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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건 침략과 수탈의 역사는 비슷하다. 힘을 가진 자가 약한 자를 집어삼키고 마지막 단물까지도 빼앗아간다. 위대한 인간 정신의 산물인 문명과 종교는 각자의 이기심으로 숨겨진 채, 앞잡이가 된다. 미개하고 낙후되었으니 ‘우리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노라’고 선언한다. 폭력과 회유의 반복으로 약한 자는 저절로 충성하게 된다. 총 몇 자루에 눈이 멀어 족장은 자기 부족원을 가차 없이 노예로 팔아넘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혼란스러운 역사의 과정에서도, 개인은 ‘어떻게 살 아내야 하는지’ 끊임없이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선택에 의한 결과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그후의 삶》은 전작인 ‘낙원’과 ‘바닷가에서’와 연결된다. ‘그후의 삶’은 아프리카가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로 분할되기 시작할 때의 동아프리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낙원’과 ‘바닷가에서’가 배경을 통해 함몰된 인간의 삶을 좀 더 조명했다면, 《그후의 삶》은 역사의 현장을 먼저 보여주고, 거기서 살아내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후의 삶’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유를 책의 중반쯤에서 알 수 있다. ‘바닷가에서’는 읽는 시기가 중요하지 않지만 이 책은 ‘낙원’을 먼저 읽고 나서 읽기를 권한다. 한 인물이 ‘낙원’에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쳤다면, 이 책에서는 그 인물의 청년기와 중년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포르투갈에 의해 아프리카는 유럽 사회에 알려진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각 나라는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인다. 처음에는 금과 상아에 관심이 있었지만 곧 노예무역을 시작한다. 영국의 종단 정책과 프랑스의 횡단 정책이 파쇼다지역에서 충돌하고, 18세기 후반에는 아프리카 내륙지대 깊숙이까지 여러 나라가 진출한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아프리카를 어떻게 나눌지 논의한다.
[이때 만들어진 국경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에서 부족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야. 유럽 열강들은 똘똘 뭉치는 부족은 떼어놨고, 자주 싸우는 부족은 붙여놨어. 그런 식으로 국경을 정해버린 거야. 그들이 왜 그랬을까? 맞아, 아프리카인들이 서로 싸우도록 조장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야 지배하기가 편하지 않겠니?
- '통아프리카사‘, p.163, 김시혁, 다산에듀]
[베를린회의에서 인위적으로 나눈 아프리카 국경선
- ‘나의 첫 아프리카 수업’, p.45, 김유아, 초록비책공방]
동아프리카에 독일이 침범해 들어오고, 그에 맞서 아랍과 스와힐리족의 연안무역상과 카라반이 저항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쪽의 헤헤족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슈츠트루페(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프리카 식민지에 주둔한 독일군 부대)는 단호하고 가혹하게 대웅 했다. 독일은 아스카리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용병대를 조직해 그들을 반란의 진압에 동원했다. 독일은 헤헤족 사람들을 굶기고 마을을 불태워 8년 만에 그들을 굴복시켰다. 그 와중에 아스카리들은 악랄해지고 사나워졌다. 아스카리는 독일인을 대신해 싸워주고, 아프리카 주민은 짐꾼(넝마를 입고 모두에게 경멸당한다)으로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간다. 독일인 장교들은 매번 우아하게 식사를 해야 했으며 밤마다 술파티를 벌였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시중을 들고, 매번 쾌적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준비해야 했다.
식민지 시대에 문명화되지 않은 곳에서, 부모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소년들과 청년들은 슈츠트루페에 지원하는 것이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는 길이었다. 침략국이 운영하는 학교에 가서, 그들의 언어와 학문을 배워야만 출세할 수 있었다. 저항자를 죽이고 고문하는 일은 현지인들의 몫이었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지난 대한제국의 청년들과 비슷했다. 제국주의자들의 무력에 의한 침략과 현지인에 대한 무지막지한 수탈과 착취는 모든 식민 역사에 거의 비슷하게 적용된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어린 일리아스는 집에서 도망쳤다가 기차역에서 슈츠트루페 아스카리에게 납치당한다. 그곳에서 풀려난 뒤에는 미션스쿨로 보내진다. 글을 읽고 독일어를 할 수 있어 그는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부모가 빚을 갚을 때까지 상인의 집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던 함자는, 자신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아스카리가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벌로이트난트(중위)의 당번병이 된다. 장교는 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고 돌봐준다. 이것을 마땅치 않게 여긴 교관 펠트베벨 발터는 함자를 미워한다. 펠트베벨은 전형적인 침략국의 군인이었다.
[우린 너희에게 이걸, 수학을 비롯해서 우리가 아니었다면 너희가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영리한 것들을 가져다주려고 왔다. 이게 우리의 치빌리지어룽미시온(문명인의 사명)이다. ....우린 너희를 문명화시키려 온 거다....
다만 나는 너희가 절대 수학은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수학에는 너희 민족으로서는 불가능한 정신적 규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103]
독일이 동아프리카의 아랍인과 스와힐리족, 본토의 여러 부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갈 때 영국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독일과 영국의 충돌은 당연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독일을 위해 일리아스는 다시 슈츠트루페에 자원입대한다. 자신을 구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건 독일인뿐이고, 그들에게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일리아스는 알려지지 않고, 함자의 입장에서 독일과 영국의 전쟁이 서술된다. 아스카리는 독일인을 대신해 그들보다 더 잔인하게 지역민들에게 공포를 주고 약탈한다.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거대한 산맥이 비를 막아주는 평원을 가로지를 때만 해도, 이들은 앞으로 몇 년 내내 폭우와 가뭄을 겪으며 늪과 산맥과 숲과 초원에서 싸우면서 알지도 못하는 군대를 살육하고 또 그들에게 살육당하게 되리라는 걸 몰랐다. 펀자브인과 시크교도, 판티족과 아칸족, 하우사족과 요루바족, 콩고족과 루바족, 이들 모두가 유럽인을 대신해 그들의 전쟁에서 싸우는 용병이었다.
-p.138]
아프리카에서 이슬람교도(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음)로, 게다가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기에 누구나 어려움을 겪지만 여성의 삶은 더 척박하다. 토착 부족민들과 이슬람 종교에서 여성의 지위는 낮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쿠란에 여성에게도 재산권이 있음이 명시되어있지만 그것은 지켜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잠시 쿠란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다가 여성은 곧 그만 다녀야 한다. 눈만 내놓은 채, 온 몸을 가리고 다니고 남자와는 눈도 마주쳐서는 안 된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집에서만 모인다. 남편이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맞아들여도 받아들여야 하고, 더 젊은 여자를 원해 이혼을 계속하는 남자도 있다. 불행한 결혼일 수 있지만, 여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는 결혼밖에 없다. 어른이 정해주는 대로 결혼해야만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이다. ‘아샤 푸아디’는 남편 칼리파가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평생 마음에 원망과 시기심을 새긴다. 똑같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다른 사람 집에서 노예처럼 살던 일리아스의 동생 ‘아피야’는 단지 글을 조금 읽는다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심한 매질을 당한다. 독일이 영국에게 거의 패하게 되자 교관 펠트베벨은 평소 미워하던 함자에게 칼부림을 한다. 함자는 그 후로 다리를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아피야와 함자는 결국 칼리파가 거둔다. 아샤에게는 부족한 남편이지만 성품이 착한 그가 두 사람에게 아버지가 되어 준다. 함자와 아피야는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다. 아이에게는 외삼촌의 이름인 일리아스를 붙여준다.
어린 일리아스는 어머니가 그리워하는 외삼촌 일리아스의 행적을 추적한다. 외삼촌 일리아스는 독일의 군대에서 계속 복무하다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이 아프리카에서 철수할 때 독일로 간다. 그는 독일인 여성과 결혼하고, 독일정부에 군인연금 수령과 동아프리카 작전에 참전한 공으로 훈장을 신청하지만 거절당한다. 나치가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재식민화운동(글라이히샬퉁-베르사유조약으로 빼앗긴 식민지를 되찾자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일리아스는 나치당에 가입하고 재식민화운동을 위한 행진에서 단상에 올라 슈츠트루페 제복을 입고 특별히 디자인된 깃발을 흔든다. 그는 엘리아스 에센으로 이름을 바꾸고 아스카리 군복 차림으로 카바레에서 가수로 활동한다. 그는 인종법을 어겨 베를린 외곽의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보내졌고 거기서 죽는다.
[‘난 독일인들한테서 친절함 말고는 겪어본 적이 없어요.“
.......
“이 싸움은 폭력적이고 악랄한 두 침략자의 싸움이야. 하나는 우리 옆에 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 살 뿐이지. 놈들은 누가 우리를 통째로 삼킬지를 놓고 싸우는 걸세. 이게 자네랑 무슨 상관인가? 자네는 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악명 놓은 용병대에 들어가려는 거야. 다들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나? 심하게 다칠 수 있어....그보다 더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제정신으로 하는 생각인가?]
일리아스는 자신을 도와 준 독일 군대에 충성하다 나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한다. 식민지 청년의 삶은 이렇게 지리멸렬하다. 가해자는 책임져주지 않고, 억울하고 힘든 개인의 삶만 남을 뿐이다. 일리아스에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닐까? 본토 아프리카가 그를 구제해주지 않고 관습에 얽매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리아스의 행동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지 않은 죄’를 적용시킬 수 있을까?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 세 편은 나에게 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특히 동아프리카에 대한 역사를 궁금하게 만들어주었다. 구르나의 소설을 통해서, 또 내가 찾아본 아프리카에 대한 책으로 어느 정도 동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만약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소설은 더 늦게 번역되었을 것이고, 나는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벨상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을 읽게 만들고, 책의 배경과 인물을 통해 또 다른 역사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후의 삶’을 읽으며 구르나 작가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알면서도 잊혀져가는 것들을 경계하게 하고 다시 인식시켜주는 힘! 그것을 구르나가 해주었다.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진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고,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누구의 책임이 더 강한지를 생각해야하고 분석해야만 한다. 물론 그것은 하루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인간이 저지른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 그것이 글의 힘이다.
며칠 후에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대한민국의 황석영 작가의 수상을 기대하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