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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평점 :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에는 가상의 마을 ‘마꼰도’가 등장한다. 그곳에 매년 삼월이면 찾아오는 집시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인 멜키아데스는 마꼰도 사람들이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 자석, 망원경, 돋보기, 틀니, 얼음 등등.....마을 사람들에게는 마법 같은, 상상력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들은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멜키아데스는 선진문물을 가져다 파는 상인이었다. 그는 망원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거리감을 없애버렸지요. 머지않아 인간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볼 수 있다니까요.
p.14,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1967년에 출간된 이 소설에 서술된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볼 수 있다’는 마르케스의 글은 놀랍게도 예언적 문장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화된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집 안에 있어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알 수 있고, 그 누구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교류가 가능해졌다.
‘백년의 고독’ 첫 부분에 나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내 인생에서는 어떤 물건이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으며 놀랍고도 화려하게 등장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오래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것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내 인생의 반은 아날로그로, 반은 디지털의 시대(나이를 너무 줄였나?)에 살고 있는 나에게 스마트폰은 이제 내 신체와 정신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아니 거의 전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은 편리하고 많은 장점이 있다. 이 점은 인정하자! 내 미래를 상상해 봐도 그저 TV앞에만 머물러 있는 부모님세대와는 달리 그것은 다양한 선택지를 줄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많다. 디지털 기기에는 엄청난 중독성이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무분별한 정보와 재미는 우리를 계속 그 세계에 머물도록 한다. 세상은 ‘질문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고 그에 비례해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 역시 성인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뭔가에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힘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강박증세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무한 스크롤을 하고 있다. 머리에 있는 생각들이 뒤죽박죽이고 건망증도 심해졌다. 내 일상과 습관을 변화시키고자 하지만 매번 나는 실패한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최근의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해결책으로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해결보다는 원인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집중력이 없어지는 것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 부족이라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 ‘집중력’을 거시적 차원의 문제점으로 전환시켜준다. 요한 하리는 우리가 집중력을 빼앗기는 것이 촘촘하게 짜여있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편리와 재미를 주고 그 대가로 엄청난 시간과 돈을 가져간다. 결국 이것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과 연결된다. 대표적 소셜미디어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좋아요’와 ‘하트’의 세계에 오랫동안 사람들을 묶어두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천재 기술자들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국가마저도 국민에게 가짜뉴스를 제공하며 극단적으로 분열시킨다. 이제는 총이 아니라 미디어의 장악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집중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면 그 해결책도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3주 동안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연히 그 결과가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여유와 기회가 없다.
저자가 여러 전문가를 만나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우리에게 제시한 방법은 약간 모호하거나 양극단적인 것도 있다. B.F. 스키너의 강화훈련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소설 읽기와 (게임), 멍때리기와 (시간낭비), ADHD와 각성제....이 세상에 난무하는 이론들은 완전히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숙면이 좋은 건 알지만 야간 노동자가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이처럼 뭔가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골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알아야 하고 당연히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야하므로 이 책은 무척 유용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트리스탄은 이러한 기술을 전부 그대로 보유하면서, 최대한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정반대의 목표를 가지고 이 기술들을 설계할 수 있다.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사람들을 최소한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더 종요하고 유의미한 목표에서 사람들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 성취를 돕도록 기술을 설계할 수 있다.
-p.200]
‘유의미한 방법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설계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저자의 주장대로 함께 연대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는 세력(p.241)’에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 아이만 건강하고, 착하고, 잘된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는 알게 된다. 주위에 분노조절 장애나 ADHD를 겪고 있는 아이가 많을수록 내 아이가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ADHD에 대해 많은 서술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 스트레스, 대기오염, 도시환경 등 사회의 전반적인 것이 우리의 집중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다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읽고 ‘북플’을 떠난 친구들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은 ‘북플을 떠난다고 능사는 아니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했고 그것도 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결국 집중력 회복은 구조적이고도 개인적인, 두 개의 관점이 꼭 필요하고 그것이 병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개인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해서 회의적인 해결책을 하나하나 실천해봄도 한 방법일 것 같다. 나에게는 어떤 디톡스가 필요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매년 계속해서 성장하고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우리의 집중력을 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중력 반란이 시작되면 우리가 조만간 이 근본적인 문제, 즉 성장 기구 자체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성장 기구는 인간을 우리 정신의 한계 너머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 위기가 서로 뒤얽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인류에게 바로 지금만큼 집중력(우리 인간종의 초능력)이 필요한 때는 없었다. 현재 우리가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p.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