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

 



모든 삶은 살고자 한다 - 장애인권과 동물권이 보이다


 

지난 9(2021129) 오전 8시 즈음, 서울 혜화역 지하철 역사 안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모여 시위를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시위자들의 요구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통약자이용편의증진법을 연내에 통과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법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요구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는 있었다. 이들은 이날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충무로까지 이동하며 시위행진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출근 시간에 이미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타려고 하니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권이고 뭐고, 내 생계가 더 중요하다”, “조용히 해라, 당신들은 민폐다라며 비난하는 시민들이 있었는데, 기사의 댓글은 더욱 우려스러웠다. ‘장애인들은 거저먹고 사는데 나라의 장애다’, ‘내 피해를 타인의 피해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개선의 요구인가?’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충격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반응을 보이고 이들을 비난한 적은 없었을까 싶었다. 시민들의 반응과 댓글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은 비장애인들장애인들을 피해자로 보았다는 것. 이들을 불운과 비극의 상징으로만 받아들이는 듯 했다는 점이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선들처럼, 장애인들은 경제 활동에 기여하지 못하는천덕꾸러기로 대접받아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느 쪽도 비난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고 그 시민들이 아니었을까? 앞의 기사에서 출근길에 장애인들의 시위를 비난하던 시민들은 단지 장애인들의 지난한 삶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단지 거리에 불쑥 솟아 있는 턱,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어느 지체장애인이 거리에서 이 턱 좀 없애 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후 20년 간 한 번도 외출을 하지 못했던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니의 결혼식이나 부모의 환갑잔치에도 초대받지도 못했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몰랐을 뿐인 거다.


이 기사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마침 며칠 전에 홍은전의 그냥, 사람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장애인들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이다. 또 세월호 유가족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과 함께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서울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그녀가 묘사한 서울이란 세계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수많은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월드컵을 응원했고, 촛불로 밤을 밝혔던 광화문 거리가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거리’(119)라는 것을 이전엔 알지도,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게 된 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상황이다. 며칠 전 장애인들의 시위 행동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비난, 모멸감이 느껴질 정도의 댓글들을 떠올려본다. 또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비난과 조롱 행위는 어떤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해주지 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이 국가에 가난 해소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국가가 모든 시민의 어려움을 만족스럽게 해결해준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는 이 간극을 전통적으로 이웃과 공동체가 메워왔다. 바로 이 이웃과 공동체가 점차 해체되어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렸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 로쟈는 술집에서 마르멜라도프라는 전직 공무원을 만난다. 마르멜라도프는 절망과 우울증 속에 술에 빠져 살아가는 인물로, 아래는 그가 로쟈에게 하는 말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요, 그건 진리예요. (...) 하지만 극빈은, 선생, 극빈은 죄입니다. 가난 속에서는 타고난 고귀한 감정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 속에서는 누구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은 극빈 상태에 이른 사람을 지팡이로 내쫓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빗자루로 아예 쓸어내버려요, 모욕을 더 심하게 느끼라고요. (...) 왜냐면 극빈 속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모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술집이 있는 거지요!” - 죄와 벌,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잘 알려져 있듯이 죄와 벌에서 문제시하는 는 종교적, 윤리적 차원의 죄(sin)이 아니라 형법상의 죄(crime)을 가리킨다. 곧 기존 제도에 도전하거나 법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지적했듯이 극빈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이를 사회의 범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저자 홍은전은 명랑 사회 건설을 내세운 국가의 비호 아래 폭력이 자행되고 묵인되었던 선감학원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불과 반세기 전에 '가난을 해결하려' 했던 국가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는 손쉬운 길을 택한 국가”(177)라고 말이다. 죄와 벌에서 마르멜라도프의 입으로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문명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자본을 가진 거대 기업의 통제 아래 놓인 국가의 무책임하고 강제적인 개발 및 집행방식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삼풍백화점, 용산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세월호 사건 등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 참여하고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언급했던 글이 기억난다. 참여자 한 사람이 여전히 가족을 잃은 아픔을 이야기하니 다른 참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 와주었다면 좀 더 버티지 않았겠습니까.”(131) 또 다른 칼럼에서는 용산 참사 생존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169)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또 다시 죄와 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로쟈에게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선생, 더는 갈 데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느냐고요?”(죄와 벌, 30)


왜냐면 사람이란 어디든 갈 데가 필요한 법이거든요...”(죄와 벌, 74)

 

만약 마르멜라도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 말고, 국가와 이웃, 공동체의 손길과 보살핌이 있었다면, 그의 마지막 생애가 소설에서처럼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사회적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갈 곳을 마련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사회적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그렇게까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저자가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150여년전에 도스토옙스키가 이미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해두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도스토옙스키는 로쟈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냐의 사랑으로 제시하며 끝내듯, 홍은전은 독자에게 타인, 특히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요청한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감에 바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상상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상상력을 갖추기 위해 배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이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들과 유대를 쌓아나갔다. 그가 공감하며 배우는 대상은 이제 동물에게로 확장되었다. 이것 역시 그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배운 상상력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을 만날 때까지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나 생존자, 중증장애인의 세계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지 못했다. 여전히 이들과 이들의 언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꽤나 더디게 읽었던 이유일 것이다. 홍은전의 글은 내가 책을 읽고 이따금씩 타인의 지식을 갈무리하여 쓴 글들을 무척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글들은 이 세상의 보이지 않게 접혀 있는 주름들을 일일이 펼쳐서 이 엄혹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분투했던 흔적이었다. 오늘 내가 그들과 다른 조건에서 살고 있다면, 그건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손을 잡아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나는 언제든 비장애인-장애인’, ‘수혜자-비수혜자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었다. 이 경계를 넘는 일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때론 의도와 무관하게 그 경계를 넘나든다


그냥, 사람은 내게 인간의 조건이란 그렇게 위태로운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든 이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다. 어느 경우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반드시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는 걸 새삼 마음에 새긴다. 저자에게 고마운 것은 그의 글을 읽고 중증장애인들의 시위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는 점이다이 조그만 변화가 내게는 새로운 배움의 출발점이 아닐까.



[1] "활동지원이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 수십 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이 열렸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방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동네를 구경하고 햇살을 만끽하고 장미꽃을 샀다. 니체를 읽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사랑하고 욕망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다." (60-61)

[2] "뒤를 돌면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촛불의 거리다.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이 거리에서, (...)" (119)

[3] "누군가 외로웠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때 누간가 와주었다면 좀 더 버티지 않았겠습니까." (131)
- 사회적 참사의 어느 유가족이 한 말.

"내 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69)
- 용산참사 생존자 김창수 씨의 말.

[4]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없애는 손쉬운 길을 택한 국가가 ‘명랑한 사회 건설’을 위해 거리의 소년들을 쓰레기처럼 청소하는 동안,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당하는 폭력에 눈감았다. 먹고사는 일이 죽기 살기로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에 투항하고 말았다." (177)

[5] "세상엔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은데 다정함도 그중 하나임을, 세상엔 필요한 권리가 참 많은데 ‘자매가 함께 무사히 할머니가 될 권리’도 그중 하나임을 알았다." (145)

"살면서 배워야 할 것 중에 애도하는 법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183)

[6] "고통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면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할 수는 없다." (183)

[7]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잊지 않을 것." (204)

[8] "1984년 휠체어를 탔던 지체장애인 김순석은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고, 1995년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은 철거에 맞서 저항하던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최옥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싸우다 음독을 시도했다." (217)

[9] "멀쩡한 생명을 가두고 때때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시설은 영락없는 동물원이다." (233)

[10]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244)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1-07 1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

초란공 2022-01-07 22:00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음악 이야기 말고도 사진과 그림에 관한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mini74 2022-01-07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정말 죄와벌에 대한 멋진 리뷰였어요~~

초란공 2022-01-07 21:58   좋아요 2 | URL
제가 다시 제 글을 훑어보니 여기에도 <죄와 벌>을 썼더라구요. ㅋㅋㅋㅋ
도대체 도선생을 두달에 걸쳐서 얼마나 우려냈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당분간 <죄와 벌>을 잊으려고 책장 맨 위에 손이 안닿는 곳에 올려놨습니다. ㅋㅋ

새파랑 2022-01-07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깊이 있는 글 너무 좋은거 같아요 ^^

초란공 2022-01-07 21:57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저도 김사량 샀어요 ㅋㅋ ^^
언제 읽을지..ㅋㅋ

이하라 2022-01-07 17: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새해 기쁘게 시작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22-01-07 21:55   좋아요 3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기분좋은 주말 보내세요!
 
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글과 사진 | [남해의봄날] | (2021)

 



인생의 후반기, 치열하게 지금-여기의 삶을 구도하는 부부에게서 배우다

 


남편이 은퇴하고 하루종일 같이 있으려니 짜증이 난다는 어느 부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남편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자신이 외출할 때, 함께 나서거나 차를 태워 주려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럴 때 우스개소리로 죽이고 싶은 남편이 되어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가정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 들렀다가 모처럼 쇼핑도 하고 바람도 쐬고 들어오고 싶은데, 남편이 시시각각 자신의 행방을 궁금해 하고 동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논의는 제쳐두고, 현실적으로 가족의 중심인 부부 사이의 관계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결혼할 때 나 역시 막연하면서도 무척 궁금했더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방정식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뿐.


 

여기, 오랫동안 글을 쓰고 사진작가로 지내온 남편과 평생 종합병원 신생아실에서 일하고 은퇴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내의 시간에 등장하는 이들은 40년간의 결혼생활 중에서 13년을 별거하고 다시 동거를 시작하게 된 별난부부다. 작가 남편이 지난날의 부부관계와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는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의 후반기 삶을 응원하며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부부가 세 자녀를 오롯이 키워낸 후 어느 날, 작가의 아내는 별거를 선언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내의 홀로 생활은 13년간 온전히 자신을 찾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녀가 참여한 어느 모임에서 그녀는 퇴직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 차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진짜 나로 살기 위해집을 나섰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가정이 범상치 않은 것은 이를 응원하는 남편과 자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부부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할지,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굴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떠해야 할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서울과 파주, 영국 등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가족 대화방에서 각자 그 시간의 하늘 사진을 찍어 올리고 대화를 나누었던 부분이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잠시 위를 올려다보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들은 서로의 의견과 지혜를 나누되 삶의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이 특이한가족의 소소한 행위는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이 올바른 가족, 혹은 부부의 모습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족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써 나누고자 했을 뿐이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경험을 통해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일이 서로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부부가 40년간 살아온 진솔한 모습과 지혜가 담겨 있었다. 이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일테다. 이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도반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언젠가 카페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남편을 험담하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이들의 남편 역시 아내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작가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스승이라 여겼다. 남편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아내의 생각을 경청했다여기에서 나를 비롯한 보다 젊은 세대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아내의 지혜로부터 말이다. 인생의 후반에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고 싶다면, 남편 역시 아내와 가족에게 좋은남편이자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좋음을 찾는 일은 물론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듯,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가 되어야 했다. 이 명제가 바로 작가가 제시하는 이 부부의 지향점을 잘 요약해주는 듯하다. 부부는 애초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개별적인 존재임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듯하다. 꽃봉오리부터 짙은 향기를 내뿜는 치자꽃처럼, 부부는 각자가 나름의 향기를 품고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따로 또 같이말이다.


 

부부, 그리고 가족이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행복할 수 있는 관계는 단순히 집안일을 50:50으로 분담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듯하다. 단연코 부부관계는 나는 이만큼 집안일을 했는데, 너는 왜 이만큼도 안하냐?’는 태도처럼 왜곡되고 편협한 평등주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 관계가 각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이 부부와 가족의 모습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현실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모습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실현하는지가 각자 삶의 탐구 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후반기에 있는 이 부부가 치열하게, 그러나 또한 물이 흐르듯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따라, 나 역시 지금부터 그러한 삶을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신주의에 종속되어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1] "우리가 동거에서 고수하는 두 가지는 ‘간섭하지 않는다‘와 ‘단순하게 산다‘입니다." (23)

[2] "모든 배움과 독서와 경험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습니다. (...)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내 삶이 좋은 삶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그곳에 닿기 위한 징검다리인 셈입니다." (160)
- 저자의 글쓰기 철학

[3] "남편은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왔고, 나는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프레임 속에서 무엇을 뺄지 고민하고, 나는 텅 빈 도화지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한다. 뺄 것을 염두에 두니 더하지 않는 마음이 좀 쉬워졌다." (189)

[4] "아내의 소유에 대한 기준은 없음으로써 있음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할 때 버리고 갈 것조차 없음에 도달하길 원합니다." (194)

[5]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만드는 일은 자신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며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공부란 점에서 아내는 똑같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204)

[6] "두려움은 없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든 생각은 ‘이제 내 차례구나‘였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었다." (207)

[7] "이제 우리는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요." (212)

[8]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두려움은 바라보고 있으면 커지고 직면하면 사라지지요." (250)

[9] "43년 전 애인이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동전을 한 움큼 쥐고 벚나무 아래의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기가 그 동전을 모두 삼킬 때까지 통화했던 밤이 생각났습니다." (25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12-10 14: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내, 마누라, 집사람, 안사람, 애들 엄마가 필요해지고,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독립만세, 를 외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내가 애들 키우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제 좀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하면
남편이 놀아 달라고 할지 몰라요. 그러니까 젊을 때 잘해 줘야 하는 거죠.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 늙어서 보자, 하잖아요. ^^

초란공 2021-12-10 19:31   좋아요 2 | URL
공감이 팍팍 됩니다~^^ 그래서 좀 더 젊을 때부터 함께 잘 지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아요^^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Luis Sepulveda) 지음 |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4)

 



삶의 터전을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랑하라

 



사랑에 관한 책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이야기였네.

 


백인들의 문명이 세계의 자원과 금을 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아마존의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인지 모른다. 문명은 아마존의 깊은 밀림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가는 수아르 족과 같은 원주민을 미개인으로 규정하고, 숲을 밀어버렸으며, 동물과 사람들에게 총질을 해대며 재앙을 몰고 왔다.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의 뒷담화와 무례한 오지랖으로 상처를 받았던 노인은 아내와 함께 문명이 개발하기 시작한 작은 마을 엘 오딜리오로 나와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문명과 함께 혹은 그 이전에 오지에서 문명이 들어오도록 길을 만들곤 했던 선교사들이 아마존의 오지 마을 엘 이딜리오에도 도착한다. 마을을 떠나는 선교사 신부가 배를 기다리며 졸다가 떨어뜨린 책을 주워든 노인. 그는 더듬더듬 책을 읽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문자 없이, 때로는 글을 필요로 하지 않은 수아르 족과 밀림 속에서 살았던 노인은 글자를 읽으며 자신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앞에서 인용한 대목은 아직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지 못한 노인이 선교사 신부에게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 묻고 나서 연애 소설에 대해 신부가 해준 답변이었다. 신부는 자신도 지금껏 연애소설은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면서. 신부의 대답은 신의 사랑을 제외하고 인간들의 사랑, 연애의 감정이 무엇인지 피상적으로만 이해했을법한 답변이었다.


 

연애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신부가 내린 정의를 읽다보니 학창 시절 거의 유일하게읽어보았던 책들인 무협소설이 떠올랐다. 무협소설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남녀 주인공들이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을 키워가던 그런 소설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칠레 작가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이렇게 아마존 지역의 어느 오지 마을에 사는 노인을 서서히 장면 속에 등장시킨다. 작가는 아마존과 그 곳에 거주하는 원주민, 동식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백인 문명과 책읽기를 이 소설에서 대비시킨다. 노인은 선교사의 책 소개를 듣고 어느 때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노인의 책읽기는 우리가 어릴 때 책을 처음 접하고 글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며 느꼈던 기쁨, 몰입의 행복감을 환기시켜준다. 음식을 음미하듯 한 음절 한 음절 따라 읽고, 낭독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또 반복해서 읽었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문장이 되자 노인은 이를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다. 독서와 관련한 인간의 인지기능을 연구하는 어느 연구자[1)]는 책 읽기가 인류에게 익숙하지 않은, 애초에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던가. 문자를 발명하고도 한 참 후에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접근이 가능했던 책은 인간에게 문자를 읽고 이야기를 음미하는 순수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불길한 예언과 함께 말이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라는 긴 이름의 이 노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굶어죽을 정도로 힘들게 살다가 수아르 족으로부터 돌봄과 가르침을 얻는다. 밀림에서 자연과 더불어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 이즈음 아마존을 개발하려는 문명에서 온 이들, 금을 캐어 일확천금을 노린 노다지꾼들이 밀림에 출몰하면서 서서히 비극은 시작한다. 노인은 원주민 친구를 죽인 백인에 대한 복수를 총으로대신했다. 하지만 수아르 족에게는 이들만의 계율이 있었으니, 복수를 하더라도 이들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노인은 백인의 총으로 복수를 했기에, 부족의 계율을 어긴 셈이 되었고, 부족을 떠나야 했다. 다시 엘 이딜리오라는 작은 마을로 돌아오게 된 노인은 이 곳에서 책을 알게 되고, 글을 읽는 기쁨을, 책을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발견한다. 다만 이렇게 순수한 기쁨도 어느 날 떠내려온 금발의 백인 시체로 오래가지 않았다.


 

사망한 백인은 밀림 속에서 살쾡이 새끼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먹이를 구하러 집을 비웠을 암살쾡이는 이제 인간을 상대로 복수에 나섰던 것이다. 이 금발의 양키는 밀림의 첫 번째 복수였던 셈이다. 노인의 말대로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153) 숱한 역사에서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을의 읍장은 사람을 공격하는짐승을 제거하기 위해 수색대를 꾸린다. 읍장은 밀림에 경험이 많은 노인에게 강요하듯 수색대에 포함시켜 밀림 속으로 길을 떠난다. 밀림 속에서 읍장이 보여주는 행동은 자연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맨발로 가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장화를 신고 가다가 전갈이 바글바글한 진흙탕에 빠져 결국 장화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한 밤중에 전등을 키고 밀림을 깨워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밀림의 법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자연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밀림은 동물이 배설물을 배출하면 곧이어 밀림의 개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달려드는 곳이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밀림 속에서 생명을 잃으면, 개미들과 새들을 비롯한 숲 속의 동물들은 반나절도 안 되어 사체의 백골만을 남겨놓는다. 노인이 죽음에 대해 갖게 된 시각 역시 깊은 밀림 속에 살며 밀림의 규칙을 익힌 수아르 족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153)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밀림에 사는 유일한 조건이라면 밀림 세계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이렇게 바라보게 된 노인은 지나치게 대담한 행동을 하던 암살쾡이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새끼들이 사람의 손에 죽었고, 상처를 입고 비쩍 말라버린 수컷 살쾡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던 상황을 떠올려본다. 아마도 암컷 살쾡이는 수컷의 고통이 긑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마지막 선택, 죽음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난 후 노인은 암살쾡이의 입장에서 이 짐승이 원하던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노인이 보기에 살쾡이는 속임수를 쓰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보다는 대담한 맞대결의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노인은 이 대결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소설은 이제 인간과 동물, 문명과 밀림 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대결로 이어진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유랑을 하게 된 작가였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권위주의적 강압 정책을 내세운 피노체트 정권의 위협으로부터 오로지 살기 위해모국을 떠나야 했던 인물이었다. 소설 속 노인 역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신을 압박하며 숨 막히게 만드는 삶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었다. 세풀베다도 유랑하는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작가의 눈길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백인 문명의 위력과 폐해, 그리고 희생자들에게도 머물렀다. 한 때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그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인간이 자연과 맺는 파괴적인 관계를 비판하고 회복을 촉구하는 소설을 쓰게 된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개발 문명 세력의 사주로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설 속에서 노인은 사람을 공격하는 밀림의 짐승을 죽이려는 수색대에 마지못해 합류하게 되지만, 살쾡이와 벌인 최후의 대결 후 그는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자연 속에서 공존의 지혜를 잃어버린 인간은 자연의 복수에 또 다시 자연을 파괴하는 악의 순환 고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이러한 대결은 노인에게 결코 명예롭지 못한 싸움이었다. 인간이 자연과 벌이는 이런 무모한 대결과 갈등은 노인이 좋아하는 연애 소설 속의 사랑에 빠진인물 사이의 관계와 대비된다. 연인 사이의 행복을 가로막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연인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결국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노인은 부끄러움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강물에 엽총을 던져 버리고, 다시 연애 소설이 있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으로 가는 길일 테다. 어쩌면 연애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통속적 구도와 교훈이야말로 자연을 파괴하며 자멸할 위기 앞에 놓인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아닐까



[참고] 1) 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의 저자.


[1]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45)

[2]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 (130)
-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

[3]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면 끝까지 헤매는 곳이 밀림이라고요." (138)

[4] "그들(수아르 족)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153)
- 노인의 ‘죽음’에 대한 시각

[5]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153)

[6] "친구, 미안하군. 그 빌어먹을 양키놈이 우리 모두의 삶을 망쳐 놓고 만 거야." (171)
- 죽어가는 수컷 살쾡이를 총으로 죽여 고통을 끝내준 노인의 독백

[7]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179)

[8]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이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18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11-25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톤 체홉의 사랑에 관하여, 라는 단편 소설집을 보면 표제작은 불륜 관계의 사랑을 포기하고
아프게 결별하고,
그 안에 있는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연인-은 둘이 함께 하길 다짐하죠. 그들 앞엔 숱한 어려움이
있겠죠. ^^

초란공 2021-11-25 16:16   좋아요 1 | URL
소설가는 다종다양한 고난을 겪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감사하게도 얌전히(?) 읽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읽으면 혹시라도 있을 고난을 견딜 힘이라도 생길지도 모르겠구요^^;;
 

세상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해 연구하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 내면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11-25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쉬운 게 남에게 충고하는 것,
가장 어려운 게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이라고 하네요.

초란공 2021-11-25 16:10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서 더 고민하게되는 문제들이네요^^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길 바랄뿐입니다^^
 


1111,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 1차 대전 종전일

 


[1]

어제 다른 날보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와 따듯한 국수 한 그릇 먹고 들어오려고 지하철에 마중을 나갔다. 개찰구 옆에서 기다리는 동안 몇몇 젊은 남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다음날(1111)이 일명 *로 데이라서 그랬나 싶었다. 학창시절에 이 날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족히 25년은 더 되었을 테다. 정체불명(?)의 명절처럼 되어버린 할로윈을 포함해서 이제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되었구나 싶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세대가 주인공이지 싶다.



 

[2]

오늘이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0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는 18211111일에 태어나 188129일 사망했다. 여러 출판사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작가의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제작해서 내놓았다. 학창 시절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처음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죄와 벌이다. 아니면 내가 예전에 백치를 읽었던 작품인지 가물가물하다. 죄와 벌은 작년에 읽었는데, 한 번에 다 수긍이 가는 작품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좀 더 조사와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그의 삶 자체가 마치 소설과도 같이 극적인데다 다채로운 사건들이 많아, 그의 삶에서 있었던 전환점들을 다시 살펴보고 이해해야하지 싶다.









































최근에는 그의 작품 악령을 구입했는데, 아직 시작하진 못했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좀 더 어렵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악령을 읽은 다음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세계에 다가가면 좋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일단 읽을 계획() 세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경우, 작년에 코너스톤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짜리 기념판이 제일 아름답게 보인다. 











   

 


[3]

‘1111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늘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이 선언된 지 103년 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1914728일 시작하여 19181111일에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현재 우리에게는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처럼 되어 기대와 흥분을 가져다주는 날이기도 하지만, 유럽의 누군가에게는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을 떠올리고 그리워했던 날이리라. 그들은 전쟁 속에서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던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버지 혹은 딸, 아내, 어머니였을 것이다.


 

이 날을 배경삼아 나온 소설이 생각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이 소설은 2013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소개글에 따르면 문학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문학상에 대중 문학 작가가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인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피하고자 간단한 정보만 언급하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했지만 부상을 입고 귀환한 이들을 국가는 나몰라라 했다. 오히려 이들은 국가에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참전 용사인 주인공은 종전 기념일인 1111일을 기념하는 기념탑 건립사업에 참여하여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4]

프랑스 작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니 프랑스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요새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듯이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대표작 뿌리(Roots)를 읽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던 게 생각난다. 그저 일하시느라 바빠서 책 읽으시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어느 날 중고 서점에서 Roots를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난주에 부모님 집에 들러 책을 넣어둔 박스를 뒤져 20년 넘게 읽지도 않은 상태로 먼지 쌓인 이 책을 다시 찾아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이 책은 꽤나 긴 소설인데다,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행간이 너무 작아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셈치고(?) 천천히 읽게 되었다.














잘 알려져있는 것처럼 소설의 주인공은 쿤타 킨테라는 흑인이다. 쿤타 킨테는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7대 조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의 서부 끝에 있는, 현재 세네갈 지역의 숲에 있던 푸아레 부족 출신이었다. 17세가 된 어느 날 자신의 북을 만들려고 나무를 구하러 숲에 들어간 사이, 백인 노예 사냥꾼들에게 납치되어 미국 남부로 끌려왔다. 네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백인들에게 결국 붙잡혔다. 그들은 쿤타의 한쪽 다리를 도끼로 잘랐다. 이렇게 이어지는 작가 집안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와 노예제의 면모를 고발하며 보편성을 얻는 역사가 되었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와 관련한 사항은 아이티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아이티는 3만 명 미만의 프랑스인이 지배하던 식민지였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리카 흑인 50만 명 이상을 아이티로 데려와 사탕수수, 옥수수 등의 농장에서 가혹하게 일을 시키고 착취했다. 인간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혹독한 노동환경과 현실에 불만을 품은 투생이라는 흑인이 아이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쿤타는 백인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흑인 반란군 지도자 투생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응원했다. 이 반란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나폴레옹이 협상을 구실로 투생을 끌어내어 붙잡은 다음 프랑스의 어느 토굴 감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투생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올해 언제인가 큰 지진이 났다는 아이티 생각이 났다아이티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후예들로 유지되던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다.


 

눈 상태도 좋지 않고 책의 행간이 너무 좁아 뿌리(Roots)를 다 읽으려면 11월 한 달 내내 조금씩 읽어야할 것 같다. 작가 알렉스 헤일리 연보를 보니, 1921811일 생이다. 올해는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셈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맬컴 X에 관한 전기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 A Life of Passion and Struggle를 쓰기도 했다. 맬컴 X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그와의 대담 및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사항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맬컴 X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뿌리(Roots)의 주인공 쿤타 킨테처럼 무슬림이면서, 무장투쟁을 지지했던 입장으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또 다른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The Fire Next Time)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볼드윈이 맬컴 X와 만나 이야기하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성경에 나온 하느님의 말씀 다음번엔 불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의 죄를 벌하는 심판으로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입장에는 동의했지만, 흑인 인권 운동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맬컴 X와 상반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제임스 볼드윈은 오히려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에 가까운 방식을 지지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는 알렉스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보다 읽기 쉽게 행간을 넓힌 기념판을 내주었으면 한다. 뿌리(Roots)는 나머지를 다 읽고 정리를 해볼 계획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1-11-11 14: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도끼샘 200번째 벌쓰
데이로군요.

카페이 투자로 땡긴 책이 오늘
쯤 오나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벌쓰데이 수령은 안될 것 같네요.

내일은 받을 수 있겠죠?

오르부아르는 5년 전에 사두었는
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 그래픽
노블로라도 만나야 하나 어쩌나
싶네요.

초란공 2021-11-11 21:52   좋아요 3 | URL
도끼샘 책을 주문하셨나 봅니다^^ 내일 받으시길~ 저는 르메트르 선생이 국내 왔을 때 사인받아놨는데 책이 오디로 갔는지 못찾겠네요 ㅋㅋ

scott 2021-11-11 14: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퇴근 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따뜻한 국수 한그릇 사주는 초란공님 따숩
빼빼로 보다 더 달콤 ^^
코너스톤 첫판 완판시키고 재판 찍고 있다고 합니다 ^^

초란공 2021-11-11 21:55   좋아요 3 | URL
아내가 오늘 빼빼로 사왔습니다~^^ 추운데 편의점 밖에 떨고 있는 누드 빼빼로가 가엽다고요 ㅋㅋ 코너스톤 3쇄도 찍으시길~!

stella.K 2021-11-11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V 시리즈 유명했죠. 70년대 후반에 나오고 나중에 또 만들어졌던 모양인가 본데
저는 오리지널판은 봤습니다. 나중에 만들어진 건 잔인해서 결국 안 봤죠.
영화가 하도 감동스러워 책을 샀는데 결국 읽지는 못했습니다.ㅠ

초란공 2021-11-11 21:56   좋아요 3 | URL
와~ 그럼 지금 넥플릭스 처럼 대단한 인기였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오리지널판이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21-11-13 0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에르 르메트르 아자씨의 책들
도 예전에 사두기만 하고 당최
읽지 않았네요.

초란공님의 글을 보고 나서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래픽 노
블 <오르부아르>를 빌려다
읽었는데 아리까리하네요.

아무래도 원전으로 다시 읽
어야지 싶습니다.

초란공 2021-11-13 11:36   좋아요 2 | URL
그래픽 노블이 이미 나와있었군요! 그래픽 노블은 정말 별개의 작품일듯합니다^^; 모비딕 그래픽 노블도 상당히 낯선 느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집이 곳곳에 출몰하고 있어서 지뢰밭 지나가듯하고 있습니다.^^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1-12-09 23:21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12-09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

도끼옹 전집
반쯤 완독 하셨을 것 같습니다 ^^

초란공 2021-12-09 23:24   좋아요 3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사실 마구 진도나가기 보다는 작년에 처음 읽어본 <죄와 벌>을
읽는 것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해서요. ㅜㅜ
이제 <악령> 읽어보려구요~

페크pek0501 2021-12-10 14: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 님 같은 분을 능. 력. 자. 라고 하지요. 두 편의 당선작을 내시다니... (혹시 더 있는 건가요?)ㅋㅋ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2-10 19:29   좋아요 3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올해 페이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선된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