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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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빅토르 바통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아마 바통 씨가 꿈꾸던 미래의 부유한 모습이 아닐까.)


빅토르 바통은 몽상가를 꿈꾸지만 그의 실체는 망상가에 가깝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왼손에 영구적 장애를 입은 바통 씨는 오늘도 거리에서 친구를 찾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롭다. 아니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친구가 있다면, 바통 씨가 새로운 친구를 찾을 리가 없겠지. 그는 왜 친구가 없을까.

 

세계대전이 끝나고, 살기가 팍팍한 프랑스 파리에서 상이 용사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1924년 프랑스 출신 에마뉘엘 보브는 자신의 첫 소설 <나의 친구들>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바통 씨는 비롯 가난뱅이지만, 겸손하고 예의를 차리는 그런 친구다. 문제는 가끔 망상에 젖어 선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의 성정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 오지만 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유 가게 아가씨에게 고백공격을 했다가 보기 좋게 차였다. 아무래도 이 친구, 금사빠인 것 같다. 모든 정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거라구?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면서도, 종종 선을 넘는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리고 상대방의 선의를 자신이 결정하고, 관계를 시작해 버린다. 가만 살펴 보니, 인간 관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특히나 나이가 들어서 그러니까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보고 난 뒤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

 

그렇다면 애타게 자신의 속을 드러낼 만한 친구를 찾는 바통 씨의 문제는 무엇일까? 친국에 대한 격언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말할 필요는 없겠지. 바통 씨의 감정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궁핍한 사정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상대방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 그들이 바통 씨에게 원하는 건, 50프랑을 빌리거나 혹은 하룻밤의 즐거움 정도다. 아니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거리에서 그가 만난 이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무언가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한다. 이 소심한 남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앙리 비야르 같이 정체가 수상한 사람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질 않나. 아까 내가 뭐랬어, 바통 씨는 금사빠라고. , 이 사람 좀 이상한데 그래.

 

자신에게 양복을 살 돈과 일자리를 제공한 라카즈 씨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기차역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박애정신의 발로로 라카즈 씨는 바통 씨에게 돈도 주고 또 일자리도 주었다. 아니 그랬더니만, 사리판단하지 못하는 바통 씨는 그의 어린 딸에게 금사빠 정신을 발동해서 추파를 던졌다가 그만 낭패를 당한다. 아니 도대체 어쩌자구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아 너무 감정이 이입된 것 같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리고 평소의 바통 씨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놀랄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단 말인가. 자신을 가난뱅이 상태에서 빼낼 구조선을 그렇게 걷어찼단 말이지.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에마뉘엘 보브 작가는 디테일의 강자답게 아주 세세한 부분을 포착해낸다. 타인의 손톱 정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아 당시 파리 사람들은 그런 점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아울러 어느 개인의 입성에 대해서도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브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바통 씨에게 그런 면면을 투영해서, 목욕재개하고 라카즈 씨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안개 낀 파리 거리가 마치 사진 현상을 하는 밝아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 착오로 일을 망쳐 버리는 바통 씨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관계를 진도를 빼거나, 좀 쉽게 싫증내는 것도 그렇다. 인간관계란, 전력질주하는 그런 단거리 경주가 아닌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뛰는 장거리 마라톤에 가까운 게 아닌가. 아주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인연을 이어가는 기술을 바통 씨는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그런 것들이 누가 알려준다고 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인물로 낙인 찍힌 바통 씨는 결국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몽루주의 아파트에서 퇴거명령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쫓아낸 걸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망상에 젖는 바통 씨.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이들이, 그런 자신을 기억할 리가 있을까. 엔딩까지 씁쓸하지만, 바통 씨는 그래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명징한 해석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나의 친구들>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친구 찾기 나선 바통 씨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다. 무슨 거창한 시대정신에 대해 토론할 그런 친구가 아닌, 어제 먹은 짬뽕 맛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주변에 있는가라고 바통 씨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관계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또 그렇게 상처도 받고 반대로 위로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 아니던가. 외로운 금사빠 바통 씨에게 한 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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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6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것 같습니다.
21세기 뉴욕 타임즈 선정 책에 들어 있는 것 같은데요.

레삭매냐 2024-11-26 13:2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저는 재밌게 읽었답니다.

그냥 바통 씨가 불쌍하더라구요.
전쟁에서 영구 장애를 얻게 된
불쌍한 상이용사의 절절한 외
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