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4 - 강화에서 고도성장 이후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미즈키 시게루의 <쇼와사>(이 책의 원제)3권까지는 간토 대지진에서 출발해서 한국전쟁 시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권에서는 패전의 충격을 딛고 고도 성장기를 거쳐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나간 시절 이야기를 미즈키 시게루 작가는 그린다.

 

어느 일본 정치인이 말했듯, 이웃 한국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은 일본의 부흥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미군 점령하의 일본의 궁핍과 가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게루 같은 복원병들을 위한 일자리를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어려웠다. 시게루 선생이 잠시 종사했던 그림자연극으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마당에, 만화 따위를 사서 볼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1950년대의 한국전쟁 그리고 1970년대 베트남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도약을 하게 됐다. 그 와중에 도쿄 올림픽도 개최하게 되고 신칸센과 나리타공항 등 신일본은 상징하는 일단의 사건들을 저자는 그대로 중계해준다. 물질적 풍요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1권에서 3권까지 쇼와 전쟁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마지막 권에서는 미즈키 시게루라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양군도 전쟁에 투입되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결국 한쪽 팔까지 잃은 장애용사는 만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만화를 그렸다. 신은 고생하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40세도 훨씬 넘어서 비로소 미즈키 선생은 만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허접한 출판사도 외면하던 작가가 이제는 어시를 무려 7명이나 거느린 대가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궁핍하던 시절에도 생존을 위해 중노동 같은 작업을 했지만 성공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다음에도 선생의 노동은 멈출 수가 없었다.

 

전쟁 말기, 남쪽 나라 토페토로 마을 사람들을 그리워한 미즈키 선생은 옛 전우들과 함께 30년 만에 옛 전장을 다시 찾았다. 아마 나라면 전우가 죽어 나가고, 일상화된 구타 그리고 말라리아로 생사를 오가던 시절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아마 가지 않았을 곳을 저자는 자신만의 아르카디아로 규정하고 그리워한다. 자신의 염원대로 그곳을 방문한 저자의 실천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십여 차례나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고도경제 성장기에 일본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미즈키 선생은 그림으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한 때, 기세를 올리던 일본 학생운동의 종말을 고한 아사마 산장사건과 프랑스 유학생의 식인사건, 괌과 필리핀 정글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서 수십 년간 저항을 계속하던 귀환병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본 검찰의 위력을 만방에 떨친 록히드 사건 등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전권까지 세계사적 흐름의 차원에서 쇼와사를 다뤘자면 마지막 권에서는 보다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시리즈를 생산해낸 요괴들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공상들(사실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등이 줄지어 등장한다.

 

미즈키 시게루가 저술한 <일본 현대사>의 한계는 명백하다. 대동아 성전을 부르짖으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최고의 책임자였던 히로히토 국왕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쟁의 시작도 마지막도 모두 히로히토가 하지 않았던가. 무수한 인명이 희생된 대전쟁의 책임은 마땅히 최고 책임자인 히로히토가 졌어야 했다. 하지만, 연합국 GHQ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의 요구사항인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는 대신, 국체유지라는 허울 아래 히로히토 국왕의 단죄를 면하게 해달라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

 

맥아더 사령부는 군국주의 일본을 뿌리째 개조하기 시작했다. 일단 재벌을 모두 해체해 버렸고, 전범들을 공직에서 모두 추방시켰다. 후자는 나중에 완화되기는 했지만 가미카제 특공이니 일억옥쇄 타령을 해대며 일본 시민들의 목숨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던 전쟁지도자들의 추락은 당시 획기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미군정은 또한 신헌법을 제정해서, 이른바 강요된 민주주의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과 남양군도에서 미쳐 날뛰던 군국주의 일본이 갑자기 평화주의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과히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미즈키 시게루는 전쟁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평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원하는 행복에 대한 질문은 던진다. 전쟁에서 한쪽 팔과 영혼이 털린 이가 평화를 원하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히로히토 국왕의 죽음으로 쇼와 시대가 끝나고, 헤이세이 시대가 열렸다. 마침내 자신의 삶에 계속된 불안 요소였던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이었다. 왠지 홀가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미즈키 선생은 자신의 작품들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마침내 원하던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되었다. 이 괴짜 작가는 육신은 일본에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던 남쪽 나라 숲 사람들과의 인연을 잊지 못한다. 전쟁 중에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남쪽 나라로 날아가 그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70년에 걸친 쇼와 시절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방대한 이야기들을 다루다 보니, 깊이는 좀 부족했을지 몰라도 요괴전문가가 그린 거시사적 접근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6-14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은 일본을, 베트남전쟁은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죠.
남의 나라 전쟁으로 누군가가 성장하는 아이러니가 참 그러네요.

일본인이 쓴 글은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것 같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6-14 20:31   좋아요 1 | URL
전쟁국가 일본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세계대전
으로 열강의 자리에 올랐죠.

미국도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
축했구요.

말씀해 주신 대로 비판적
시선의 견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3-06-15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평양전쟁 최고의 책임자였던 히로히토 국왕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한다는 점을˝
- 김남일 작가 님의 ‘서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글이 나옵니다.
시대에 따라 올바른 생각을 갖는 것과 올바른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가 봅니다.^^

레삭매냐 2023-06-16 10:58   좋아요 1 | URL
나쓰메 소세키 작가도 결국 제국
주의가 넘실거리던 시절의 일본
사람이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식인으로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기란 어렵지 싶습니다.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2 - 중일 전쟁부터 태평양 전쟁 전반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래 전, 야마오카 소하치라는 일본 작가의 <태평양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마 지금도 집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일본 국민작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통해 그가 얼마나 극우성향의 작가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침략군으로 동원된 일본군을 황군으로 부르며 찬양하는 모습에 기가 질려 버렸다.

 

적어도 미즈키 시게루는 그런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아 다행이다. <일본 현대사> 두 번째 권에서는 대미 개전 과정과 개전 초기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전황에 대한 소개가 중심을 이룬다.

 

서방에서는 나치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두 번째 세계대전의 막이 오른다. 그전에 일독이 삼국동맹으로 파시즘 국가들이 세계를 집어 삼키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 정세가 그렇게 급박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주인공 미즈키 시게루의 일상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보면 사회 부적응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으며, 학업이나 일 모두 적응하지 못한다. 신문배달 일을 하지만 그것도 실패다. 왠지 나중에 군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걱정이 될 정도다.

 

거대한 중국을 집어 삼키겠다고 나선 중일전쟁도 무모했지만, 태평양의 패권을 두고 미국과 맞장을 뜨겠다고 나선 주전론자들의 현실인식은 큰 문제였다. 그리고 결국 나라를 패망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19406월 히틀러의 기갑부대가 프랑스를 석권하고 파리마저 점령하면서 동아시아에는 힘의 공백이 발생했다. 일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프랑스령 북부 인도차이나에 진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동아시아 확장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 동결조치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일석유 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군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립정책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잠재적 공업생산력을 일본은 과소평가했던 게 아닐까. 말만 중립이었지 미국은 스스로 민주주의의 병기창을 자처하며, 유럽 대륙에서 히틀러를 가까스로 상대하고 있던 영국에 무기 원조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복잡한 대일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던 개전 전야,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반년이나 1년 정도는 미국과 용감하게 싸울 수 있지만 그 다음은 장담할 수가 없다고 했던 예언이 그대로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당시 일본 내각에서는 원만한 대일교섭으로 개전을 원하지 않았지만,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의 대미 강경노선으로 결국 그를 외무대신에서 사퇴시키기 위해 내각총사퇴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전쟁보다 평화를 우선해야 하는 외무대신이 오히려 전쟁 충돌을 조장하는 장면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19411126일 미국 국무부장관 헐은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중국과 인도차이나 등지에서 조건 없이 철군하고 삼국동맹을 사문화하라는 이른바 헐 노트를 보내고 이에 격분한 일본 군부는 개전을 결정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나구모 주이치가 이끄는 연합함대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분쇄하기 위해 진주만 기습에 나서고, 그렇게 전쟁이 시작됐다.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전쟁을 환영한 이가 있었으니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 선제공격을 당한 마당에 미국내 전쟁반대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개전 초기 진주만 기습 성공으로 기세가 오른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싱가포르)를 필두로 해서, 바타비아와 필리핀, 홍콩 등을 석권한다. 물론 일본군의 대비와 전략 전술도 개전 초기 승승장구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히틀러와 싸우는데 전력을 다하는 바람에 동아시아 식민지 군대는 2선급이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필리핀 전선에서 미군을 격퇴한 혼마 마사하루 중장이 종전 후 바탄 죽음의 행진 사건 때문에 전범으로 교수형 당한 것에 대해 저자는 사령관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포로 수용 문제에 있어 일선 부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현지 사령관이지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일본의 남방 진출이 영국과 네덜란드의 오랜 식민 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대동아 성전>이라는 선전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일부 독립 세력들을 일본이 지원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철저한 프로파간다였을 뿐이다. 서구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낸 일본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본이 남방에서 새로 확보한 영토들은 오로지 자원 수탈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피지배 계급의 반발은 명약관화했다.

 

남양군도 각지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주인공 미즈키 시게루 역시 이미 해군 장교로 선발된 형 소헤이에 이어 소집영장이 떨어졌다. 소헤이는 뉴기니 전선에서 고사포 부대원이었는데, 포로로 잡힌 미군 병사 처우 문제로 훗날 전범으로 처벌받았다고 한다. 군에 들어가면서부터 후임병 시게루의 고난이 시작됐다. 구 일본 제국 군대의 문제점 중의 하나인 일상적 구타가 시게루에게 이루어졌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게루의 대답이 예에~”처럼 늘어진다고 마구 두들겨 패대는 게 일과였다.

 

미즈키 시게루 작가는 팔라우부터 시작해서 웨이크섬, 알류션 제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태평양 전쟁의 거의 모든 전역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잘 나가던 일본이 해전에서는 미드웨이 그리고 육전에서는 과소평가했던 미군에게 과달카날 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면서 역사의 변곡점에 도달했다. 많은 인구가 살고 있던 중국 대륙의 전투에서는 현지조달(이라고 쓰고 약탈이라고 부른다)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솔로몬 제도 같이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서 전투는 중국 전선과 같은 현지조달이 전혀 불가능했다. 도쿄의 대본영에서는 이런 현지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과달카날 비행장 점령에 투입된 미군의 실력에 대해서도 개전 초기 무기력하게 무너진 식민지 부대 전투력 정도로 과소평가한 게 문제였다. 이런 악조건을 이기고 일본군이 과달카날에서 승리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니었을까.

 

원래부터 솔로몬 제도 공략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던 해군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주장대로 2개 사단을 투입해서 비행장 점령에 나섰다면 전황은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치키 지대, 가와구치 병단에 이어 2사단과 38사단을 축차적으로 투입하는 소모전으로는 도저히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펼치는 미군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보급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빈약한 보급과 말라리아 때문에 일본군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가 없었다.

 

시게루는 드디어 팔라우를 거쳐 뉴브리튼의 라바울로 전속된다. 일본 군부는 미드웨이 패전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허위 승전 사실로 호도한다. 심지어 과달카날의 패전도 후방으로의 전진이라는 말로 시민들을 속였다. 이런 상태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걸까. 공업 생산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일본의 생산력을 압도했다. 미해군의 활약으로 남방에서 자원 입수가 어려워진 일본이 남양군도에서 입은 손실들을 점점 만회할 수 없게 된 반면, 미국은 전함과 항공모함 그리고 전쟁 물자들을 생산해냈다. 태평양전쟁은 이미 이길 수 없는 전쟁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뉴브리튼에서 저자의 종군 일기는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낯설지가 않았다. 뉴기니를 거쳐 필리핀 해방을 목표로 삼은 맥아더는 원래 라바울 공략을 원했지만, 요새화된 라바울 공략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치열한 전장에서 빗겨 나가게 됐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뉴기니 전선이나 필리핀 전선에 투입되었다면 아마 현지에서 옥쇄라는 이름으로 전사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면서, 일본군은 발악적인 옥쇄전으로 미군을 상대했다. 항공모함 전력과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잇달아 전사하면서 사실상 연합함대 소속 기동부대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일본의 전쟁지도부가 조기에 패전을 모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무의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폭주를 거듭하던 전쟁기계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학업이나 일에서 근성을 보여주지 못한 미즈키 시게루 작가가 전후에 이런 방대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선대에서 유래한 바보 같은 짓이 집안의 전통이라던 작가가 남긴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5: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만화로 볼 수 있는 일본 현대 전쟁사네요! 재밌을 거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3-06-13 17:40   좋아요 3 | URL
전쟁 이야기는 3권에서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저자 자신의 빈곤과
가난과의 전쟁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레이스 2023-06-13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데... 섣불리 덤벼들고 싶지 않은 그런 책이네요. 그래도 저장!

레삭매냐 2023-06-13 23:58   좋아요 1 | URL
전 3일 만에 주파했네요 -

속이 다 시원합니다. 고고씽!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1 - 간토 대지진부터 중일 전쟁 돌입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일본 현대사> 시리즈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름 밀덕인 동시에 그래픽 노블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니 내가 이 책을 또 거두어 주지 않으면 누가 거두어 준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도전에 나섰다. 오늘 도서관에 방문해서 당당하게 이 책이 비치된 서가로 달려갔다. 총 네 권을 드는 순간, 손모가지가 나가는 줄 알았다. 그만큼 분량이 방대하다는 말이다. 일단 대여하기 위해 지난 주에 빌린 책들을 모두 반납하고, 부지런히 읽었다. 그래서 일단 1권은 도서관에서 모두 읽고 나머지 3권을 빌려왔다. 여유감 때문인지 1권 만큼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미즈키 시게루가 그리고 쓴 <일본 현대사>의 원제는 <쇼와사>라고 한다. 다이쇼 연간에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서 태어난 만화가이지 평화주의자 미즈키 시게루는 1922년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해에 태어났다. 간토대지진은 1차세계대전 후, 흥청이던 일본 경제에 도래한 공황의 전주곡이었다. 아무리 미즈키 시게루 작가가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도 하더라도, 간토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정도의 양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저자는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본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과 동시에 일본 군부 세력들이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던 사회 분위기를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몰아가던 당시 상황을 마치 라디오로 생중계하듯 그렇게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한 가지 특징을 말한다면, ‘생쥐인간을 투입해서 설명을 곁들이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요괴 입문을 도운 인물로 농농할멈을 배치하기도 한다. 아직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단 패스.

 

조선을 1910년 병탄한 일본은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아 만주침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 군벌 장쭤린을 폭사시킨 일본군은 정예 관동군을 파견해서 중원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일본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일본군의 하극상은 아마 이 시기부터 일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군축회의로 태평양과 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던 일본을 견제하던 서구 열강을 의식해서, 일본 내각은 확전을 극히 경계했지만 이른바 군부 내의 일부 모험주의자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경제 공황의 여파로 일본 각지에서 빈곤과 가난 그리고 굶주림이 만연했다. 다이쇼 연간에 활발하게 전개되던 노동쟁의는 치안유지법 같은 악법의 시행으로 일소되고,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대거 투옥되고 전향하면서 일본 국가의 군국주의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미즈키 시게루는 이런 쇼와 시대의 일상에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투영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축해나간다.

 

일본 현대사를 살아낸 민초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는 집안의 차남이었다. 와세다 대학 출신 아버지는 은행 업무를 하다가 자기 멋대로 숙직 시간을 조정했다가 잘려 버렸다. 그 다음에는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영사기를 도난당하는 바람에 사업을 들어 먹었다. 그 다음에는 시게루의 조부가 계신 오사카로 가서 보험업을 했다고. 이재에 밝았던 조부는 공황의 전조가 보이자 재빨리 재산을 정리해서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사업을 일으켜 한몫 챙기는 사업수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일본 국내 특히 그 중에서도 도호쿠 지방의 가난과 궁핍에 절망한 일단의 황도파 청년 장교들은 수시로 쿠데타 시도와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작가가 전쟁을 치르면서 평생 다시는 과자를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까.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생 아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야 했고, 딸들은 유곽에 팔아야할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우익 세력에 밉보였다가는 내각의 수장인 총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대신들이 그들에게 테러당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전권을 쥐게 된 군부는 내각과 일본 국가의 대외정책마저 멋대로 좌지우지했다.

 

서방의 군국주의 세력이었던 독일-이탈리아와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긴밀해지기 시작한 일본은 본격적인 중국 침략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국제연맹에서 탈퇴해 버렸다. 만주의 풍운아로 알려진 이시하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지로 등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만주사변으로 폭사한 장쭤린의 후계자 장쉐량을 내쫓고, 러일전쟁 이래 염원이던 만주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지만, 종전 때까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런 일본의 군사적 모험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군부는 멀쩡한 청년들을 희생시킨 육탄3용사조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나라 시민들의 민생에는 소홀하고 무능했던 정부가 국가 세입을 절반을 군비에 투입하며, 오로지 시민들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저자는 냉철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훗날 중일전쟁과 대미전쟁 그리고 패망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군사적 모험의 근원을 추적하는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노고를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일본 현대사>. 우선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놀라고, 몸으로 쇼와 시대를 살아낸 작가의 육성 증언에 감탄했다. 바로 2권 읽기에 나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23-06-12 0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2권밖에 못 읽었는데 참 인상적인 일본 현대사를 다룬 그래픽 노블이었습니다. 이어질 레삭매냐님의 좋은 리뷰 기다리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3-06-12 08:32   좋아요 2 | URL
70여년에 이르는 쇼와사를 제대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일본 출신 작가다
보니 한계도 뚜렷한 것 같습니다.

간토대지진이나 태평양전쟁 초기
필리핀 전선을 맡았던 혼마 마사
하루 중장에 대한 변호 등이 그
러하네요.

저도 2권까지 읽고 이제 3권 들어
갔습니다. 기대,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도 없고 1권은 품절이네요ㅠㅠ 4권 세트를 구입해야할까 고민입니다ㅠ

재밌을 거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3-06-13 17:37   좋아요 1 | URL
전 4권 독파 중인데 아마
오늘 중으로 다 읽지 싶습니다.

저도 궁금한 거이 왜 1권은
품절이냣!였답니다.

신종 마케팅일까요 -.-
재미는 확실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7:57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다니 부럽습니다ㅜ 좋은 도서관이네요ㅜㅋ
 
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원작, 디노 바탈리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이숲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기 드 모파상을 읽는다. 어떤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그런 계기로 촉발된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이란 책을 만났다. 모파상이 쓴 전쟁 이야기들을 그래픽 노블화한 작품이었는데, 대출은 안되고 관내열람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나가기 전에 다 읽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모두 8개의 전쟁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고 도서관 탈출 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던 1870, 모파상은 칼리지를 졸업한 20세의 열혈청년이었다. 조국애로 피끓는 청춘은 당연히 자원입대해서 침략군에 맞서 싸운 모양이다. 전쟁 당시 그의 활약을 궁금했지만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달랑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다. 에밀 졸라의 <패주>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바당게 휘하 아래 프랑스군은 몰트케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에게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전략과 전술, 보급 그리고 신무기 모든 면에서 나폴레옹 시절 그랑 아미라 불리던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모든 국토가 프랑스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불리던 유린되고, 자산은 약탈되었으며 학살이 벌어졌다.

 

바로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모파상이 쓴 8개의 단편의 무대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만난 <두 친구>에서 프로이센군의 점령 아래, 낚시를 나갔던 친구 모리소와 소바주는 모래무지 낚시를 하다가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교활한 프로이센군 장교는 자신에게 프랑스군의 암구어를 알려 주면 살려 준다는 말로 유혹했지만 모리소와 소바주는 적군 장교의 제안을 거부하고 의연하게 총살당한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프로이센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보통의 프랑스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 나는 이 그래픽 노블을 보고 나서 바로 모파상의 단편집을 찾았다. 그리고 4편의 원전을 읽었는데 극화를 맡은 디노 바탈리아 작가가 거의 완벽하게 원전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물론 단편이 워낙 짧은 탓이기도 했지만 원전과 아주 흡사해서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실제 전투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프랑스군의 영웅적(?)인 활약상 대신, 모파상의 고향이었던 노르망디까지 진출한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사보타주와 유격전을 벌이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모파상은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묘사한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밀롱 영감은 자그마치 16명의 프로이센 창기병들을 처치했다. 완벽할 수도 있었을 밀롱 영감의 활약은 마지막 습격에서 얼굴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인 채로 발견이 되면서 마무리된다. 바댕게의 제2제정이 무너지고 제2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정부와 부르주아들이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도모하는 동안 프랑스 민중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무너뜨린 적군에 대항해서 이런 유격전을 시도했다는 점을 모파상은 문학으로 증언한다. 그런 점에서 증언문학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탐쟁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발터 슈나프스의 모험>에서는 본대에서 낙오한 프로이센군 병사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사랑하는 아내와 네 자녀를 고향에 두고 전선으로 끌려온 발터 슈나프스는 프랑스 정복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어떻게 하면 살아서 집에 돌아갈 궁리만 할 뿐이다. 모파상은 결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본질이 국민국가간의 영토전쟁의 탈을 쓰고 있지만, 보다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한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의 전쟁이라는 점을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전장에서 싸우다가 총탄에 맞아 부상당하고 죽는 실체 역시 그들이 아닌 무산자 계급의 시민이 아니던가. 배가 너무 고파 프랑스 사람들의 식탁을 습격했다가 그들에게 포로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어찌나 짠했는지 모른다. 모파상식 유머라고 할까.

 

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집에 의탁된 네 명의 프로이센 병사들을 화형에 처한 소바주 아주머니의 이야기도 울림이 컸다. 소바주 아주머니 역시 최후를 앞두고 구질구질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고, 의연하게 총살대 앞에 선다. 당시 프로이센군의 총살대가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또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외국 침략군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는 일화였다.

 

어제 모파상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비곗덩어리>를 읽고 있다. 지금까지 한 절반 정도를 읽었는데 역시나 전쟁이 불러온 비극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추태를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단편 역시 원전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위기에 순간마다, 자신들이 경멸하던 비곗덩어리에게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며 손길을 내밀지만 또 그렇게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귀족과 부르주아지들의 역겨운 모습을 모파상은 기가 막힌 필치로 포착해낸다.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들이 국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위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모파상의 단편들을 읽다가 너무나 유명한 <목걸이>를 읽었다. 제정 붕괴 후 전쟁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우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와중의 혼란상과 다시 공화정을 엄습한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쁘띠 부르주아 계급의 실체를 직격한 작품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이달에는 모파상을 좀 읽어야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6-06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파상도 그래픽 노블이 있군요~! 모파상 좋습니다~! 단편들도 좋지만 장편들도 좋더라구요. <벨아미> 생각이 납니다 ㅋ

레삭매냐 2023-06-06 20:59   좋아요 1 | URL
그래픽 노블로 만나고 다시 원전
을 읽게 되는 선순환이라고나 할까요.

<벨아미> 그렇지 않아도 서가에서
보고 낭중에 봐야지 싶었답니다.

coolcat329 2023-06-07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비계덩어리랑 두 친구에요. 사랑 이야기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네요.

레삭매냐 2023-06-13 21:08   좋아요 0 | URL
결국 모파상 단편집은 못 다 읽고
반납하게 되었네요 ㅠㅠ

다음 기회를 노려 보겠습니다.
<비곗덩어리>도 마저 읽었어야
했는데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책
들을 빌려야 해서 눈물을 머금고
그만.

저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다
룬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인어 소녀 Wow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도나 조 나폴리 글,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도서관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개관하는 동안 아무리 오래 버티고 있더라도 누가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일단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원하는 책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책과의 만남이 항상 대기 중이다. 오늘은 모파상의 단편집들과 도나 조 나폴리의 <인어 소녀> 그래픽 노블을 만날 수가 있었다.

 

오션 원더스라는 아쿠아리움이 있었다. 그곳의 운영자 넵튠은 가스라이팅의 천재였다. 그는 바닷가에서 포획(?)인어 소녀로 돈벌이에 나선다. 자신이 운영하는 아쿠아리움에 인어 소녀가 있으니 찾아보라는 말로 손님들을 유혹한다. 이 점에서 그는 탁월한 마케터다. 인어 소녀가 그려진 티셔츠를 10달러에 팔아먹는다. 그리고 실제 그의 아쿠아리움에는 인어 소녀가 살고 있다.

 

바다의 신을 자처하는 넵튠은 원래 어부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인어 소녀(미라)를 완벽한 가스라이팅으로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만 인어 소녀가 살 수 있을 거라는 말로 미라를 조종한다. 빌런 역의 넵튠은 자신의 보일 듯 말 듯하며 숨바꼭질 하듯 아쿠아리움을 찾은 고객들을 현혹하라고 미라에게 주문한다. 관람객들이 던진 동전 모으기 역시 미라의 몫이다. 하지만, 미라가 오션 원더스를 찾은 리비아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넵튠이 통제하는 완벽한 세상은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우리 인간이 갇혀 있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동시에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떠올랐다. 자신이 사는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트루먼은 결국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지 않았던가. 인어 소녀 미라의 이야기도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우리는 무언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 또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게 되면 곧 실행에 옮겨야 하는 법이다.

 

우리의 미라는 문어 친구의 전폭적인 지지로 아쿠아리움 오션 원더스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에 대한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다리가 있다는 점, 물 밖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말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시간 그러니까 어느 타이밍에 미라가 오션 원더스를 벗어나는 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전형적 성장 서사의 그것을 따르면서 도나 조 나폴리의 <인어 소녀>는 자주적으로 성장해 가는 미라의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생존을 도모해야 할 동물들을 아쿠아리움에 가두고 돈벌이에 나서는 시스템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어 소녀를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규정하고 역시 상업주의에 이용하는 세태에 대한 냉소가 마음에 들었다.

 

요즘 디즈니에서 실사화된 <인어공주>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분출하는 가운데 만난 <인어 소녀>의 서사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할까.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6-05 0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을 레삭매냐님 서재에서 또 만나니 반가워서 ㅎㅎ
그러고보니 <트루먼 쇼>와도 겹치네요. 아...필립 K 딕의 무슨 작품이 <트루먼 쇼>로 영화화 된거라고 들었는데 무슨 작품이 또 뭔지 모르겠는^^

책의 세계는 어렵습니다 ㅎ


레삭매냐 2023-06-05 01:11   좋아요 2 | URL
오호 데이비드 위즈너
작가라는 분은 또 처음
인지라 - 찾아 봐야겠네요.

알려 주신 정보에 혹해서
제가 또 부지런히 찾아보니
<트루먼 쇼>는 필립 K 딕
이 1958년에 발표한 <어긋
난 시간>(Time Out of Joint)
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하
네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얄라알라 2023-06-05 01:21   좋아요 1 | URL
<이봐요 까망씨>라고 번역된 그림책 외,
꽤 많이 번역되었어요. 그 분의 작품이^^
전 글자 없는 그림책에 끌리더라고요.

레삭매냐 2023-06-05 08:29   좋아요 1 | URL
다음주에 도서관에 가면
빌려서 읽어 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3-06-05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어긋난 시간>
감사합니다.

과연 제 장기 기억력이 얼마나 그 책제목을 가져가줄지 모르겠습니다

제겐 짐 캐리 때문인가 <트루먼 쇼>가 어둡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필립 K 딕 소설이 좀 분위기가 그래서, 의외였어요. <트루먼 쇼>가 그의 작품에서 출발된 거란 점이.

<어긋난 시간> 다시 한 번 외워보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3-06-05 08:31   좋아요 2 | URL
저는 개인적으로 <트루먼 쇼>가
짐 캐리 최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 같은
코믹 영화로 개그맨 같은 배우로
생각되기 쉽지만, 최소한 <트루먼
쇼>에서는 인생연기를 펼쳐 주었
으니까요.

다시 한 번 보고 잡네요, <트루먼 쇼>.

얄라알라 2023-06-05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매냐님!저와.의견일치를 보셨습니다. 저는 <트루먼 쇼>, 영화도 너무 좋았지만 짐캐리라는 배우를.그제서야.제대로 본 느낌이었어요. 대단하죠...훗날.연세드신후 그분의 인터뷰를 보아도 내강외유이신듯합니다. 저도 좋아해요. 다시보고싶넹요

레삭매냐 2023-06-06 09:30   좋아요 1 | URL
어려서 볼 적에는 고저
코미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또 다
른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우리 인간이란, 거
대한 돔에 갇혀 사는 트루
먼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암튼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트루먼 쇼>를 제대로 본 적이 없네요. <트루먼 쇼>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6-13 21:09   좋아요 1 | URL
짐 캐리가 워낙 개그맨 캐릭이라
저평가된 부분이 있는데,

<트루먼쇼>에서는 최절정의 연기
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6-13 21:47   좋아요 1 | URL
전 짐 캐리 연기력 높게 평가합니다ㅎ 여러 이유로 연기력이 저평가되는 배우들이 있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