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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신혼 시절에 자상한 남편을 둔 친구가 부러웠다. 예를 들면 아내를 위해 여성 잡지를 사 온다거나, 아내의 긴 머리를 좋아해서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하는 남편을 둔 친구가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아 부러웠다. 왜냐하면 내 남편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엔 나를 따라다니며 온갖 자상함을 다 발휘하더니 결혼하고 나자 나를 잡아 놓은 물고기처럼 여겨졌는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결론은 남편이 결혼한 뒤 변한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결혼 전에 보여 준 모습이 남편의 변한 모습이고 결혼 후 보여 준 모습이 남편의 참모습이겠다. 이제 내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고 남편이 말하는 걸 신혼 시절에 들었다. 괘씸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사람을 잘못 봤으니 내 탓을 할 수밖에.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고 나니 나의 시각이 달라졌다. 머리 스타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는 배우자라니. 거기에 맞춰 살면 내가 마음고생이 심할 듯싶다. 자상함이 지나치면 잔소리가 많다고 하니 자상한 남편보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내 남편이 오히려 편해서 좋은 것 같다.
남편이 자상함을 발휘하는 데는 따로 있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다. 퇴근길에 찬거리나 과일을 사 온다든지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을 도맡아 하는 것. 이런 점이 맘에 들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예전엔 이런 점에 주목하지 않았다. 장보기가 취미인가 보다, 바깥바람을 쐬러 쓰레기를 버리나 보다 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점만 골라 주목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봤다는 것.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같은 사람에 대해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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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미리 많은 보수를 받은 변호사는 자기가 변호할 소송을 얼마나 더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겠는가! 그의 대담한 몸짓은 이 외양에 속은 재판관들에게 이 소송을 얼마나 더 유리하게 보이게 하겠는가!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5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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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심리를 생각해 보면 의뢰를 할 땐 후불제를 택하는 게 현명하다.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