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에게


“엄마 어디야?”

네가 초등하교 5학년인 열두 살이었을 때 내가 너에게서 가장 많이 받았던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엄마 어디야?”였다. 내가 시장에 가거나 친구 모임에 가서 집에 없는 날이면 너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가 없음을 알고 그런 문자를 내게 보내곤 했다. 내가 어디에 있다고 말하면 너는 “언제 와?” 하는 문자를 보내고 나를 기다렸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허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도 네가 5학년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너의 주된 관심은 엄마였으니 엄마가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했을 터. 그래서 핸드폰을 갖게 되자 내게 그런 문자를 보냈으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내 눈에 애기였다. 언제 커서 집에 엄마가 없어도 찾지 않을까, 언제 커서 나로부터 독립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네가 중학생이 되고부터 돌변하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내가 외출을 해도 “엄마 어디야?”라는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애가 아니라 집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중학생 소녀가 된 듯했다. 그때 난 너에게도 너의 세계가 생긴 거라고, 드디어 엄마와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세계를 가진 거라고 여겼다. 


너에게 라디오를 듣는 취미가 생긴 것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디오가 친구가 되어 주니 엄마의 외출로 불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중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을 사귄 것도 한몫했겠다. 이제 엄마의 존재는 너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되었다. 이 사실이 기뻤다. 결혼한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부담을 갖고 있기에 아이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돌아보면 엄마를 찾던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은 반대로 내가 너를 찾으니 말이다. 밤이 되면 너의 귀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일이 언제 끝나니?”, “언제 와?” 하고 내가 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우리 모녀 관계에서 기다렸던 자는 기다리게 하는 자가 되고, 기다리게 했던 자는 기다리는 자가 되었다.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 


엄마 타령이나 하던 아이가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게다가 노력 끝에 절실히 바라던 한 전문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너에게 용돈을 주었던 내가 오히려 너에게 용돈을 받고 있는 요즘 자식을 키우는 보람을 느낀다. 자식을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사는 너는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하여 너는 내게 고마운 딸이다. 


너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너를 항상 응원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파이팅!  

                        

                                                                 2025년 5월 27일 엄마가.




........................

한 달 전쯤 딸에게 내가 쓴 편지 내용이다.  

딸 생일날에 생일을 축하한다며 축하금을 주었는데 딸은 받지 않겠다며 

그 대신 자신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쓰게 된 것이다.  

노트북으로 쓰기 시작하여 편지지에 옮겨 적고 편지 봉투에 넣어 딸에게 전했다.

참고로 남편도 똑같은 부탁을 받아서 딸에게 편지를 써서 주었다.

딸은 힘들 때마다 남편과 내가 준 편지를 읽겠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이런 글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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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5-06-23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뭉클해요. 따님을 참 잘 키우셨습니다. 아름다운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Vanessa 2025-06-24 01:38   좋아요 1 | URL
ㅇㅇ

페크pek0501 2025-06-24 12:29   좋아요 1 | URL
문나잇 님. 아름다운 글이라니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십니다. 자식을 키워 본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올린 글일 뿐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0   좋아요 0 | URL
Vanessa 님. 댓글 한 표,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5-06-23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돈 대신 편지를 부탁하다니 너무 사랑스럽네요. 페크님 편지도 감동적입니다..

페크pek0501 2025-06-24 12:31   좋아요 0 | URL
감동적이라는 표현, 참 기분 좋네요. 별로 감동적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독서괭 님의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카스피 2025-06-24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님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네요^^

페크pek0501 2025-06-24 12:33   좋아요 0 | URL
어떤 점이 딸을 잘 키운 거라고 느끼신 걸까요?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노력하며 사는 일꾼이라서?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딸이라서? 어느 포인트에서 느끼셨을지 잘 모르겠어염. 카스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희선 2025-06-24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페크 님한테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멋지네요 그런 말 듣고 편지 못 쓴다고 하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페크 님은 쓰셨군요 어릴 때 따님이 어땠는지도 기억하시고... 따님도 잊은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해마다 편지를 쓰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6-24 12:36   좋아요 0 | URL
희선 님은 편지 얘기에 느낌이 남다르실 듯합니다. 처음엔 편지 쓰기 싫다고 그냥 돈으로 받으라 했지요. 글이란 게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이지 꼭 해야 하는 숙제 같으면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꼭 편지를 받고 싶다니 어쩔 수 없었지요. 그래도 우리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 술술 써졌어요. 해마다 쓰는 건 못 하겠고, 몇 년에 한 번쯤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5-06-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따님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었네요.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그 마음도, 그리고 이에 편지를 써주신 두 분의 마음과 결행도 참 아름답습니다. 편지 내용도 감동이구요ㅠㅠ
시간에 따라 표현하는 법은 달라졌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돈독함을 저도 느끼게 되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어버이날에 부모가 애들한테 편지나 카드를 받는 일이 있어도 애들한테 편지 쓰는 부모는 흔치 않을 겁니다. 딸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어요. 요즘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이유가 아마 딸이 더 효도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잉크냄새 2025-06-24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에게 평생을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 생겼네요.

페크pek0501 2025-06-25 11:45   좋아요 0 | URL
아, 소중한 보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6-2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쓰신 편지도 좋지만, 힘들때 부모님이 쓰신 편지를 읽겠다는 따님도 참 좋아보여요.
편지 쓰는 일들이 없지 않지만, 부모님께 쓰는 일은 적고, 반대로 부모님이 남겨주신 일들도 적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화목한 가정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페크님, 날씨가 계속 더워진다고 해요.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7 11:19   좋아요 1 | URL
힘들 때 부모의 편지를 읽겠다는 것, 저도 우리엄마한테 말해 보지 않은 거네요.ㅋㅋ
주위를 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화목한 것 같아요.
아직은 밤잠을 잘 때 추워서 얇은 이불을 덮고 자기에 요즘 날씨가 좋다고 느낍니다. 낮에 더운 것쯤은 견딜 만합니다. 이 정도의 더위로 여름이 진행되길 바란다면 헛 꿈, 이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