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멋대로 키운 아이 더 크게 성공한다 - 내 아이 성격에 꼭 맞는 성공 교육법
윤태익 지음 / 더난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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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사에서 보았는데 외국에서 살다 온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사회가 경쟁적이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점이 외국과 다르다고 답했단다. 아니 아직도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니... 우리가 어렸을 때 숱하게 교육받았던 것이 질서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긴 요즘은 모두 ''내 아이''만을 외치니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야 없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내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까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왜 그리 이해가 안 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면 모두 다 일당이 되어 돌아다니곤 했었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아이들을 제지하기는 했는데...

어려서부터 공공질서에 대한 것을 꾸준히 착실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커서도 별 의식없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기에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닌데...''라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작가에게 딴지 걸 빌미를 찾기 위해 책을 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내 생각은 ''어! 괜찮은데...''로 바뀌었다. 일단 ''제멋''이 아니라 ''제 멋''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 그러고보니 나도 처음에는 ''제멋''으로 이해했다. 그러지않아도 요즘 모두 아이들 기 안 죽인다고 아이들이 공공질서를 안 지켜도 그냥 두는 것을 보며 속으로 열불내고 있었는데 제목까지 이런 책까지 나왔으니 이 사회는 어찌될까 내심 열부터 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내 속내를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착실하게 설명을 덧붙여 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읽는 순간 이 책을 읽어도 열받는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어그램은 MBTI 강의를 들을 때 언뜻 듣기는 했다. 처음에 MBTI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를 모르고 살았는지... 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았는지를 깨달았고 더불어 남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구나를 인정했던 것이다. 물론 인정하기는 쉬웠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인정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 커다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일 년 반 전의 일이다. 그 약발이 떨어질 때쯤 이 책을 읽은 것이다. 그동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는 것을 이 책이 다잡아 주었다. 그래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니야... 아니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애니어그램에서는 사람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머리형, 가슴형, 장형. 사실 이 말들은 생소해서 자꾸 MBTI로 대입하며 읽었다. 어차피 사람의 성향을 구분짓는 것이므로 말이 약간 달라도 특징은 비슷하니까. 읽으면서 내내 우리 아이는 머리형인가? 아니 이 부분을 보면 가슴형인데... 많이 왔다갔다 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여러 유형이 있고 복잡할텐데 일반인들이 보기 쉽도록 9가지로 분류했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그래도 기초적인 지식은 갖출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내 아이를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내가 만들어야 하는 아이가 아닌 길을 안내해주기만 하면 되는 인격체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성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데 계속 끄집어내지 않으면 자꾸자꾸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서 결국은 보이지 않게 된다.

나같은 심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손해를 본 셈이다. 제목에서부터 오해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러나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프롤로그만이라도 읽는다면 결국 확실한 독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서문을 읽고 나면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을 읽으면서 제목 때문에 왔다갔다 하기는 처음이다. 현재 나와 있는 교육서는 대부분 그 목표점을 성공에 맞추고 있는 듯 하다. 성공이라... 무슨 의미의 성공일까?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가고 결국은 좋은 직장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너무 성공지향적인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무엇보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부터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질서는 지키도록 우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내용에서 트집 잡을 것이 없으니까 괜히 제목 갖고 트집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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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옐러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35
프레드 깁슨 지음, 칼 버거 그림, 김민석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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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고체계는 참으로 묘하다. 내가 어느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그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극과 극을 달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례로 동물의 생존을 다룬 다큐드라마에서 얼룩말을 잡아 먹는 사자가 있을 때 주인공을 사자로 하면 잡아먹는 게 당연하게 보인다. 만약 사자가 사냥을 못해서 굶고 있으면 어서 나가 아무 동물이라도 잡길 바란다. 그러나 만약 주인공이 얼룩말이라면 잡아먹는 사자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이처럼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하나의 행동이 전혀 다른 각도로 보이는 것이다.

한 때는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이 있었다. 광활한 대지를 말타고 다니며 사냥하고, 원주민과 싸우고,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하게 보내는 그런 영화를 보고 감동을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을 보여주는 주체가 미국인이 아닌 원주민이었다면 내 느낌은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황망하게 잃어버리고 쫓겨나야 했던 그들의 입장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야만적인 백인의 행동에 분노했겠지. 이 책에서도 인디언들이 트래비스의 집으로 쳐들어오기도 했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그들의 행동이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것이 주가 아니므로 잠시 잊기로 하자.

서부 개척 시대. 황무지 땅에 정착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자연환경과 싸워야 하고, 사나운 짐승들과 싸워야 하고, 가난과 싸워야 했다. 대부분의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으며 온 식구들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애써야 할 그런 때였다. 오죽하면 아버지는 돈 벌러 떠나고 열 두 살인 트래비스가 가장 노릇을 하며, 지금의 열 두 살 아이가 할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일을 척척 해 냈을까. 대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도 트래비스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보면서 그냥 자연과 떨어져서 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온갖 영화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오래되어서 제목도 내용도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냥 그 느낌과 어떤 장면들이 오버랩되곤 했다. 거기에 등장인물인 옐러라는 개가 추가되었고... 소년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옐러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또 그 후유증은 얼마나 컸을까. 내 가슴이 다 아프다. 그래도 다행이 정말 다행이 옐러의 분신이 남아 있어서 책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덮을 수 있었다. 그렇게 트래비스는 어른이 되어 가고 다시 점박이 강아지에게 정을 느끼며 아픔을 딛고 성숙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옐러의 분신인 점박이 강아지라도 옐러를 대신하진 못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시간이 약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아팠던 기억이 흉터로 조금 남겠지. 그 흉터 위로는 새로운 추억이 쌓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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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네가 참 좋아 꼬마 그림책방 21
패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송미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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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게 책을 읽어 주려고 이 책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무슨 책인지 궁금해서 따라 온 큰아이가 말한다.

"이거 패트리샤 폴라코 거 아냐?"

어쭈, 제법인걸. 꿈이 그림책 작가라고 하더니만 조금의 가능성이 보인다. 비록 다음 날 아무래도 글쓰는 데는 소질이 없어서 안되겠다며 일단 보류중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려운 이름까지 술술 나오는 것을 보며 내심 뿌듯했다. 물론 패트리샤 폴라코의 그림은 척 보면 아는 그런 그림이지만...

코끼리는 회색이니까 흑백으로 그렸다치지만 그 밖의 모든 배경도 모두 흑백이다. 아니 흑백이라기 보다 연필로 그린 단색화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 중에서 오직 엠마 만이 빨간 색 원피스와 양말을 신고 있다. 그래서 눈에 더 잘 띈다. 그러고보니 속표지에도 온통 엠마의 원피스와 같은 빨간 무늬이고 제목조차 같은 무늬다.

엠마는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친구다. 함께 유치원에 가고 함께 놀고 밥도 같이 먹으며 함께 자전거도 타고 숙제도 같이 한다. 거기다가 가끔씩 '우리'집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다음 날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엄마가 축구 연습장에도 데려다 준다. 그런데 그만 차가 펑크가 났다. 난 보질 못했는데 아이들은 용케도 알아낸다.

이처럼 주인공은 무엇이든지 엠마 케이트와 함께 한다. 병원도 같이 가고 심지어는 편도선 수술도 같이 받는다. 목욕도 함께 하고 말이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생각한다. 나도 엠마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더구나 긴 코로 재미있게 놀 수도 있잖아? 타고 다닐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책장을 향해 넘긴다.

<밤이 되면 나는 종종 침대에서 엄마 아빠에게 우리 둘이 함께 한 일을 이야기해요.

그러면 엄마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엠마 케이트라... 멋진 상상이구나.

잘자, 좋은 꿈 꾸렴."하고는 내게 입을 맞추고 이불을 덮어 주세요.>

어, 그런데...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엄마가 없다. 대신... 긴 코로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코끼리가 있을 뿐이다. 그 순간 아이가 외친다.

"헉!"

그러고는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렇다. 분명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엄마는 거기에 있었다. 단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끼리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아~~~, 이 무서운 고정관념. 왜 꼭 사람이 주인공이며 화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지금까지 이런 식의 책은 보질 못했다. 코끼리 입장에서 상상의 사람 친구를 만들어서 노는 이야기라... 반대의 경우는 많이 보았다.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서 무서움도 이겨내고 두려움도 극복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도 어지간히 의외였나보다. 이제는 읽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찬찬히 읽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헐~' 소리를 낸다. 사실 난 이 책이 코끼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읽었는데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땠을까.

이런 것이 진짜 그림책이다. 글만 읽으면 코끼리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어느 곳에도 코끼리가 화자라는 단서는 없으니까. 그러나 글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그림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가 읽어주면 아이들은 자연히 그림만 집중해서 보게 된다. 만약 혼자서 읽는다면 글에만 집중하느라 자칫 이 느낌을 모르고 지나칠 수가 있다. 그러니 꼭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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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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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기에 일어난 어떤 커다란 사건이(꼭 커다란사건이 아니더라도) 후세 사람들에겐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당시와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그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내지는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며 자기들과 연결짓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불과 몇 십 년 전이라도 '과거'라는 말 대신 훨씬 오래전이라는 느낌이 드는 '옛날'이라는 말을 사용하겠지. 마치 내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피카소나 사르트르가 같은 세기에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세계사나 문화 예술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불과 십 여년 전의 일인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 백화점 붕괴 이야기를 하면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는 듯이... 마치 자기들의 시간 개념상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시간 속에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이것이 내가 피카소와 사르트르가 20세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던 때가 생각난다. 아까도 밝혔듯이 세계사에 거의 무지했기에 소련이 왜 붕괴했는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당시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정확히 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거대한 세계사적인 사건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나중에 역사에 기록될 때 내가 살던 시기와 겹치는 것이 굉장히 뿌듯했다.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만약 그 시기를 학교와 집을 오가며 오로지 공부하기만을 강요당하는 고등학생이었다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시사에 관심을 가져야 논술도 잘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사건이라면 당연히 고등학생들이 알아야 할 문제가 되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것은 몰라도 되는 때였다. 그나마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주관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의 관심과 신기한 기분은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그 후의 문제나 동유럽의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지도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가 엄청 많이 생겨났다는 것만이 내게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그나마 나라 이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이 세계의 나라 이름과 수도를 지독히도 외우게 했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전혀 낯선 나라 이름들이 생겨서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구나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의 민족이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는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사회주의 아니던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시기였으니 관심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동유럽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거기에 그런 인종 갈등이 있고 종교 갈등이 있으며 이념 갈등이 있다는 것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 정말 마리와 그 친구들은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고 번성하고... 결국은 몰락하는 과정에 그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았던 나도 이상하고 신기함을 느끼는데 그들은 어땠을까.

 마리와 친구들이 다녔던 학교는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르조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환경에 둘러쌓여 있는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모순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인민을 위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는 사회주의도, 부의 재분배를 통해 모두 잘 살게 만든다는 (수정)자본주의도 결국은 이런 모순을 아직 깨지 못했다. 루마니아인인 아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하며 살까?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고위층 자제'분'들이나 재벌집 자제'분'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려서 심통이 나는 것일까. 글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아직도 내가 반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였다. 기차 타고 다른 나라로 넘어 가고 저녁에 외국에서 약속해서 만나러 가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물론 머리로야 나라가 붙어 있으니까 당연하지...라고 하지만 정서로는 공감이 잘 안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직장이 이웃 나라라서 매일 외국을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우리는 외국 한번 나가려면 오로지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물론 배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비행기와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할 때만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쯤 기차 타고 외국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어서 그 날이 와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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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티마을 봄이네 집 작은도서관 3
이금이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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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어렸을 때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봄이면 토끼풀 꽃으로 목걸이 만들던 일, 여름이면 참외 따다가 물에 동동 띄워 놓고 물놀이 하다가 깨먹던 일, 가을이면 예쁘게 단풍든 산에 둘러 싸여 볏단에 끈 놓았던 일(내 기억으로 거의 유일한 들일이었다.), 겨울이면 커다란 은행나무 언덕에서 비료포대 타던 일... 이 모든 일들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단란한 가정이 있었기에 추억이라는 것도 의미있는 것이리라. 만약 큰돌이네 집으로 새엄마가 오기 전처럼 그런 상황이었다면 시골이 좋은 기억으로 남진 않았겠지. 모르긴 해도 벗어나고픈 곳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을까.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아마도 작가가 시골에서 살아 본 경험 때문에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 이금이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비록 책은 모두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강연을 들었으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사는 지역도 같네... 사실 작가를 만난다거나 같은 지역에 산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괜히 공통점을 찾으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밤티마을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 후속 작품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강연을 듣고 읽어서그런지 상황들이 눈에 선하다. 게다가 그림은 또 얼마나 정감이 가던지... 양상용 선생님은 필 받아야만 그림을 그리시기 때문에 작품을 써 놓고도 출간이 늦어졌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칫 동화책에는 그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삽화 수준으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그림은 자체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은 가정의 형태가 많이 변했다. 아니 변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재혼가정 이야기나 한부모 가정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본다. 작가도 그래서 팥쥐 엄마를 끝내 가족으로 편입시켰고 좋은 엄마로 거듭나게 해 준 것이라고 하잖은가. 사실 새엄마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친엄마라고 해도 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단지 애를 키워보니까 내 자식도 미울 때가 있는데 과연 남의 자식을 키운다면 미울 때 얼마나 미울까를 가늠해 보면서 새엄마의 모습을 정형화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에서는 꼬맹이로 나오던 영미가 3학년이 되어 갈등을 겪는 모습이 나온다. 그 나이 때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겠지. 오빠인 큰돌이는 시종일관 의젓하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동생을 보살펴서 철이 일찍 들었나보다. 무엇보다 모든 가족들이 행복해져서 내 마음도 편안하다. 현실에서 모델이 되었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지만 책 속에서는 살아계셔서 기뻤다. 다른 부분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면 아예 휴지를 옆에 놓고 읽어야 할 뻔했다.

큰돌이가 영미에게 엄마랑 같이 살아서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은 마치 작가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같이 읽을 우리 어른들에게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앞 일에 대해 즐거운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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