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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평점 :
14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편혜영 작가의 <아오이가든>처럼 읽으면서 고전(苦戰)한 책도 드문 것 같다. 2005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녀의 첫 소설집으로 출간된 9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린 <아오이가든>에는 그야말로 하드고어(hardgore)적인 요소들이 펄펄 끓어 넘친다.
책을 읽으면서 <아오이가든>의 이미지들을 손꼽아 보았다. 시체, 물, 구더기 그리고 비강(鼻腔:코안)을 자극하는 역겨운 후각들이 떠올랐다. 단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읽은 건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였다. 하지만 화자인 ‘나’의 충동에 의한 살인 그리고 거동을 허지 못한 채 누워 있는 그(아버지?) 앞에서 금붕어를 발로 밟아 터뜨려 죽이는 등의 일들이 마치 일상의 일들처럼 전개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머지 8개의 이야기들을 읽는데 장장 한 달이 걸렸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편혜영 작가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낯설고,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괴물이 산다는 <저수지> 근처의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채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자식들의 이야기에서, 도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가에 대해 기껏 생각해 보았지만 나의 깜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타이틀 제목으로 뽑힌 <아오이가든>에서는 역병이 돌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의 극에 달한 모호한 공간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와 함께 개구리가 내리고, 불가사의한 빨간 스카프를 두른 이가 횡행하는 장소, 그리고 아오이가든. 비로소 코를 찌르는 역한 후각의 자극은 구체적 이미지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그나마 양호한 내용들이 <만약,>과 <마술 피리>였다. <문득,>에서는 어김없이 시체의 발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으레 시체와 짝을 이루는 스릴은 어느 사이엔가 실종되어 버리고 대신 생뚱맞아 보이는 유부녀가 마라톤을 하다가 실종된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라톤 사나이는 자신의 아내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남기고 간 고양이 제니퍼는 사냥한 쥐들을 사방에 숨겨두고, 그 결과 집안은 온통 구더기로 들끓는다. 나중에 가선, 그녀도 구더기 속으로 파묻힌다. 사람이 구더기인지, 아니면 구더기가 사람이 되어 버리는건지 알 수가 없다.
독일 어느 지방의 전설이라는 <하멜린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를 떠올리는 동명의 단편에서, 작가는 아크릴로 만든 상자에 갇혀 단백질이 결핍된 사료를 먹으며 죽을 운명에 처한 쥐 루루와 화자의 동생 미아의 운명을 동조시킨다. 핏빛 구덩이라는 시각적이면서도 후각적인 이미지화된 동질성을 강조하면서도, 철저하게 분리된 별개의 운명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소설집의 말미에 이광호 선생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책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해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단편 소설들을 꾸역꾸역 읽어대면서, 개별 단서들을 통해 특정 시간과 공간 배경들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독자의 더 이상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하고 싶었는지 그 역시 불가능했다. 어쨌든 “월컴 투 하드고어 원더랜드”라는 인사말로 편혜영 작가의 체제 전복적인 상상력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