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22장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해이다’
상인은 젊은이의 낭비가 있어야만 장사가 잘되고, 농부는 밀 값이 비싸야, 집 짓는 이는 집들이 무너져야 돈을 번다. 사법관들은 사람들 사이의 소송과 분쟁이 있어야 일거리가 있고, 성직자들의 활동과 영역조차 우리 죽음과 악덕의 덕을 본다. 의사란 자기 친구의 건강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으며, 병사는 자기 고장의 평화마저도 기꺼워하지 않는다고 고대 그리스의 한 희극 작가는 말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각자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내적인 소망들이 대개 남을 희생시키며 생기고 자란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다.(207쪽)
⇨ 글쓰기에 있어서 나의 경쟁자는 ‘타인’이 아니고 ‘과거의 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글의 비교 대상은 타인의 글이 아니라 내가 과거에 쓴 글이었다. 이때 글을 쓰고 나서 과거의 글보다 나으면 대체로 만족할 수 있었다.
요즘은 비교 대상이 달라졌다. 내가 쓴 글 중에서 평균값이라 여겨지는 글 한 편을 정해 놓고 그 평균값보다 못 썼다 싶으면 비교적 못 쓴 글로 여기고, 그 평균값보다 잘 썼다 싶으면 잘 쓴 글로 여긴다.
이번에 모 일간지에 게재하기 위해 칼럼 한 편을 썼다. 그런데 퇴고를 거듭했으나 평균값보다 못 쓴 글이라고 판단되었다. 그 글을 포기하고 새로 쓰기로 했다. 내 노트북의 한 폴더에 이런 식으로 빛을 보지 못한 글이 수십 편이 있다.
몽테뉴의 글을 읽고 나니 평균값 같은 건 필요 없고, 그저 모든 타인이 글을 잘 쓰지 못하면 내가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우하하~~.
그러나 혼자만 글을 잘 쓰면 재미가 없겠다. 나도 누군가가 잘 쓴 글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해이다‘ - 상인은 젊은이의 낭비가 있어야만 장사가 잘되고, 농부는 밀 값이 비싸야, 집 짓는 이는 집들이 무너져야 돈을 번다. 사법관들은 사람들 사이의 소송과 분쟁이 있어야 일거리가 있고, 성직자들의 활동과 영역조차 우리 죽음과 악덕의 덕을 본다. 의사란 자기 친구의 건강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으며, 병사는 자기 고장의 평화마저도 기꺼워하지 않는다고 고대 그리스의 한 희극 작가는 말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각자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내적인 소망들이 대개 남을 희생시키며 생기고 자란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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