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트에 가려고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한 젊은 여자가 탔다.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고, 3층에서 탄 여자가 내리면서 그 남자에게 아저씨에게 얘기했어?”라고 물었다. 둘은 부부사이인 듯 했다. 그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여자는 마침 경비실 밖에 나와 있던 관리인 아저씨께(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경비원이 아니라 관리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3층 소화전 앞에 바퀴벌레가 있어 저희가 집에서 약을 가지고 나와 뿌려 죽여 놨어요. 지금 가서 그것 좀 치워주세요.”

 

그 말을 듣고 나와 관리인 아저씨 둘 다 동시에 큰 한숨을 쉬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실 관리인은 아저씨라기보다 할아버지였다. 아니 나이를 떠나 아파트 관리인의 업무가 바퀴벌레 한 마리의 시체까지도 치워주어야만 하는 것인가이다. 부끄러움도 모른채 저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젊은 부부의 뻔뻔스러움에 기가 찼다. 저 건장하고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는 도대체 바퀴벌레 한 마리도 감당할 수 없단 말인가? 그래, 그러니까 저들이 올림픽 공원에서 선관위를 규탄하며 한미공조를 외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해결해야지 왜 한미공조를 외치는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처리하지 못하는 모지리 들이라 그런 것이리라.

 

관리인 아저씨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바퀴벌레를 치우러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목까지 치미는 말()을 삼키며 씁쓸하게 마트로 향했다. 걸어가며 오베라는 남자를 생각했다. 오베는 분명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하며 소설에서 늘 그래왔듯 컴퓨터만 믿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요즘의 허우대만 멀쩡한 어른을 비난했을 것이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370~371]

 

뒤늦게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이라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강의 목록에 오베라는 남자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다. 단순히 영화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통해 어떤 강의를 할지 궁금했다. 첫 날의 영화는 어바웃 타임이었는데 강사가 생각하는 영화의 중요한 두 부분을 각 15분씩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우리에게 설명하며 주입시켰다. 심지어 영화 대사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몇 문장으로 적어 우리에게 복창시키기까지 했다. 영화처럼 자유로운 예술을 완전 자기계발서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게다가 재미도 없는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왜 강사들은 프로그램의 목적에 맞는 강의보다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스펙이 조금 좋은 강사는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 고통의 극복담을 늘어놓는다. 작년에 참여한 천선란 작가의 북 토크 역시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책보다 AI와 미래에 대한 것을 계속 얘기해 지루했었다. 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여자는 자기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AI시대를 대비해 어떤 공부를 하며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입시전문가가 아닌 소설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한 여름밤의 영화 산책은 그 뒤로 참가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오베라는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것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베는 융통성이 없고 까칠하며 사람들에게 싹싹하지 않다. 오베는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닌 건 아닌 것이고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철저하며 성실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오베는 자칫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불평 하지만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오베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만인에게 친절하며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결정적일 때 자신만 챙기고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기에 오베는 사실 특별한 사람이다.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의 차이를 오베는 명백히 보여준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재미없는 삶의 다른 말일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경쟁과 강박 속에 사는 현대인은 오베를 꼰대로 보기 쉽다. 정말 그럴까?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는 오베처럼 사는 것이 더 절실할 것 같은데....

 

오베는 진정한 사랑꾼이다. ‘사랑이란 단어의 뜻을 완벽히 아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것을 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베와 그의 아내 소냐는 낮과 밤처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 수학처럼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 직선,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소냐는 책과 음악 같은 추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오베는 전혀 책을 읽지 않지만, 소냐의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책장을 뚝딱 만들어준다. 교통사고 후 소냐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게 되자 오베는 집의 구조를 모두 소냐에게 맞추기 위해 고친다. 장애인이 되어서도 학생을 가르치기를 원하는 소냐의 의지를 존중하고 도와준다. 오베와 소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사랑을 완성해 나간다.

 

노화는 거침없는 오베에게도 어쩔 수 없는 복병이다. 예기치 않게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아내의 죽음 후 오베는 하루하루 견딜 수 없는 잉여의 삶을 느끼며 살아야한다. 여지껏 오베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잉여야말로 오베에게 가장 힘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매번 오베의 자살 시도는 실패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누군가 원칙을 벗어나는 일을 하고, 이웃인 파르바네가 도움을 청하러 오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오베는 자살을 늦추고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오베는 소냐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느끼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오베가 자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예요.”

-p.410~411]


원작에 충실했지만 오베라는 남자영화에 오베의 매력을 다 담기는 역부족이었다. 오베의 나이는 59세인데 너무 나이 든 배우가 주인공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베가 전형적인 심술쟁이 늙은이로 비춰지는 것도 별로였다.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도 마찬가지다. 오베와 올리브를 너무 심술긏게 부각시킨 것 같았다. 사실 두 사람은 인간적인 사람이다. 살다보면 오베와 올리브처럼 용기 있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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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만한 바퀴벌레 한쌍과 마주하셨군요.
관리인께 홈키파 하나 선물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