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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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는 노동자의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1864년 그는 노동조합 금지법을 폐기하고 파업권을 인정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다.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이었고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 목로주점제르미날에서 그들의 생활상 중 알코올 의존증과 난잡한 생활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 '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김영사, p638]

 

1877년에 출간된 목로주점의 시대적 배경은 1850년경부터 1869년까지이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쓴 소설 중에서 목로주점이 가장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초반부에 랑티에가 제르베즈에게 어린 자식 두 명만 남기고 떠나 버리고, 세탁장에서 제르베즈와 비르지니가 뒤엉켜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강한 막장의 향기와 더불어 나의 진을 완전 빼놓았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인 에밀 졸라의 문장은 적나라한 사실적 묘사에 빛을 발했고, 1권의 마지막 부분인 제르베즈의 생일 파티에서 그것은 극에 달한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 아이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 있으면(p71)’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여자, ‘제르베즈 마카르 쿠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프랑스 노동자의 삶은 비참하다. 그들에게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은 가난, , 폭력, , 나태, 체념이다. 열 살부터 세탁소에서 일을 시작하고, 열네 살에 아들을 낳은 제르베즈 역시 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그녀에게 행운이나 요행은 주어지지 않는다. 조금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되면 거기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불행해지는 삶이 되풀이됨으로써 그녀는 점점 체념하고, 식탐으로 인해 뚱뚱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착하고 열심히 일하며,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보상은커녕 점점 삶이 어려워만 간다. 그 이유가 단지 계급적인 문제와 사회 구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 처해진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나태함, 삶의 포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목로주점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이다. ’때려눕히다, 머리를 쳐서 죽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assommer의 명사형 assommoir는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 벨빌에 있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2, p341, 역자 해설에서]

 

아쏘무아르목로주점으로 번역될 만큼 이 소설에서는 매번 술과 술을 마셔 취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술은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첫 번째이자 가장 최고의 관문이다. ‘증류주라는 파란색 글씨 하나만으로 간판을 채우고 있는 콜롱브 영감의 주점으로 대표되는 술집을 노동자들은 스스로, 동료들의 유혹으로 찾아온다. 아침에 파리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노동자의 대열 중에서도,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이 술집을 지나치지 못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치고 앉아 술을 마시며 하루를 허비해 버린다. 싸구려 독주를 마시고 취한 그들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 건 폭력이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실한 함석공이었던 그는 지붕에서 떨어져 부상당하자 그때부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독주로 희석시킨다. ‘온몸의 근육을 달콤한 무기력함에 내맡긴 채 무위도식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게으름의 느긋한 승리를 느끼며 앞으로도 죽 이렇게 살고 싶은(p198)' 욕망으로 제르베즈의 등골을 빼먹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담은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는 결혼식이다. 이 책에서는 제르베즈와 쿠포의 결혼식을 통해 가난한 노동자의 결혼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 가난한 그들은 빚을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시청과 교회에서조차 그들은 차별 당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혼식이 날림으로 진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그들의 산책, 피로연도 왠지 씁쓸하고 슬프다.

 

산책길에 비에 젖은 그들은 하객 마디니에 씨의 제안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낡은 옷으로 호사스레 치장한 가난한 이들의 모습옷장에 오랫동안 넣어둔 탓에 퇴색해버린 코믹한 모양의 낡은 모자를 쓴 남자들의 모습은 다른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아폴론 갤러리와 살롱 카레를 지나며 그들은 여러 그림들을 감상한다. 그들에게 그 그림들은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넓은 박물관에서 길을 잃은 그들은 지루해하고 지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평생을 뼈를 깎는, 되풀이되는 노동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문화적 향유일지도 모른다. 작품 메두사 호의 뗏목’, ‘가나의 혼인 잔치는 흡사 그들의 모습 같고, ‘모나리자’, 무리요의 성모마리아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에밀 졸라는 소설 속의 여러 부분에서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비판을 한다. 1850531일 의회는 투표를 하려면 최소 3년간 한 선거구에 거주해야 한다는 선거법을 통과시킨다. 이 선거법은 일자리를 찾아 거처를 수시로 옮기는 수많은 노동자의 투표권을 앗아갔다(p143, 역자 해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3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18482, 6월 혁명으로 공화파가 국립작업장을 해산하기로 하자,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였으나 정부에 의해 진압 당한다.

 

[민중은 언젠가는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쿠포는 그런 일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단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밥이나 축내는 의회 의원들에게 일당 25프랑을 주기 위해서라니. -p177]

 

대장장이 구제를 만나러 간 제르베즈는 구제가 보여 준 엄청난 기계의 움직임에 압도당한다. 새로운 기계 때문에 구제의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졌다.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p277]

 

똑같이 불행한 밑바닥 인생이라도 여자의 삶은 더 척박하고 비참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일을 하고 남편의 저녁밥을 준비해야 한다. 술 취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이고 아이들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나를 낳고 여자로 파리에서 살아가기에 힘들다며 슬퍼한 제르베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며, 심술을 부리고 나쁘게 말하는 인간의 악한 심리도 작가는 잘 표현했다.

 

1권의 마지막은 제르베즈가 질펀하게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여는 장면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빚만 늘어나는 생활이 계속되지만, 제르베즈는 또 빚을 얻어 생일 파티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녀와 초대받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먹고 마셔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밑바닥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체념과 아귀 같은 허기의 욕망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그 모습들을 보며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그럴 수밖에 없으니 이해하자는 내 마음속의 두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제르베즈와 같은 성향은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한 번씩 볼일을 보러 집을 나섰을 때, 우리 동네 대로변에서 날렵하고 잘 빠진 스포츠카가 큰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쫓아가 한 대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직 1권만 읽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러한 분노가 자주 치솟아 올랐다. 왜 그렇게 패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특히 제르베즈의 남편인 쿠포가 랑티에를 데리고 왔을 때 폭발할 뻔 했다. 2권을 읽으며 나의 분노지수는 얼마나 올라갈지 벌써부터 긴장된다.

 

무슈 에밀 졸라여!

그대는 과연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이십니다.

 

[“그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오, 아름다운 부인....그대도 언젠가는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될 거요....아무렴, 난 죽음이 데려간다면 오히려 고맙다고 할 여인네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거든....죽는다는 건 말이지....내 말을 명심하시오.....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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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3-10 15:38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3-1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3-10 15:39   좋아요 1 | URL
thkang님, 감사드려요.
오늘은 정말 봄이 온 것처럼 날씨가 좋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요**

thkang1001 2022-03-10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관왕 축하 합니다!
졸라 담번 어떤 작품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ㅅ^

페넬로페 2022-03-11 00:01   좋아요 0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담번은 아마 ‘나나‘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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