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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던 조카가 불임클리닉을 다닌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시험관아기 시술도 여러 번 했지만 실패했었다. 작년엔 아예 1년간 직장을 휴직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고 올해 다시 회사에 복직을 해야만 했다. 그런 조카에게 최근 아이가 찾아왔고 그것도 자연임신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지만 아직 조카에게 축하를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가 너무 소중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말을 꺼낼 생각이다.
반면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집의 냉동고에 유아시신 2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기를 안고 15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아빠도 있다. 누군가에게 아이는 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 존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아이가 넘쳐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 속하든 분명 아이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랑보다 더 끈질기고 오래 붙들려 있어야 하는 ‘책임’이라는 부분에서 세상 부모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100페이지도 되지 않은 클레어 키건의 짧은 소설의 제목인 『맡겨진 소녀』, 특히 ‘맡겨진’이라는 부분에서 이미 우리는 소설의 반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아이, 그것도 소녀를 맡겨야하는 상황은 말을 안 해도 뻔하다. 부모의 상황이 좋지 않기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거기에서 레미제라블의 코제트나, 아니면 그 반대로 아이의 집보다 훨씬 좋은 가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원제목은 ‘아이를 맡아 기르다‘의 뜻인 ’foster’이다. 압축되고 절제된 문장에서 소녀를 위탁 양육하는 킨셀라 부부의 인성과 생각이 느껴져 작가가 제목을 붙인 이유를 이해했다. ‘조성하다, 발전시키다’의 의미와도 잘 맞다. 하지만 이 소설의 화자가 소녀이고 그녀의 마음과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기에 ‘맡겨진 소녀’도 그리 나쁘지 않다.
아이를 기르고,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준비,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p.19) 등 하루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소녀의 엄마가 또 임신을 했다. 당연히 이 집의 경제적 사정도 좋지 않다. 엄마의 수고와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 중 한 입을 줄이고자 소녀는 친척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소녀는 자신의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과 인격적 대우를 받는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소녀의 외가 쪽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아픔이 있었다.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의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그들에게는 고통이었고, 그것은 현재 그들의 삶에까지 무거움을 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그리고 다시 아이를 데려간다는 것은 소녀의 부모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파렴치함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p.73]
존과 에드나 킨셀라는 소녀에게 사랑이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다.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힘들지만 침묵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소녀에게 심어준다. 소녀는 우물에 빠질 뻔한 사실을 끝내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지 않음으로 배움을 실천하고 그들과의 의리를 지킨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전 딸아이와 함께 읽었던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가 생각났다. 어릴 때 엄마를 잃어, 엄마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맡아 길러준 메이와 오브 아저씨의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분명 자신을 듬뿍 사랑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그리고 그 때 받은 넉넉한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p.9, ‘그리운 메이 아줌마’, 사계절]
‘맡겨진 소녀’의 ‘나’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킨셀라 부부에게 받은 사랑으로 성숙해지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게 된다. 존과 에드나 역시 이 소녀와 함께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고통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준 사랑은 ‘아이가 자신을 업어준 것 같은, 없던 불빛이 생긴 것 같은(p.74~75)’ 희망으로 돌아온다.
‘그리움’으로 절절할 그들에게 여전히 현실의 두꺼운 벽이 남겠지만, 소녀가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결정한 ‘아빠’라는 말로 소통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