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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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안 게임은 군사독재정권의 선전 내용대로 한국이 종합 2위를 하고 끝났다. 그리고 정권은 이번 아시안 게임을 자신들의 통치논리에 뜯어맞추어 대중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 관중 매너도 금메달감이라든가, 4천만이 11억의 중공을 이겼다 라든가 등의 경기 결과를 공동체 전체의 승리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 게임은 한마디로 권력의 획일적인 조직동원 능력이 만들어낸 타율적 잔치일 뿐이다. 비인기종목이 인기종목과 마찬가지로 관중이 많다고 하는데, 경기 중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낯익은 괴성들이 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조용필이 노래 부를 때 들리는 환성인데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이 전부 동원된 초, 중학생들이다."(고광헌, <스포츠와 정치>에서 재인용)-78쪽

"나는 지금도 내가 뉴스를 진행하던 그때, 스튜디오 한쪽에 잉크를 풀어놓은,(그래야 실감이 났으므로) 수돗물로 찰랑대던 여의도 일대의 모형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연히 거기엔 63 빌딩이 있었고 파란 잉크물은 그 빌딩의 허리께까지 차올라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장난처럼 하면 안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63빌딩의 중간까지 물이 찬다는 건 좀 너무 하지 않느냐, 2층 정도까지로 줄이자 어쩌자 하면서 제멋대로들 기준을 정하다가 누군가 '겁을 주려면 확실하게 줘야지'하는 말에 훅훅거리며 웃기까지 하였다. 그 광란의 시기에 과학적 사고는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우리나 내뱉은 웃음에는 무기력한 자조도 섞여 있었겠지만 그 한구석엔 또 어떤 광기도 있었던 게 아닐까. 거짓말도 계속하면 그 자신은 참말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는 그때 이미 자기 제어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는지 모른다."(손석희, <부끄러운 언론의 얼굴>; 평화의 댐 사건을 말하면서)-98~99쪽

"잉여자본이 흘러 들어간 곳은 부동산업과 유통업 등의 서비스 산업이었다. 서비스 산업의 확충은 3저 호황으로 얻은 소득 증대를 소비로 연결하는 노릇을 한다. 신세대 담론이 등장하고, 소비 시대가 온 것처럼 적극적으로 논의되던 것도 이 즈음이다. 광고시장이 커지자 언론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며 방송 시간을 늘리고 증면하는 등 광고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소비를 향한 새로운 욕망을 언론이 내용을 통해서, 즉 광고를 통해서 주도하고 배치하기 시작한 것이다."(원용진,<한국 언론민주화의 진단:1987~1997을 중심으로)-117쪽

올림픽이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했다. 예컨대 최진섭은 올림픽이 한국민의 반미의식을 키우는 데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대학가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반미구호가 많이 외쳐졌지만 상당수 일반 시민들은 88 올림픽을 계기로 '반미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념적, 정치적 반미가 아니라 정서적 반미라는 것이다. (중략)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변화들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올림픽 전후로 오락, 문화산업, 음식, 숙박업, 관광산업, 스포츠 및 여행장비산업 등의 여가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296쪽

비디오시장도 호황을 누렸다. 88년 4월 당시 국내의 vcr 공급대수는 180만 대였는데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연말엔 220만~250만 대에 이르러 비디오시장의 규모는 영화시장을 추월해버렸다.(강한섭, <비디오때문에 터지는 분통>)-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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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2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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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정권은 피로 얼룩진 정권 이미지에 부드러운 가면을 씌우고 국민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각종 화려한 이벤트와 조치를 양산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열린 '국풍 81'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이것이었을까? '5공화국의 태평성대'를 선전하기 위한 대대적인 대중조작 이벤트였다. 일본의 극우에 심취한 허문도가 일본의 카미카제 정신을 본따 이름을 붙이고 적극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국풍이었다. -48쪽

신현준은 "한마디로 80년대의 문화정책은 대중문화를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방향은 대체로 '규제완화'의 방향을 취했다"면서 "문제는 이런 규제완화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가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먼저 지적할 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완화가 선별적이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한 예로 영화검열 완화의 경우 주로 '저급한' 영화에만 선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즉, '불온한' 문화의 금기는 여전했고, 1981~83년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온한' 반대자들이 '3s정책'(스포츠, 스크린, 섹스)이라고 불렀던 표현은 당시 정책의 새로운 기조를 말해준다. 70년대의 문화정책이 원칙적으로 외래 퇴폐문화를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문화에 대한 규제를 단행했던 반면, 80년대는 퇴폐문화에 대한 선별적 해금을 실시하면서 이런 조치가 체제와 그리 불편하지 않게 어울리도록 관리하는 양상을 취했다. 즉, 정책담당자가 보기에 '퇴폐적'이지만 별달리 '위협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는 방치한다는 것이 당시의 문화정책의 이데올로기로 보인다. 70년대와 비교한다면 정책의 지배적 원리가 금지의 논리에서 방치의 논리로 전화-54쪽

한 것이다. '국풍 81'을 비롯한 관제행사들은/새로운 문화적 '모델'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문화의 탈정치화를 통한 정치적 이용'이라는 80년대 문화정책의 기조가 형성되었다는 '성과'를 빼면 말이다."(신현준, <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문화운동> 재인용) 5공은 '퇴폐'를 부추기면서도 또 그로 인한 결과를 빌미로 '통제'를 시도하는 이중적인 대중문화정책을 구사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국민정신개혁운동'이라는 '정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를 삽입하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애국가를 틀어주는 것이 '정화운동'의 이름으로 행해진 대표적인 것들이었다.(신현준,<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문화운동> 재인용)-54~55쪽

1945년 9월 7일 미 군정치하에서 미군사령관 하지의 군정포고 1호로 시작된 통행금지가 그로부터 36년만인 1982년 1월 5일 밤 12시를 기해 전방 접경지역과 후방 해안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해제되었다.-83쪽

통금해제 후,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했던 보통 사람들이 즐겨 찾은 곳은 심야극장이었다. 컬러tv 방송으로 불황에 시달리던 영화계가 통금해제 후 영화계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이트 쇼'라는 이름으로 시사회를 여는 등 심야극장 판촉에 공을 들인 결과이기도 했다. 통금이 해제된 지 꼭 한 달 뒤인 2월 6일, 첫 심야 상영영호인 <애마부인>이 개봉됐다. -88쪽

"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정권은 폭압과 자유화라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교복과 통행금지 폐지 그리고 두발 자유화는 전두환정권의 선물이다. 충무로에 대한 전두환정권의 선물은 에로영화에 대한 검열완화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심산, <애마부인의 아버지> 재인용)-91쪽

이문열의 '교양주의'는 대학생 수가 늘어난 것 못지않게 '교양'을 찾게 된 중산층의 부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서구적 교양을 원하는 중산층 말이다. 물론 이문열의 교양주의는 서구적 교양주의이며, 이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사대주의와도 잘 맞아떨어졌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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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54호 - 2008.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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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최근 본 국내 문화이론 중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김홍중, 심보선 선생의 '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 중 일부를 옮겨 본다. /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문화변동의 지배적 경향을 우리는 '탈진정성 체제(post-authencity regime)'의 부상이라 명명한다. 그것이 체제인 한, 시기적 구분에 있어 연대기적 절단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일반적인 감각, 문화적 실천의 주된 패턴들의 변화, 새로운 감수성의 부상과 낡은 감수성의 퇴조, 징후들의 발생, 그들에 대한 해석들의 발생, 주체 형성과정의 새로운 경향 등의 무수한 차원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문화적 지층에 새겨진 일종의 단절의 감각이다. -367쪽

진정성이란 인간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삶의 준거를 찾고자 하는, 매우 근대적인 삶의 태도이다. 진정성의 에토스 속에서 주체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 삶의 궁극적 의미를 외재적 도덕률과 권위, 기계적 척도로부터 구하지 않는다. 그는 외부의 지침을 의심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367쪽

진정성 에토스는 이처럼 내면성-문화-공동체의 세 가지 상보적이고 갈등적인 요소의 개념적 성좌로 정의할 수 있다. 내면은 문화를 매개로 공동체를 품고 있으며, 공동체는 다시 문화를 매개로 내면성 속에서 구현된다. 중요한 것은 이 매개의 고리를 구성하는 문화의 역할과 내용이다. -368쪽

원래 진정성의 기획은 무엇보다도 '자아의 기획'이다. 공동체는 성찰적 주체가 선택하고 개입하고 풀어내야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로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문화의 프로젝트에서 이같은 자아의 기투(engagement)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자아의 외부에 실체로서, 물신으로서 선험적으로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유신정권과 이를 계승한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민족주의적 진정성 프로젝트는 비록 그것이 민족의 웅비나 민족문화의 창달에 대한 진정한 지향을 연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만에 불과했다.더구나 이들의 기획은 진정성의 또다른 주요한 원리/를 위반하고 있었다. 즉, 거기에는 민족 구성원의 내부의 '평등한 존엄'이라는 윤리적 원칙이 결여되어 있었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신의 불균등한 분배는 평등한 존엄의 원칙을 허상으로 만든다. -371~372쪽

스놉의 에토스, 즉 스노비즘(snobbism)은 진정성의 참된 안티테제이다. 타자를 짓밟으면서 영예롭고자 하는 자, 인정받기를 갈구하지만 자신은 결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은 스놉은, 진정성의 인간의 변증법적 대당으로서, 진정성의 구조를 '형식적으로' 공유한다. 환언하면 스놉에게도 내면성-문화-공동체의 삼각형이 존재하며, 스놉 역시 세계와 불화한다. 그는 세계 속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속할 곳은 다른 자리, 다른 공동체라고 믿는다. 스놉은 개성을 가꾼다는 명분하에 자신의 내면성에 집착한다. 강박적으로 문화적 기호들을 축적하고, 이 과정에 지나친,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시적인 엄숙함과 의미를 부여한다. 스놉은 교양인보다 더 교양인처럼 보인다.그러나 그의 교양은 그를 성숙시키는 대신 그의 과시적 차원으로 활용될 뿐이다. -372쪽

스노비즘을 구성하는 삼각형은 서로가 서로에게 닫혀 있다. 내면에 공동체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동체는 오직 무자비한 인정투쟁의 공간일 뿐, 주체의 윤리적 지평과 융합되어 있지 못하다. 스놉의 세계는 가능성과 타자성으로 충만한, 그리고 그곳을 주파하면서 스스로의 참된 자아를 모색하는 여행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계산하여 하나씩 쓰러뜨려 점령해야 하는 일종의 작전공간이다. 더 나아가 세속적 지위상승에 대한 맹목적 열망은 초월적 가치에 대한 윤리적 고려의 가능성을 경색시킨다. 진정성의 기획이 결코 현실화될 수 없는 이상의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스놉의 기획은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천박한 낙관주의에 기초한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 다만 비교와 질시와 질투의 고된 노동이 있을 뿐이다. -372쪽

현실의 야만성은 대학생들에게 헤겔이 말하는 '비천한 의식'을 불러일으켰으며, 그것은 운동으로의 투신, 위악, 주관주의, 소시민적 삶으로의 자발적 투항 등 다양한 양태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대학사회 그 어디에도 스노비즘의 천박성은 발붙일 수 없었다. 부르주아적 취향, 성공담, 소영웅주의, 과시소비 등은 터부시되었다. 그러나 진정성이 있는 곳에는 스노비즘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이 시기 스노비즘은 진정성의 문화가 발휘하는 압도적 헤게모니 속에서 소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억압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 그리고 이 억압된 것과의 대화가 부재한 도덕적 엄격성의 문화는 억압된 것의 회기 윞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붕괴한다. -374쪽

스노비즘은 거대서사의 체계, 즉 대타자의 소멸이 남긴 의미론적 폐허를 재구성함으로써 아직 매장하지 못한 그 대타자를 문화적 작위를 통해 추모하는 일종의 상징적 애도의 한 형식이다. 이 점에서 탈진정성 체제의 스놉은 진정성 체제의 정치적 스놉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정성 체제의 스놉은 살아 있는 실제적인 권력과 힘의 원천에 귀속되거나 그것들을 표상하는 상징의 점유를 통해 '확실한' 인정을 받고자 했다. 반면 탈진정성 체제의 스놉은, 그런 실제적 힘으로부터 절연된 가상의 형식화된 문화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배열하고, 파괴하고, 재배치하는 유희적 활동을 통해, 사라진 대타자로부터 '허무한' 인정을 받고자 노력한다.-376쪽

이념의 시대, 운동의 시대, 민주화의 시대가 끝난 후 우리에게 열린 것은 이러한 문화적 스노비즘의 시대, 즉 애도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부상한 것이 바로 '취향'이라는 감각적 실체였다. 역사의 썰물이 빠져나간 거대한 무의미한 공간 속에서 포스트 386세대는 취향의 형성과 조련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구성하려 하였다. 이 세대에게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취향을 가진다는 것이었고 취향은 또한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이때 그들이 고민하는 그 취향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적인 인간상과 자신의 개성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존재하는지를 타인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상징들을 획득하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이렇게 자기애적으로 확장되고 부유해진 자아의 존재론적 빈곤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바로 문화적 스노비즘과 이를 물질적으로 지원했던 소비문화산업이었던 것이다. -376쪽

기호의 소비를 통해 세계와의 불화를 상상적으로 전유하는 문화적 스노비즘은 90년대 이후 전개된 학생운동, 여성운동, 성적소수자운동에도 그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운동들은 주변화되었던 정체성의 존엄과 그에 대한 인정을 요구함으로써 사회적 소통과 연대의 확장이라는 진정성 기획의 지향을 계승했다. 그러나 이들은 80년대의 운동과는 달리 정당성의 위광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에게 부과되는 스노비즘의 혐의와 싸워야 했다. 환언하면, 이들은 '차이'라는 기표를 특권화하여 사회와의 불화를 조장한다는 분리주의의 혐의를 받았던 것이다. 이 문제는 정체성 서사가 누구나 권리주장을 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버리면 정체성운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377쪽

문화적 스노비즘과 정체성-정치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기획이다. 전자는 문화를 소비하고 후자는 문화를 생산한다. 이들은 둘 다 문화를 통해 '자기다움'을 추구하지만, 전자는 배타적인 명예를 인정받고자 하고 후자는 평등한 존엄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체와의 관계맺음이 이들 모두에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자는 취향의 소비를 통해 명예를 독점함으로써 공동체를 소외시키고, 후자는 평등한 주체로서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해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한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숙명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서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 과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들은 "표시를 낸다. 고로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양식은 2000년대 들어 아주 일반적인 것으로 자리잡는다.-378쪽

추와의 변증법적 대립이 없는, 자신의 부정성을 상실한 역겨운 아름다움, 이것이 바로 키치이다. 병따개의 기능을 유지한 채 그 위에 기도하는 마리아를 새겨넣는 것이 전형적인 키치의 수법이다. 키치적 태도의 배후에는 모든 상징적 활동의 위계와 구별을 쓸모없는 것으로 소거해버리고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혼합하는 산업주의의 에토스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문화에 대한 산업주의의 관심은 기껏해야 낭비적인 아니무스를 생산적 에너지로 용도변경시키는 데 있을 뿐, 아니마 즉 내면성의 표현으로서의 미 따위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380쪽

토털 키치란, 만인이 소비하는 취향의 일람표 속에 문화 전체를 몰아넣음으로써 결국 만인을 스놉으로 만드는 사회 경제적 상황의 미학적 스펙터클이다. (중략)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소멸한 대타자를 애도하던 '문화적 스놉'은 점차로 퇴거하고, IMF 이후의 변모된 사회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몇 가지의 새로운 범주로 스놉이 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80쪽

첫째,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의 절대적 우위 속에서 90년대의 문화적스/노비즘에 내재해 있던 상징적 사치와 과시소비의 경향을 생산성과 합리성의 요구에 복종시키는 '합리적 스놉'들이 등장하였다. 합리적 스놉은 대중화된 소비문화의 산물이다. 문화적 스노비즘의 과잉욕망은 이제 합리성에 의해 다스려지고 생산적인 것처럼 보이는 채널로 흘러간다. 우리 시대의 문화적 생활이 이러한 합리적 스노비즘에 얼마나 깊숙이 침윤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라이프스타일'이라 불리는 새로운 명예의 표식이다. -380~381쪽

둘째,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삶의 스노비즘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단순한 태도를 버리고 스노비즘을 공인함으로써 오히려 스노비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비판적 스놉'이 형성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현대의 반항적인 예술가들, 환멸을 신앙하는 미학주의자들,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 인문주의자들이다. 비판적 스놉은 탈진정성 체제의 핵심을 간파하며, "모두가 스놉"이라고 일갈한다. 그에 의하면 스놉은 스놉이 아닌 척하는 역-스놉인 것이다. 비판적 스놉은 자신을 스놉이라 말함으로써, 자의식과 자기 성찰의 시점을 확보한다. 이 시점은 역-스놉과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의 의식으로는 결코 획득할 수 없는 해체적 파괴력을 갖는다. 이들의 미학적 전략은 그리하여 고급예술이나 아방가르드가 아닌 '비판적 키치'이다. 이는, 키치를 진정하지 못한 예술이라 폄하하지 않는다. 비판적 키치는 키치를 과장되게 활용하거나 의도적으로 나쁜 취향을 전경화함으로써 키치 고유의 비성찰성을 성찰성으로 전화시킨다. 이를 통해 비판적 키치는 키치의 천박성과 즉물성뿐 아니라 소위 아방가르드 예술의 고답적인 오만함까지 해체한다. -381~382쪽

셋째, 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경제적 궁핍화와 삶의 질의 피폐화로부터 '룸펜 스놉'이 형성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효과는 이중적이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는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속에서 모든 이를 속박시키는 동시에 포스트포디즘의 유연한 산업체계를 동반함으로써 문화적으로는 '자기답게 사는' 다양한 탈주의 길을 열어준다. 이 무한경쟁체제에서 패배자인 대다수 다중은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정보사회, 혹은 비물질노동사회로부터 제공되는 상징적 재료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창출하고 소통시킨다.-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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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58호 - 2009.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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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 역설의 생산, 문학성에 대한 성찰 중 몇 구절을 옮겨본다 / 실제적인 진리로 존재할 수는 없으며 개별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 속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양태나 텅 빈 중심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곧 문학성이라는 개념의 본래적인 속성이다. -296~297쪽

199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문학이 인문주의와 함께 다양한 위기의 담론의 대상이 되어 왔음은 물론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양상은, 정도의 차이나 시차는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본주의라는 삶의 양식을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시대 문학과 예술의 본원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비판이나 이른바 예술 상업주의 비판이 어느 시대에나 끊이지 않았음이 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운명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지표일 것이다. 문학작품들이 판매가 부실할 때에도, 거꾸로 너무 많이 팔린다고 생각될 때에도,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 적어졌다고 생각될 때에도, 반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도, 물론 그런 위기의 담론의 핵심부에 놓여 있는 것은 경제이고, 또한 그것의 심리적 표현인 주가지수의 그래프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위기의 담론이 일상화되면 이제 담론의 위기가, 위기담론의 변증법이라 할 만한 양상으로 위기의 위기가 찾아온다. 기존의 모든 위기를 한순간에 정지시키고 새로운 위기의 지도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서의 공황. -297쪽

고진이 근대문학의 요체로서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성격과 기능들이다. 이는 물론 단지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문제의 틀이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운동이나 정치적 저항 운동 같은 대항담론과 문학의 관계, 혹은 시대정신 속에서의 문학의 위상, 문학의 정치성 등이다. 그가 1980년대에 일본문학은 끝났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 종언을 고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삶에 대한 저항담론의 현실성과 실제성이라는 말에 훨씬 가깝다. -299쪽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담론화될 수 없는 영역들, 끝없는 상징화와 그를 통해 부여되는 해석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는 어떤 원초적 결여의 자리와 같은 것,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학성에 대한 성찰이 자신의 파트너로서 동반해야 할 역설적인 대상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성을 사유하는 데서 느껴지는 불편함이란 흡사 이율배반에 관한 칸트의 논증처럼 무한성과 유한성 사이에서 스스로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근대적 주체가 자신의 운명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역설의 공간을 바라보는 심정과도 흡사하게 느껴진다. -306쪽

말하자면 그것은 미메시스적 충동을 자기 동력으로 삼고 있는 문학성이라는 대상 자체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초월론적인 속성이, 그것을 사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는 정서적 반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질적 조건을 혁명화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처럼, 문학성도 저신의 죽음을 지양으로 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마지막 불편함에 대해서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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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44호 - 2009.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09년 6월
품절


# 황정아 - 묻혀버린 질문 : '윤리'에 관한 비평과 외국이론 수용의 문제의 몇 구절을 적어둔다 - 어쨌든 이즈음의 비평을 들추다 보면 각종 이론들의 향연처럼 보일 때가 많다. 여전히 강력한 정신분석의 영향으로 분열적 주체와 상징계/의 결핍과 실재가 논의되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사건, 진리, 절대적 타자, 벌거벗은 생명, 환대 같은 개념이 운위되고 또 어느새 '감각적인 것' 혹은 '정치적인 것' 하는 말들이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양상들이 보기보다 서로 더 깊이 연관되어 있으이란 추측도 해봄직한데, 그 유행의 흐름에서 한동안 우리 곁에 머무르는 뚜렷한 이론적 키워드가운데 하나가 '윤리'이다.-100~101쪽

'윤리'는 지난 몇년간 비평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였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오랜, 익숙한 단어이기도 하다. 새삼 '국민윤리'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돌이켜보면 어떤 의미에선 윤리(라는 말)의 과잉을 겪었다고 할 만하다. 흔히 이념의 시대로 지칭되는 1980년대도 많은 이들에게는 윤리적 강박의 시대로 경험되었으며, 그런 측면에 대한 반발로 90년대 이래 또다른 유행어인 '욕망'은 윤리 과잉의 억압에 대한 저항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에 대한 재반발인지 어떤지 더 따져볼 일이겠으나 최근의 비평담론에서 '윤리'는 때 로 '절대적'이라거나 '무조건적'이라거나 하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하게 억압적인 형용구들을 당당히 동반하면서 한층 강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윤리'와 관련해서는 한때 유행했던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라는 말을 쓰고 싶게 만드는 묘한 이중적 태도가 있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윤리의 억압성에 대한 반발이 있고 다른 한편에선 유례없이 강력한 위상을 부여받은 윤리가 거론되는 것이다.-101쪽

실제로 어떤 암묵적 의도 혹은 어떤 '정치적 무의식'이 작용했는가를 떠나 윤리를 논한 비평들이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배경이자 윤리가 시/급히 요청되고 실현되어야 할 근거로 거론되는 개념은 '타자'이다. 이때 '타자'는 대개 이방인 혹은 외국인이라는 구체적인 이름과 짝지어지며, '타자'가 어떤 성격이며 어떤 종류의 윤리를 요구하는가를 논하는 지점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론가가 바디우이다. -102쪽

윤리론을 적극 개진하는 비평에서 바디우를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그가 <윤리학>의 저자이기는 하지만 서문에서 공공연히 표명하듯이 이 책은 윤리가 중심무대로 등장하게 된 현재의 '윤리로의 회귀'현상을 비판하는 일을 한 축으로 삼기 때문이다. 바디우는 이 현상을 더이상 사회혁명을 희망하지 못하고 집단적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정치용어를 모색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무능함과 일정하게 연관시키는데 , 그들의 무능함이 추상적이고 보수적이며 서구중심적인 자유주의 인권론과 그 근거인 보편적 인간 주체 같은 개념에 굴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11-12면)-102쪽

그런데 바디우의 비판에서 또 하나의 주된 표적은 "일종의 윤리적 급진주의"(27면)인 레비나스의 타자 혹은 차이의 윤리이다. 그가 보건대 타자의 윤리란 타자의 윤리적 우선성에 기반하고 이는 다시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타자성을 담보로 요구하는데, 그같은 절대적 타자성은 결국 종교에 다름아니다. 바디우는 타자와 차이의 윤리가 현실에서는 결국 '나처럼 되어라, 그러면 너의 차이를 존중하겠다'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다(34면). 그는 이런 윤리 이데올로기들이 (인간이니 권리니 타자니 하는)추상적 범주에 기댈 뿐 어떤 적극적인 것에도 기반을 두지 못한 탓에 현존 질서를 추인하거나 심지어 무와 죽음을 열망하는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판단하면서, 윤리는 오로지 진리와 관련하여 존재할 수 있을 뿐이라 선언한다.(38면)-102쪽

바디우의 인용이 어디서 출발하든 상당히 무리한 경로를 거쳐 결국 '차이(에 대한 인정)'과 '타자(에 대한 환대)'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비평담론이 이런 단어들에 대해 어떤 '정치적 정답'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솟는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보편성, (혹은 보편성까지 용인한다 치더라도 그에 동반되는) 동일성과 평등은 곧 전체주의적 억압에 이른다는 또다른 '정치적 정답'을 염두에 둔 것일까. 정작 바디우 자신은 바로 이런 식의 통념에 저항하며 말 많고 탈 많은 보편주의를 과감히 주장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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