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서머싯 몸의 단편 소설 ‘개미와 베짱이’는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로 시작하여 한 형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개미는 여름 동안 열심히 일해 겨울 곳간을 가득 채우지만, 베짱이는 일하지 않고 풀잎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살아 겨울이 왔을 때 식량 창고가 텅텅 비어 있게 된다. 이 우화처럼 인간사에서도 인과 법칙이 적용될까?
두 형제가 있다. 형 조지는 변호사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다. 동생 톰은 게으르고 도박을 즐기며 돈을 헤프게 쓰고 살아왔다. 이 둘은 딱 한 살 차이가 나는 형제다. 톰은 친구들에게 꾸준히 돈을 꾸었고 친구도 쉽게 사귀었다. 그는, 필수품에 돈을 쓰는 것은 진부하다며 자고로 돈을 즐겁게 쓰려면 사치품에 써야 한다고 항상 말했다. 그 돈은 형인 조지에게서 뜯어냈다.
한번은 톰이 사기를 쳤는데 그 상대가 크런쇼라는 남자였다. 크런쇼는 보복을 하겠다며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기로 결심하고 톰 같은 악당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톰이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자 하나뿐인 동생을 감옥에 가게 할 순 없어서 조지는 합의를 보기 위해 곤욕을 치르고 500파운드를 써야 했다. 나중에 조지는 톰과 크런쇼가 수표를 받자마자 몬테카를로(카지노와 유흥으로 유명한 도시)로 함께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동생의 사기극에 형이 속은 것이다.
형 조지는 ‘나’에게, 이제 사 년 뒤면 톰이 오십 줄이니 그때는 톰도 산다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을 거라며 자기는 쉰 살이 되면 3만 파운드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는 지난 이십오 년 내내, 톰은 결국 시궁창을 뒹굴게 될 거라고 말해 왔네. 그때도 녀석이 좋다고 그럴지 두고 보면 알 거라고, 일을 하는 것과 농땡이를 부리는 것 중에 무엇이 승리할지 알게 될 거라고 말이야.“
이 말을 들은 ‘나’는 톰이 결국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됐구나 하며 최악의 사건을 예상한다. 그런데 조지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몇 주 전에 그 녀석이 어머니뻘 되는 여자랑 약혼을 했네. 그런데 그 여자가 죽으면서 녀석에게 전 재산을 남겨 주었지 뭔가. 자그마치 50만 파운드와 요트 한 대, 런던의 집 한 채, 전원주택 한 채를.“ 이어서 조지는 주먹을 불끈 쥔 손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고 말한다. ”이건 불공평해. 정말이지, 이건 불공평해. 망할, 이건 불공평하다고.“ 이 말을 들은 ‘나’는 조지의 분노에 찬 얼굴을 보고는 그만 폭소가 터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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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평생 부지런히 일했고 품위를 지켰고 존경을 받게끔 행동했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건 자네도 부인하지 못할 거야. 평생 근검절약하며 산 덕분에 이제는 은퇴해 국채에서 나오는 작은 수입으로 살아갈 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네. 난 항상 내 본분을 다하면서 신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어.“
”그야 그렇지.“
”그럼 자네는 톰이 게으르고 무가치하며 방종하고 수치스러운 종자라는 것도 부인하지 않겠지.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그 녀석은 구빈원 신세를 져야 마땅하잖나.“
”그야 그렇지.“
(중략)
”이건 불공평해. 정말이지, 이건 불공평해. 망할, 이건 불공평하다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조지의 분노에 찬 얼굴을 보고는 그만 폭소가 터졌고, 의자에 앉아 배를 잡고 웃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조지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 서머싯 몸, <서머싯 몸 단편선 1>, 183~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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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상
이 소설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와는 달리 우리 인생에는 인과 법칙이 적용되지 않음을 희화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 있는 게 인생의 묘미이긴 하다.
내가 생각해 본 것은 이러하다. 소설은 불성실하게 살던 톰이 배우자로 인해 부자가 되는 것으로 끝나기에, 톰이 노년을 어떻게 보내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톰은 도박을 좋아하고 돈을 헤프게 쓰고 농땡이를 부리며 살던 무절제한 생활 습관 때문에 나중엔 빈털터리가 되어 비참한 노년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고액을 받게 된 복권 당첨자가 오히려 폐인이 되어 버리는 일이 있듯이 말이다. 인생은 끝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3. 또 단상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 온 파렴치한이 아흔 살 넘게 장수하는 경우가 있다. 그를 보고 죄 많이 짓고 산 이가 어찌하여 단명하지 않고 장수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파렴치한이 장수하는 사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를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해 봤다.
첫째는 악행을 저질러서 편안한 죽음을 제때 맞이하지 못하고 고생하며 사는 걸로 보는 것. 왜냐하면 사람은 늙을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아흔이 넘으면 기운이 없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치아가 상해서 틀니로 음식을 먹고 몸에 병도 많아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심지어 치매에 걸리기도 한다. 이것이 고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둘째는 죄를 많이 짓고 살든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고 살든 이와 무관하게 단명이나 장수를 우연의 결과로 보는 것. 이 해석이 나는 옳은 것 같다. 그래야 악한 자가 복락을 누리며 장수하고 선한 자가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사례를 이해할 수 있을 듯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