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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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사회의 특징은 매스 커뮤니케이션 전체가 3면기사[사회면 기사]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인 모든 정보는 3면기사라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그러나 동시에 기적을 부르는 것 같은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정보는 완전히 현실적인 것, 즉 눈에 띄기 쉽게 극적인 것이 되며, 그리고 동시에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 즉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매개물에 의해 현실로부터 멀어진 기호로 환원된다. 따라서 3면기사는 단순한 하나의 범주가 아니라 우리들의 주술적 사고, 우리들의 신화적 축이 되는 범주이다. 이 신화는 현실, '진실'과 '객관성'의 한층 더 탐욕스러운 요구 위에 입각하고 있다. 어디에도 실록영화, 현지르포, 플래시(flash)뉴스 [순간적인 장면을 찍는 것], 충격적인 사진, 증언다큐멘터리 등이 있으며, 그 어디에서도 추구되고 있는 것은 '사건의 핵심' '소란의 진상' 있었던 그대로의 기사, '대면' -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환상, 체험자가 느낀 대전율- 즉 또 다시 기적이다.왜냐하면 텔레비전에서 보거나 녹음기를 통해 들은 것은 사실은 내가 그곳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6쪽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보다 더 진실인 것, 달리 말하자면 그곳에 없으면서도 그곳에 있는 것, 즉 환시인 것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환기증 또는 말장난은 아니지만, 현기증없는 현실이라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아마존 밀림의 핵심, 현실의 핵심, 정열의 핵심, 전쟁의 핵심,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묘사하는 기하학적 장소이며 매우 심한 감상벽의 원천이기도 한 이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장소인(26) 것이다.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정열과 사건의 비유적인 기호이며, 기호는 이렇게 하여 안심시켜주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기호에 의해 보호받고, 현실을 부정하면서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적적인 안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의 여러 이미지를 볼 때 잠깐 동안의 현실에의 침입과 그 장소에 있지 않다고 하는 깊은 기쁨을 누가 구별할 것인가? 이미지, 기호, 메시지, 우리가 소비하는 이 모든 것은 현실세계와의 거리에 의해 봉인된 우리들의 평온이며, 이 평온은 현실의 폭력적인 암시에의 의해 위험에 처하기는커녕 오히려 위로받고 있을 정도이다.-26~27쪽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엄밀하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항상 낭비하고 탕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즉, 개인이나 사회가 생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초과분과 여분을 소비할 때라는 것이다.이러한 소비는 '소모', 즉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에까지 이를 수 있는데, 그때에는 특별한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중략) 또한 지금까지의 어떤 시대에도 귀족 계급은 쓸데없는 낭비를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인하였다.-43쪽

풍부한 우리 사회의 막대한 낭비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 희소성에 도전하고 풍부함을 역설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이 낭비이다. 효용이 아니라 이 낭비의 원칙이야말로 풍부함의 중심적인 심리학적, 사회학적 및 경제학적 도식이다.-47쪽

사물의 '사용'은 그 완만한 소모를 초래할 뿐이며, 급격한 소모 속에서 창조되는 가치가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파괴는 생산에 대한 근본적인 대극이며, 소비는 그 양자의 중간항에 불과하다. 소비는 자신을 넘어서 파괴로 변모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소비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소비는 유도된 소비행태로서 생산성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사물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사물의 풍부함 자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가난함을 의미한다. 재고품이라고 하는 것은 결핍에 붙어 있는 쓸데없는 장식이며 고뇌의 표시이다. 사물은 파괴에 있어서만 남아돌 정도로 존재하며, 그리고 소멸 속에서 부의 증거가 된다. 여하튼 폭력적이고 상징적인 형태(개인적 또는 집단적 해프닝, 포틀라치, 파괴적 행위)로건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형태로건 간에 파괴는 탈공업화사회의 지배적인 기능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50쪽

평등주의 신화의 담당자가 되기 위해서는, 행복은 계량 가능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토크빌이 민주적인 사회들은 사회적 불운의 해소와 모든 인간 운명의 평등화로서 보다 많은 복리를 항상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행복은 사물과 기호로 측정될 수 있는 복리, 물질적 안락이어야 한다.-53쪽

빈곤과의 투쟁에 열중하는 체하면서 또 그 은폐된 목적에 따라 본의 아니게 빈곤을 부활시킴으로써 성장의 신화는 빈곤의 신화에 의해 고양되는 것이다. -64쪽

생활필수품 수준에서의 상대적 균질화는 따라서 가치의 '점차적인 변화'와 효용의 새로운 서열을 수반한다. 왜곡과 불평등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이전한 것이다. 일상적인 소비재는 점차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지 못하며 또한 소득도 매우 큰 불균형이 감소되고 있는 만큼, 차별기준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간다. (눈에 보이는 사물에의 지출, 구매 및 소유라는 의미에서의) 소비는 사회적 지위의 변하기 쉬운 체계 속에서 현재 행하고 있는 우월한 역할을 조금씩 잃고, 그것을 다른 기준과 다른 유형의 행동에 양보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비가 모든 사람의 속성이 될 때에는 그것은 더이상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66쪽

소비과정이 다음의 두가지 근본적인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 1. 소비활동이 포함되고 의미를 갖게 되는 코드(code)에 기초한 의미작용 및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서의 측면, 이 경우 소비는 교환체계이며, 또 언어활동과 똑같다. 이 수준에서 소비를 다루는 것은 구조분석에 의해 가능 / 2. 분류 및 사회적 차이화의 과정으로서의 측면, 이 경우 기호로서의 사물은 코드에서의 의미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서열에서의 지위상의 가치로서도 정리된다. 여기에서는 소비가 전략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그러한 분석은 (지식, 권력, 교양 등의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것들과 관련해서)지위를 나타내는 가치들의 배분 속에서 소비의 특정한 비중을 측정.-72쪽

소비자는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또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타인과 다른 행동은 하지만, 이 행동이 차이화의 강제 및 어느 한 코드에의 복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타인과 자기를 구별짓는 것은 동시에 항상 차이의 질서 전체를 만드는 것이 되는데, 이 질서야말로 처음부터 사회 전체가 해야 할 일이며, 좋든 싫든 개인을 초월해버리는 것이다. 각 개인은 차이의 질서 속에서 점수를 얻어 질서 그 자체를 재생산하며, 따라서 이 질서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항상 상대적으롼 기록된다. 각 개인은 차이에 의한 자신의 사회적 득점을 절대적인 득점으로 체험하지만, 질서내의 위치는 교환되도록 하면서도 차이의 질서 자체는 그대로 남게 하는 구조상의 제약은 체험하지 못한다.-73쪽

직업상의 문화적인 갈망보다 훨씬 더 큰 유연성을 나타내는 (물질적 또는 문화적인) 순수한 소비갈망은 사실 어떤 계급에게 있어서는 사회이동의 면에서의 중대한 실패를 보상하는 것일 수 있다. 소비충동은 사회 계급의 수직적인 서열에서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보상하는 것이 될지(77)도 모른다. 따라서 (특히 하층계급의) '과소비' 갈망은 지위를 추구하는 요구의 표현인 동시에 이 요구의 실패를 체험한 데서 나오는 표현일 것이다.-77~78쪽

차이화의 증대는 반드시 사회계층의 상하간의 거리의 증대 및 '척도기준의 비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증대, 양극이 접근한 서열 내부에서의 차이표시기호의 감소경향을 의미한다. 균질화와 상대적인 '민주화' 는 더욱더 격렬한 지위추구 경쟁을 수반한다.-79쪽

세탁기는 도구로서 쓰여지는 것과 함께 행복, 위세 등의 요소로서의 역할도 한다. 바로 이 후자의 영역이 소비의 영역이다.-98쪽

소비는 기호의 배열과 집단의 통합을 보증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소비는 도덕(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의 체계)인 동시에 의사소통의 체계, 즉 교환의 체계이기도 하다.-101쪽

청교도는 자기 자신을, 그 자신의 인격을 최대한으로 신을 찬양하기 위해 이익이 생기게 하는 기업으로 보았다. 그러한 산출을 위해서 한평생을 보낼 때 그의 '인격적인' 자질, 그의 '성격'은 그에게서는 투기도 낭비도 하지 않고 잘 관리해야 하고 시기적절하게 투자해야 하는 자본이었다. 이와는 바대로,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소비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유를 의무로 삼는 존재로, 향유와 만족을 꾀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달리 말하면 행복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귀여워하거나 귀여움을 받아야 되고, 유혹하거나 유혹받아야 하며, 또 활력에 가득 차야 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그것은 접촉 및 관계를 증대하는 것, 기호와 사물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 향유의 모든 잠재력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것 등을 통해 생존을 극대화하는 원리이다.-104쪽

대중을 노동력으로 사회화한 산업체계는 더 나아가서 자신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되며, 또한 그들을 소비력으로서 사회화(즉, 통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107쪽

오늘날에는 성의 해방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억압의 개인적 심급, 소위 내면화된 검열이다. 검열은 더이상 성을 절대적으로 적대시하는 (종교적 ,도덕적, 법/률적)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성과 똑같은 원천에 의거하여 존속할 것이다. 현대인을 둘러싸고 있는 성적 관대함 속에는 끊임없는 자기검열기능이 잠재해 있다. 성에 관해서는 공공연한 억압은 더이상 없으며 (또는 적어지며), 자기검열이 일상생활의 하나의 기능이 되었다. -218~219쪽

현재 입을 모아 떠들어대는 방탕과 그곳에 침투하는 막연한 고뇌는 '생활을 변형시키기는커녕' 성이 사실상 성적 관심사가 되는 집단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정도의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분위기에서는 성은 자기 자신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자신에게 도취하기도 하고 지루해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성이 풍속을 통해서 만들어낸 체계, 성을 하나의 정치적 장치로 이용하는 체계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왜냐하면 더 잘 팔기 위해서 성을 '이용하는 광고업자들의 배후에는, 인간의 전면적 해방으로 향하는 위험한 변증법에 대항해서 성해방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용'하는 기존의 사회질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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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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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사유 체계에서도 개인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하(27)고 주체적인 수많은 개인 중의 유일한 하나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국민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실현하는 집단주의적 개체로서의 개인이다.-27~28쪽

국가주의적 집단주의 문화 안에서 '개인'은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고 '이기심'과 동의어로 인식된다.(33)대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보다는 집단적 규율에 복종하고 집단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간형이 찬양된다.-33~34쪽

현재 한국사회에는 미국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이 병존한다. 첫째, 과거의 반공-친미적 입장은 지배층 및 중간 계층에서 여전히 강하다. 그것은 다시 냉전주의적 권위주의에 경도된 입장과 자유주의적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 두 번째, 급진적 관점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은 주로 진보적 지식인이나 노동 운동을 중심으로 한 기층 운동에서 강하다. 세 번째로 일반 대중들은 민족주의적 정서에 토대하여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 막연한 반미 정서가 꼭 정치적 반미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의 반공-친미의 경우도 정치적으로만 그럴 뿐 문화적으로는 매우 보수 권위주의적인 입장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의 개인주의나 개방성, '퇴폐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복합성이 존재한다.-98쪽

경제적 개방과 정치적, 문화적 보수주의를 결합하는 이중적 입장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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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한국 사회문화사 01
이효인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6월
절판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집을 나온 여자> 같은 영화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우중화 정책으로 채택한 스포츠 산업 우대와 섹스 산업의 연성화 정책은 곧바로 한국 영화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관계 설정과 묘사에서도 연성화 정책으로 외면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만 하더라도 번성했던 에로 비디오, 즉 극장에서 먼저 상영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비디오로만 출시되는 영화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 1980년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산딸기>, <애마부인>등이다. 1981년부터 이런 영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50쪽

1980년대 중반까지 이런 영화가 성행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상품으로서의 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 환경을 그리거나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는 제재를 받던 시기였던지라 상품으로 가장 적합한 것은 '웃음'보다는 '밀실의 원초적 욕망'을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산업과 예술 모두에서 후퇴를 거듭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 소재나 이야기 구조에 빠져 있던 한국 영화계가 어느날 갑자기 어느 정도 수준을 지닌 대중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전두환 정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애의 묘사나 파격적인 설정조차 용납되지 않(253)던 사회적 분위기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정권으로부터 그것이 허용되는 분위기로 바뀐 '사회 조건'도 이런 영화의 성행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253~254쪽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조금이나마 고치려는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그 작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에 경제적 성장에 의한 개개인의 풍요는 남성들의 매매춘 행위를 보다 손쉽게 가능하게 했을 것이고, 정권은 그 편의를 위해 각종 윤락 관련 산업을 양성화시켰다. 또 그러한 경제적 잉여는 남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편리한 생활은 여성들에게도 '잉여 시간과 금전'을 제공했다. 뜻있는 자 누구에게나 매매춘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마초 파라다이스'는 여성들에게도 정반대의 반발심리나 성 욕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심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1970년대나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영화들과는 달리 1980년대의 '부인들' 영화는 이런 여러 가지로 복합된 조건들 속에서 태동할 수있었던 것이다. 또 이 영화들은 80년대의 '또 하나의 장르 영화'로서 미미하나마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고, 1990년대의 에로 비디오 열풍의 토대가 되었다. -254쪽

에로 영화라는 1980년대의 장르형 영화들은, '여 주인공들의 욕정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 형성과 진행 과정 그리고 결말'이라는 공식의 차원에서 그 근간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철저할 정도로 (주로 남성)관객들의 관음적 시선을 염두에 두고 노출/표현/변주되었다. <애마부인>시리즈나 <산딸기>시리즈는 처음에는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었지만 후속편이 나올수록 점차 변두리 극장이나 비디오 상영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이후에는 아예 비디오로만 출시되어 자신들만의 고정 관객들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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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모던 뽀이에서 N세대까지
마정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1월
절판


원칙적으로 공익광고는 국가의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공익 광고는 대부분 각종 재단과 민간단체 등에서 진행한다. 국가의 이익을 공익광고로 실현하려는 욕구는 정부의 독선과 편견을 조장할 따름이다. 거기에는 정부의 이익과 개인의 욕구 사이의 조절기능이 상실되고 모든 개인의 욕구를 정부의 이익 안에 포함시키려는 관료의 지배욕이 드러날 뿐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 아래 공익광고의 주제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이 '질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86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은 1980년대 내내 대중의 일상과 의식을 옭아맨 대규모 의식조작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집권세력은 "올림픽 개최는 곧 선진국"이라는 기묘한 공식을 내세우며 대회 유치를 자신들의 치적으로 내세웠고, '질서'와 '화합'이라는 명목 아래 강력한 통합과 억제의 수단으로 이를 이용했다. 올림픽 유치와 함께 보신탕집이 불법화되고 영어 조기교육 붐이 불어닥친 것도 기억해둘 만하지만, 1980년대 내내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불시에 튀어나와 우리의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옥죄곤 하던 '질서'의 구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도의 산물이었는지를 잘 보여-202쪽

준다. '질서'의 구호는 교통질서 차원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간 일종의 억압적 콤플렉스 기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202쪽

1988년 즈음부터 우리의 소비문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미온적이기는 하지만 개헌, 대통령 직선제 등의 민주적 절차를 지나오면 언론기본법 폐지 등의 정치적 사회적으로 변화된 상황이 작용했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88올림픽이다. 이제 소비재가 넘쳐나고, 그동안 퇴폐문화라고 거부했던 소비문화를 대학생들이 거리낌 없이 향유하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는 욕망의 시대로 접어 들어가게 된다. -217쪽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소비재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수출역군이던 가전 3사들은 내수시장에 전력을 다했고 광고는 전자제품의 경합장이었다. 특히 백색 가전이라 불리는 세탁기, 냉장고, 전자렌지 등과 흑색 가전이라 불리는 텔레비전, 비디오 등의 생활용품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그 뒤를 이어 VTR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문화전달매체로 자리잡아갔다. 1987년까지 전체가구의 약 14.6% 수준이던 한국의 VTR 보급률은 올림픽(217) 특수 덕에 1988년 보유대수 260만 대를 넘어서 평균 5가구에 1대꼴로 보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90년대에는 350만 대로 늘었으며 92년 1월의 갤럽조사에 따르면 그 보급률이 54.2%로 나타났다. -217~218쪽

금성, 삼성, 대우 등 가전 3사는 당시 올림픽을 겨냥하여 간단히 예약녹화를 할 수 있는 대신 다른 기능들을 간소화한 '올림픽형 VTR'을 일제히 출시하고 대대적인 판매경쟁을 벌였다. 직장업무나 학업 때문에 올림픽 경기를 제시간에 감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올림픽의 감격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 않으냐고 유혹했다. -218쪽

그 이전까지 VTR과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비디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음란물이었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각종 비디오테이프에 의무조항으로 삽입되던 문구가 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218)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수한 영상매체인 비디오를 바르게 선택 활용하여 맑고 바른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가 바른 길잡이가 됩시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수도 있습니다."-218~219쪽

비디오 마니아들에게는 <대한뉴스>처럼 떠오르는 추억의 문구이다. 호환, 마마라니 이미 그 당시에도 시대착오적인 비유였지만 오늘날 되돌아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문구이다. 여하튼 VTR의 보급으로 인해 시청각문화활동은 수동적 성격에서 개인의 개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성격의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VTR의 발달과 폭넓은 보급은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라는 새로운 업종을 탄생시켰으며, 주말이나 공휴일의 비디오 감상은 도시민의 자유로운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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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간 - 1959-2009 대한민국 전자산업 50년사
전자산업 50년사 편찬위원회 엮음 / 전자신문사 / 2009년 10월
품절


최근 기업사에 관심이 생겨 본 책의 내용 일부를 옮겨 본다(상식 챙기기 목적도 포함)/ 우리 전자산업을 결산하는 최대 수확은 역시 1969년 1월 시행된 전자공업진흥법의 제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전자산업을 국가중추산업으로 진흥함으로써 산업설비 및 기술의 근대화,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케 한다는 것이었다. 1959년 금성사의 진공관 라디오 개발이 있은지 꼭 10년만의 일이었다. 이 법이 제정됨에 따라 정부는 비로소 본격적인 전자산업진흥시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 가운데서도 상공부는 중점 육성대상 품목을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전자산업 육성 주무부처로서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당시 상공부 장관에게는 중점 육성이 필요한 전자기기 품목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과 이 권한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전자공업진흥기본계획 수립 임무가 주어졌다. 이때 장관이 지정할 수 있는 중점 육성대상 품목은 관련기술 국산화, 사업계 전문화와 양산화, 성능과 품질 개선 등이 요구되던 것들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민간업계에 상공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었던 근거들이기도 했다. -91쪽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업계는 성장 유망 품목이라는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1975년 전자산업의 주요 품목을 보면 반도체 조립 생산이 26%,흑백TV가 21%, 녹음기가 3%를 차지하고 있었다. 업계는 앞으로 이들 품목이 계속 성장을 주도할 것인지를 진단해 보고자 했다.(134) 1976년 한국무역협회는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ADL에 '한국의 전자산업 장기 전망'이라는 용역조사를 의뢰했다.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유망 품목을 찾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가전제품으로는 컬러TV, VCR등이 유망 품목으로 꼽혔고 산업용 기기로는 전자식 교환기, 컴퓨터 및 주변기기 등 모두 24개 품목이 선정됐다.(중략)개발 환경을 조성하려는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펼쳐졌다. 한국정밀기기센터(FIC)는 1971년 개최된 제2회 한국전자전람회에서 '신모델 경진대회'를 개최해 업계의 새로운 품목 개발을 유도했다. FIC는 1979년부터 이 대회를 '신개발 및 신모델 경진대회'로 확대하고 최우수업체에 수여하는 상공부장관상을 대통령상으로 격상시켜 전자업체가 자연스레 기술 개발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134,135쪽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정책에서(145)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1986년 7월 공포된 '공업발전법'은 산업정책 기조를 간접 지원에 두고 민간 기업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한 정책이다. -145,146쪽

1980년대의 국내외 경기가 제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이를 타계할 정책을 펼쳐보였으나 업계의 불황은 지속되었다.같은 해 11월 8일 네 번째 정책이 발표되었다. 그 주요내용은 우선, 저축성 예금 증대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업의 원가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2.5%, 대출 금리를 2.0%로 각각 인하하는 것이었다. 둘째 컬러TV,냉장고 등에 대한 특별소비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기본세율의 30%를 인하함으로써 컬러 TV와 냉장고의 특소세 실행세율을 40%에서 28%로 낮추었다. 셋째로는 세타기, 냉장고, 컬러 TV등 내구성 소비재에 대한 은행이 수요지에게 수입가격의 80%까지 융자해주고 수요자는 2년 동안에 그것을 균등분할 상환하는 이른바 수요자 금융 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대손귀책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당시의 전자산업의 발전과 수요창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1984년 경기과열 우려에 따라 폐지된다. -176쪽

1969년부터 추진된 전자공업육성 8개년 계획에 따르면 계획이 마무리되는 1976년의 수출 목표액은 4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실제 달성액은 250%나 초과된 10억 달러였다.내수와 수출 비중은 평균 4대 6 정도로 수출이 높았다. 이 역시 수출 기반의 경제성장 정책을 편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었다. 주요 분야의 국내 생산 계획은 어디까지나 수출을 전제로 세워지고 추진됐다. -229쪽

1970년대 중반 이후 자국 시장에 개도국들의 물품 수입이 급등하자 선진국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국과 대만을 비롯해 일본의 수출이 급신장세를 보이자 선진국들이 자국의 산업 보호를 내세워 제동을 걸고 나섰다. 1976년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는 1978년에 들어 정점을 이뤘다. -230쪽

컬러tv는 국내에는 아직 컬러tv 방송이 방영되지 않는 상황에서(230)수출 주력푸목으로 부상한 특이한 경우였다. 당시 금성사와 삼성전자, 대한전선 등 가전3사가 조만간 컬러tv 방송의 방영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서둘러 양산 체제를 갖춘 것이 1977년. 하지만 과소비와 국민위화감 조성이 우려된다는 시기 상조론에 밀려 방영시기가 계속 늦춰지자 3사는 그 대안으로 미국시장을 뚫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중략)바로 이때 미국 정부가 자국 내 tv업체 보호를 명목으로 한국정부에 자율수출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또 한국에서 소비되지 못하는 상품을 왜 자국으로 밀어내느냐는 항의메시지도 함께 전달해왔다. 정부와 업계가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230,231쪽

전자산업의 장기 발전계획은 1981년 1월 전자공업진흥법 제4조에 '전자공업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이하 '전자공업진흥 기본계획')'으로 공고됐다. 계획 시행 기간은 1981년 공고시부터 1985년까지다. 계획의 기본적인 발전방향은 가정용 기기는 수출 주도적으로 세계시장을 넓혀 나가고 산업용 기기는 내수 위주로 우선 국산화를 촉진한 후 정밀부품과 소재를 개발해 나가는 것으로 명시됐다. -249쪽

컬러TV방송은 마이너스 성장의 충격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특히 전자산업 활성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 1981년 7월까지 국내에 보급된 컬러TV만 해도 100만대가 넘었다. (중략)당시 컬러TV시장을 주도하던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는 컬러TV수상기 신 모델 개발과 출시에 온 힘을 쏟았다. 우리나라 전자산업 역사에서 소비자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가전제품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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