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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
기 드 모파상 원작, 디노 바탈리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이숲 / 2016년 9월
평점 :
드디어 기 드 모파상을 읽는다. 어떤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그런 계기로 촉발된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래픽 노블로 읽는 모파상의 전쟁 이야기>이란 책을 만났다. 모파상이 쓴 전쟁 이야기들을 그래픽 노블화한 작품이었는데, 대출은 안되고 관내열람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나가기 전에 다 읽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모두 8개의 전쟁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고 도서관 탈출 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던 1870년, 모파상은 칼리지를 졸업한 20세의 열혈청년이었다. 조국애로 피끓는 청춘은 당연히 자원입대해서 침략군에 맞서 싸운 모양이다. 전쟁 당시 그의 활약을 궁금했지만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달랑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다. 에밀 졸라의 <패주>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바당게 휘하 아래 프랑스군은 몰트케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에게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전략과 전술, 보급 그리고 신무기 모든 면에서 나폴레옹 시절 그랑 아미라 불리던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모든 국토가 프랑스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불리던 유린되고, 자산은 약탈되었으며 학살이 벌어졌다.
바로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모파상이 쓴 8개의 단편의 무대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만난 <두 친구>에서 프로이센군의 점령 아래, 낚시를 나갔던 친구 모리소와 소바주는 모래무지 낚시를 하다가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교활한 프로이센군 장교는 자신에게 프랑스군의 암구어를 알려 주면 살려 준다는 말로 유혹했지만 모리소와 소바주는 적군 장교의 제안을 거부하고 의연하게 총살당한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프로이센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보통의 프랑스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참, 나는 이 그래픽 노블을 보고 나서 바로 모파상의 단편집을 찾았다. 그리고 4편의 원전을 읽었는데 극화를 맡은 디노 바탈리아 작가가 거의 완벽하게 원전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물론 단편이 워낙 짧은 탓이기도 했지만 원전과 아주 흡사해서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실제 전투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프랑스군의 영웅적(?)인 활약상 대신, 모파상의 고향이었던 노르망디까지 진출한 프로이센군을 상대로 사보타주와 유격전을 벌이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모파상은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묘사한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밀롱 영감은 자그마치 16명의 프로이센 창기병들을 처치했다. 완벽할 수도 있었을 밀롱 영감의 활약은 마지막 습격에서 얼굴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인 채로 발견이 되면서 마무리된다. 바댕게의 제2제정이 무너지고 제2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정부와 부르주아들이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도모하는 동안 프랑스 민중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무너뜨린 적군에 대항해서 이런 유격전을 시도했다는 점을 모파상은 문학으로 증언한다. 그런 점에서 증언문학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탐쟁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발터 슈나프스의 모험>에서는 본대에서 낙오한 프로이센군 병사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사랑하는 아내와 네 자녀를 고향에 두고 전선으로 끌려온 발터 슈나프스는 프랑스 정복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어떻게 하면 살아서 집에 돌아갈 궁리만 할 뿐이다. 모파상은 결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본질이 국민국가간의 영토전쟁의 탈을 쓰고 있지만, 보다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한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의 전쟁이라는 점을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전장에서 싸우다가 총탄에 맞아 부상당하고 죽는 실체 역시 그들이 아닌 무산자 계급의 시민이 아니던가. 배가 너무 고파 프랑스 사람들의 식탁을 습격했다가 그들에게 포로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어찌나 짠했는지 모른다. 모파상식 유머라고 할까.
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집에 의탁된 네 명의 프로이센 병사들을 화형에 처한 소바주 아주머니의 이야기도 울림이 컸다. 소바주 아주머니 역시 최후를 앞두고 구질구질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고, 의연하게 총살대 앞에 선다. 당시 프로이센군의 총살대가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또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외국 침략군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는 일화였다.
어제 모파상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비곗덩어리>를 읽고 있다. 지금까지 한 절반 정도를 읽었는데 역시나 전쟁이 불러온 비극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과 추태를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단편 역시 원전과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위기에 순간마다, 자신들이 경멸하던 ‘비곗덩어리’에게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며 손길을 내밀지만 또 그렇게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귀족과 부르주아지들의 역겨운 모습을 모파상은 기가 막힌 필치로 포착해낸다.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들이 국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위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모파상의 단편들을 읽다가 너무나 유명한 <목걸이>를 읽었다. 제정 붕괴 후 전쟁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우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와중의 혼란상과 다시 공화정을 엄습한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쁘띠 부르주아 계급의 실체를 직격한 작품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이달에는 모파상을 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