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재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고마울 때가 있다. 음악을 만드는 재능과 음악을 연주하는 재능이 존재해서 나를 즐겁게 해 줄 때 그렇다. 요즘 조지 윈스턴의 <December>를 들으면서 음악가의 재능에 감사했다. 음악가의 예술적 재능이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 주는가. 서머싯 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작가의 예술적 재능이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 주는가. 그러니 내게 예술적 재능이 없음에 서운해 할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서머싯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1>과 <인간의 굴레에서 2>.
두 권을 합해 천 쪽이 넘는 분량의 글을 다 읽었다. 어떤 날은 십 쪽 이하의 분량을 읽었고 어떤 날은 백 쪽 이상의 분량을 읽었다. 적게 읽은 날도, 많이 읽은 날도 좋았다. 이런 소설이라면 아무리 두꺼워도 지루해 하지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재밌고 유익한 독서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불구의 다리를 가진 몸이어서 자신은 청년이 되어서도 어떤 여자와도 연애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한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고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며 행복해 하다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또 다른 여자와의 만남에선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정한다. 그림 그리기를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그리하여 그림을 배우러 파리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자 자신은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우울해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로를 바꾸기로 하고, 화가가 되는 길을 포기하며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정 같았다. 하지만 의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는 의사가 되기까지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깊이 깨달아 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줄거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 그것은 작가의 사색을 감상할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 그 문장들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그래서 그 문장들을 옮겨 적고 그것과 관련하여 나의 단상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글을 써 봤다. 글의 제목으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이게 사랑이란 말인가?’로 정했다.
제목 : 이게 사랑이란 말인가?
그는 (그녀에게) 정열적으로 키스를 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침에는 전혀 끌리지 않던 그녀가 오후에는 좀 괜찮게 느껴지고, 밤이 되니 이처럼 슬쩍 손이 닿기만 해도 짜릿짜릿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자기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말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대낮이라면 도저히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못하였으리라. 필립은 자신이 쏟아내는 말들이 놀랍고 대견스럽기만 했다.
“사랑의 고백이 너무 근사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생각해도 그랬다.
“아니, 다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에요. 뜨겁게 타는 내 마음을 말이에요.” 그는 열정적으로 속삭였다.
너무 근사했다. 사람을 이렇게 흥분시키는 놀이는 처음이었다. 놀라운 일은 자기가 속삭인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감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말보다는 감정이 조금 과장되어 있을 뿐이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43~244쪽. ----------
필립은 연상인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에 빠진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는 그녀를 만나는 게 싫어진다. 결국 필립은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버리고 만다.
어떻게 해서 그리된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가장 추한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의 그 모습, 캐미솔과 짧은 속치마 차림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잊혀지지 않았다. 거칠거칠한 피부, 목의 옆쪽에 길게 패인 주름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승리감은 곧 사라져버렸다. 나이를 다시 따져보니, 도저히 마흔 아래로 잡을 수가 없다.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렸다. 상대는 못생기고 늙은 여자. 필립의 머릿속에는 퍼뜩, 신분으로 봐서는 지나치게 야하고, 나이로 보아서는 지나치게 젊은 사람의 옷차림을 한, 주름지고 초췌하고 화장을 짙게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름이 끼쳤다. 갑자기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스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견딜 수 없다. 제 자신이 끔찍스럽게만 느껴진다. 이게 사랑이란 말인가?
그녀를 대면하는 시간을 늦추려고 필립은 되도록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 <인간의 굴레에서 1>, 248~249쪽. ----------
어느 날엔 슬쩍 손이 닿기만 해도 짜릿짜릿한 느낌을 주던 상대가 어느 날엔 소름이 끼칠 만큼 보기 싫은 것, ‘이게 사랑이란 말인가?’ 하고 필립은 의아해한다. 필립의 시각에서 보자면 사랑이란 감정은 무가치하다. (만약 이것이 사랑의 본모습이라면 상대로부터 달콤한 사랑의 고백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랑’을 믿고 인생을 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필립의 시각을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될까? 나는 뒤집어 해석해 보았다. 필립이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대는 못생기고 늙은 여자"임에도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만들었던 사랑의 힘은 경이롭지 않은가.
“사랑의 고백이 너무 근사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생각해도 그랬다.
“아니, 다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에요. 뜨겁게 타는 내 마음을 말이에요.” 그는 열정적으로 속삭였다.
너무 근사했다. 사람을 이렇게 흥분시키는 놀이는 처음이었다. (243~244쪽)
자신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에너지의 감정을 분출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위대하다.
결과적으로 ‘사랑이란 감정은 변한다.’라는 전제 하에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필립의 시각에서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무가치한 것, 필립의 시각을 뒤집어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위대한 것.
여기서 문제 제기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진실하며 자신보다 상대를 더 아끼는 사랑, 이런 ‘완전한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
어쩌면 ‘완전한 사랑’이란 건 우리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데 어떻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건 ‘진짜 사랑’을 흉내 내고 있는 ‘가짜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닐까.
문제 제기 또 하나. 상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데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투를 하는 게 ‘사랑’인가.
어째서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가 친구를 만나서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즐거워하면 질투를 하고, 상대가 등산이나 낚시에 즐거워하면 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상대가 행복한 걸 싫어하는 게 사랑인가. 오히려 ‘당신이 즐거워하는 걸 보니 나도 즐겁다.’라고 해야 ’사랑’이 아닌가. 또 어째서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둘이 다툰 뒤에 상대가 괴로워하면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가. 상대가 불행한 걸 좋아하는 게 ‘사랑’인가. 오히려 ‘당신이 괴로워하는 걸 보니 나도 괴롭다.’라고 해야 ‘사랑’이 아닌가.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사랑’의 뜻을 알아보았다.
(1)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2)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3)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이 세 가지 중에서 우리는 사랑의 뜻을 무엇으로 알고 있어야 할까? 나는 사랑을 이 세 가지의 뜻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문제 제기를 했다. (참고로, 소설 속 필립의 사랑은 (1)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사랑이란 말을 쓸 땐 (1)번의 뜻으로 ‘사랑’을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3)번의 뜻으로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자신은 (1)번의 뜻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상대는 (3)번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서로 오해하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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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다.
오늘이 만우절이라고 하던가.
태어나고 보니 만우절이었다는...
웃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