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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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가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분류되지만 정작 난 그녀의 소설보다 두 권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다정한 매일매일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서의 작가의 문장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잔잔한 바다의 수평선 같은 것이었다. 단 하나의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은 것 같은, 꽉 찬 문장이 좋았다. 거기다 다정하기까지 해 백수린의 에세이는 나에게 힐링을 주었고, 나도 이런 문장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 읽은 백수린의 소설은 에세이를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단정하고 잘 정돈된 문장은 그대로였지만, 백수린의 글은 섬뜩하리만치 나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바늘같이 뾰족한 뭔가에 계속 찔리는 기분도 들었다.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8개의 단편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한 번에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글로벌한 다양한 소재의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어떤 종류의 만남이라도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사실 상대방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시간의 궤적에서 서른 살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고 파리로 공부하러 온 나와,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언니는 어학원에서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여름의 빌라에서의 주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스와 베레나부부의 따뜻한 친절을 받는다. 뜻밖의 만남은 우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으로 인한 웃음은 사랑보다 더 끈끈해 질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토해질 만큼의 끈끈함은 식민지 사관에 젖은 독일 남자의 생각에, 술만 마시면 이미 유부남이 된 전 애인에게 전화하는 여자에게 그것은 옳지 않다고 이해시킬 수 있는 부드러운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부당함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나와 지호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주고 만다.

 

 

내 삶에서 지나온 무수한 관계(우정)를 생각해본다. 따뜻했고 기뻤던 순간들이 쌓여 나를 풍요롭게 하고 내 인생의 추억을 만들어주었지만 모멸감으로 인해 끝난 관계는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더 불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다. 그럼에도, 내 힘듦의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모멸감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순간 대체 왜 언니에게 그런 말이 하고 싶어졌는지......그리고 언니의 눈빛도.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다급히 내가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라고 언니에게 말했을 때의 그 눈빛.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만 끝내 물에 녹아내리는 물감처럼 한없이 희미해지던.

-p.56, ‘시간의 궤적중에서]

 

아무리 애쓰며 살아도 경계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삶도 있다. 차라리 어느 한쪽에 완전히 속해있다면 그 삶이 주는 관습과 터부에 얹혀살면 그만이다.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시의 외곽, 조만간 재개발이 이루어질 곳에는 언제나 적나라한 극단이 존재한다. 그 경계에서 냄새나지 않는, 안전한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시민은 희망만을 보아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그 결과는 경계 밖에 남겨질 것들을 외면해야만 얻어진다.

 

고요한 사건, 아주 잠깐 동안에의 나와 그는 마음으로는 가난과 약함을 돌아보지만 끝내 자신을 대문 안에 가둔다. 용기도 없을뿐더러 귀찮음과 내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 싫은 이기심이 더 강해서이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항상 뭔가에 쫓기듯이 살며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 들어서는 더 늘씬하고 높은 새 아파트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동안 난 뭐하고 살았나?’라는 자괴감만이 내 속에 가득 차 있다. 이 소설들이 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p.104, ’고요한 사건중에서)’에 확인 사살 당한다.

 

 

엄마로서의 삶은 무엇일까? 20년이 넘도록 엄마로 불리며 살고 있지만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시의 외곽이 물리적 삶의 경계를 나타낸다면, ‘엄마라는 것은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경계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들러붙는 무수한 단어들이 내 본성을 바꾸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존재보다 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랑보다는 책임감이 더 큰 상태로 아이를 돌보았다.

 

사랑을 위해 아이를 떠났던 폭설에서의 엄마, 아이를 안고 있던 순간에, 낯선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아이의 존재보다 자신의 욕망에 순간적으로 사로잡혔던 아주 잠깐 동안에의 엄마를 나는 이해한다. 아이를 떠났지만 평생 그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 것이 분명하고, 다른 남자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몰입했지만 곧 아이에게로 다시 집중하는 사람이 엄마인 것이다.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나의 할머니에게에서 흑설탕 캔디가 제일 맘에 들었었는데, 책으로 읽은 이 소설은 역시나 좋았다. 작가도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열여덟 살 때 쓰다 만 습작 장편의 서두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흑설탕 캔디의 주인공인 난실 할머니는 내가 닮고 싶은 노년의 모습을 갖춘 사람이다. 독립적이지만 자식이나 손주에게 이기적이지 않고, 그들을 위해 침묵할 수 있는 할머니, 물리적인 늙음은 받아들이지만 낭만과 자기 자신은 한순간도 잊지 않는 그런 멋진 할머니.....

 

딸아이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날 때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딸아이가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한다고 하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것인가였다.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면 난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을 거지만, 처음엔 반대했을 것이다. 언어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노력해야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위랑 말 한마디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프다.

 

난실 할머니와 프랑스 남자 브뤼니에 씨와의 관계는 사랑이기보다 잠깐 동안의 우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흑설탕 캔디가 녹아 없어져 슬픈 게 사랑이라면, 그 달콤함이 지속되어 난실 할머니의 나머지 생에 기쁨을 주는 것이 우정이라 믿고 싶어서이다.


며칠 전 도서관 가는 길에서 본 남자 고등학교 담벼락에 있던 텅 빈 자전거 거치대이다. 그곳 좁은 공간에서 매미는 큰소리로 합창을 하고 있었다. 온통 매미 소리만 들렸다. 순간 나 혼자만 있다는 느낌이 들며 백수린의 이 책이 생각났다. 더위를 피해 모두들 떠난 그곳에서 오히려 여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나온 여러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의 삶을 그려보며 나 자신도 그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천진한 달콤함이라니. 각설탕을 입안에서 굴리자, 단맛이 서서히 퍼지고,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p.200~201, ‘흑설탕 캔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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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21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흑설탕 캔디는 백수린 소설 중에 손에 꼽히게 좋더라구요. 할머니 소설 장인 ㅋㅋㅋ

페넬로페 2023-08-21 16:39   좋아요 2 | URL
저도 좋았어요.
배경이 프랑스라 더 낭만적이었던 것도 같고요.

얄라알라 2023-08-23 00:17   좋아요 2 | URL
할머니 소설 장인...ㅋㅋ열반인님, 열반인님 서재에서뿐 아니라 이젠 페넬로페님 서재에 놀러와서도 제가 뿜고 갈 뻔요 ㅎ 즐겁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페넬로페님, 저는 백수린 작가님의 잘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았었는데, 덕분에 감사드려요^^

페넬로페 2023-08-23 01:04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아마 이 소설이나 에세이 읽으시면 백수린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시게 될거예요^^
그리고 좋았으면 좋겠어요.

서곡 2023-08-21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집 잘 읽었는데요 성실하고 세심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편은 어떨지 다음 기회에 읽어봐야겠습니다 오후 마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08-21 16:48   좋아요 2 | URL
이번에 장편도 같이 읽었는데 단편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씨가 계속 더워요.
건강 잘 챙기시길요^^

독서괭 2023-08-21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흑설탕 캔디 참 좋았어요~^^ 단편은 금방금방 잊히는데, 페넬로페님이 언급한 작품들 다 생각나는 거 보니 역시 인상깊은 소설집이었다 싶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엄마들을 이해한다는 말씀에도 공감이요!!

페넬로페 2023-08-21 20:12   좋아요 0 | URL
‘흑설탕 캔디‘ 넘 좋죠.
이 단편집에 있는 소설이 다 좋았어요. ‘폭설‘에서 엄마에게 퍼붓는 장면과 그것을 묵묵히 듣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울컥하기도 하고요^^

독서괭 2023-08-22 09:42   좋아요 0 | URL
오늘 1년전 오늘 쓴 글로 이 책 리뷰가 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별 네개를 줬었네요. 이토록평범한 미래가 다섯개고 이 책이 네개인건 안 맞는데 ㅋㅋㅋ 제가 최근 별점이 후해진 건가 싶습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3-08-21 1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의 빌라>가 좋았어요. 우리에게 덧입혀진 의미들을 다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그 가까이에라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단편이예요.
다시 펴보고 싶지만 ...!

페넬로페 2023-08-21 20:14   좋아요 3 | URL
여름의 빌라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더라고요. 캄보디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 게 더 맞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미미 2023-08-21 2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글 정독하려고 PC를 켜고 들어오길 잘했네요 ^^
글을 읽으면서 ‘바늘같이 뾰족한 뭔가에 찔리는‘기분 저도 좋아해요!
거기다 ‘확인 사살‘이라니 찜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면
페넬로페님도 마조히스트적 독서를 하시는 것 같아요ㅎㅎ
(사드를 읽어내신 저 위에 열반인님도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08-21 21:45   좋아요 2 | URL
네, 미미님!
제가 그런 독서와 책을 좋아해요.
그래서 요즘 연애소설이 잘 안 읽혀요.
이 책 읽고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어렵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 오더라고요^^

희선 2023-08-22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설탕 캔디>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소설 앞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쓰다니... 대단하네요 할머니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름이지만 서늘한 이야기기도 하군요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남한테 상처주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말이 하고 싶을 때는 잠시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3-08-22 07:13   좋아요 2 | URL
작가들은 그 어떤것에서도 얘기를 연결시켜 쓸 수 있는 사람들인가봐요.
이 소설집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걸 읽은 제 맘이 서늘해질 때도 많았어요.
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3-08-22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설탕 캔디> 단편을 할머니 관련 소설집에서 처음 접하곤 아...이 작가는 찜해야겠다.로 시작해 <여름의 빌라>를 읽고서 와, 이 작가는 최애작가로 등극시켜야겠다.란 생각을 품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제겐^^
페넬로페 님 리뷰도 꼭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듭니다. 소설 하나, 하나 느끼신 그 감동을 저도 다시 전해 받게 되네요.^^
한 달 전 딸이 <여름의 빌라>를 읽고 있길래 어떤 게 맘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폭설>이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거에요. 폭설이 내렸을 때 엄마와 딸의 대화에서 딸은 원망을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안 할 수가 있냐구요. 그래서 엄마의 입장에서 내가 뭐라고 설명을 해주긴 했었는데....어린 딸은 딸의 입장이라 완전 이해가 안되는 것 같은..ㅋㅋㅋ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문득 백수린 작가는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중년과 노년 여성들의 감정선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란 생각이 들어 뒤늦게 놀라웠습니다. 마치 그 삶을 살아본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곤조곤 소설을 엮어나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턱하니 얹어 놓는 게 좀 지혜롭단 생각도 했구요.
백수린의 소설은 줄곧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란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8-22 12:48   좋아요 2 | URL
이 책에 대해 쓸 말이 많았는데 너무 많이 쓰기가 그랬어요.
폭설도 좋았어요.
따님의 의견도 이해하겠어요.
따님의 입장에서 당연히 그 엄마가 이해가 안되겠지요.
저의 딸아이도 이 책 읽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느낄지 궁금한데요.
그래도 제 리뷰를 보여주기는 싫어요 ㅎㅎ
저도 책나무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다 경험하지 못한 것 같은데 어쩌면 이리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생각하고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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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작가가 말년에 쓴 10편의 단편 소설에 생각보다 오래 붙들려 있었다. 처음엔 읽기 쉬운 것 같았지만, 읽을수록 글이 깊어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노작가가 만들어 낸 문장에 먹먹해져 그대로 멈춰 있기도 했고, ‘히스클리프적(p.180)’느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 오랜만에 책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호해 끝가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나이 들어 뒤돌아 본 삶에 그 어떤 것이든 명확한 게 있을까?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미스 나이팅게일에게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외롭게 사는 미스 나이팅게일에게 여지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천재 소년이 찾아온다. 제자의 연주를 들으며 파라다이스를 느끼지만, 소년이 다녀가면 집안의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는 대가를 미스 나이팅게일은 치른다.

 

소년은 미스 나이팅게일에게 과거를 소환해 준다. 그녀는 홀로 된 아버지와 오랜 연인이었던 아내가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준 사랑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사랑이라 포장된 것에 사실은 자신을 붙잡기 위한 그들의 기만이 들어있었고, 그것에 이용당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소년의 행동에도 자신을 향한 조롱이 있음을 느낀다. 미스 나이팅게일은 불안과 회환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기억만을 남겨 둔다. 자신이 느낀 감정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실 찾기는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그녀는 거기서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이 사랑과, 혹은 천재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는 데만 너무 골몰했으니까. 균형이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p.17,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중에서]

 

그렇지만 행복의 기억만을 붙들고 살기에는 인간의 고독한 삶은 너무 길게 늘어진다. 과거의 회한을 안고 사는 여자는 미스 나이팅게일만이 아니다. <다리아 카페에서>의 애니타와 클레어도, <겨울의 목가>의 메리 벨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랑은 왜 그리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않은지....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러한 이유로 꼭 존재해야만 하는 건지, 아니면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그 사랑이 불행해지는 건지...어쨌거나 인생은 언제나 모호하다.

 

친구 클레어에 의해 자신의 결혼생활이 깨져버린 애니타는 언제나 다리아 카페의 한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출판사에서 받은 원고를 검토한다. 이 카페는 시인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이탈리아 남자, 안드레아 카발리가 잃어버린 아내에게 불멸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p.47)’따서 문을 연 곳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편에게 버림받은 애니타에게 여전히 회한은 존재했지만 삶이 평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오래 남편과 산 클레어의 삶도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례로 공유한 남자의 죽음에 애니타와 클레어는 다시 연결된다. 그들의 재회는 예의바르고 차가웠지만 그 밑에 숨겨진 건 복잡함과 아이러니였다. 세월이 지나면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흐릿해지고, 과거보다 남겨진 삶이 더 중요하다. 애니타와 클레어에게는 앞으로 긴 고독과 외로움만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배반을 주고받은 고통이 크지만, 고독을 함께 이겨 낼 과거의 우정이 절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중에 또다시 후회하더라도 결코 그들은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끝내 그럴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지켜져야만 하는 인간의 자존심은 매번 절박함(p.62)’을 이겨낸다.

 

 

황무지와 가까운 외진 곳이며 고독감에 시달릴 수도 있는(p.181)’, 매서운 바람이 부는 황량한 장소에서도 목가적인 삶은 늘 있어왔다. 앤서니는 자신이 굉장히 히스클리프적이라고 느낀 마을에 잠시 머물렀고, ‘메리 벨라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결혼해서 두 딸아이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앤서니는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돌아와 메리 벨라의 사랑을 확인해주고 잠시 동안의 행복을 주었어야 했을까? 그는 그곳에서 계속 살기를 선택한 그녀를 과거 속에만 머물게 하며 나머지 생을 절절한 고독 속의 겨울의 목가에 가둬놓는다. 몹쓸 인간 같으니라고. 히스클리프적이라 느낀 공간에 히스클리프를 남겨 놓고 그는 떠나가 버렸다. 그 나머지엔, 무시무시한 고독과 광기, 결코 뿌리치지 못할 한낱 희망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처럼.

 

[그렇듯 단순하게 메리 벨라에게 고독이 시작되었고, 과거에 그녀가 겪었던 그 어떤 고독보다 지독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너무도 자주 접한 고독들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그 무시무시한 고독은 불가사의한 것이기도 한 게, 그녀가 그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직 곁에 있는데도 찾아왔던 것이다.....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신랄한 짜증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나면 그 두 가지가 다 찾아올 터였다. 그다음엔 무관심, 경멸, 멸시가 이어질 터였다. 그녀는 왜 그걸 알까? 그는 왜 알지 못할까? 한때는 그가 선생님이었는데.

-p.203, ‘겨울의 목가중에서]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크래스소프 부인>, <모르는 여자>에는 불행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힘듦만이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과 그 결과에는 비참함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단지 추측뿐인, 목적만 있는 사람의 어긋난 생각들과 기대는 무력함만을 남기고 삶을 비극의 구덩이로 빠트린다.


-애도, 조토 디 본도네, 1305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려져 있는 조토의 애도에는 10명의 천사들마저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다. 기억을 잃은 그림 복원가인 콘스탄틴 네일러는 조토의 애도중 천사들만 있는 복제그림을 복원중이다.

 

창녀인 데니즈는 콘스탄틴에게 접근하고 그의 스튜디오로 따라가 그와 잠을 자지 않고도 돈을 받고, 그가 가진 돈 전부를 훔쳐 나온다. 그녀는 돈을 돌려주고자 마음먹지만 결국 돌려주지 않는다. 아마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며 당분간은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억나진 않지만 콘스탄틴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와 함께 있었던 누군가를 기다린다.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우는 천사의 눈물은 창녀 데니즈와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른다.

 

 

작가 프루스트는 예술에 있어 역사적인 사건은 새의 지저귐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p.36,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책세상했다. 트레버 작가는 단편소설을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P. 241)”이라고 했다.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이야기들에는 거창한 역사적 서사가 없다. 단지 소소한 삶의 단면만이 있을 뿐이다. 전쟁, 홀로코스트, 식민지의 삶이 없어도 우리가 만나고 겪어야 할 평범한 삶은 묵직하고 견디기 힘든 것이 많다.

 

작가는 인생의 길 위에 있는 우리들에게, 삶이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며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치러야 할 치열하고도 고독한 삶에 울고 있는 천사의 눈물 한 방울 정도는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랑까지는 없더라도....


문학동네판의 마지막 이야기들의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든다.


나도 다리아 카페에서의 애니타가 되어 본다.

10편의 단편 중 이 소설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집을 판다는 표지판이 치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산다. 클레어가 쓸쓸한 고독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 그걸 애니타는 지금 뒤늦게 쓸쓸한 고독 속에 받아들인다. 사랑이 오기 전, 우정이 더 나은 것이었을 때 있었던 모든 것을.

-p.64, ‘다리아 카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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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7-30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드디어 읽으셨군요~!! 전 이 책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ㅜㅜ

마지막 사진 ‘다리아 카페‘에서 찍으신거 같아요 ㅋ

트레버의 책 국내출판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3-07-30 23:52   좋아요 2 | URL
저도 정말 좋았고, 아직까지 여운이 많이 남아 있어요.
트레버의 책이 있는 곳이 모두 다 ‘다리아 카페‘ 아니겠습니까, ㅎㅎ
트레버의 소설, 전작 읽기 하고 싶네요.

책읽는나무 2023-07-30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삶의 단면,
인간에 대한 연민.
페넬로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그래서 트레버의 작품이 찡하게 좋더군요.

각자가 치러야 할 치열하고도 고독한 삶에 울고 있는 천사의 눈물 한 방울 정도는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랑까지는 없더라도....
캬....이건 반칙입니다.ㅋㅋㅋ
이 책을 읽는다면 이런 명문장이 절로 나온다는 거죠?^^
책표지가 예뻐서인지 사진도 이쁘군요.♡

페넬로페 2023-07-31 01:39   좋아요 0 | URL
여운과 울림이 많았어요.
책나무님 말씀처럼 찡하게 좋았어요.

그리고 네네, 그렇게 됩니다.
트레버 작가의 글이 저절로 느낌을 갖게 해줍니다.
이 책, 책나무님 책탑에서 본 것 같아요.
책나무님의 ‘다리아 카페‘도 기대하겠습니다^^

희선 2023-07-3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의 삶이든 쉽지 않고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지요 친구와 남편한테 배신 당하면 마음이 아프겠네요 혼자 남은 사람도 쓸쓸하겠다 여기면서도 앞으로 혼자 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혼자서도 꿋꿋하게 잘 살면 되죠 소설을 보면 그런 분위기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끝나고는 그렇게 살지 않을지,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7-31 01:44   좋아요 2 | URL
우리 삶의 단면들이 다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우리와 정서가 조금 달라서인지 이 책에는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혼자서 잘 살면 되는데 이 책에서 제가 느낀 건 절절한 고독과 외로움이었어요.
그래서 살아나가면서도 왠지 안타깝고도 절박한 느낌이 들 것도 같았어요.

자목련 2023-07-31 0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의 리뷰로 천천히 마지막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 들려주는 삶의 조각들을 듣는 기분, 행과 불행을 구분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 싶기도 하고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0:04   좋아요 3 | URL
트레버 작가의 깊이를 따라가다보니 쉽지 않아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어요.
사람마다 이 단편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다 다르겠죠.
그게 무엇이든 그 밑에는 ‘삶‘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미 2023-07-31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도 트레버의 글이 빠르게 읽어지지는 않더군요. 그럼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매력에 꾸준히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읽고 싶어집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2:39   좋아요 3 | URL
트레버 작가의 글에 많은 여운과 울림이 있어 생각할 것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읽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읽을수록 이 작가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ㅎㅎ
가을이 되기 전에 읽으세요
가을과 겨울에 읽으면 더 맘이 아플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3-07-31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지만 여유있게 읽기위해 조금 느긋하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3-07-31 19:00   좋아요 1 | URL
ㅎㅎ~~네,
항상 읽어야 할 책이 많으시니까요^^

2023-08-01 0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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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는 가상의 마을 마꼰도가 등장한다. 그곳에 매년 삼월이면 찾아오는 집시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인 멜키아데스는 마꼰도 사람들이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 자석, 망원경, 돋보기, 틀니, 얼음 등등.....마을 사람들에게는 마법 같은, 상상력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멜키아데스는 선진문물을 가져다 파는 상인이었다. 그는 망원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거리감을 없애버렸지요. 머지않아 인간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볼 수 있다니까요.

p.14,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1967년에 출간된 이 소설에 서술된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볼 수 있다는 마르케스의 글은 놀랍게도 예언적 문장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화된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집 안에 있어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알 수 있고, 그 누구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교류가 가능해졌다.

 

백년의 고독첫 부분에 나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내 인생에서는 어떤 물건이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놀랍고도 화려하게 등장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오래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것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내 인생의 반은 아날로그로, 반은 디지털의 시대(나이를 너무 줄였나?)에 살고 있는 나에게 스마트폰은 이제 내 신체와 정신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아니 거의 전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은 편리하고 많은 장점이 있다. 이 점은 인정하자! 내 미래를 상상해 봐도 그저 TV앞에만 머물러 있는 부모님세대와는 달리 그것은 다양한 선택지를 줄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많다. 디지털 기기에는 엄청난 중독성이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무분별한 정보와 재미는 우리를 계속 그 세계에 머물도록 한다. 세상은 질문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고 그에 비례해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 역시 성인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뭔가에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힘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강박증세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무한 스크롤을 하고 있다. 머리에 있는 생각들이 뒤죽박죽이고 건망증도 심해졌다. 내 일상과 습관을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매번 나는 실패한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최근의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해결책으로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해결보다는 원인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집중력이 없어지는 것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 부족이라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 ‘집중력을 거시적 차원의 문제점으로 전환시켜준다. 요한 하리는 우리가 집중력을 빼앗기는 것이 촘촘하게 짜여있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편리와 재미를 주고 그 대가로 엄청난 시간과 돈을 가져간다. 결국 이것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과 연결된다. 대표적 소셜미디어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좋아요하트의 세계에 오랫동안 사람들을 묶어두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천재 기술자들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국가마저도 국민에게 가짜뉴스를 제공하며 극단적으로 분열시킨다. 이제는 총이 아니라 미디어의 장악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집중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면 그 해결책도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3주 동안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연히 그 결과가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여유와 기회가 없다.

 

저자가 여러 전문가를 만나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우리에게 제시한 방법은 약간 모호하거나 양극단적인 것도 있다. B.F. 스키너의 강화훈련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소설 읽기와 (게임), 멍때리기와 (시간낭비), ADHD와 각성제....이 세상에 난무하는 이론들은 완전히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숙면이 좋은 건 알지만 야간 노동자가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이처럼 뭔가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골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야하므로 이 책은 무척 유용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트리스탄은 이러한 기술을 전부 그대로 보유하면서, 최대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 이 기술들을 설계할 수 있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더 종요하고 유의미한 목표에서 사람들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 성취를 돕도록 기술을 설계할 수 있다.

-p.200]

 

유의미한 방법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설계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연대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는 세력(p.241)’에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 아이만 건강하고, 착하고, 잘된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는 알게 된다. 주위에 분노조절 장애나 ADHD를 겪고 있는 아이가 많을수록 내 아이가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ADHD에 대해 많은 서술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 스트레스, 대기오염, 도시환경 등 사회의 전반적인 것이 우리의 집중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다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읽고 북플을 떠난 친구들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은 북플을 떠난다고 능사는 아니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했고 그것도 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결국 집중력 회복은 구조적이고도 개인적인, 두 개의 관점이 꼭 필요하고 그것이 병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개인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해서 회의적인 해결책을 하나하나 실천해봄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나에게는 어떤 디톡스가 필요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매년 계속해서 성장하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우리의 집중력을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중력 반란이 시작되면 우리가 조만간 이 근본적인 문제, 즉 성장 기구 자체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성장 기구는 인간을 우리 정신의 한계 너머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 위기가 서로 뒤얽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인류에게 바로 지금만큼 집중력(우리 인간종의 초능력)이 필요한 때는 없었다. 현재 우리가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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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5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5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3-07-25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이 집중력을 앗아가기 전에 잠시 있던 삐삐가 그립습니다.ㅎㅎㅎ
그 과도기적 상황은 짧은 만큼 아날로그적인 낭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북플만 하는데요 이곳은 그래도 자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큰 장점이 있는)곳이니
이웃분들이 부디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 전부터 안돌아오시는 미니님,툐툐님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고요.

페넬로페 2023-07-25 19:31   좋아요 2 | URL
아날로그적 낭만과 그 시절의 에피소드는 밤새워 얘기해도 될 것 같아요.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립네요.
저는 그때 참 게으르게 살았는데, 그래서 더 집중력이 좋았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저도 북플만 해서 이 공간이 참 소중해요.
미니님, 툐툐님 소식, 넘 궁금해요.
여기에 글 올리지 않으셔도 가끔씩 소식만이라도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공간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닌 것 같아요. 정이 들어버렸어요~~

건수하 2023-07-2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오늘 다 읽었어요! 이 책은 원인 분석 부분이 가장 좋았고.. 뒷부분은 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그래도 sns나 미디어가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두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페넬로페 2023-07-25 22:10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가 집중력땜에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이 책을 읽는 거겠죠 ㅎㅎ
이 책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을 잡아줘서 좋았어요.
실천은 각자의 몫일 것 같아요^^

2023-07-26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7-2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첫 휴대폰을 산게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첫 스마트폰을 산게 중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휴대폰으로 간단한 게임, 문자, 전화만 하던 때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는데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짧았지만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 빌려보고 친구들이랑 밖에서 뛰어놀던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그때가 그립더라고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7-26 14:09   좋아요 1 | URL
아날로그시대의 감성이 그립습니다.
저는 요즘 유모차에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들은 디지털의 시대만 사는거니 앞으로의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뀔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그 아이들은 적응하겠죠~~
근데 우리가 느꼈던 것을 모르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느 사회가 되던 좋은 방향으로 나가야하는데 개인적으로 각자의 몫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아요, 휴~~어렵네요, 휴~~

물감 2023-07-26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재를 떠났다가 돌아오길 무한반복 중인데, 이것도 집중력을 도둑맞았다 보면 될까요? ㅋㅋ

페넬로페 2023-07-26 22:49   좋아요 1 | URL
집중력 회복을 위해 노력중이신 것 같은데요~~
서재를 떠나는게 능사는 아니랍니다 ㅎㅎ

새파랑 2023-07-27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읽으면 북플을 떠나기도 하는군요 ㅋ
이 책을 읽으면 안되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3-07-27 13: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께서는 이 책 읽으셔도 북플 떠니지 않으시리라는 걸 믿습니다~~
근데 새파랑님은 워낙 집중력 좋으셔서 이 책 안 읽어도 될 것 같아요^^

독서괭 2023-08-03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이 책 재밌게 읽으셨군요! 함께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제시하는 게 이상적이어 보이긴 하는데, 못할 건 아닌듯요..
<백년의 고독>에 저런 문장이 있었나요!! N년쨰 재독하려고 생각만 하고 모셔두고 있는 책인데 ㅎㅎ 간만에 열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3-08-03 15:13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굉장히 맘에 와 닿았어요. 마침 시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뭔가를 뜯어 고치려면 항상 이상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뭐라도 해 봐야할 듯요.
백년의 고독, 첫부분에 등장하는 저 집시가 재밌더라고요!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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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던 조카가 불임클리닉을 다닌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시험관아기 시술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었다. 작년엔 아예 1년간 직장을 휴직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고 올해 다시 회사에 복직을 해야만 했다. 그런 조카에게 최근 아이가 찾아왔고 그것도 자연임신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지만 아직 조카에게 축하를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말을 꺼낼 생각이다.

 

반면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집의 냉동고에 유아시신 2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기를 안고 15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빠도 있다. 누군가에게 아이는 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 존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아이가 넘쳐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 속하든 분명 아이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랑보다 더 끈질기고 오래 붙들려 있어야 하는 책임이라는 부분에서 세상 부모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100페이지도 되지 않은 클레어 키건의 짧은 소설의 제목인 맡겨진 소녀, 특히 맡겨진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우리는 소설의 반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아이, 그것도 소녀를 맡겨야하는 상황은 말을 안 해도 뻔하다. 부모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거기에서 레미제라블의 코제트나, 아니면 그 반대로 아이의 집보다 훨씬 좋은 가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원제목은 아이를 맡아 기르다의 뜻인 ’foster’이다. 압축되고 절제된 문장에서 소녀를 위탁 양육하는 킨셀라 부부의 인성과 생각이 느껴져 작가가 제목을 붙인 이유를 이해했다. ‘조성하다, 발전시키다의 의미와도 잘 맞다. 하지만 이 소설의 화자가 소녀이고 그녀의 마음과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기에 맡겨진 소녀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이를 기르고,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준비,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p.19) 등 하루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소녀의 엄마가 또 임신을 했다. 당연히 이 집의 경제적 사정도 좋지 않다. 엄마의 수고와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 중 한 입을 줄이고자 소녀는 친척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소녀는 자신의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과 인격적 대우를 받는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소녀의 외가 쪽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아픔이 있었다.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의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그들에게는 고통이었고, 그것은 현재 그들의 삶에까지 무거움을 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그리고 다시 아이를 데려간다는 것은 소녀의 부모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파렴치함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p.73]

 

존과 에드나 킨셀라는 소녀에게 사랑이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힘들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심어준다. 소녀는 우물에 빠질 뻔한 사실을 끝내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지 않음으로 배움을 실천하고 그들과의 의리를 지킨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전 딸아이와 함께 읽었던 신시아 라일런트그리운 메이 아줌마가 생각났다. 어릴 때 엄마를 잃어, 엄마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맡아 길러준 메이와 오브 아저씨의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분명 자신을 듬뿍 사랑했을 것이라고 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그리고 그 때 받은 넉넉한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p.9, ‘그리운 메이 아줌마’, 사계절]

 

맡겨진 소녀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킨셀라 부부에게 받은 사랑으로 성숙해지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 존과 에드나 역시 이 소녀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고통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준 사랑은 아이가 자신을 업어준 것 같은, 없던 불빛이 생긴 것 같은(p.74~75)’ 희망으로 돌아온다.

 

그리움으로 절절할 그들에게 여전히 현실의 두꺼운 벽이 남겠지만, 소녀가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결정한 아빠라는 말로 소통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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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6-26 0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초반부를 읽으면서 ‘킨셀라 부부 왠지 수상한데? 범죄이야기인가?‘ 하고 의심했었습니다 ㅋ 제 마음이 좀 삐뚤어졌나 봅니다. 이 작품은 괜찮았지만 단편 딱 하나만 수록하고 있어서 종
좀 그랬습니다. 단편집이라면 10편정도는 수록되어야 하는 편견이 있어서 ㅎㅎ

페넬로페 2023-06-26 09:41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예상대로 이 소설이 전개되었으면 더 재미 있었을 것 같아요 ㅎㅎ
이 소설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는 완전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이 훨씬 좋아요^^

새파랑 2023-06-26 10:02   좋아요 2 | URL
저도 윌리엄 트레버 단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미미 2023-06-26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소유로 보는 심리가 동반자살이나 영아살해와 관련이 있다는데 차라리 고아원 같은데 맡겨주면 좋겠어요. 특히 동반자살의 경우 그 아이가 느낄, 믿었던 부모에 대한 극한 공포와 절망이 어떤 것일지ㅠㅠ... 신만이 짐작하겠죠. 저도 윌리엄 트레버를 읽어야겠어요^^

페넬로페 2023-06-26 10:5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자기 옆에 꼭 두려는 심리가 있어요.
이 소설에서도 저는 소녀를 킨셀라부부의 딸로 입양시켜주는 건 어떤가도 생각했거든요.
트레버의 단편엔 여운이 많이 남아 좋았어요^^

책읽는나무 2023-06-26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큰 올케와 남동생도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데...지켜보면 좀 안타까웠어요. 굳이 아이가 생기지 않음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있지 않겠냐고 넌지시 얘길 하긴 했는데 이 말도 상처가 되려나? 싶어 조심되더군요. 그러면서 저출산이라고 큰일 났다고 뉴스를 볼 때면 이게 뭔가? 싶어요.
더군다나 아동 학대, 영아 살해 뉴스는 더욱....ㅜㅜ
이 책은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읽어야 할까요? 읽으면서 마음이 좀 편치 않겠단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3-06-26 17:18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내용은 뉴스에 나오는 사건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그냥 ‘맡겨진‘의 평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따뜻함도 있고 감동도 있는데 다시 돌아간 소녀가 행복하지는 않을듯한,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도 아플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한 명밖에 키우지 않았지만 아이 키우기가 매번 버거운 느낌이라 아이없이 사는 부부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매번 해요.
참 자식이라는 존재는 어렵네요.
있으면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희선 2023-06-27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바라는 사람한테는 아이가 생기지 않고 아이를 바라지 않는 사람한테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딱 맞게 아이가 가면 좋을 텐데... 집안 사전이 어려워서 집을 떠났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 아이는 그 시간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걸로 아주 끝은 아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3-06-27 08:56   좋아요 2 | URL
세상이 참 공평하지 않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다 잘 기를 수 있는것도 아니고요.
이 책의 소녀가 경험한 좋은 감정이 그녀에게 평생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요. 어쩌면 그것으로 삶을 비교하며 괴로울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모리아 난민수용소는 튀르키예에 바짝 붙어 있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산 중턱에 있으며, 동에서 서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세계 난민 위기의 중심지인 곳이다. 서로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난전쟁과 기근, 불황과 박해가 공통의 산물을 통해 이곳에서 만난다. 그산물이란 안전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수천 제곱미터 크기 땅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망이 뻗어 나와 지중해와 사하라사막, 유프라테스강, 캅카스산맥을 아우르며 서로 다른 크고 작은 혼돈을 잇는다. 모리아 난민수용소는 연결망의 노드node다. - P7

피드는 호러 장르의 문법을 빌리면서 호러 장르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왜곡까지 따라 했다. 피드는 괴물을 이야기의 주역이자 경이로운 힘을 가진 물질적 존재로 부풀리며, 우리는괴물이 저지르는 파괴를 그의 무시무시한 생물학적·심리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보여주는 행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 속 괴물들은초인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괴물의 힘은 그들이 거주하는 구조체에서 나온다. 구조물은 괴물을 제약하는 동시에 그에게 힘을 준다. 그리고 그 구조물의 벽은 2010년대를 거치며 점차 허물어졌다. 괴물이 갇혀 있던 우리의 빗장이 풀렸다.
나는 이 구조물이 신비하지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도 않음을 알게 되었다. 구조물은 혼돈을 단순화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재료로 지어진다. 그 재료란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벌이는 상호작용을하나의 숫자로 압축하는 사회적 장치다. 괴물이 사는 미로는 가격으로 지어져 있었다. - P13

나는 날갯짓하는 나비, 즉 연쇄 위기를 촉발한 하나의 계기를 가격에서 찾았다. 나비는 혼돈에 휩싸였던 2010년대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날개를 퍼덕였다. 나비의 날갯짓은 필수 원자재 (식량, 원유 같은기초 물자)의 가격이 격하게 출렁일 때마다 원자재 시장에서 일어났다.
지난 10년간 원자재 시장에는 수차례의 가격 충격이 있었고, 그 충격은 매번 세상에 혼돈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벌어진 혼돈은 일종의 전쟁이었으며, 사람들을 굶기고살던 곳에서 쫓아내고 목숨을 빼앗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김으로써 사회 조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의 원인은가격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가격 전쟁이다. - P15

원자재 가격은 2010년대에 들어 고삐 풀린 듯 날뛰기 시작했는데, 이는 현실 세계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초 여건을 거스르는 움직임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가격이 그처럼 요동친 원인을금융 투기자들이 벌인 소리 없는 전쟁에서 찾았다. 은행과 헤지펀드는 물론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주체라면 누구나 이 전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에서도 날로 군비 경쟁이 심해졌고, 매년 새로운 혁신과 전략 전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발명은 늘 같은 결과를 낳았다. 바로 가격의 혼돈이다. - P16

질서를 세우려던 포퓰리스트들의 시도는 새로운 혼돈을 낳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난민 위기의 진짜원인을 해결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바로 그 위기를이용해 권력을 손에 쥐었다.  - P27

나비 효과에 관한 대중적인 설명에서는 주로 우연한 접촉이 연쇄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로렌츠가 말하고자한 요지는 따로 있었다. 민감성은 인과율이 작동하는 계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다. 작은 계기를 큰 사건으로 만드는 증폭기가 계의 중심에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나는 아랍의 봄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에 연쇄적인 인과관계가있다고 보았고, 이를 조사하면서 몇 개의 증폭기가 함께 작동하며 사건을 키웠다는 것을 알아냈다. 시리아에서는 정권의 폭력이 증폭기역할을 했다. 시리아 정부는 아랍의 봄 시위를 처음부터 과격하게 진압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시위가 발생해도 강경 진압을 이어갔다.  - P34

이처럼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피드를 가득 채우는 광경을 보면, 이모든 일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포퓰리즘의 폭발과 세계 난민 위기, 내전, 아랍의 봄은 서로 무관한 사건으로 여겨지며, 언론은 이들을 별개의 비극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의 모래사태에서함께 굴러떨어진 모래알이다. 그리고 이 모래사태를 촉발한 요인은 가격이라는 하나의 단순한 숫자였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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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4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나온 책이로군요.
저희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긴 한데, 대출 중이네요.

목차를 훑어 보니 저는
<베네수엘라의 프랙털 재앙>
이라는 챕터가 가장 궁금합
니다.

페넬로페 2023-06-14 22:37   좋아요 1 | URL
딸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인데 흥미로워 제가 먼저 읽고 있어요.
어느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인데 최신작이라 요즘의 정세를 더 잘 알 수 있을것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