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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4 - 강화에서 고도성장 이후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미즈키 시게루의 <쇼와사>(이 책의 원제)는 3권까지는 간토 대지진에서 출발해서 한국전쟁 시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권에서는 패전의 충격을 딛고 고도 성장기를 거쳐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나간 시절 이야기를 미즈키 시게루 작가는 그린다.
어느 일본 정치인이 말했듯, 이웃 한국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은 일본의 부흥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미군 점령하의 일본의 궁핍과 가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게루 같은 복원병들을 위한 일자리를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어려웠다. 시게루 선생이 잠시 종사했던 그림자연극으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마당에, 만화 따위를 사서 볼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1950년대의 한국전쟁 그리고 1970년대 베트남전쟁 특수로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도약을 하게 됐다. 그 와중에 도쿄 올림픽도 개최하게 되고 신칸센과 나리타공항 등 신일본은 상징하는 일단의 사건들을 저자는 그대로 중계해준다. 물질적 풍요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1권에서 3권까지 쇼와 전쟁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마지막 권에서는 미즈키 시게루라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양군도 전쟁에 투입되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결국 한쪽 팔까지 잃은 장애용사는 만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만화를 그렸다. 신은 고생하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40세도 훨씬 넘어서 비로소 미즈키 선생은 만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허접한 출판사도 외면하던 작가가 이제는 어시를 무려 7명이나 거느린 대가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궁핍하던 시절에도 생존을 위해 중노동 같은 작업을 했지만 성공의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다음에도 선생의 노동은 멈출 수가 없었다.
전쟁 말기, 남쪽 나라 토페토로 마을 사람들을 그리워한 미즈키 선생은 옛 전우들과 함께 30년 만에 옛 전장을 다시 찾았다. 아마 나라면 전우가 죽어 나가고, 일상화된 구타 그리고 말라리아로 생사를 오가던 시절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아마 가지 않았을 곳을 저자는 자신만의 ‘아르카디아’로 규정하고 그리워한다. 자신의 염원대로 그곳을 방문한 저자의 실천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십여 차례나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고도경제 성장기에 일본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미즈키 선생은 그림으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한 때, 기세를 올리던 일본 학생운동의 종말을 고한 아사마 산장사건과 프랑스 유학생의 식인사건, 괌과 필리핀 정글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서 수십 년간 저항을 계속하던 귀환병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본 검찰의 위력을 만방에 떨친 록히드 사건 등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전권까지 세계사적 흐름의 차원에서 쇼와사를 다뤘자면 마지막 권에서는 보다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시리즈를 생산해낸 요괴들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공상들(사실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등이 줄지어 등장한다.
미즈키 시게루가 저술한 <일본 현대사>의 한계는 명백하다. 대동아 성전을 부르짖으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최고의 책임자였던 히로히토 국왕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전쟁의 시작도 마지막도 모두 히로히토가 하지 않았던가. 무수한 인명이 희생된 대전쟁의 책임은 마땅히 최고 책임자인 히로히토가 졌어야 했다. 하지만, 연합국 GHQ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의 요구사항인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는 대신, 국체유지라는 허울 아래 히로히토 국왕의 단죄를 면하게 해달라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
맥아더 사령부는 군국주의 일본을 뿌리째 개조하기 시작했다. 일단 재벌을 모두 해체해 버렸고, 전범들을 공직에서 모두 추방시켰다. 후자는 나중에 완화되기는 했지만 가미카제 특공이니 일억옥쇄 타령을 해대며 일본 시민들의 목숨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던 전쟁지도자들의 추락은 당시 획기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미군정은 또한 신헌법을 제정해서, 이른바 강요된 민주주의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과 남양군도에서 미쳐 날뛰던 군국주의 일본이 갑자기 평화주의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과히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미즈키 시게루는 전쟁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평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원하는 행복에 대한 질문은 던진다. 전쟁에서 한쪽 팔과 영혼이 털린 이가 평화를 원하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히로히토 국왕의 죽음으로 쇼와 시대가 끝나고, 헤이세이 시대가 열렸다. 마침내 자신의 삶에 계속된 불안 요소였던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이었다. 왠지 홀가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미즈키 선생은 자신의 작품들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마침내 원하던 물질적 풍요를 이루게 되었다. 이 괴짜 작가는 육신은 일본에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던 남쪽 나라 숲 사람들과의 인연을 잊지 못한다. 전쟁 중에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남쪽 나라로 날아가 그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70년에 걸친 쇼와 시절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방대한 이야기들을 다루다 보니, 깊이는 좀 부족했을지 몰라도 요괴전문가가 그린 거시사적 접근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