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가 되었다. 2018년이다. 해가 바뀌어 나이만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억울하다. 그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알겠다.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게 억울한 것이다. 또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알겠다. 한 해를 허투루 보낸 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었고 발레를 배운 한 해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서 조금이라도 지혜로워졌을 테니, 책을 읽어서 조금이라도 글쓰기가 나아졌을 테니 한 해를 보냄이 억울하기만 한 게 아니다. 발레 실력도 향상되었을 터이다. 그러니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비가 온 뒤의 세상을 본 것처럼 기분이 산뜻해진다.
2.
작년에 두 달쯤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고 퇴원한 뒤에도 자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다. 이러다가 돌아가시는 게 아닌지 긴장할 때가 많았다. 힘든 한 해였다.
한 해 동안 사느라 수고했다고 여겨 내가 나에게 선물을 했다.
코트를 샀다. 사이즈는 55.
백팩을 샀다. 색깔은 감색.
그래서 백팩이 세 개가 되었다.
저 코트에 백팩을 메고 다닐 것이다. 어울리려나? 남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난 백팩을 메고 다닐 것이다. 백팩을 메고 다닌 사람은 알겠지만 다른 가방에 비해 편하기 때문이다.
책 다섯 권을 샀다. 그중 두 권만 공개한다. 이 두 권을 사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둘 다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벌써 밑줄을 그은 글이 많다.
3.
고뇌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괴물 같은 사람이 많다. 영화 속에도 많고 현실 속에도 많다. 남에게 해를 끼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만 괴물인 게 아니다. 자신의 말이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헤아려 보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할 때 그 말은 때로 흉악한 도구가 되어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이럴 때 그는 괴물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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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키 작은 남자는 패배자’라고 말해 공분을 사게 된 일도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 말은 홍대를 다니는 한 여성이 한 말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의식이 한 말이다.(275쪽)
잘 알려진 대로 톨스토이의 문학과 그의 삶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문호 톨스토이는 인류의 교사를 자임했지만 인간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의 가장 열등한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 괴리를 좁히기 위해 고뇌했고 그것이 톨스토이를 위대한 인물이 되게 했다. 고뇌는 공동체의 배수진이다. 그 진지가 무너지면 우리는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275쪽)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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