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채 : 역설의 생산, 문학성에 대한 성찰 중 몇 구절을 옮겨본다 / 실제적인 진리로 존재할 수는 없으며 개별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 속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양태나 텅 빈 중심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곧 문학성이라는 개념의 본래적인 속성이다. -296~297쪽
199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문학이 인문주의와 함께 다양한 위기의 담론의 대상이 되어 왔음은 물론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양상은, 정도의 차이나 시차는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본주의라는 삶의 양식을 자신의 존재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시대 문학과 예술의 본원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비판이나 이른바 예술 상업주의 비판이 어느 시대에나 끊이지 않았음이 자본주의 시대 예술의 운명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지표일 것이다. 문학작품들이 판매가 부실할 때에도, 거꾸로 너무 많이 팔린다고 생각될 때에도,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 적어졌다고 생각될 때에도, 반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도, 물론 그런 위기의 담론의 핵심부에 놓여 있는 것은 경제이고, 또한 그것의 심리적 표현인 주가지수의 그래프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위기의 담론이 일상화되면 이제 담론의 위기가, 위기담론의 변증법이라 할 만한 양상으로 위기의 위기가 찾아온다. 기존의 모든 위기를 한순간에 정지시키고 새로운 위기의 지도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서의 공황. -297쪽
고진이 근대문학의 요체로서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성격과 기능들이다. 이는 물론 단지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문제의 틀이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운동이나 정치적 저항 운동 같은 대항담론과 문학의 관계, 혹은 시대정신 속에서의 문학의 위상, 문학의 정치성 등이다. 그가 1980년대에 일본문학은 끝났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 종언을 고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삶에 대한 저항담론의 현실성과 실제성이라는 말에 훨씬 가깝다. -299쪽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담론화될 수 없는 영역들, 끝없는 상징화와 그를 통해 부여되는 해석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는 어떤 원초적 결여의 자리와 같은 것,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학성에 대한 성찰이 자신의 파트너로서 동반해야 할 역설적인 대상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성을 사유하는 데서 느껴지는 불편함이란 흡사 이율배반에 관한 칸트의 논증처럼 무한성과 유한성 사이에서 스스로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근대적 주체가 자신의 운명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역설의 공간을 바라보는 심정과도 흡사하게 느껴진다. -306쪽
말하자면 그것은 미메시스적 충동을 자기 동력으로 삼고 있는 문학성이라는 대상 자체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초월론적인 속성이, 그것을 사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는 정서적 반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질적 조건을 혁명화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처럼, 문학성도 저신의 죽음을 지양으로 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마지막 불편함에 대해서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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