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쓰고 싶은 글 : 글쟁이라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이외에 더 좋은 방법이란 없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작가들은 얼마나 많이 읽고 많이 써서 그 위치에 도달했을까. 그게 늘 궁금하다. 이곳 서재만 해도 글 잘 쓰는 이들이 많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 쓰는지 궁금하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물론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도 세상을 보다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이다.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글이라면 무용지물과 같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우선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잘 해석한 글도 좋은 글이 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가장 좋은 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
그 다음으로 좋은 글은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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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이 올발라야 하겠다. 이것 쉽지 않다. 하지만 독서가 도움이 될 수는 있다.
2. 일 년 동안 구입한 책 :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사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알라딘에서 얼마나 책을 샀는지 노트를 봤더니 총 25권이었다. (나는 책을 구입한 것을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 월 평균 두 권 꼴이다. 참 적게 샀다. 한 달에 열 권씩 구입하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해와 비교하면 작년이 가장 적게 구입한 해가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읽지 않고 쌓여 있는 책이 많아서다. 그러면 쌓여 있는 책이 많은데도 왜 또 구입하는가 하면, 읽고 싶은 신간이 나오면 사고 싶기 때문이다.
매달 구입하기보단 몇 달에 한 번 한꺼번에 구입하는 방식을 택할 때가 많다. 내게 책이 배달되기까지의 타인의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다. 달랑 책 한 권을 주문하면 그 책이 내게 오기까지 다른 사람들의 노동도 거치지만, 우선 책을 건네받을 때 직접 보게 되는 택배 아저씨의 노동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input이 있어야 output이 있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우리 생활이란 게 책만 읽으며 살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한가하지 않기 때문에 늘 계획한 것보다 적게 읽게 된다. 나의 계획은 구입한 신간 두 권과 집에 쌓여 있는 구간 두 권을 매달 한 달 안에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달에 네 권을 읽는 것이다.
3. 글을 써서 좋은 점 : 글을 쓰면 꼭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좋은 점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심심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가족에게 잔소리가 적다는 점이다.
내가 다른 주부들에 비해서 가족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이건 순전히 내가 바빠서다. 내가 돈을 벌며 산 적도 많지만 그것보다도 책읽기와 글쓰기의 취미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늘 바쁘다. 이쪽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 남편과 애들에게 쓸 에너지의 양이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 가족은 나의 취미생활로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론 가족에게 미안하다. 내 세계에 빠져 지내서.
4. 절필의 예감 : 어느 날 갑자기 그럴 때가 있다. 다시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때. 여태까지 어떻게 글을 써 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글 쓰는 일이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때. 요 며칠 전도 그랬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럴 때 나, 절필하기로 했어, 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소설을 쓰는 선배가 있는데, 나의 절필 예감의 얘기를 듣더니 막 웃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pek가 절필한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하겠어?”
우리는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정곡을 찌르는, 맞는 말이다. 내가 절필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섭섭해 할 것인가. 아무도 관심 없을 터. 그런 선언은 대작가나 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절필 선언’도 자격을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글만 쓰며 살 수는 없잖아.’
이것은 글이 써지지 않아 나의 무능함을 숨기고 싶을 때 하는 생각이다.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남들도 그럴까.
이번에 일주일이 넘도록 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런 게 나의 무능함 때문.
(나, 그래도 언젠가는 유능해지리라고 착각할래.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우리에겐 행복을 위해 착각이 필요하다고 했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