나설 차례다. 아니 원래 그는 브롬필드 수도원에 심각하게 부상당한 엘리어스 수도사를 간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했었나.
황후파 가운데 한 명인 로랑스 당제가 위고냉 남매의 외숙이다. 앙주 출신의 기사는 자신이 직접 남매를 찾겠다고 하지만, 슈롭셔의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는 그걸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내전 상태가 아닌가. 상대방의 유력한 기사 한 명을 빼앗는 게 아주 중요한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당제가 스티븐 국왕의 영토에서 밀정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이런 복잡한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서사는 출발한다.
우스터와 클레 산지를 중심으로 한 불한당들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엘리어스 수도사를 긴급처치한 캐드펠은 다음 수순으로 위고냉 남매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손쉽게 13세 소년 이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누이로 보이는 어린 여성이 꽁꽁 언 강의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장면을 발견한다. 일단 이브를 브롬필드 수도원에 맡긴 캐드펠은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의 도움을 받아, 얼음 속에 갇힌 시신을 수도원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이브는 시신이 자신의 누이인 에르미나가 아닌 우스터 탈출 당시 동행했던 힐라리아 수녀라는 사실을 밝힌다.
힐라리아 수녀를 죽인 진범을 밝히는 일과 행방을 알 수 없는 에르미나를 찾는 두 가지 미션 수행이 진행된다. 한편, 힐라리아 수녀의 죽음을 알게 된 엘리어스 수사가 수도원을 뛰쳐 나가고, 그를 간호하던 이브마저 그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동생 이브를 찾아 수도원에 온 에르미나에게 동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캐드펠 수사.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브는 클레 산지의 은거지에 숨은 왼손잡이 알랭 일당에게 인질이 되어 끌려간다. 캐드펠은 에르미나와 함께 있던 삼림감독원의 아들 로버트가 사실은 로랑스 당제의 가신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정체는 알면 알수록, 캐드펠로 하여금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거의 일본 자객을 뺨치는 침투력과 용맹을 가진 올리비에는 동방 출신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시리아 안티오키아 출신 과부이고, 그의 부친은 잉글랜드 출신의 십자군 전사였다고 한다. 기독교도로 개종해서 예루살렘과 세인트시메온을 떠나 앙주를 거쳐 현재 우스터까지 온 것이다. 역시 영국 소설에서도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는 정말 기가 막힌 그런 게 아니던가.
천하의 악당 왼손잡이 알랭은 귀족 꼬마 이브가 자신들이 그동안 약탈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중하게 이브를 감시하라고 수하들에게 명령한다. 우리의 꾀바른 이브는 가지고 있던 브로치를 이용해서, 포도주가 담긴 자루에 구멍을 내서 눈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어라 이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부스러기 에피소드랑 비슷하잖아.
휴 베링어는 캐드펠 수사의 탐문으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악당 외손잡이 알랭들을 처치하기 위해 조세 드 디낭과 연합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치러 나선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들을 공격하면, 인질로 잡은 이브를 없애겠다는 알랭의 협박에 휴과 조세 연합군은 하는 수 없이 전력상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들의 노력은 무산되는 걸까? 아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가 등장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절벽 방향으로 잠입시도에 성공하고 이브 구출에 성공한다.
그동안 다른 TCBC 시리즈들이 살인사건과 관련된 치밀한 두뇌게임이었다면, 이번 <얼음 속의 여인>은 미스터리와 더불어 12세기 잉글랜드 내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그리고 내전으로 황폐화된 우스터 지역에서 벌어진 약탈집단에 대한 전투에 이르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내용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쌓였던 캐드펠 수사의 동방에서의 행적에 대한 내용도 아주 잠깐 소개가 된다. 무엇보다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의 등장은 휴 베링어에 버금가는 캐드펠 수사의 조력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엔딩에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아주 버릴 게 하나 없는 그런 구성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힐라리아 수녀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캐드펠 수사의 노력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선의를 가지고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그 시대 신앙인의 모범이 아닌가. 무고하게 희생당한 힐라리아 수녀를 두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답을 구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어떤 게 과연 신의 뜻인가? 신이 창조한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지.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타인들을 대한다면, 힐라리아 수녀 같이 억울한 죽음은 없지 않을까. 더 나아가, 미래 권력을 두고 치킨 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잉글랜드 내전에서도 대화로 해결가능한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TCBC 시리즈는 읽을수록 팬이 되어 간다. 앞으로 3권만 더 읽으면 2차분까지 모두 읽게 된다. 나머지 시리즈들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수급을 좀 빨리 해줬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