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의 나날들 -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 이수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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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간 전무후무한 그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렀다. 아니 그전에 이미 전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과 달리 엄청난 속도의 파급력을 자랑하는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모든 이들이 공포에 떨지 않았던가. 우리 삶의 양태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문제는 앞으로 더 쎈 녀석들이 등장할 거라는 아포칼립스적인 예언이다.

 

어쨌든 우리는 바이러스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았고, 하루의 일상을 여느 때처럼 보내고 있다. 지난 3년이란 시간이 공포에 떨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무감각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 것도 아닌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그 시절을 글로 풀어낸 안드레스 솔라노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래도 같은 사회에 속해 있다 보면 대상을 객관화시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방인의 시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언론이나 미디어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마 누구나 처음에 코로나가 이렇게 사회에 치명적인 재앙이 될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데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절에 나도 생각한 거였는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끌 게 아니라 한 이주 정도 모든 것을 스톱시키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었다. 사실 기나긴 격리와 발병 그리고 세컨드 웨이브라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다면 전면적인 봉쇄가 해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든 건 지나간 다음의 후회와 미련 일지도 모르겠다.

 

몇몇 슈퍼 전파자들의 이기적이고 상식에 벗어난 행동으로 결국 코로나는 지역에 국한된 질병이 아닌 전국적인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국가는 거의 전쟁 상태에 육박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섰다. 개발독재 시대 이래 계속되어온 국가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서인지 코로나 발발 초기, 동선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동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나중에 엄청난 수의 확진자들이 발생하면서 그런 초동 대응이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초기에 대구를 중심으로 신천지 교인들 사이에서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코로나 초기, 해외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그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코로나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 중국에 대해서. 그나마 솔라노 작가는 우리에게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노라고 증언한다.

 

이단 사이비들이 유난히 한국에 많다는 점에 대해서도 작가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자신이 스스로 영생불사의 신이라고 주장하는 자칭 교주들이 자그마치 50여명 정도 된다고 했던가. 그런 이들을 모아서 <나는 예수다>라는 진짜 신을 가리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개최해야 한다는 유머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나는 신이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기억에서 소환되기도 했다. 도저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 역시나 부인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닌가.

 

솔라노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코로나 시절은 어땠나 하고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 시기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역시 혼자서 즐길 수 있었던 독서가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시간 보내기에 책읽기만한 게 있었던가. 물론 나도 결국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버티다가 지난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걸렸는데, 열이 나거나 많이 아팠던 아니고 더운데 계속해서 땀이 줄줄 나서 방안에 갇힌 상태로 격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 맞은 두 차례의 백신 접종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이방인답게 코로나의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외국인에게 손가락질하고 싶은 혐오의 감정들 그리고 책임전가 같은 다수의 비이성적인 태도들에 대해서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아마 우리가 그네들의 나라에 가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랬을 때, 나는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그럼 혐오 섞인 시선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맞서 싸우기보다 내부로 움츠러들지 않았을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라고 조용히 주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던 코로나는 이제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다. 아직 치료제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최악의 위기는 어느 진정된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앞으로 등장할 더 쎈 녀석들에 대한 경고다. 앞으로 남은 생에 그런 녀석과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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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31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뉴스에서, 앞으로 격리기간이 5일로 단축되고, 그리고 조금 더 있으면 격리기간이 없어질 것 같더라구요.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확진자가 되면서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년간 힘든 시기가 길었는데, 이제는 코로나19의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01 10:56   좋아요 1 | URL
앞으로 그럴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마 봄이 와서 더 사람들이 나
들이에 나서게 되면서 격리 해제
혹은 마스크 쓰기도 완화되지 않
을까 싶습니다.

오늘 날이 좋네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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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편혜영 작가의 <아오이가든>처럼 읽으면서 고전(苦戰)한 책도 드문 것 같다. 2005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녀의 첫 소설집으로 출간된 9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린 <아오이가든>에는 그야말로 하드고어(hardgore)적인 요소들이 펄펄 끓어 넘친다.

 

책을 읽으면서 <아오이가든>의 이미지들을 손꼽아 보았다. 시체, , 구더기 그리고 비강(鼻腔:코안)을 자극하는 역겨운 후각들이 떠올랐다. 단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건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였다. 하지만 화자인 의 충동에 의한 살인 그리고 거동을 허지 못한 채 누워 있는 그(아버지?) 앞에서 금붕어를 발로 밟아 터뜨려 죽이는 등의 일들이 마치 일상의 일들처럼 전개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머지 8개의 이야기들을 읽는데 장장 한 달이 걸렸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편혜영 작가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낯설고,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괴물이 산다는 <저수지> 근처의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채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자식들의 이야기에서,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가에 대해 기껏 생각해 보았지만 나의 깜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타이틀 제목으로 뽑힌 <아오이가든>에서는 역병이 돌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의 극에 달한 모호한 공간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와 함께 개구리가 내리고, 불가사의한 빨간 스카프를 두른 이가 횡행하는 장소, 그리고 아오이가든. 비로소 코를 찌르는 역한 후각의 자극은 구체적 이미지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그나마 양호한 내용들이 <만약,><마술 피리>였다. <문득,>에서는 어김없이 시체의 발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으레 시체와 짝을 이루는 스릴은 어느 사이엔가 실종되어 버리고 대신 생뚱맞아 보이는 유부녀가 마라톤을 하다가 실종된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라톤 사나이는 자신의 아내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남기고 간 고양이 제니퍼는 사냥한 쥐들을 사방에 숨겨두고, 그 결과 집안은 온통 구더기로 들끓는다. 나중에 가선, 그녀도 구더기 속으로 파묻힌다. 사람이 구더기인지, 아니면 구더기가 사람이 되어 버리는건지 알 수가 없다.

 

독일 어느 지방의 전설이라는 <하멜린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를 떠올리는 동명의 단편에서, 작가는 아크릴로 만든 상자에 갇혀 단백질이 결핍된 사료를 먹으며 죽을 운명에 처한 쥐 루루와 화자의 동생 미아의 운명을 동조시킨다. 핏빛 구덩이라는 시각적이면서도 후각적인 이미지화된 동질성을 강조하면서도, 철저하게 분리된 별개의 운명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소설집의 말미에 이광호 선생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책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해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단편 소설들을 꾸역꾸역 읽어대면서, 개별 단서들을 통해 특정 시간과 공간 배경들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독자의 더 이상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하고 싶었는지 그 역시 불가능했다. 어쨌든 월컴 투 하드고어 원더랜드라는 인사말로 편혜영 작가의 체제 전복적인 상상력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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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3-29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편혜영 작가의 책은 예전에 한 권 읽고 맘이 불편해서 이제 안녕-_- 했던 기억이.. @_@;;;;

레삭매냐 2023-03-29 13:46   좋아요 1 | URL
아마 이 때 저희 독서모임에서
이 책하고 백민석 작가의 <목화
밭 엽기전>을 함께 읽었던 것
으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근데도 편혜영 작가의 경우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홀> 그리
고 <재와 빨강> 계속 읽은 기억
이...

stella.K 2023-03-29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욕하면서 읽는 작가군요.
편혜영 작가 이런 글을 쓰는 줄 몰랐습니다.
어디선가 글 잘 쓴다고 창찬하던가 같던데
그말 한마디에 책 샀다가 낭패 볼 수도 있겠어요.

레삭매냐 2023-03-30 08:15   좋아요 1 | URL
출발점은 아주 쎘었는데,
그 뒤로는 좀 순화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스타일
은 남아 있지만요.

낭패 ㅋㅋㅋ 이해가 갑니다.

빨강앙마 2023-03-3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혜영 작가 글을 저도 읽은듯도 하고.. 나쁘지 않아서 딴 책을 산거 같기도 하고..ㅡㅡ^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저도 욕하면서 함 읽어볼께요..ㅋ

레삭매냐 2023-04-01 10:55   좋아요 0 | URL
전진할수록 갠춘해 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작가라고 생각합
니다. 진화한다고 해야 할까요...

욕하면서 읽기 ㅋㅋ 공감합니다.

자목련 2023-03-31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뭔가 의미심장하네요.

레삭매냐 2023-04-01 10:55   좋아요 0 | URL
예전 표지보다 훨씬
더 좋은 느낌입니다.

표지의 이미지는 개구
리인가요...
 
뉴욕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 뉴요커 만화가의 맨해튼 노트
라즈 채스트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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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을 갔을 적에 <스트랜드> 서점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하긴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책에 미치지 않았을 때니까. 지금이라면 가장 먼저 뉴욕에 갔을 때, 방문하고 싶은 곳이 바로 <스트랜드>.

 

이달초에 만난 라즈 채스트 작가의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와는 정말 결이 다른 작품이다. 전자는 절판된 책이라, 부러 구해서 읽었고(사실 도서관에도 없었다) 후자는 지난 주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었다. 전자가 노년과 죽음을 맞이하는 작가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라면 브루클린 출신인 그야말로 뉴욕 토박이가 들려주는 시티에 대한 이야기는 무언가 기대감을 자아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좀 허무했다. 작가는 값비싼 뉴욕의 리빙 코스트와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교외로 튀었다. 그래도 시티에서의 다양하고 안락한 생활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시티를 들락거린 모양이다. 하긴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요커>에 만화를 연재하는 양반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책은 순전히 시티 내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딸을 위해 만든 시티 안내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가 뉴욕을 방문할 적에는 뮤지엄에 미쳐 살 때여서 그런지 다른 부분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뮤지엄 부분은 왜 이렇게 흥미가 갔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는 공짜였었는데 2008년부터 돈을 받기 시작했다고. 아직 가보지 못한 대영박물관 입장료가 여전히 무료라고 하는데, 또 문화재청장을 지내신 유홍준 선생은 박물관에서 돈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무료 입장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메트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갑옷 이야기를 했던가. 나는 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난 거대한 흰수염고래(?)의 골조가 가장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나의 최애는 구겐하임이었고. 센트럴파크를 타고 올라가면서, 저 멀리서 희부연 건물의 모양새가 보였을 때 나의 염통은 마구 뛰었더랬지. 마치 처음 파리에 가서 아이펠 타워를 보았을 때처럼 말이지.

 

그리고 이스트사이트와 웨스트사이드의 경계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물론 보고 나서는 다 잊어 버렸지만. 가족들과 함께 뉴욕을 찾았을 때, 나혼자만 <미스 사이공>을 보고 나서 <오페라의 유령>을 본 나머지 가족들과 만나기 위해 스트릿과 애버뉴를 누비던 저녁 거리의 시간이 생각났다. 내가 뉴욕에서 옐로캡을 타본 적이 있었던가? 서브웨이 타기도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비쌌고. 그리고 보니 이제 우리 물가도 많이 올라서 거의 서구 수준의 대중교통수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살이와 관광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곳에 정주하는 것과 잠시 머무르는 관광 혹은 여행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리고 보니 지금은 사라져 버린 쌍둥이타워에 가서 찍는 사진도 생각이 난다. 그 때만 해도 보안검색이 그렇게 빡세지 않았었는데, 9-11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나도 꾸역꾸역 올라가본(?) 자유의 여신상에 정작 토박이 라즈 채스트 여사는 가보지 않았다고. 놀랍군 그래.

 

또 하나 라즈 채스트가 소개한 곳 중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CT). 1896년 철도왕 밴더빌트에 의해 만들어진 그랜드 센트럴도 무조건 새로운 걸로 바꾸려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지만, 소수의 지각 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고. 뉴욕에 가려면 보통 버스와 기차가 이용해야 하는데 주로 버스를 타고 갔지 앰트랙은 타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버스가 기차에 비해 훨씬 싸니까.

 

기억을 되살리며 쓰다 보니 뉴욕 공공도서관도 빼놓을 수가 없군 그래. 아무런 비용 없이 장시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했던가. 언제고 다시 가게 되면 가죽으로 장정된 책갈피 하나 정도는 사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뜨내기 뉴욕 여행자다 보니 다른 아쉬운 점들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른 곳은 몰라도 <스트랜드>와 뉴욕 공공도서관에는 가보고 싶은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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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시그널
브리스 포르톨라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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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을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어제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었다는 점이 중요할 뿐.

 

<노 시그널>에는 글보다 사진이 더 많다. 두께와 무게가 상당하다. 가방에 담아서 차까지 운반하는데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안이 왔는지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데, 글자로 작다. 에잇!

 

전 세계의 오지에서 사는 10명의 사람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이라는 방식의 이미는 예나 지금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떤 컷들은 만 마디의 말이다 글보다도 더 위력적일 수 있다. 사진이 품은 즉시성 그리고 리얼리티의 힘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직접 본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작위성 역시 피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연출 말이다. 연출된 사진이 마냥 피사체를 따라 다니며,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는 훨씬 덜 품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사진작가들이 연출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또 서설이 언제나처럼 길었다. <노 시그널>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주제로 잡은 자연주의 혹은 생태주의보다 작가가 인터뷰한 대상의 국적이 더 궁금해졌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대부분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말을 너무 사랑해서 아르헨티나에서 여성 가우초로 활동하는 스카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모국어가 영어란 말씀이지. 몽골에서 반야생생활을 하며 순록을 치는 자야도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일단 작가는 인터뷰 대상자들과 영어라는 매개로 대화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아 그리고 보니 작가는 프랑스 사람이었네.

 

브리스 포르톨라노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서 영감을 얻어 5년간의 프로젝트로 세계를 누비며 이 장대한 책을 완성했다. 1초라도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전기와 인터넷,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살라고 한다면 누가 좋다고 할까 싶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세상의 온갖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하니 놀랄 노자다.

 

작가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양태를 구사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 보고 이들처럼 살라고? 사실 그건 가능하지 않다.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시장이나 마트 혹은 편의점에 가서 사는 우리가 자연에서 그런 것들을 얻는다는 건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 종말의 시대가 닥친다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극한의 오지나 혹은 강추위를 무릅쓰고 순록을 치고, 85마리 허스키 개들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아마 우리처럼 보통의 도시적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적어도 이 정도의 서사는 보유하고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언어와 자급자족 다음으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결정들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서의 이러저러한 번잡한 생활에 염증을 낸 이들이 자신이 자유롭게 살 공간을 찾아 나섰다는 점이다.

 

유타에 사는 벤의 경우를 보자. 채소는 자신이 직접 재배해 먹고, 고기는 1년치 사냥을 해서 구한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주로 총으로 사냥을 하다가 지금은 좀 더 사냥 친화적(?)인 활을 사용한다고 했던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인별그램으로 사냥하는 동영상을 자주 보고 있는데, 스포츠 같은 사냥과 달리 벤의 경우에는 목적의식이 뚜렷하다. 일상에서 일용할 고기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냥을 위해 자신의 체력단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산에서 1년 동안 먹을 고기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가장은 오늘도 광활한 산림을 누빈다. 그런 그가 그전에는 비건이었다는 점도 비밀이 아니다.

 

알래스카에서 굴 양식을 하느라 등허리가 쉴 틈이 없다는 제리의 이야기 재밌게 다가온다. 미시건인가 어디서 부동산업을 하다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부동산업을 털고 알래스카에 건너와서 굴 양식업을 시작했다고.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베테랑 업자가 다 되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는 참 이렇게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사는 이들이 많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에세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나 작가가 마냥 자연주의/생태주의 삶에 대한 찬양만 하는 건 아니다.

 

동시에 무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하던 일을 혹은 욕심을 일정 부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삶에 있어서 아주 간단한 진실에 대해서도 알려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좀 더 이야기와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는 지점이 왜 이렇게 와 닿던지. 어제 도서관에 가서 보니, 자리에 앉은 이들 가운데 책을 읽는 이들보다 핸드폰의 액정화면에 집착한 이들이 더 많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어떻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마냥 자유로운 영혼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그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도시가 주는 안락함을 포기할 자신이 없는 거겠지. 그래도 아주 잠깐이라면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건장한 허스키들이 끄는 눈썰매를 타고 오로라를 보는 건 어떨까. 그럴려면 핀란드의 라플란드까지는 가야겠지. 아무래도 무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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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3-28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편리함을 상당히 포기해야 가능한 일인 듯합니다. 그러나 시장과 자본주의에 철저히 붙어 있는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요.

레삭매냐 2023-03-28 09:16   좋아요 1 | URL
자본과 시장에 매달려 있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으로의 복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합니다.
 
핫 라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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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머리가 복잡하고 그럴 적에 찾는 책들이 있다.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 그리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얇고 재밌는 책들. 항상 그렇지만 3월은 너무 힘들다. 결산에 이번에는 회사 이전까지 겹쳐서 더더욱. 게다가 직원까지 회사 그만 둔다고 해서 리쿠르트와 인수인계도 동시에 진행해야 할 판이다.

 

이럴 때, 세풀베다의 책이 제격이지. 항상 리뷰 쓰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따라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다. 리뷰를 쓰지 못한 세풀베다의 책이 세 권이나 된다. 빨리 써야지.

 

리뷰 기록을 살펴보니 대강 이 책은 내가 이번까지 해서 4번 정도 읽은 모양이다. 이런 책이라면 정말 본전치기는 한 셈인가. 그리고 앞으로도 더 읽게 될 것이고.

 

세풀베다의 책들을 읽으면서 평생 가보지 못할 파타고니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도 미국에서 태어나 말이 너무 좋아서 파타고니아? 아니 팜파에 가서 가우초 생활을 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던가. 소설은 칠레 파타고니아 아이센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지난 20년 동안 소도둑과 밀수꾼을 상대한 베테랑 마푸체 인디오 형사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이다. 그는 아버지 칸테라스 장군의 위세를 업고 소도둑질하던 마누엘이라는 놈팡이의 엉덩이를 장총으로 날려 버린다.

 

칠레를 자그마치 18년 동안이나 무법통치한 장군 일당들이 한낱 인디오 형사를 가만 놔둘 리가 있나. 카우카만의 상관은 자신이 아끼는 형사를 정신병원에 넣거나 다른 곳으로 전출 보내야 할 처지에 처했다. 그의 선택은 전자가 아닌 수도 산티아고였다. 번잡한 도시 생활이 싫었지만 카우카만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신병원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쪽팔리게.

 

수도 산티아고는 광활한 파타고니아의 자연을 누비던 카우카만 형상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공기는 텁텁하고, 사람들로 복잡거리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전출된 곳의 동료 형사들도 그를 찰스 브론슨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한 가지 위로라면 첫날 만난 택시 운전사 아니타 레데스마와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이미 수도에 권력자 아들 마누엘의 엉덩짝을 장총으로 날린 형사라는 평판이 널리 퍼진 모양이다.

 

더불어 그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강도도 날로 세진다. , 느와르가 개입하게 되는 건가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고 오판한 칸테라스 장군이 무뢰배를 고용해서 식사 중인 카우카만을 건드린다. 이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마초맨 카우카만 형사는 포크로 건달을 응징한다. 사이다 컷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이야기는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이행 중이던 폰 섹스 산업에 대한 하나의 고찰이다. 폰 섹스에 중독되어 과다 청구된 계산서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군부 독재 시절, 고문하는 장면을 녹음한 권력자의 가학적인 성향으로까지 이어진다. 다시 세풀베다의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당시 군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좌파 인민연합과의 전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잡힌 좌파들은 모두 포로들이었고, 그들에게 가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과 처형 그리고 이어진 실종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이었으니까. 전쟁이라는 말로 모든 게 용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대 권력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개인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한 서사는 결국 칠레의 역사청산 문제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내가 이래서 세풀베다를 좋아한다. 모든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풀베다는 고수답게 이런 재미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지난 어두웠던 역사에 대해 잊지 말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왜 현재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지에 대해 이렇게 간략하면서도 명징하게 다룰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마푸체 출신 인디오 마초 형사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이라는 캐릭터 역시 탁월하다. 양껏 불의를 저지르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깡다구 하나로 맞서는 카우카만이야말로 이런 느와르 장르에 정교하게 맞춤설계된 캐릭터다. 엔딩에서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를 지지하고 지키기 위해 나선 다수의 침묵하는 대중이 등장하는 시퀀스는 감동 그 잡채였다.

 

내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핫 라인>을 읽을 수 있을까. 독서 슬럼프는 무시로 나를 찾아올 것이고, 난 그 때마다 <싱글맨>과 루이스 세풀베다를 찾게 되겠지. 고마워요, 세풀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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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3-27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아니 재작년?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의 작품을 레삭매냐님께서 많이 소개해주셔서 책은 여러 권 구매했지만 핫라인 조금 읽다 만 상태입니다. 독서 슬럼프에 빠지면 그래픽 노블이나 루이스 세풀베다를 읽어야하는 것이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며 파타고니아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레삭매냐 2023-03-27 13:48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저는 세풀베다 전도사
인가요 ㅋㅋㅋ

그렇죠, 우리는 새로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골라 읽는 법이지요.

읽을수록 진국이라는 생각이
그리고 또 새로운 시선이 생겨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파타고니아, 생전에 가볼 수 있
을까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