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23~24쪽)
⇨ 한국의 1970년대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아래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사람이 애국자였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이 애국자가 되는 시대다. 왜냐하면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애국자의 기준이 달라진 것처럼 그 무엇도 시대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영구불변하는 진리나 법칙은 없다고 하겠다.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묵과한 것이 내일에는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2.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24쪽)
⇨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내가 동의하는 이유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마음이 더 넉넉해지는 것도 아니고 더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어서다. 오히려 늙을수록 마음이 더 좁아지는 게 아닐까 한다. 주위를 보면, 노인들은 초라하게 늙어 가고,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저하되고, 동작이 느려지기도 하는 등 대체로 발전보다는 퇴보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존감이 낮은 이가 마음이 넉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글을 쓰고 보니 다음과 같은 글귀가 떠오른다.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서머싯 몸이 쓴 소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글귀다.
3.
오늘날 철학 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단 말인가?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운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마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32~33쪽)
⇨ 배운 대로 살지 않는다면 배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4.
옷을 구입할 때 우리는 참다운 실용성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심리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점에 더 좌우된다. 일을 해야 할 사람에게 그가 옷을 입는 목적은 첫째 체온을 유지하기 위함이요, 둘째 현재의 인간 사회에서는 알몸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보자. 그러면 그는 지금 있는 옷만 가지고도 중요한 사업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42쪽)
나는 어떤 사람이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낮게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건전한 양심을 갖기보다는 유행에 맞는 옷, 적어도 깨끗하고 기운 자국이 없는 옷을 입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중략) 그는 무엇이 진실로 존경할 만한 것인가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둔다.(43쪽)
⇨ 자기 줏대도, 자기 주관도 없이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로우의 글이다. 옷을 입는 목적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건 요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한 것 같다. 소재도 디자인도 색상도 가격도 같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명 브랜드의 옷을 선호할 테니까.
특히 부유층들은 외제 사치품을 사길 좋아한다. 백화점에 갔다가 명품 핸드백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여성들을 본 적이 있다. 고가의 수입품일수록 구매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가의 수입품이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굳이 고가의 제품을 살 이유가 없지 않을까. 고가의 수입 자동차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겉모습을 중시하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이 근처의 일반 가옥은 대략 800달러 정도인데 그만한 돈을 모으자면 부양가족이 없는 노동자라도 10년 내지 15년이 걸릴 것이다. 이 계산은 노동자의 하루 수입을,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평균 1달러로 따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자기의 오두막을 마련하려면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가 집을 마련하는 대신 세를 사는 것을 택하더라도 상황이 더 나아진다고 볼 수 없다.(55쪽)
⇨ 소로우(1817년 출생)가 ’내 집 마련‘을 위해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여겨도 무방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