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위 내시경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을 때 검사를 마치고 나서 의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질문할 사항을 미리 종이에 적어 가지고 갔다. 걷기 운동을 할 때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걷는 것도 건강에 좋은지, 커피가 위에 나쁘다고 들었는데 하루에 몇 잔까지 괜찮은지 등을 물었다. 내 물음에 의사는 성실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군요.”라고 덧붙였다. 이 말, 맘에 들었다. “건강염려증이 있으시군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상대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는 게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이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아 걷기 운동을 하고 발레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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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를 통해 ‘이혼숙련캠프’를 시청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부부 사이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부부 간 말을 조심해서 한다면 싸우는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게 말하는 배우자에게 싸움을 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곱게 하려면 언어를 다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프란츠 카프카가 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것으로, 부자지간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다. 실제로 카프카는 아버지와 불화하여 고통을 겪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가 혹독한 말과 판단으로 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닌 막강한 힘에 대해 마치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구시더군요. 저도 아버지에게 말로 상처를 입힌 적이 물론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말하는 순간에 벌써 제 자신도 괴롭다는 것을 알았고, 하던 말을 멈출 수가 없어서 내뱉었을 뿐이었어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후회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말로 끝없이 남을 공격해 댔고, 말하는 중에나 말해 버린 후에나 그 누구도 마음에 걸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카프카, 53쪽)


아버지의 말씀은 세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판단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고, 그 부분에서 아버지는 결국 당신의 의도를 완전히 망친 셈입니다.(카프카, 53쪽)


화자인 아들은 아버지의 언어 사용을 통해서 아버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식을 동물 사료라고 부르며, 집짐승같은 가정부가 요리를 망쳐 버렸다고 하셨어요.(카프카, 54쪽)


이 한 줄의 글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의 인격을 말해 주는 법이니까. 음식이 맛없다고 해서 가정부를 집짐승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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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인간의 본성


사람의 본성은 사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꾸밈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격앙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문제, 낯선 사태에 임하여서도 잘 나타난다. 습관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베이컨, 174) 






지난 주 가족이 함께 2박 3일간 바다가 보이는 곳에 머물렀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바다가 있는 사진이 가장 맘에 들었다.

가는 곳마다 바다의 모습이 달랐고 바다의 색깔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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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6-0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 여행을 갔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ㅠ
프사도 그렇게 벽지도 그렇고 완전 여름이네요.딱 요맘 때가 좋죠. 초여름.
이제 2주후면 장마 걱정해야 하고 장마 지나면 더위 걱정해야 하고,
더위 지나면 태풍 걱정해야하고. 줄줄이네요.
물론 그렇다고 꼭 걱정만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 인상이 중요하듯 언상도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해요.
인상은 좋은데 언어가 박색이면 안 어울리잖아요. 인상이 안 좋아도 언어를 잘 쓰면
밉지가 않고. 그런 거죠.
칼럼은 다시 쓰고 계신가요?^^

페크pek0501 2025-06-05 10:37   좋아요 1 | URL
여행한 지가 오래되셨군요. 스텔라 님은 맘만 먹으면 여행 갈 수 있지요.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시는 거죠. 저는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행을 즐기는 분들 보면 저도 부럽습니다. 맛집 다니며 사 먹는 건 여행 중 큰 기쁨이더군요.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는 게 좋더라고요. 3일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이틀을 쉬었네요. 이젠 체력이 안 따라줍니다.ㅋㅋ 장마, 폭염, 태풍... 근심의 그림자는 늘 있죠.
친구를 사귈 때도 말을 곱게 하는 이가 좋죠. 모든 인간관계가 그럴 거라고 봐요.
칼럼은 조금밖에 쓰질 못했어요.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레이스 2025-06-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프카의 <선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넘 슬펐어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읽었어요. 저는 판결, 이란 제목으로 봤는데 같은 작품일 겁니다. 아버지가 사형을 선고하자 아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끝나는 걸로 기억합니다. 충격적인 소설이었어요. 아버지는 체격이 좋고 권위적, 가부장적인 듯하고 아들은 마르고 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작가가 될 재목임을 못 알아보고 뭐든 못마땅해한거죠. 아버지가 아들의 개성을 존중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버지가 엄격하면 무조건 아들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인 거죠.^^

꼬마요정 2025-06-05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가까이 있고 소중한 사람에게 말을 막 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죠ㅠㅠ 카프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 아버지는 자신에게 막말하는 사람 못 견뎠을 거 같아요…

바다가 정말 이쁩니다. 이제 여름이로군요…

페크pek0501 2025-06-05 10:46   좋아요 2 | URL
그래서 가족 간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가깝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위인이죠.
여행 가서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찍는데 건질 것은 꼭 바다가 있는 풍경이더라고요.
꼬마 요정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잉크냄새 2025-06-05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심과 염려의 경계는 불안과 집착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06 12:19   좋아요 0 | URL
평상시엔 태평하게 살다가 몸의 이상 증세가 느껴지면 불안과 집착이 생겨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땐 건강염려증이 있는 상태 같아요. 큰 병에 걸려 고통받고 사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희선 2025-06-07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람한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지 않나 싶어요 가까워서 그런 거겠군요 식구도 남이기는 한데, 그걸 생각하면 조금 조심할지도... 부모한테 상처 받은 건 평생 잊지 못하기도 하겠습니다

페크 님 바다 보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6-10 20:34   좋아요 1 | URL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조심을 하지 않아 상처받는 일이 있지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쩌면 가장 불친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습니다. 겨울바다도 좋지만 여름바다도 좋더군요.^^

서니데이 2025-06-0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휴가 다녀오셨군요. 너무 덥기 전에 여름 휴가도 다녀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더운 시기에 나가면 기분 전환은 될 수 있지만 어디든 너무 더워서 에어컨 냉방 되는 실내가 더 좋은 것 같아서요.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가 잘 나오면 안도하게 되는데, 그래도 질문하고 싶을 때가 있을거예요. 건강염려증으로 보이는 건 조금 걱정인데, 미리 필요한 내용을 준비해가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6월이 되면서 날씨가 이제 여름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해요. 서울도 거의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더운 날이 되었다고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10 20:38   좋아요 1 | URL
아주 더운 여름보다 5~6월의 여행이 좋더라고요. 폭염일 때는 집콕, 이 가장 좋아요. 저는 암이 가장 무서워요. 고통을 죽는 날까지 치러야 하거든요. 차라리 전쟁이 나서 죽게 된다면 암보다 덜 무서울 것 같아요.
오늘도 더웠답니다. 저녁이 되니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 여름 저녁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어요. 여름도 매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5-06-17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말 날씨가 많이 덥고, 이번주는 비가 오고 습도가 높더니 다시 더워지네요.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비가 조금 더 자주 올 것 같아요. 일찍 더운 것 같은데, 한주 사이에 더 많이 더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저녁엔 덜 더워서 창문 닫고 편안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6-20 11: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잘 지내시겠죠? 저는 여름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닙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닌데 몸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기운도 없고요. 요즘 낮엔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것이 참 좋네요. 일단 밤잠을 더위로 설치지는 않으니까요.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yamoo 2025-06-20 0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장에서도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그걸 듣는 사람들도 별로 문제제기를 안하구요...가족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는데, 가족이라고해서 막말을 하는 부모나 부부가 많은 듯해요.

그나저나 저 바닷가 풍경...넘 멋지네요. 어딘가욤? 국내면 여름 휴가 때 가볼 의향이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25-06-20 11:50   좋아요 0 | URL
그게 잘못된 거라고 인지할 줄 알면 막말을 하지 않겠지요.
특히 친숙한 가족간이기에 말조심이 필요합니다.
바닷가. 부산입니다. 부산 해운대를 추천합니다!!!

yamoo 2025-06-20 14:24   좋아요 1 | URL
헐~~~ 해운대군요!! 해운대는 총 4번 갔는데...다른 시각에서 본 뷰라 새롭게 보입니다요!!

페크pek0501 2025-06-22 10:51   좋아요 0 | URL
사진은 각도, 가 중요하죠. 각도에 따라 다른 풍경이 되어요.
위의 사진 두 장은 우리가 투숙했던 호텔방 (12층이던가?) 높은 층에서 찍은 거랍니다.
1) 땅과 바다와 하늘을 삼등분한 사진,
2) 베란다의 의자를 찍은 사진.
어디를 놀러 가도 바다가 있는 풍경 사진이 가장 맘에 듭니다.^^

모나리자 2025-06-2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 색깔이 그림에 나오는 풍경 같아요~~
저도 내일 바다에 놀러갑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갔던 작은 해수욕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네요.
카프카의 아버지와의 불화는 유명하지요. 카프카가 문득 읽고 싶어집니다.^^
주말 잘 지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6-22 10:57   좋아요 0 | URL
모나리자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여름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있어 휴식 시간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아프지는 않은데 목소리가 변하더군요. 무리하면 더 병이 날 것 같아 조심하고 있어요.
바다로 놀러 가시는군요. 좋겠습니다. 바다 사진 많이 찍으시고 눈에 많이 담아 오시길... 아이들이 크고 나니 해수욕장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천탕, 수영장 같은 곳에 갑니다. 카프카를 읽으면 마음이 아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