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네가 참 좋아 꼬마 그림책방 21
패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송미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둘째에게 책을 읽어 주려고 이 책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무슨 책인지 궁금해서 따라 온 큰아이가 말한다.

"이거 패트리샤 폴라코 거 아냐?"

어쭈, 제법인걸. 꿈이 그림책 작가라고 하더니만 조금의 가능성이 보인다. 비록 다음 날 아무래도 글쓰는 데는 소질이 없어서 안되겠다며 일단 보류중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려운 이름까지 술술 나오는 것을 보며 내심 뿌듯했다. 물론 패트리샤 폴라코의 그림은 척 보면 아는 그런 그림이지만...

코끼리는 회색이니까 흑백으로 그렸다치지만 그 밖의 모든 배경도 모두 흑백이다. 아니 흑백이라기 보다 연필로 그린 단색화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 중에서 오직 엠마 만이 빨간 색 원피스와 양말을 신고 있다. 그래서 눈에 더 잘 띈다. 그러고보니 속표지에도 온통 엠마의 원피스와 같은 빨간 무늬이고 제목조차 같은 무늬다.

엠마는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친구다. 함께 유치원에 가고 함께 놀고 밥도 같이 먹으며 함께 자전거도 타고 숙제도 같이 한다. 거기다가 가끔씩 '우리'집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다음 날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엄마가 축구 연습장에도 데려다 준다. 그런데 그만 차가 펑크가 났다. 난 보질 못했는데 아이들은 용케도 알아낸다.

이처럼 주인공은 무엇이든지 엠마 케이트와 함께 한다. 병원도 같이 가고 심지어는 편도선 수술도 같이 받는다. 목욕도 함께 하고 말이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생각한다. 나도 엠마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더구나 긴 코로 재미있게 놀 수도 있잖아? 타고 다닐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책장을 향해 넘긴다.

<밤이 되면 나는 종종 침대에서 엄마 아빠에게 우리 둘이 함께 한 일을 이야기해요.

그러면 엄마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엠마 케이트라... 멋진 상상이구나.

잘자, 좋은 꿈 꾸렴."하고는 내게 입을 맞추고 이불을 덮어 주세요.>

어, 그런데...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엄마가 없다. 대신... 긴 코로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코끼리가 있을 뿐이다. 그 순간 아이가 외친다.

"헉!"

그러고는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렇다. 분명 인자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엄마는 거기에 있었다. 단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끼리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아~~~, 이 무서운 고정관념. 왜 꼭 사람이 주인공이며 화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지금까지 이런 식의 책은 보질 못했다. 코끼리 입장에서 상상의 사람 친구를 만들어서 노는 이야기라... 반대의 경우는 많이 보았다.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서 무서움도 이겨내고 두려움도 극복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도 어지간히 의외였나보다. 이제는 읽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찬찬히 읽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헐~' 소리를 낸다. 사실 난 이 책이 코끼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읽었는데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아이들은 어땠을까.

이런 것이 진짜 그림책이다. 글만 읽으면 코끼리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어느 곳에도 코끼리가 화자라는 단서는 없으니까. 그러나 글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그림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가 읽어주면 아이들은 자연히 그림만 집중해서 보게 된다. 만약 혼자서 읽는다면 글에만 집중하느라 자칫 이 느낌을 모르고 지나칠 수가 있다. 그러니 꼭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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