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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라고 말해 봐 ㅣ 그림책 도서관 46
시빌레 리크호프 글, 소피 쉬미트 그림,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거리가 먼 사이에 '미안해'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반면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말이 잘 안 나온다. 그런데 아이들은 의외로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한다.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분명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말을 선뜻 하지 못하고 혼자 별별 상상을 다하는 다람쥐 이야기다. 나무 위에서 도토리를 먹다가 떨어트렸는데 하필이면 잠자고 있는 맷돼지 코위로 떨어졌다. 맷돼지 로미오는 귀찮게 하면 사나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람쥐 루키가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만약 상대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오히려 금방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때부터 루키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 로미오가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다른 친구들이 자신을 일러바칠거라는 걱정, 자기가 그런 걸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합리화, 로미오가 코를 다쳐서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차라리 다른 열매를 딸 껄 그랬다는 후회와 자책까지 별별 생각을 다한다. 그러다 도망치기로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당장이라도 로미오가 쫓아올 것 같아서.
그러다 결국 토끼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토끼도 루키를 숨겨줄 만한 곳이 없다. 토끼는 루키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아챘는지 루키를 데리고 맷돼지에게 데려간다. 둘을 양자대면 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간신히, 정말 어렵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로미오는 아주 쉽고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루키는 그동안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그런데 마음은 간사한 법이다. 로미오가 루키의 도토리를 이미 먹어버렸다고 하자 지금까지 두렵고 미안했던 감정은 어디가고 오히려 로미오가 괘씸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팔짱을 끼고 한 발을 굴러대는 루키의 표정이란. 그러나 로미오가 이번에도 역시나 쿨하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루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다고 말하고 상황을 끝난다. 루키의 고민도 당연히 끝나고.
마지막 장면에서 글에서는 둘이서 무얼 찾는지 두고보자고 했는데 그림에서는 셋이 걸어간다. 그리고 덩치가 큰 로미오가 가운데 있고 루키가 왼쪽(오른쪽 페이지에서 왼쪽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 때문에 잘 안 보인다.)에 있어서 오히려 토끼가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마치 맷돼지와 토끼 이야기인 것처럼. 그 점이 약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