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 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지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 부른다. - P23

그러나 인구 1000만이 넘는 현대 도시와 국가에 살면서 
익명으로 숨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정치는 권력욕을 주체못하는 중늙은이들에게 맡겨놓은 채 애착 인형을 끼고 그저 숨이나쉬고 있기란 얼마나 편한 일인가. 짙어진 풀냄새를 맡으면서 아무도 없는 산책길을 고적하게 걷는 일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조용히은거하면서 자기 삶의 안위와 쾌락만 도모하다가 일생을 마치는일은 얼마나 유혹적인가. 그러나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 P29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은 기존 질서와 그에 기생해서 거들먹거리는 기득권자들이 고까워서 차라리 자연 상태를 원했던 편의점 점원을 상기한 바 있다.
"나는 트럼프가 마음에 들어요. ……그는 판을 흔들어놓을 겁니다. 사과 수레를 엎어버릴 인물인 거지." 스티븐 킹은 말한다. "과일 수레를 발로 차서 엎어버린 다음에 그냥 자리를 떠버리고 싶은 욕망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 길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주워 담아야 할 겁니다."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비록 엎어진 수레를 방관하거나 과일을 밟고 다니거나 등 뒤에서 과일을 깍아 먹거나 굴러다니는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 P38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앞서 존재했던 위대한 군주들은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해이해지고 물러나기만 할 뿐, 나아가려 들지 않을 것임을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위해 아름답게 수와 문양을 놓은 옷으로써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 등으로써 사람들의 귀를 유혹하고, 관직과 편의로써 사람들의 몸을 유도하고,
두드러지는 선행을 표창하고 비석에 새기고 영탄함으로써 사람들의 기개를 인도하였다.

박지원, <명론> 중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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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7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같은 시기에 읽으면 좋을 책 같아요.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오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2-02-18 10:55   좋아요 1 | URL
김영민 저자의 글이 어렵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뼈때리는 것도 많고~~아무튼 좋게 읽고 있어요^^
지금 시기에 아주 적절한 것 같고 정치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scott 2022-02-17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부 때 이분 강의 들었었는데
글과말이 크게 다르지 않은 분이십니다. ^^

페넬로페 2022-02-18 10:5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강의도 무척 좋았을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2-18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올림픽 생중계 대신 7시와 8시 뉴스를 원래 시간에 하고 있어요.
대선이 가까워져서 정치관련 뉴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한 편이었지만, 주말에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입고, 건강 조심하세요.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2-19 11:55   좋아요 1 | URL
겨울 막바지에 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서니데이님, 즐겁고 행복한 토욜 보내시길 바래요^^
제가 항상 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