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품절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덕교육의 내용과 체제는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이 만든 작품이다. 그 이전까지 도덕교육은 도덕철학과 반공도덕의 어정쩡한 조합으로서 교육내용이나 교사 양성체계에서 배타적으로 정해진 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도덕교육의 성격과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1981년 서울대에 국민윤리교육과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 각 대학에 국민윤리교육과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오로지 이 신설학과에 도덕 교사 양성과 교과과정의 연구 개발 그리고 도덕 교과서의 집필 등 도덕교과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독/ 점적으로 부여하였다. -11~!2쪽

현실을 언제나 책이라는 너울을 통해서만 바라볼 뿐, 현실의 문제를 그 자체로서 인식할 능력을 잃어버린 많은 학자들이, 내가 교육의 이념으로 자유를 말하면 책에서 읽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을 떠올리면서 왜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하필 자유주의냐고 되묻는다. 우리는 아래에서 자유를 도덕교육은 물론 교육 전체의 이념으로서 반복해서 제시하게 될 것이므로,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 미리 대답을 해두려 한다. 즉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 이념은 공동체에 대한 대립 개념이 아니라 노예상태에 대한 대립개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한편에서는 자유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주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62쪽

도덕교과의 존재이유는 참된 도덕적 능력의 함양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교육에 있는 것이다.그것은 한 편에서는 도덕의 이름을 내걸고 인성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이는 도덕이라는 이름을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4 의 지분을 할애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도덕교육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영역들이 도덕교과의 주된 핵심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91쪽

많은 사람들이 칸트의 윤리학에서 법칙주의자의 모습을 읽어낸다. 더러는 칸트가 말하는 법칙의 무조건적인 신성함과 위엄에 대해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더러는 같은 사태에서 율법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리학의 역사에서 칸트가 이룩한 공적은 법칙의 위엄을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법칙의 위엄을 오로지 주체의 자유로운 입법의 능력에 정초시켰다는 데에 있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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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군중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33
데이빗 리즈먼 지음 / 홍신문화사 / 1994년 7월
구판절판


사회적 성격이란 항구적으로 사회적,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한 개인의 욕망과 만족의 구성이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이 외부의 세계와 타인들과 교섭하는 데 이용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55쪽

잠재적 고도성장의 사회가 그 안에 사는 전형적인 주민에게 심어주는 사회적 성격의 순응성은 그들의 전통 추종성에 의해 보장된다. 이런 사람을 필자는 '전통지향형'이러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사회는 '전통지향에 의존하는 사회'라고 부르겠다. -61쪽

과도적 인구성장기의 사회가 그 안에 사는 전형적인 주민에게 심어주는 사회적 성격의 순응성은 유아기에 일련의 목표를 내재화하려는 경향에 의해 보장된다.이런 사람들을 필자는 '내부지향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는 '내부지향에 의존하는 사회'라고 부르겠다. 끝으로, 초기적 인구감퇴의 사회가 그 전형적인 주민에게 심어주는 사회적 성격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선택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경향에 의해 그 순응성이 보장된다.-61쪽

순응성을 확보함에 있어 전통지향성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는 일탈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일단 그런 자가 나타나면 그를 제도화된 역할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사회의 사애적 안정을 유지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이후의 역사적 단계에서 개혁자나 반역자가 되었을 사람이 '샤먼'이나 마술사로 흡수되는 것이 보통이다.(그런 사람들의 소속은 물론 한계적이고 의혹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개인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지며, 그가 어느 정도 안주할 만한 귀속처를 제공받는 것이다. 가령 중세기 수도원의 질서 같은 것은 많은 성격학적 '돌연변이'들을 흡수했던 것으로 예거할 수 있다.-65쪽

전통지향의 사회에서는 모든 관심이 외적인 형태상의 순응성에만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행동규범은 세밀한 면에 이르기까지 정해져 있어도 그와 같은 규범에 들어맞기 위해 유달리 개성을 발휘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설사 필요하다 하더라도 종교적 의식이나 예의범절의 형태로 객관화되어 있는 규범을 주의깊게 살펴 그에 따를 줄 아는 정도의 사회적 성격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내부지향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행동상/의 순응성이 약간은 관계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사회에서는 온갖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 가지 규범만으로는 도저히 그 모든 사태를 미리 예상해서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개인의 주체적인 취사선택의 행위를 과거 잠재적 고도성장의 사회에서는 엄격하게 짜여진 사회조직을 통해 여과해냈으나, 과도적 성장 단계의 사회에서는 엄격하고도 고도로 개인주의화된 성격을 통해 여과해내게 되었다. 이러한 엄격성은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69쪽

과도적 성장 단계의 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점은 급속한 자본 축적을 가능케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원을 공급하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점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고, 새로이 도입된 생활양식이 수반하는 소비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에 사회적 생산력은 갈수록 집중하게 마련이다. /과도적 성장 단계에 있어 내부지향형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자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자신의 자녀들도 하나의 독자적인 인생을 펼쳐 나가게 될 독립된 개인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농경생활을 청산한 데 이어 아동 노동이 사라짐에 따라 아이들은 더 이상 경제적인 자산으로는 취급되지 않았다. -72쪽

연애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이미 구시대의 풍조가 되어버린 / 데 반해 진지한 정사에 관한 사생활을 공개하는 일 같은 것은 오히려 신식 유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12,3세만 되어도 아이들은 벌써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비단 상품의 소비뿐 아니라 정서생활에 관한 취향까지도 철저히 사회화되어 남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야 함을 배우는 세상이다. 예의가 사람들 사이에 장벽을 쌓아놓았다면 소비취향 사회화라는 새로운 경향은 사생활을 포기하게 하거나 또는 그것을 마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그리는 하느님처럼 알쏭달쏭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동료집단의 배심원들 앞에서는 유죄판결을 모면할 특권이란 없는 것이다. (중략) 아이가 무엇을 하든지(연예든 웅변이든) 동료집단이 어김없이 곁에 서서 '매스 미디어'의 시청자들과 똑같은 품평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이내 그러한 평가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을 에디 더친이나 호로비츠와의 경쟁 속에서 의식하게 된다. -151~152쪽

동료집단은 그 자체가 소비의 주된 대상이/며 소비취향의 주요 경쟁상대이다. 동료집단끼리의 인물 평가야말로 끊임없는 '뒷공론'으로서 얽히고 설킨 채 사회의 저변에 흘러다닌다. 그래서 가장 좋은 친구니, 두번째로 좋은 친구니,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니 하는 따위의 서열이 정해진다. 사람이란 타인지향성을 띠어갈수록 점점 더 자신의 선호를 거침없이 분류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의 선호와 비교하는 데에 능숙해진다. 실제로 타인지향적 아이들은 내부지향적인 지난날의 아이들에 비해 인기순위가 어떻게 정해져 있는가 하는 데 매우 민감하다. -158쪽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가 접촉하고 있는 어른과 동료들에 대하여 비밀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교육받고 있다. 동시에 자기의 레저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도 비밀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타인지향형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 이유는 타인지향형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즐길 것인가에 앞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먼저 그 분위기를 중요시하며, 자기의 본능이나 긍지를 손상당하는 것보다는 타인들의 의식에서 자기가 제외되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아주 은폐해버릴 수 없는 이상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도 관대하기 때문이다.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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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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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세력은 박정희 18년 독재가 낳은 '사생아'였다. '프로야구'는 박정희 시절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은 한국인들이 '경제동물'화되어 풍요의 길목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오락-여가 문화'를 상징한다. '경제동물'을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중산층'이 되겠지만, 중산층에 편입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봐야할 것이다. 호남인만 한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6.25의 처참한 기억에 대한 한풀이를 원했다. '경제'와 '풍요'로 한국의 정체성을 삼자는 한국인의 경제동물적 한풀이는 프로야구를 넘어서 서울올림픽으로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13쪽

우리는 이미 1970년대사를 통해 박정희 18년 체제가 '정권안보'를 위해 부정부패의 전 사회적 창궐을 획책했거나 방임해 왔다는 걸 잘 살펴보았다. 전두환 체제 7년은 그러한 총체적 부패구조의 성숙기 또는 완성기였으며, 부정부패는 '정권안보'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5공이 내세운 '정의사회 구현'은 실제론 '부패사회 구현'이었으며, '정의'라는 말은 길거리 쓰레기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15쪽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부문멸 속도 차이를 보인 한국을 제쳐놓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한국에선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속도 조절이 있었다. '경제'는 비행기를 탔다면 '정치'는 물리적 폭력의 힘으로 뒤로 가게끔 만든 기차를 탄 셈이었다.-17쪽

사회 부문별 속도 차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길게 거론한 건 그게 1980년대의 주된 특성이었으며 그것이 딜레마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자는 뜻에서다. 1980년대의 한국에서 '중산층'의 체제친화적인 보수성에 심리적 면죄부로 작용한 건 바로 '86.88'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담론이었다. -23쪽

한국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강박은 너무도 강렬했다. 먹고사는게 해결된 뒤에도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를 채운 포만감을 맛본 탓에 더욱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렸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부정부패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의 의도적인 정책의 산물이었다. 민중의 '상호불신과 살벌'은 독재정권의 정권안보에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 살인적인 경쟁체제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였으며 어떤 부작용을 남겼는가 하는 건 따로 따져볼 문제지만, 한국인의 일상적 삶에 만연한 사회진화론적 전투적 삶의 정도가 거의 병적 수준이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중략) 3저 호황은 '6.25'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놀라운 물질의 축복을 선사했다. 온갖 화려한 가전제품에서부터 각종 스포츠 놀이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먹고사는 일'을 넘어선 풍요를 만끽하게 하였다.-24~25쪽

신군부가 추진한 '음모와 공작'의 핵심은 여론조작이었다. -57쪽

1980년 11월 10일 문공부장관 이광표는 12월 1일부터 컬러TV 시험방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2월 1일 이광표가 KBS 청사에서 컬러TV 방송 스위치를 누름으로써 한국에서의 컬러TV 방송시대가 개막되었다. /컬러수상기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방송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된 만큼 전두환정권은 TV를 박정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정권홍보에 이용하였으며, 그 결과 '뚜뚜전 뉴스' 또는 '땡전 뉴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272~273쪽

70년대를 겪은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탄압하는 권력, 탄압받는 언론'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80년 들어 신군부가 언론장악을 위해 저지른 일련의 조치들도 국민의 눈에는 '탄압받는 언론'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물론 국민들은 언론이 신군부의 강압으로 보도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인식이 곧 신군부와 언론의 유착관계에 대한 인식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간 건 아니었다. 설령 그것까지 알았다 해도 일상적 삶에서 매일 대하는 언론 매체를 통해 알게 모르게 누적된 메시지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까지 늘 경계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버트램 그로스는 1982년에 낸 책에서 고전적 파시즘 체제가 보여주던 외양은 사라졌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대기업의 지배와 정경유착 구조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가 억압받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친근한 파시즘(Friendly fascism)'이라는 말을 썼다. 80년대의 한국에는 '부드러운 파시즘'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292쪽

언론이 사실상 5공 파시즘 체제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여론조작을 왕성하게 전개하면서 최소한 국민의 '수동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애를 썼기 때문에 5공 파시즘의 작동 방식이 비교적 부드러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292~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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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현대성
아르준 아파두라이 지음, 차원현.채호석.배개화 옮김 / 현실문화 / 2004년 3월
절판


상상력은 특수한 개인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능력(유럽에서 낭만주의가 꽃을 피운 이래로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의미에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자산으로서도 가능하며, 이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른 곳에서 내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이른바 "정서의 공동체 community of sentiment"란 개념(아파두라이,1990)은 함께 상상하고 사물을 감각할 수 있는 집단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글 읽기와 비평 및 항유의 집단성이라는 조건하에서 대중 매체가 만들어낼 수 있던 것 중 하나다. 베네딕트 앤더슨(1983)이 잘 설명했듯이 인쇄자본주의는 한 번도 대면해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동일한 정체성을 불러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매체로 기능할 수 있었다. 출판물들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인도네시아인이거나, 인도인 혹은 말레이지아인이라고 생각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19쪽

그러나 전자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형식들 역시, 이와 유사하면서 좀더 강력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매체들은 국가의 경계 내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와 비디오 같은 종류의 대중 매체를 집단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강렬한 숭배심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광범위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19쪽

세계화가 반드시, 심지어는 대개의 경우에서조차 동질화나 미국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이한 각각의 사회들이 현대성의 물질적인 토대를 자신들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듯이, 다수의 지역들과 역사들, 언어들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공간은 많이 남아 있다. -37쪽

'에스노스케이프'라는 개념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변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뜻한다. 여행자와 이주민, 피난민, 탈출자, 임시 노동자, 그리고 여타의 이동 중인 집단들과 개인들은 세계의 본질적인 모습을 구성하며, 국가 정치(혹은 국가 간 정치)에 유례 없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출생과 거주, 다양한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형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친족 관계나 친구 관계, 노동, 레저 등과 같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동체들과 관계망들이 존재하고 있다.좀더 많은 사람들과 집단들이 이동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대면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기를 소망하는 환상을 갖고 있는 한, 오히려 이러한 안정성들이라는 낱줄들이 어디에서나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씨줄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실과 환상은 이제 좀더 큰 규모로 작동한다. -62쪽

'테크노스케이프'라는 개념을 나는 심지어 유동적이기도 한 기술의 전 지구적 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또한 고도의 기술이건 저급한 기술이건, 기계적인 기술이건 정보적인 기술이건, 기술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본래 견고했던 다양한 종류의 경계들을 가로 질러 움직이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많은 나라들이 현재 다국적 기업들의 토대로서 존재하고 있다. 리비아에 있는 거대한 제철소는 인도와 중국, 러시아, 일본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으며, 새로운 기술적 배치물을 구성하는 상이한 부분들을 제공할 수 있다. 기술들의 이 기묘한 배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에스노스케이프에 고유의 특징들은 규모나 정치적 조정, 시장 합리성의 경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점점 더 돈의 흐름, 정치적 가능성, 그리고 미숙련 노동과 고도 숙련 노동의 접근 가능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63쪽

'미디어스케이프'는 정보들을 생산하고 퍼뜨릴 수 있는 전자적 장치들의 배분(신문, 잡지, 텔레비전 방송국, 그리고 영화 제작 스튜디오)과 이런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세계의 이미지들 모두에 관계되어 있다. 전자적 장치들은 오늘날 사적/공적 이익 단위들에 의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에는 복합적인 변형들이 존재하는데,그것은 양식(다큐멘터리인가 아니면 오락물인가)과 하드웨어(전자적인가 아니면 전자 이전인가)와 청중(지역적, 민족적인가 아니면 초국가적인가)에, 그리고 매체를 조종하는 자들의 이해에 의존한다. 미디어스케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특히 텔레비전, 영화, 그리고 카세트 형식으로) 특유의 이미지와 이야기들, 에스노케이프의 목록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레퍼토리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이다.이는 전 세계의 많은 청중들이 매체 그 자체를 인쇄와 영화, 전자 화면, 그리고 빌보드의 복합적이고 상호 연관된 레퍼토리로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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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원용진 엮음 / 푸른역사 / 2008년 5월
품절


(김덕호, 한국에서의 일상생활과 소비의 미국화 문제 몇 구절 공부용으로 옮김)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는 갑자기 '소비 혁명 consumer revolution'이 일기 시작했다. 소비 혁명이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비주의 consumptionism'라는 이념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에 의해 일상생활의 중심에 소비가 위치하는 새로운 사회로 대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주의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생산 대신 소비를 노동 대신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절약이 아닌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며, 금욕이 아닌 쾌락을 위해 생활하고, 결핍의 문화가 아닌 풍요의 문화를 실천하며, 소비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147쪽

우선 외부적인 환경부터 살펴보자. 엄청나게 늘어나는 외채에 의해 국가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망국론은 1985년을 고비로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국제 수지 흑자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1985년 중반 이후 달러, 국제 금리, 유가가 거의 동시적으로 하락한 이른바 '3저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 결과 1985년 6.6 퍼센트이던 GNP 성장은 1986년에 이르러 12.9퍼센트로 배가 되었다. 또한 1985년의 해외 순 부채액은 467억 달러였는데, 1986년에는 46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로 외채 위기 분위기가 사라졌다. 1인당 GNP또한 1980년 / 에 1,592달러이던 것이 불과 7년 만인 1987년에는 3,110달러로 거의 두배로 증가했다. 그리하여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147~148쪽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더욱 분명하게 소비는 기본적인 필요 need 단계를 넘어 욕망 desire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또한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50쪽

소비시장이 확대되면서 외제품에 대한 경계 담론도 증가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해외의 소비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자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건을 통해 한국의 소비자들이 타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경고의 글이나 행동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한국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과소비 추방에 대한 캠페인이 주기적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소비자 민족주의 consumer nationalism'는 이러한 움직임을 떠받치는 이념을 제공했다. 그렇지만 1988년도 올림픽 개최는 '소비자 민족주의'를 시대에 뒤진 이념으로 만들었으며, 개방화를 대세로 만들었다. -152쪽

원용진, 한국 대중문화, 미국과 함께 혹은 따로 몇 구절 옮김 / 퇴폐 등을 이유로 대중매체를 일거에 정리한 군사정권은 문화의 메뉴를 스스로 선택하거나 지정해 대중에게 제공하기를 매체에 강요한다. 관제 축제로 일컬어지는 <국풍 81>, 프로 스포츠(프로야구, 민속씨름), 마당극 등이 그것이다. 대중매체는 70년대 말부터 가꾸어왔던 상품화 전략을 기반으로 이를 펼쳤다.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한 대중문화 메뉴 정하기, 그에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우연을 탄 대중매체의 적극적 편승으로 인한 상품화로 이어지게 된다. -200쪽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은 수입된 미국의 대중문화가 채웠다. 민중문화운동을 채 낚은 듯 보이는 관제 축제, 마당극, 씨름 등의 부활은 1970년대를 불온과 퇴폐의 문화 시대로 규정짓는 군사정권의 의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미 불붙기 시작한 청년 들의 문화 소비 그리고 새롭게 자신들의 문화적 메뉴를 원하는 청소년층을 다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민중문화의 대중화라는 정치적 제스처의 이면에는 이미 진행되어온 욕망,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리지날'을 원하고 있었다. (중략) 대중문화 내 미국화는 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민족문화 부활을 통한 문화적 선전과는 관계없이 미국식 문화에 대한 욕망은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었다. 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대중문화에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이 결핍됨에 따라 그 욕망은 오히려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매체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대중문화의 미국화 가속화는 이전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다. -201쪽

대중문화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대중매체는 이미 타 시장(미국 등지의 시장)에서 보장받은 내용을 수입하거나 모방하는 손쉬운 전략을 폈다. 빠른 속도로 보급된 VTR 기기를 메웠던 내용은 대부분 미국 것이었다. VTR 기기 보급에 맞춘 콘텐츠의 수입으로 청소년들은 미국 프로 레슬링을, 성인들은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나 멜로물, 에로물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방송국 편성에 의한 선택적 미국식 대중문화 접촉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직접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202쪽

미국에 대한 의구심, 반발이 곧 모든 미국적인 것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에 제공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대안적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적인 대중문화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어지기는 불가능했다. 민중문화운동이 있긴 했지만 대중의 일상에까지 미치진 못했다. 민중문화운동이 반미를 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머물러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이 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에 끊어졌더 여러 형태의 실험들이 미미하게 이뤄졌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적인 적을 재전유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시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흔히 대중매체가 미국화를 주도하고, 미국에 대한 태도와 미국적인 것에 대한 태도가 분리되기 시작한 이 시기를 두고 정치적 저항의 시기라 / 고 부른다. 하지만 대중문화 영역은 오히려 이전에 비해 미국화가 강화된 시기였다. 대중매체가 직접 실어 나를 뿐만 아니라 미국적인 것으로 포장된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펴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대중매체가 미국화를 직접적으로 펼친 시기라 할 수 있다. -205~206쪽

지속적 경제 성장과 3저 호황으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경험하면서 대중들은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자신감은 비민주적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그 불신과 더불어 정치적 동맹인 미국에 대한 부정적 태도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문화, 미국적인 형식의 대중문화는 경제적 풍요와 자신감을 채워줄 자산이었을 뿐 배격의 대상은 아니었다. 대중매체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운동 등에 정당성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대중문화적 내용으로는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았던 셈이다. 이전의 대중문화적 실험들의 절멸, 민중문화운동의 도구화, 대중매체의 과점 시장 보호, 경제적 호황으로 인한 문화상품 구매력의 성장으로 대중문화의 미국화는 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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