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낯선 물체
1. 박솔뫼의 《머리부터 천천히》를 읽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정오의 낯선 물체>가 떠올랐다. 어떤 톤이.
그 다큐는 한 소년과 여교사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 그 이야기는 주민들에 의해 B란 이야기로 변하고, C란 이야기로 변하다가, 끝난다. 실은 그러다가 꼬맹이들의 공 차는 장면이 건조하게 나오면서 끝나는데, 그 건조함에서 드럼세탁기에서 빨래하면 나는 어떤 냄새가 느껴진다.
2. 떠올랐다는 게 어떤 시너지의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박솔뫼의 소설과 위라세타쿤의 영화엔 묘하게 친할머니보단 외할머니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외할머니 냄새가 좋고,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에서 매력을 느낀다.
3. 박솔뫼는 지도와 약도에 관심이 있고, 주전공은 여름이며, 도미와 다미라는 이름을 좋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커피와 맥주를 자주 언급하지만, <수영장>의 다미처럼 보리차에도 관심이 있으며, 얼음이 녹는 소리를 '꺅꺄'라고 표현하는 귀가 예민한 사람이다.
4. 《귀신, 간첩, 할머니》에 실린 위라세타쿤의 영화노트는 박솔뫼의 기운과 닮았는데, 나는 박솔뫼의 소설에서 '분미'들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그녀는 부산이나 오키나와나 사쿠라이 다이조 같은 인형을 실은 뽑을 줄 알지만, 뽑아서 자기 쪽으로 가져가다 말아서 인상적이다.
5. <정오의 낯선 물체>엔 몸속에 구슬을 지녔다 몸밖으로 뱉는 이의 설화가 나오는데, 박솔뫼의 인물들도 그래서 다들 구슬이 있을 것 같고, 구슬을 지녔다는 것 혹은 구슬을 뱉는다는 것에 속으론 신경쓰지만, 그 결론이 무심해서 좋다.
6. 당신이 에어컨을 옵션으로 한 원룸에 산다면, 밤 10시쯤 에어컨 실외기쪽 창과 방 입구를 열고 선선한 바람의 통로를 만들자. 다행히 박솔뫼는 커피와 맥주를 글자에 많이 심어두었고, 아핏차퐁은 조금 습하지만 우리를 어떤 숲속으로 데리고 간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모른다. 그저 맡길 뿐이다. 오늘은 그러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