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3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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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안 게임은 군사독재정권의 선전 내용대로 한국이 종합 2위를 하고 끝났다. 그리고 정권은 이번 아시안 게임을 자신들의 통치논리에 뜯어맞추어 대중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 관중 매너도 금메달감이라든가, 4천만이 11억의 중공을 이겼다 라든가 등의 경기 결과를 공동체 전체의 승리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 게임은 한마디로 권력의 획일적인 조직동원 능력이 만들어낸 타율적 잔치일 뿐이다. 비인기종목이 인기종목과 마찬가지로 관중이 많다고 하는데, 경기 중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낯익은 괴성들이 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조용필이 노래 부를 때 들리는 환성인데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이 전부 동원된 초, 중학생들이다."(고광헌, <스포츠와 정치>에서 재인용)-78쪽

"나는 지금도 내가 뉴스를 진행하던 그때, 스튜디오 한쪽에 잉크를 풀어놓은,(그래야 실감이 났으므로) 수돗물로 찰랑대던 여의도 일대의 모형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연히 거기엔 63 빌딩이 있었고 파란 잉크물은 그 빌딩의 허리께까지 차올라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장난처럼 하면 안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63빌딩의 중간까지 물이 찬다는 건 좀 너무 하지 않느냐, 2층 정도까지로 줄이자 어쩌자 하면서 제멋대로들 기준을 정하다가 누군가 '겁을 주려면 확실하게 줘야지'하는 말에 훅훅거리며 웃기까지 하였다. 그 광란의 시기에 과학적 사고는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우리나 내뱉은 웃음에는 무기력한 자조도 섞여 있었겠지만 그 한구석엔 또 어떤 광기도 있었던 게 아닐까. 거짓말도 계속하면 그 자신은 참말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는 그때 이미 자기 제어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는지 모른다."(손석희, <부끄러운 언론의 얼굴>; 평화의 댐 사건을 말하면서)-98~99쪽

"잉여자본이 흘러 들어간 곳은 부동산업과 유통업 등의 서비스 산업이었다. 서비스 산업의 확충은 3저 호황으로 얻은 소득 증대를 소비로 연결하는 노릇을 한다. 신세대 담론이 등장하고, 소비 시대가 온 것처럼 적극적으로 논의되던 것도 이 즈음이다. 광고시장이 커지자 언론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며 방송 시간을 늘리고 증면하는 등 광고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소비를 향한 새로운 욕망을 언론이 내용을 통해서, 즉 광고를 통해서 주도하고 배치하기 시작한 것이다."(원용진,<한국 언론민주화의 진단:1987~1997을 중심으로)-117쪽

올림픽이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했다. 예컨대 최진섭은 올림픽이 한국민의 반미의식을 키우는 데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대학가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반미구호가 많이 외쳐졌지만 상당수 일반 시민들은 88 올림픽을 계기로 '반미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념적, 정치적 반미가 아니라 정서적 반미라는 것이다. (중략)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변화들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올림픽 전후로 오락, 문화산업, 음식, 숙박업, 관광산업, 스포츠 및 여행장비산업 등의 여가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296쪽

비디오시장도 호황을 누렸다. 88년 4월 당시 국내의 vcr 공급대수는 180만 대였는데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연말엔 220만~250만 대에 이르러 비디오시장의 규모는 영화시장을 추월해버렸다.(강한섭, <비디오때문에 터지는 분통>)-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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