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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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세력은 박정희 18년 독재가 낳은 '사생아'였다. '프로야구'는 박정희 시절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은 한국인들이 '경제동물'화되어 풍요의 길목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소비하게 된 '오락-여가 문화'를 상징한다. '경제동물'을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중산층'이 되겠지만, 중산층에 편입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봐야할 것이다. 호남인만 한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6.25의 처참한 기억에 대한 한풀이를 원했다. '경제'와 '풍요'로 한국의 정체성을 삼자는 한국인의 경제동물적 한풀이는 프로야구를 넘어서 서울올림픽으로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13쪽

우리는 이미 1970년대사를 통해 박정희 18년 체제가 '정권안보'를 위해 부정부패의 전 사회적 창궐을 획책했거나 방임해 왔다는 걸 잘 살펴보았다. 전두환 체제 7년은 그러한 총체적 부패구조의 성숙기 또는 완성기였으며, 부정부패는 '정권안보'의 대들보로 우뚝 섰다. 5공이 내세운 '정의사회 구현'은 실제론 '부패사회 구현'이었으며, '정의'라는 말은 길거리 쓰레기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15쪽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부문멸 속도 차이를 보인 한국을 제쳐놓고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한국에선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속도 조절이 있었다. '경제'는 비행기를 탔다면 '정치'는 물리적 폭력의 힘으로 뒤로 가게끔 만든 기차를 탄 셈이었다.-17쪽

사회 부문별 속도 차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길게 거론한 건 그게 1980년대의 주된 특성이었으며 그것이 딜레마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자는 뜻에서다. 1980년대의 한국에서 '중산층'의 체제친화적인 보수성에 심리적 면죄부로 작용한 건 바로 '86.88'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담론이었다. -23쪽

한국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강박은 너무도 강렬했다. 먹고사는게 해결된 뒤에도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를 채운 포만감을 맛본 탓에 더욱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렸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부정부패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의 의도적인 정책의 산물이었다. 민중의 '상호불신과 살벌'은 독재정권의 정권안보에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 살인적인 경쟁체제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였으며 어떤 부작용을 남겼는가 하는 건 따로 따져볼 문제지만, 한국인의 일상적 삶에 만연한 사회진화론적 전투적 삶의 정도가 거의 병적 수준이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중략) 3저 호황은 '6.25'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놀라운 물질의 축복을 선사했다. 온갖 화려한 가전제품에서부터 각종 스포츠 놀이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먹고사는 일'을 넘어선 풍요를 만끽하게 하였다.-24~25쪽

신군부가 추진한 '음모와 공작'의 핵심은 여론조작이었다. -57쪽

1980년 11월 10일 문공부장관 이광표는 12월 1일부터 컬러TV 시험방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2월 1일 이광표가 KBS 청사에서 컬러TV 방송 스위치를 누름으로써 한국에서의 컬러TV 방송시대가 개막되었다. /컬러수상기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방송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된 만큼 전두환정권은 TV를 박정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정권홍보에 이용하였으며, 그 결과 '뚜뚜전 뉴스' 또는 '땡전 뉴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272~273쪽

70년대를 겪은 한국인들의 뇌리에는 '탄압하는 권력, 탄압받는 언론'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80년 들어 신군부가 언론장악을 위해 저지른 일련의 조치들도 국민의 눈에는 '탄압받는 언론'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물론 국민들은 언론이 신군부의 강압으로 보도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인식이 곧 신군부와 언론의 유착관계에 대한 인식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간 건 아니었다. 설령 그것까지 알았다 해도 일상적 삶에서 매일 대하는 언론 매체를 통해 알게 모르게 누적된 메시지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까지 늘 경계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버트램 그로스는 1982년에 낸 책에서 고전적 파시즘 체제가 보여주던 외양은 사라졌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대기업의 지배와 정경유착 구조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가 억압받는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친근한 파시즘(Friendly fascism)'이라는 말을 썼다. 80년대의 한국에는 '부드러운 파시즘'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292쪽

언론이 사실상 5공 파시즘 체제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여론조작을 왕성하게 전개하면서 최소한 국민의 '수동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애를 썼기 때문에 5공 파시즘의 작동 방식이 비교적 부드러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292~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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