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 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지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 부른다. - P23

그러나 인구 1000만이 넘는 현대 도시와 국가에 살면서 
익명으로 숨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정치는 권력욕을 주체못하는 중늙은이들에게 맡겨놓은 채 애착 인형을 끼고 그저 숨이나쉬고 있기란 얼마나 편한 일인가. 짙어진 풀냄새를 맡으면서 아무도 없는 산책길을 고적하게 걷는 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조용히은거하면서 자기 삶의 안위와 쾌락만 도모하다가 일생을 마치는일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그러나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 P29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은 기존 질서와 그에 기생해서 거들먹거리는 기득권자들이 고까워서 차라리 자연 상태를 원했던 편의점 점원을 상기한 바 있다.
"나는 트럼프가 마음에 들어요. ……그는 판을 흔들어놓을 겁니다. 사과 수레를 엎어버릴 인물인 거지." 스티븐 킹은 말한다. "과일 수레를 발로 차서 엎어버린 다음에 그냥 자리를 떠버리고 싶은 욕망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 길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주워 담아야 할 겁니다."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비록 엎어진 수레를 방관하거나 과일을 밟고 다니거나 등 뒤에서 과일을 깍아 먹거나 굴러다니는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 P38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앞서 존재했던 위대한 군주들은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해이해지고 물러나기만 할 뿐, 나아가려 들지 않을 것임을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위해 아름답게 수와 문양을 놓은 옷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 등으로써 사람들의 귀를 유혹하고, 관직과 편의로써 사람들의 몸을 유도하고,
두드러지는 선행을 표창하고 비석에 새기고 영탄함으로써 사람들의 기개를 인도하였다.

박지원, <명론> 중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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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7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같은 시기에 읽으면 좋을 책 같아요.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18 10:55   좋아요 1 | URL
김영민 저자의 글이 어렵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뼈때리는 것도 많고~~아무튼 좋게 읽고 있어요^^
지금 시기에 아주 적절한 것 같고 정치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scott 2022-02-17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부 때 이분 강의 들었었는데
글과말이 크게 다르지 않은 분이십니다. ^^

페넬로페 2022-02-18 10:5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강의도 무척 좋았을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2-18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올림픽 생중계 대신 7시와 8시 뉴스를 원래 시간에 하고 있어요.
대선이 가까워져서 정치관련 뉴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한 편이었지만, 주말에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입고, 건강 조심하세요.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2-19 11:55   좋아요 1 | URL
겨울 막바지에 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서니데이님, 즐겁고 행복한 토욜 보내시길 바래요^^
제가 항상 더 감사해요~~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는 연중무휴, 12시까지 영업을 하는 마트가 있다. 늦은 밤 갑자기 뭔가가 필요할 때, 난 편의점보다는 그 마트로 달려간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그 곳은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시다. 그날은 밤늦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집에서 입는 옷 그대로에 패딩과 마스크만 걸치고 잽싸게 내려갔다. 많은 종류의 맥주가 있는 진열대 앞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내 옆으로 와서(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난 그 노인에게서 진한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패트병에 든 소주 두 병과 막걸리를 집어 들고는 얼른 계산을 하고 나갔다. 캔맥주 하나와 과자를 고른 내가 카운트로 가서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방금 그 노인분은 이미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또 저렇게 술을 사 가시네요

 

내 말을 듣자마자 평소 말수가 없는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의 고객 중에 세 명 정도 저렇게 술을 많이 사 간다고 했다. 그들은 항상 술에 절어 있으며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라고. 그 중 한 사람은 젊은 남자인데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셨다고 했다. 사장님은 그들에게 술을 팔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냥 모른 채 하며 그들에게 술을 파는 게 옳은지, 아니면 자기가 나서서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항상 헷갈린다고 했다. 봇물 터지듯 나에게 쏟아내는 그의 말들에서 그동안 사장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봄밤에서 영경과 수환 부부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로, 류머티스 환자로 같은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다.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영경에게 수환은 외출하고 오라고 한다. 그녀가 바깥에 나가는 것은 술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벚꽃이 핀 봄밤에 한 잔만 마시리라고 다짐한 영경은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의식 불명인 채 다시 요양 병원으로 실려 온다. 그동안 수환은 숨을 거두고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영경은 남편의 죽음도 알지 못한다.

 

[몸을 지탱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반 리터의 독주가 필요했다. -p170

 

그는 속을 달래주는 해장술을 마신 후에야 간신히 다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p171

 

쿠포에게는 오직 한 가지 특효약밖엔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에 반 리터의 독주는 배를 몽둥이로 후려치듯 강렬한 자극을 주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p255

 

그러는 동안 쿠포는 웅얼거리듯 신음을 했다. 전날보다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이따금 끊어지는 신음은 그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또한 묵직한 무언가가 몸 곳곳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갑고 축축한 짐승이 허벅지 위를 기어 다니면서 송곳니로 살을 물어뜯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짐승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발톱으로 등 거죽을 벗겨냈다. -324]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2권에서 제르베즈와 쿠포는 빠르게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들을 끝없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다. 멈출 줄 모르고 갈 데까지 가는 술의 향연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가족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포기하고 기대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기력한 삶이 이어진다. 쿠포가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랑티에를 집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나는 거리의 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 직전의 섬망 상태에 빠진 환자(친척)를 본 적이 있다. 평생 알코올 의존증으로 여러 병을 앓다가 마지막을 앞둔 분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헛소리를 하며 며칠 동안 괴로워 입술을 깨물어서 입술 전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분의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난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 모습에 무너져버렸다. 설사 그 사람이 살인자였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그냥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이기에 수환은 영경을 밖으로 내 보냈고, 제르베즈는 어쩔 수 없이 쿠포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며 나 역시 점점 그들을 체념의 상태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그들에게 무기력해졌다.

 

열쇠업자 비자르역시 술을 마시는 사람이고, 술만 마셨다하면 폭력적인 짐승이 된다. 그의 폭력으로 비자르 부인이 죽었고, 여덟 살인 딸 랄리에게도 채찍을 휘두른다. 그는 결국 랄리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도 랄리는 성녀와 가시관을 쓰고 수많은 채찍질을 견딘 예수의 모습을 보인다. 한 번씩 이런 글을 읽을 때, 난 남자 작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들은 여성에게 극도의 고통을 이겨내면서도 선하고 천사 같은 성녀의 역할을 맡길까? 그것도 그 어린 어린아이를 통해서. 그런 건 가능하지 않다

 

 

 

에밀 졸라는 결혼, 죽음에서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농부의 결혼과 죽음을 비교하며 서술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각자의 환경에서 사람의 삶은 비슷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클레망스는 이제 서른 살이다.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발랑탕은 술에 절어 생활했다...봉급날이면 목수는 술에 잔뜩 취했고 호주머니는 비었다...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다 자신도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 탁자에 걸터앉아 술을 홀짝거렸다.

-‘결혼, 죽음’, 서민의 결혼 중에서, p60~61

 

가난이 장롱을 온통 비워버렸다. 옷이라는 옷은 모두 싸구려 전당포에 맡겼다...요새는 부부가 구석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는데 개도 마다할 돗자리다....모든 것이 모자랐고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 웃었다....비참함과 초상으로 덮인 들판, 파리 외곽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가득 찬 시체들 때문에 힘겹게 땀 흘리고 질질 끌리며 황량해진 들판.

-‘결혼, 죽음’, 서민의 죽음 중에서, p106~114]

 

모든 것을 잃은 제르베즈는 자신이 사는 초라한 공통주택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서부터 추락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빈곤한 노동자들끼리 살아가는 초라한 곳에서 콜레라와 같은 가난은 전염되고 만다(p308)’ 고 믿는다. 결국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목로주점의 서문에서 작가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은 본디 성정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다. 부디 나 자신과 내 작품들에 터무니없는 끔찍한 혹평을 퍼붓기 전에, 무엇보다 전부를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기를 바란다.(p8~9)'고 당부한다. 그들을 보며 포기하고 체념하는 나 자신에게 작가가 보내는 이 강렬한 당부가 다시 나를, 일으키고 일깨웠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희망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족속들이라 넘겨짚지 말고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서사시에서는 신과 사람의 이름 앞에 의미가 있는 단어를 붙인다. 보통 신의 이름 앞에는 행복한이란 단어가 붙는다. 신들에게는 고통이 없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사람의 이름 앞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따른다. 가령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같이 표현된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하고 트로이아의 유민을 이끌어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하는 의무를 지닌 아이네아스의 이름 앞에는 경건’, ‘성실’, ‘정직’, ‘아버지라는 단어가 붙여져 있다. 여기에서 경건이라는 것은 신들 특히 조국의 신들과 부모 형제, 친척 및 조국에 애정을 갖고 책무를 다하는 것으로 이상적인 영웅이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아이네이스, 숲출판사, p442) 지금 현재 너무나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이름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 그저 이 사람이 미우니 그냥 무조건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안일한 발상이다. 난 적어도 새로운 대통령이 제르베즈 같은 노동자와 랄리 같은 어린이를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날 것 그대로, 사실적으로 사회와 인물을 묘사한 작가 에밀 졸라는 민중을 처음으로 묘사한 소설을 썼다는 것으로 이미 대단하다. 그 시대, 그가 어떤 비판을 받았더라도 난 그의 이런 위대한 소설을 읽는 것 자체로 그를 존경한다.

 

[죽음은 제르베즈가 자초한 비참한 삶 속에서 마지막까지 조금씩 그녀를 침범해왔다. 심지어 제르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빈곤함과 불결함 그리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 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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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2-17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도덕성 면에서는 이미 어느 누가 낫다고 판단할 지점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경제 발전과 코로나 회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선동으로 몰고 가는 건 참기가 어려워요ㅠ 여전히 고민중입니다

페넬로페 2022-02-17 13:35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이번만큼 선택이 어려운 대선은 없었던 것 같아요 ㅠㅠ

Falstaff 2022-02-17 07:4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요일에 술에 관한 독후감을 올릴 터인데, 너무 멋있게 쓰셔서 기가 팍! 죽었습니다. 물론 아주 짧게 쿠포의 이름도 거론을 합니다.
(한 번 더!) 음메, 기죽어! ^^;;;

페넬로페 2022-02-17 08:45   좋아요 6 | URL
저는 이제 ‘술‘하면 쿠포가 떠오를 것 같아요~~
월요일에 올리실 술에 관한 글,
넘 기대가 됩니다^^

mini74 2022-02-17 07: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읽었어요 페넬로페님 생각이 많아집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2-17 08:46   좋아요 4 | URL
네, 저도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고 암담하기도 하고, 맘이 참 아팠어요^^

미미 2022-02-17 08: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네도 참 인간성이 악랄했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에 지루할 틈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쿠포의 고통에 관한 묘사... 무시무시했고요. 페넬로페님 깊이 있는 리뷰 항상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2-02-17 08:52   좋아요 5 | URL
사실적으로 쓴 소설중에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소설은 처음이었어요~~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은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잖아요^^
저도 로리외부부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그들이 참 미웠는데 그런 환경에서 그나마 집세 내고 빚을 지지 않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건가요? ㅠㅠ
구제도 결혼자금을 제르베즈에게 빌려줬고 받지도 못했잖아요~~
아유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은것 같아요^^

새파랑 2022-02-17 09:4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술이 문제이긴 합니다. 쉽게 조절하기 힘든게 술인거 같아요. 그런면에서 <목로주점>은 제목을 잘 지은거 같아요 ㅋ 실제 저 제목이 아니었다고 본거 같은데 ㅎㅎ
사실주의 소설은 재미있으면서도 읽어가면서 괴로운 측면도 있는거 같아요. 저는 페넬로페님을 존경합니다 ^^

페넬로페 2022-02-17 14:10   좋아요 5 | URL
술이 술을 마시고 중독이 되어가니 정말 문제인것 같아요.
저는 목로주점을 가요의 제목으로 알고 있는 세대라서 목로주점이란 단어에 좀 낭만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었어요 ㅎㅎ
이 책 읽으며 괴로웠고 속상했고 먹먹했어요^^

coolcat329 2022-02-17 11: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을 읽다가 봄밤이 떠오르셨군요.
저도 알콜중독하면 권여선의 봄밤이 생각나요. 페넬로페님 덕분에 목로주점이 더욱 기대되고 재미있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02-17 14:12   좋아요 3 | URL
네, ‘봄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거든요~~
알콜중독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넘 좋았어요^^
쿨캣님의 ‘목로주점‘ 감상 궁금합니다^^

그레이스 2022-02-17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임이 끝났으니 리뷰 쓸 일만 남았는데, 머리가 하얘진 느낌입니다. 약간의 각성과 함께 ^^~
전 좀 묵혀 두었다가 2,3일 내에 ....

페넬로페 2022-02-17 14:12   좋아요 3 | URL
멋진 리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프레이야 2022-02-17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사려깊고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졸라가 친했던 세잔과 나빠지면서 세잔의 용기없음을 지적했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대개가 그렇듯.

페넬로페 2022-02-17 14:14   좋아요 5 | URL
세잔이 졸라의 ‘작품‘ 을 읽고 결별을 선언했다고 하는데 소설의 내용이 궁금하고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영화도 보고 싶어요^^

희선 2022-02-18 01: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해도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을 술로 달래다니, 빠지면 더 헤어나지 못하는 게 술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도 알아줘야 할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시대에도 많네요 술이 아닌 다른 데 빠지는 사람도 있고...

정치 하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과 어린이를 잘 들여다 보면 좋겠네요 선거가 있을 때만 그런 거 말하지 말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희선

페넬로페 2022-02-18 10:46   좋아요 3 | URL
술이란게 개인의 의지로 조절되면 좋은데 일단 중독되면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시대나 지금이나 술을 마실수밖에 없게 내모는 이 사회도 문제가 많고요~~
열심히 살아도 결국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체념하고 무기력해지는게 당연한거 같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하면 좋겠어요**

2022-02-18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2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2-02-20 15: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사장님의 입장이 참 난감하겠어요. 저러다 일이라도 나면 내가 판매한 술 때문일 것 같잖아요... 어쩌면 제르베르도 쿠포에게 그런 입장이지 않았을까 싶어져요. 술이 남편을 무너뜨리는 걸 알면서도 남편에겐 술 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나저나 이 책을 쓰고 노동자들과 하층민한테 욕 무지 먹었다죠! 그러고도 마카르 총서를 스무권이나 계속 썼다는게 전 좀 놀랐어요. 만약에 국내 모 작가가 서민들의 민감한 이슈를 소설로 쓴다면 그걸로 작가인생 끝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ㅎㅎㅎ

페넬로페 2022-02-20 15:43   좋아요 4 | URL
술을 판매하는 분의 입장에서는 그런 갈등을 매번 겪을 것 같아요. 근데 술을 사는 사람은 이곳에서 제지당해도 다른 곳에 가서 사면되니 본인의 의지없이는 술을 끊기가 쉽지 않을 듯 해요. 에밀 졸라가 이렇게 욕을 먹어도 20권이나 책을 썼다는 게 참 대단해요.
그로서는 그 당시 사회를 그대로 알리고 싶은 맘이 커서 그럴 수 있을것 같고 후대에 그의 작품을 읽는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목로주점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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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몰락으로 질주하는 제르베즈와 쿠포에게 남은 건 무기력, 체념, 알코올 중독, 죽음뿐이다. 분노를 넘어 슬픔과 절망뿐인 이들을 포기하고픈 나에게, 작가 에밀 졸라는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의 잘못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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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2-15 15: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권의 추락이 넘 가파르게 진행되서 좀 어질어질할 정도였어요. 페넬로페님~♡ 괜찮으신가요🙄

페넬로페 2022-02-15 16:03   좋아요 8 | URL
랄리 죽을때, 쿠포가 정신병원에 있을때, 제르베즈가 마지막으로 구제 만났을때 넘 슬퍼서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정신 차려 나가서 반찬가게에서 보름나물 몇가지 사왔어요 ㅎㅎ
전 너무 불량주부예요.
근데 도저히 책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맘이 넘 안좋아요 ㅠㅠ
2권은 페이퍼로 제 감정을 좀 적어야할 것 같아요^^

미미 2022-02-15 16:27   좋아요 6 | URL
아! 랄리 생각납니다ㅠㅠ
불량주부라뇨 저도 종종 사다먹어요ㅋㅋㅋㅋ

새파랑 2022-02-15 17:0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에밀졸라 작품중에는 이 책이랑 인간 짐승이 가장 좋더라구요. 비극적 결말이 슬프지만 왠지 더 사실같이 느껴졌어요~! 페이퍼가 기대됩니다 ^^

페넬로페 2022-02-15 17:27   좋아요 7 | URL
넘 사실적으로 잘 적었더라고요~~
전 1권보다 2권이 더 좋았어요^^
인간짐승은 이 책에 나오지 않은 랑티에의 자식이 주인공이라는데 기대됩니다^^

서니데이 2022-02-16 0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정월대보름입니다. 조금 전에 잠깐 나갔다왔는데, 날씨가 많이 추워요.
보름달 사진 찍어왔으니, 구경오세요.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16 02:24   좋아요 3 | URL
날씨가 또 엄청 춥네요.
마지막 겨울 추위가 매서워요 ㅠㅠ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꼭 꼭 그런 한 해 되었음 좋겠어요^^
 

그것은 그들의 과거의 삶과 함께했던 트렁크였다. 플라상을 떠나올 때부터 그녀와 함께했던 가방은 이제는거죽이 벗겨지고 망가진 채 끈으로 둘둘 묶여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트렁크는 그녀가 종종 꿈꾸었던 대로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 P21

하지만 제르베즈는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빚을 지면서 가장 비싼 것들을 사들였고, 빚을더 이상 갚지 못하게 되면서 더욱더 탐욕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올바른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일해 수백 프랑을 모아 빚을 진 상인들에게 100 수짜리 동전을 한 웅큼씩 나눠줄 수 있기를 꿈꾸었다. 비록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제르베즈는 점점 더 악화 일로로 치달았고, 그럴수록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 P32

부인은 사흘 동안이나몸을 뒤틀면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아! 아마 노예선에 보내진 불한당들도 그 남자만큼 악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편한테 맞아 죽는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법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겠죠. 매일같이 맞고 사는 여자들한테는 한 대 더 맞고덜 맞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도 그 불쌍한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수형이라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글쎄.
물통 위에서 떨어져서 배를 다친 거라면서…… 그러고는 밤새 비명을 기르다가 죽었어요.
- P38

제르베즈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앞으로는 자신의 이불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잠자는 것을 방해하는 천하의 웬수같은 남편이 인사불성으로 뻗어 있고, 뒤로는 그녀를 다시 차지하려고 그녀의 불행을 이용할 생각만 하는 비열한 인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 P68

쿠포와 랑티에는 말 그대로 제르베즈의 진을 빼놓았다. 마치 초를 태우듯 그녀를 남김없이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함석공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모자 제조업자는 그 반대로 아는 게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였다. 적어도 불결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새하얀 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유식함을 자랑했다. 어느 날 밤,
제르베즈는 우물가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쿠포는 그녀를 주먹으로쳐서 우물 안으로 밀어 떨어뜨린 반면, 랑티에는 그녀가 빨리 뛰어내리도록 허리를 간질였다. 그랬다. 그 꿈은 그녀의 삶과 똑 닮아 있었다. 아! 그녀는 아주 된통 걸린 셈이었다. 앞으로 쪽박을 차게 된다고해도 놀랄 게 없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제르베즈의 불행은 그녀 탓이 아니었다.  - P95

집세를 낼 수만 있다면 살이라도 떼어서 팔았을 것이다. 찬장과 난로가 텅 빈 것도 모두가 집세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파트 전체에 탄식소리가 넘쳐흘렀다. 불행을 알리는 장송곡이 건물의 층마다 계단과복도를 따라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누군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끔찍한 곡소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마지막 심판의 날, 모든 것의 종말, 불가능한 삶,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빈곤한 삶의 모습이었다. 4층의 한 여자는 벨옴 가의 모퉁이에서 일주일을 서성이며 호객 행위를 했다. 6층에 사는 석공은 주인집에서 도둑질을했다.
- P152

빈곤에 시달리며 살면서도 제르베즈는 주위에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더욱더 고통 받았다. 건물에서 이 구역은독하게 곤궁한 이들의 은신처였다. 마치 서너 집이 빵을 매일 먹지는말자고 담합이라도 한 듯했다. 문을 아무리 활짝 열어놓아도 음식 냄새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오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다란 복도에는 죽음 같은 침묵만이 무겁게 깔려 있었고, 벽들은 텅 비어버린 배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때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면서, 여인네들이흐느끼는 소리와 굶주린 아이들이 애처롭게 칭얼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족들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었다. 굶주린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통에 목구멍에 경련이 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먹을 게 없어 각다귀조차 살아남기 힘든 이곳에서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 P156

그는 몸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베개에 깊숙이 머리를 박은 채 침대에 누워 뒹굴면서 거칠게 말을 모는 마차꾼처럼 기다란 채찍을 요란하게 휘둘렀다. 그리고 랄리의 몸 한가운데로 채찍을 내려쳐서는 마치 팽이를 김듯이 딸의 몸을 감았다가 풀었다. 그 자리에 쓰러졌던 아이는 기어서 도망치고자 했다. 하지만 비자르는 또다시 랄리를 채찍으로 휘감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 P167

이제 랄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침묵하는 눈빛, 체념의 빛이 가득한 커다란 검은 눈동자뿐이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는 끝없는 고통과 비참한 삶의 모습만을 발견할수 있었다. 이제 랄리는 말문을 닫아버린 채 커다랗게 뜬 검은 눈만껌뻑거렸다. - P170

정신 병원에서 다시 말짱해진 그를 보면서 
새로 인간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행복을 꿈꾸었던 순간이 또다시허망하게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이제 결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 이젠 아무것도, 심지어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그를 막을 수가 없으므로 그녀 역시 이제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집 안이 엉망이 돼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그녀 자신도 흥청망청즐기면서 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다시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좀 더 나은 순간을 향한 기대 같은 것을 가져볼 수없는, 진창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삶이었다. 나나는 아비에게 뺨을 맞을 때마다 치를 떨면서, 왜 저 쓸모없는 인간을 정신병원에서 죽게 놔두지 않았느냐고 악을 써냈다. 그리고 얼른 돈을 벌어아비에게 술을 더 많이 먹여, 아비를 더 빨리 죽게 만들리라 다짐했다. - P178

솥처럼 생긴 저 망할 놈의 기계가, 주물 가게 뚱보 여주인의 배처럼 둥그런 저것이 그녀의 양어깨에 전율을 일으키면서 마시고 싶다는 욕구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그랬다. 몸집이 거대한 창녀나 마녀의 금속으로 만든 내장 같은 것이 뜨거운 불을 한 방울씩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진정한 독의 근원인 저런 기계는 진작 깊숙한 땅속으로 파묻어버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토록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르베즈는 그 속에 코를 파묻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 P188

겨울이 되자 쿠포 가족의 삶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나나는 매일 저녁 구타를 견뎌야 했다. 그러다가 아비가 지친 듯보이면, 이번에는 어미가 똑바로 처신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뺨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러다가 상황은 가족 전체의 난투극으로발전하곤 했다. 한 사람이 때리면 다른 한 사람은 두둔하다가는 결국셋이 함께 깨진 그릇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바닥으로 나뒹구는 일이반복되었다. 게다가 늘 배가 고팠고, 지독한 추위마저 그들을 괴롭혔다. 혹시라도 나나한테서 장식용 리본이나 소맷동에 다는 단주 같은 것이 띄기라도 하면 부모는 그것을 빼앗아 즉각 돈으로 바꾸었다. 나나의 것이라곤 매일 저녁 할당받는 따귀밖엔 없었다. - P222

독약이 온몸을 망가뜨린 듯. 마치 살아 있는 유령 같았다! 알코올을 잔뜩빨아들인 그의 몸은 약국에 진열된 병 속의 태아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가 창문 앞에 서면 갈비뼈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움푹 팬 볼에, 눈에서는 밀랍 같은 분비물이 대성당에 조달할 수도 있을 만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번성한 것은황폐해진 얼굴 한가운데에 마치 아름다운 카네이션처럼 활짝 피어난붉은색 코뿐이었다. 쿠포가 노인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비틀거리면서거리를 지날 때면, 그가 이제 겨우 갓 마흔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몸서리를 쳤다. 손 떨림 증상 또한 날로 심해졌는데, 특히 오른손은그 정도가 심각했다.  - P253

"전 그럴 수가 없어요,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전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그사이 제르베즈는 비자르에게 달려들어 채찍을 빼앗았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아이의 침대 앞에서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저 코흘리개 계집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아프지도 않은데 어떻게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을 수 있다는 건지! 일하기 싫어서 수작을 부리는 게 틀림없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본 다음 거짓말이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제 곧 아시게 될 거예요.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그동안 식구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그리고 제게 작별인사를 해주세요. 아빠."
비자르는 딸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코를 비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의 얼굴이 평소외는 달리 죽은 사람의 얼굴빛을 띤 채 어른처럼 진지해 보였다. - P275

제르베즈는 자신의 무덤속으로 들어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시각에 황폐한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건물 입구가 마치 굶주린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때 그녀는 짐승의 시체처럼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이곳 한 귀퉁이에서 사는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귀가 멀어 저 벽들 뒤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크나큰 절망의 음악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 추락이 시작되었다. 그랬다. 빈곤한 노동자들끼리 아래위로 겹겹이 살아가는 초라한 공동주택에서의 삶은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콜레라와 같은 가난에 전염되고 마는 것이다. 그날 밤은 그곳의 모든 사람이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다만 오른쪽에서는 보슈 부부가 코를 고는 소리가, 왼쪽에서는아직 잠들지 않은 랑티에와 비르지니가 눈을 감고 편안히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안뜰로 들어서자 공동묘지 한가운데에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는 눈이 그려놓은 희고무레한 사각형이보였다. 불빛이라곤 하니도 없이 납빛을 띤 회색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의 정면은 폐허의 잔해를 연상케 했다. 마을 전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매장되기라도 한 것처럼 조그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 P308

그러는 동안 쿠포는 웅얼거리듯 신음을 했다. 전날보다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이따금 끊어지는 신음은 그가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고있음을 짐작게 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또한 묵직한 무언가가 몸 곳곳을 짓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차갑고축축한 짐승이 허벅지 위를 기어 다니면서 송곳니로 살을 물어뜯는느낌이었다. 또 다른 짐승들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발톱으로 등 거죽을 벗겨냈다.
- P324

죽음은 제르베즈가 자초한 비참한 삶 속에서마지막까지 조금씩 그녀를 침범해왔다. 심지어 제르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 때문에 얼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빈곤함과 불결함그리고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로리외 부부의 표현에 의하면, 제르베즈는 조금씩 타락해감으로써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풍겼고,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제르베즈가 보이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단 밑 골방에서 이미시퍼렇게 변해버린 제르베즈의 시신을 발견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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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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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는 노동자의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1864년 그는 노동조합 금지법을 폐기하고 파업권을 인정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다.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이었고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 목로주점제르미날에서 그들의 생활상 중 알코올 의존증과 난잡한 생활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 '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김영사, p638]

 

1877년에 출간된 목로주점의 시대적 배경은 1850년경부터 1869년까지이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쓴 소설 중에서 목로주점이 가장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초반부에 랑티에가 제르베즈에게 어린 자식 두 명만 남기고 떠나 버리고, 세탁장에서 제르베즈와 비르지니가 뒤엉켜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강한 막장의 향기와 더불어 나의 진을 완전 빼놓았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인 에밀 졸라의 문장은 적나라한 사실적 묘사에 빛을 발했고, 1권의 마지막 부분인 제르베즈의 생일 파티에서 그것은 극에 달한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 아이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 있으면(p71)’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여자, ‘제르베즈 마카르 쿠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프랑스 노동자의 삶은 비참하다. 그들에게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은 가난, , 폭력, , 나태, 체념이다. 열 살부터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하고, 열네 살에 아들을 낳은 제르베즈 역시 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그녀에게 행운이나 요행은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되면 거기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불행해지는 삶이 되풀이됨으로써 그녀는 점점 체념하고, 식탐으로 인해 뚱뚱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착하고 열심히 일하며,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보상은커녕 점점 삶이 어려워만 간다. 그 이유가 단지 계급적인 문제와 사회 구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 처해진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나태함, 삶의 포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목로주점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이다. ’때려눕히다, 머리를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assommer의 명사형 assommoir는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 벨빌에 있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2, p341, 역자 해설에서]

 

아쏘무아르목로주점으로 번역될 만큼 이 소설에서는 매번 술과 술을 마셔 취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술은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첫 번째이자 가장 최고의 관문이다. ‘증류주라는 파란색 글씨 하나만으로 간판을 채우고 있는 콜롱브 영감의 주점으로 대표되는 술집을 노동자들은 스스로, 동료들의 유혹으로 찾아온다. 아침에 파리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노동자의 대열 중에서도,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이 술집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치고 앉아 술을 마시며 하루를 허비해 버린다. 싸구려 독주를 마시고 취한 그들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 건 폭력이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실한 함석공이었던 그는 지붕에서 떨어져 부상당하자 그때부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독주로 희석시킨다. ‘온몸의 근육을 달콤한 무기력함에 내맡긴 채 무위도식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게으름의 느긋한 승리를 느끼며 앞으로도 죽 이렇게 살고 싶은(p198)' 욕망으로 제르베즈의 등골을 빼먹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담은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는 결혼식이다. 이 책에서는 제르베즈와 쿠포의 결혼식을 통해 가난한 노동자의 결혼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 가난한 그들은 빚을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시청과 교회에서조차 그들은 차별 당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혼식이 날림으로 진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그들의 산책, 피로연도 왠지 씁쓸하고 슬프다.

 

산책길에 비에 젖은 그들은 하객 마디니에 씨의 제안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낡은 옷으로 호사스레 치장한 가난한 이들의 모습옷장에 오랫동안 넣어둔 탓에 퇴색해버린 코믹한 모양의 낡은 모자를 쓴 남자들의 모습은 다른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아폴론 갤러리와 살롱 카레를 지나며 그들은 여러 그림들을 감상한다. 그들에게 그 그림들은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넓은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그들은 지루해하고 지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평생을 뼈를 깎는, 되풀이되는 노동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문화적 향유일지도 모른다.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 ‘가나의 혼인 잔치는 흡사 그들의 모습 같고, ‘모나리자’, 무리요의 성모마리아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에밀 졸라는 소설 속의 여러 부분에서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비판을 한다. 1850531일 의회는 투표를 하려면 최소 3년간 한 선거구에 거주해야 한다는 선거법을 통과시킨다. 이 선거법은 일자리를 찾아 거처를 수시로 옮기는 수많은 노동자의 투표권을 앗아갔다(p143, 역자 해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3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18482, 6월 혁명으로 공화파가 국립작업장을 해산하기로 하자,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으나 정부에 의해 진압 당한다.

 

[민중은 언젠가는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쿠포는 그런 일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단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밥이나 축내는 의회 의원들에게 일당 25프랑을 주기 위해서라니. -p177]

 

대장장이 구제를 만나러 간 제르베즈는 구제가 보여 준 엄청난 기계의 움직임에 압도당한다. 새로운 기계 때문에 구제의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p277]

 

똑같이 불행한 밑바닥 인생이라도 여자의 삶은 더 척박하고 비참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일을 하고 남편의 저녁밥을 준비해야 한다. 술 취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이고 아이들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나를 낳고 여자로 파리에서 살아가기에 힘들다며 슬퍼한 제르베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며, 심술을 부리고 나쁘게 말하는 인간의 악한 심리도 작가는 잘 표현했다.

 

1권의 마지막은 제르베즈가 질펀하게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빚만 늘어나는 생활이 계속되지만, 제르베즈는 또 빚을 얻어 생일 파티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녀와 초대받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먹고 마셔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체념과 아귀 같은 허기의 욕망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 모습들을 보며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그럴 수밖에 없으니 이해하자는 내 마음속의 두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제르베즈와 같은 성향은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한 번씩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섰을 때, 우리 동네 대로변에서 날렵하고 잘 빠진 스포츠카가 큰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쫓아가 한 대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직 1권만 읽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러한 분노가 자주 치솟아 올랐다. 왜 그렇게 패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특히 제르베즈의 남편인 쿠포가 랑티에를 데리고 왔을 때 폭발할 뻔 했다. 2권을 읽으며 나의 분노지수는 얼마나 올라갈지 벌써부터 긴장된다.

 

무슈 에밀 졸라여!

그대는 과연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이십니다.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오, 아름다운 부인....그대도 언젠가는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될 거요....아무렴, 난 죽음이 데려간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할 여인네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거든....죽는다는 건 말이지....내 말을 명심하시오.....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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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3-10 15:38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3-1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10 15:39   좋아요 1 | URL
thkang님, 감사드려요.
오늘은 정말 봄이 온 것처럼 날씨가 좋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요**

thkang1001 2022-03-10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관왕 축하 합니다!
졸라 담번 어떤 작품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ㅅ^

페넬로페 2022-03-11 00:01   좋아요 0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담번은 아마 ‘나나‘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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