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2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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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정권은 피로 얼룩진 정권 이미지에 부드러운 가면을 씌우고 국민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각종 화려한 이벤트와 조치를 양산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열린 '국풍 81'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이것이었을까? '5공화국의 태평성대'를 선전하기 위한 대대적인 대중조작 이벤트였다. 일본의 극우에 심취한 허문도가 일본의 카미카제 정신을 본따 이름을 붙이고 적극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국풍이었다. -48쪽

신현준은 "한마디로 80년대의 문화정책은 대중문화를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방향은 대체로 '규제완화'의 방향을 취했다"면서 "문제는 이런 규제완화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가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먼저 지적할 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완화가 선별적이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한 예로 영화검열 완화의 경우 주로 '저급한' 영화에만 선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즉, '불온한' 문화의 금기는 여전했고, 1981~83년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욱 강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온한' 반대자들이 '3s정책'(스포츠, 스크린, 섹스)이라고 불렀던 표현은 당시 정책의 새로운 기조를 말해준다. 70년대의 문화정책이 원칙적으로 외래 퇴폐문화를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문화에 대한 규제를 단행했던 반면, 80년대는 퇴폐문화에 대한 선별적 해금을 실시하면서 이런 조치가 체제와 그리 불편하지 않게 어울리도록 관리하는 양상을 취했다. 즉, 정책담당자가 보기에 '퇴폐적'이지만 별달리 '위협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는 방치한다는 것이 당시의 문화정책의 이데올로기로 보인다. 70년대와 비교한다면 정책의 지배적 원리가 금지의 논리에서 방치의 논리로 전화-54쪽

한 것이다. '국풍 81'을 비롯한 관제행사들은/새로운 문화적 '모델'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문화의 탈정치화를 통한 정치적 이용'이라는 80년대 문화정책의 기조가 형성되었다는 '성과'를 빼면 말이다."(신현준, <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문화운동> 재인용) 5공은 '퇴폐'를 부추기면서도 또 그로 인한 결과를 빌미로 '통제'를 시도하는 이중적인 대중문화정책을 구사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국민정신개혁운동'이라는 '정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는데,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를 삽입하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애국가를 틀어주는 것이 '정화운동'의 이름으로 행해진 대표적인 것들이었다.(신현준,<1980년대 문화적 정세와 민중문화운동> 재인용)-54~55쪽

1945년 9월 7일 미 군정치하에서 미군사령관 하지의 군정포고 1호로 시작된 통행금지가 그로부터 36년만인 1982년 1월 5일 밤 12시를 기해 전방 접경지역과 후방 해안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해제되었다.-83쪽

통금해제 후,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했던 보통 사람들이 즐겨 찾은 곳은 심야극장이었다. 컬러tv 방송으로 불황에 시달리던 영화계가 통금해제 후 영화계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이트 쇼'라는 이름으로 시사회를 여는 등 심야극장 판촉에 공을 들인 결과이기도 했다. 통금이 해제된 지 꼭 한 달 뒤인 2월 6일, 첫 심야 상영영호인 <애마부인>이 개봉됐다. -88쪽

"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정권은 폭압과 자유화라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교복과 통행금지 폐지 그리고 두발 자유화는 전두환정권의 선물이다. 충무로에 대한 전두환정권의 선물은 에로영화에 대한 검열완화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심산, <애마부인의 아버지> 재인용)-91쪽

이문열의 '교양주의'는 대학생 수가 늘어난 것 못지않게 '교양'을 찾게 된 중산층의 부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서구적 교양을 원하는 중산층 말이다. 물론 이문열의 교양주의는 서구적 교양주의이며, 이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사대주의와도 잘 맞아떨어졌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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