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연필 페니 좋은책어린이문고 1
에일린 오헬리 지음, 공경희 옮김, 니키 펠란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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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자마자 아이들끼리 싸운다. 둘이 나이 차이가 나니 책을 먼저 읽겠다고 싸우는 것은 아닐텐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책에 붙어 있는 연필을 서로 가지고 다니겠다고 싸우는 중이란다. 참나... 큰 아이는 이 연필이 있으면 시험에서 100점 맞을 수 있다며 절대 양보를 못 한다는 것이다. 둘째야 연필이 예쁘니 탐을 내는 것이고...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둘 다 안 가지고 다니고 공평하게 집에서 쓰기로 했단다. 다행이다.

아이들 책에서는 많은 것이 사람처럼 표현된다. 특히 동물이. 그런데 이처럼 필통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의인화 된 적이 있었던가... 글쎄, 지금까지 읽어 본 책을 되돌아보면 아직은 못 읽었다. 뾰족 머리의 남자 아이가 나오는, 조금은 어수룩해 보이는 그런 그림이 재미있다. 특히 모든 그림이 연필로 그려져 있어서 책 제목과 잘 어울린다.

요술 연필 페니는 사전에 붙어 있던 사은품이다. 페니의 주인인 랄프는 쓰기와 수학을 어려워하고 잘 못한다. 그리고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쓰는 것만 봐도 어딘지 불안정해 보인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우리는 대부분 오른손 잡이로 그리니까. 오른손잡이가 보편화 된 문화에서 왼손잡이를 보는 시각은 불안하고 어딘지 어색하다. 아마도 작가는 랄프가 아직 공부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왼손잡이를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여하튼 랄프는 페니를 무척 좋아해서 수업 시간마다 이 연필만 쓴다. 그러나 필통 속 나라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검은 매직펜의 독재치하다. 그 와중에 페니는 랄프가 시험을 잘 보도록 도와줬다는 이유로 추방당한다.

혹시 우리가 지우개나 연필을 잃어버리는 것도 실은 필통속에서 모종의 일이 일어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필통 주인이 부주의해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참으로 어린애 같은 발상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페니는 쫓겨나서 갖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랄프의 필통으로 되돌아온다. 이미 그 때는 수정액이 매직펜의 횡포를 막고 재집권을 한 후였다. 여기서도 권력이 있고 암투가 있고 빌붙어 사는 존재가 있다. 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여졌고 소재와 제재가 어린이답지만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는 결코 어린이답지 않다. 온갖 인간군상이 다 나오니 말이다. 그러기에 어른인 내가 읽기에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수정액이 어느날 갑자기 힘도 세지고 당당해져서 어리둥절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발랄하고 재미있다. 전개도 빨라서 아이들이 지루해 할 시간도 없겠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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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사랑과 고통을 화폭에 담은 화가 여성 인물 이야기 10
반나 체르체나 지음, 이현경 옮김, 마리나 사고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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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우리 나라든 다른 나라든 여자로서 어느 한 분야에서 당당하게 자리잡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일단 육아라는 문제가 걸리고 다음은 사회적 편견이 걸린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그러니 프리다가 살던 시절엔 오죽 했을까. 그래도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성공한 것을 보니 기쁘다.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이 성공한 것처럼...

프리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전 쯤 그림책으로였다. 미술에는 워낙 문외한이었기에 그저 모든 사람이 아는 화가 정도만 알고 있었던지라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라는 이름은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몇 장 안되는 그림책으로 만난 프리다는 나를 사로잡았다. 거기다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책과 같이 보면서 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진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자책감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그림책이 아닌 다른 책으로 꼭 만나보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 그렇게 미루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멕시코라는 나라는 그저 미국과 같은 대륙에 있는 나라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그 나라의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요즘 이런저런 인물들로 인해 중남미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겠다.

프리다는 그런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1900년대 초는 세계 정세가 그리 순탄한 때는 아니었다. 멕시코도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시기였다.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프리다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는 바람에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된다. 그러나 그것 정도는 프리다에게 좌절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항상 명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그러다가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을 다쳐서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상황에서 좌절을 할텐데 프리다는 그것을 이겨냈다. 아니 오히려 병원에서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이 그녀의  평생의 일이 되었다.

멕시코의 혁명가이자 벽화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만나서 결혼 하면서 프리다는 여성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안정된 삶은 주어지지 않았다. 결혼생활도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세기의 결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명한 결혼이었으나 둘은 서로 너무 강했다. 그 와중에도 프리다는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결국 프리다 칼로라는 이름으로 우뚝 선다. 디에고 리베라의 남편으로서 프리미엄을 얻은 명성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명성인 것이다. 어찌보면 프리다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에 그림에 더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디에고와 안전된 삶을 살았다면 그처럼 자신의 내면이 묻어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을까. 계속되는 수술로 몸은 점점 그녀의 것에서 멀어져간다. 그렇게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프리다는 결국 너무 고통스러워 죽음을 갈구하다 소원을 이룬다. 비록 길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으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림책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강한 인상을 주는 정도였는데 이 책으로 읽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가슴이 싸한 것이 기분까지 가라앉는다. 엄청난 교통 사고를 당하고도 자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다니... 책을 덮고 났을 때의 이 기분은 무엇일까. 여자로서 남편인 디에고의 무수한 여성편력 때문에 고통받는 프리다가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계속되는 사고와 같은 불행 때문일까. 글쎄... 그 둘 다 아닌 것같다. 아마도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한 한 여성을 보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그래서 남자들 일색인 화가 반열에 당당히 여성화가로서 이름을 나란히 한 인물을 보았는데 너무 일찍 사라져간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뭇 여성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으면서 또 그 여성들을 뿌리치지 않으면서도 진정으로 프리다만을 사랑한 디에고의 마음이 아릿하게 남는다. 어느 한 가지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그런 모습의 프리다가 계속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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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악기 피아노 지식과 정보가 있는 북오디세이 10
크리스토프 하임부허 지음, 하이케 프랑에 그림, 임정은 옮김, 김화영 추천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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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피아노 배우는 것이 필수 과목이다시피 한다. 모두가 배우니까, 그리고 악기 하나쯤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이가 싫다고 해도 달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남들이 하는 만큼은 시키고자 한다. 오죽하면 주위에 피아노를 안 가르치는 부모가 있다면 굉장히 용기있다는 말을 하게 될까.

우리 아이들도 물론 피아노를 배운다. 때론 힘들어 하기도 하고 지겨워 하기도 하지만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 치는 소리를 듣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대견하다는 생각과 그래도 배운 티가 나는구나(속된 말로 돈낭비는 아니구나)라는 안도감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큰 아이가 마음을 정리하거나 다스릴 때  피아노 치는 것을 보며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가끔은 힘들어 해도 억지로 이 고비만 넘기자고 꼬셔가며 가르치고 있다.

둘째가 한창 피아노 치는 것이 힘들다고 할 때 이 책을 보았다. 여기에는 피아노에 대한 모든 것이 나와 있다. 피아노의 역사, 피아노의 구조,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의 악기, 피아노의 종류, 작곡가와 피아니스트 뿐만 아니라 음과 조, 그리고 피아노 치는 자세까지 총망라 되어 있다. 물론 그림책이라는 한계상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는 않아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은 다 들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판형이 커서 그림이 시원시원하게 그려져 있어서 좋다. 특히 피아노 구조를 들여다보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댐퍼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약간 헤매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이도 이 부분을 가장 흥미롭게 보았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음악을 배우며 부호 중 피아노가 있는데 그것이 왜 악기 이름과 똑같을까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의문을 잊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풀었다. 처음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이 악기를 발명했을 때는 이름이 '피아노 에 포르테'였다고 한다. 그것이 '피아노포르테'로 불리다가 줄여서 다시 '피아노'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구나...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보다 알고 보니까 훨씬 재미있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피아노를 위주로 다루다 보니 작곡가나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 이제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각 작곡가에 대해 궁금해지고 피아니스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작곡가는 위인전이라던가 여러 책으로 나온 것이 있지만 피아니스트에 대한 것은 어린이책으로 보질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또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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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실험왕 1 - 산성.염기성 대결 내일은 실험왕 1
곰돌이 co. 지음, 홍종현 그림, 박완규.사이언피아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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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과학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커서 과학자가 된다나 어쩐다나... 오죽하면 7살 때

"난 7년을 사는 동안 현미경을 한 번도 못 봤다."

며 신세한탄(?)까지 했던 아이다. 그러면 큰 아이가 옆에서 톡 쏘아붙인다.

"야, 난 태어난 지 10년 돼서 현미경 처음 봤거든!"

그러던 차에 미생물 체험전에서 현미경을 보고는 엄청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처럼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실험 도구를 꺼내 놓으니 일단 무조건 실험을 하자고 조른다. 내 참... 시간이 없는데... 결국은 다음날로 간신히 미뤄두었다.

큰 아이는 책을 보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간다. 얼마나 깔깔거리면서 보던지... 궁금함을 참으며 아이가 읽은 다음에 내가 읽었다. 사실 내 경우에 만화는 아직 적응이 잘 안되어서인지 읽는 속도가 더 느리다. 아이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도 어쩌랴. 정신이 없는 것을... 그렇게 책을 다 읽으니 옆에서 큰 아이가 턱을 괴고 물어본다. 굉장히 재미있지 않는냐고... 마지막에 감동적이지 않았냐고... 뭐 그 정도는 아닌데, 아이는 감동까지 받았단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오후에 일이 있어서 늦게 들어오자 작은 아이는 무조건 실험 상자를 꺼낸다. 내일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전날 한 약속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누 가져와라, 식초 가져와라, 간장 가져와라 하면서 실험을 했다. 아이들은 리트머스 종이 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하긴 어른인 나도 신기했다. 분명 나도 어렸을 때 보았던 것인데 다시 봐도 신기하다. 그런데 간장이 문제다. 간장 색 자체가 있으니 무슨 색으로 변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중성인가 봐'로 결론을 내렸는데 마른 뒤에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이다. 푸른색 리트머스지가 붉게 변했으니 산성인 것이다. 다음날 결론을 정정했다.(사실 이 때는 아직 책을 읽지 않았을 때였다.) 나중에 책을 읽다 보니 역시나... 간장은 산성이었다. 만약 이것을 무작정 외워야 했다면... 아마 돌아서면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험했던 리트머스 시험지를 종이에 붙여서 산성과 염기성, 중성으로 나누어서 정리해 놓으니 전혀 헷갈리지 않는다.

다음에는 지시약을 만들어서 실험을 해 봐야겠다. 지시약을 넣어서 각각 색이 변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르겠지. 상상만 해도 재미있고 뿌듯하다. 내가 너무 좋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작은 아이는 비록 책은 읽지 않았지만 실험 하나만으로도 만족해 한다. 큰 아이는 벌써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정보 페이지도 읽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는 걸 보면서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흥미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흡수하려고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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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쟁사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문열 지음, 조용준 그림, 박우현 논술 / 휴이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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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작품이라는 것이 작가를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책을 평가할 때는 역사와 사회를 같이 보고 평가하는 경우와 오로지 작품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긴 하던데... 기억이 잘 안난다. 여하튼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을 가지고는 그 작품을 올바로 판단했다고 하기엔 뭔가 2% 부족하지 않을까. 어차피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내면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작가가 그 사회를 살아가면서 체화한 것이 바로 삶이니까.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내가 온전히 책에 빠지는 데 많은 방해를 받았다. 물론 내가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궤적 정도는 알고 있다고 본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여기저기에 나오는 것을 종합해 보았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이문열의 작품은 좋아한다. 작품으로 대할 때는 역시 우리 나라의 몇 안 되는 훌륭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은 그의 작품을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말을 조금 바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작은 어땠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실 이 작품을 고쳤다고는 해도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단어도 어렵고 잘 안 쓰는 단어들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뭐... 그런 것쯤이야 따로 주석을 달아 설명을 해 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통쾌한 그의 일설에 나까지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비록 청소년들이라 해도) 상황판단을 잘 못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작은 사실 하나를 가지고 상상을 덧붙여 만든 드라마를 가지고도 진실인 양 착각하지 않던가. 그러기에 이 책에서는 중간중간 책 내용이 허구임을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거의 매 페이지마다 나오는 말풍선은 읽는데 방해가 된다. 물론 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만약 우리가 자주적으로 독립을 했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당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고구려의 땅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면, 그리고 최종적으로 전쟁을 겪었더라도 통일을 했더라면... 이런 가정이야 끝없이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는 현재 분단되어 있으며 자주적인 힘이 극히 미약하다. 작가도 그런 울분에서 이 책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남들은 게릴라니 어쩌니 해도 당사자들은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신념을 가지고 숱한 어려움을 겪었던 체. 사실 게릴라라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게릴라가 될 수도 있고 독립운동가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것은 독립운동이고 남이 하는 것은 게릴라라는 이분법은...? 책을 덮고 나서 문득 이라크가 생각났다. 그들도 성전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건다. 그들을 우리는 게릴라라 부른다. 그러면서 애꿎은 사람들만 희생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이것은 분명 우리가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우리는 전적으로 미국의 눈으로 보고 있다. 아마 작가도 그 쪽이 아닐까.(작가를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긴 현재 우리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뭐. 자주라는 말은 때에 따라 그 기준이 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뜻을 달리해서 사용하는 현재의 행태를 보면서 그들(기득권자들)이 진정 통일을 바라기는 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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