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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1년 11월
평점 :
《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글과 사진 | [남해의봄날] | (2021)
인생의 후반기, 치열하게 ‘지금-여기’의 삶을 구도하는 부부에게서 배우다
‘남편이 은퇴하고 하루종일 같이 있으려니 짜증이 난다’는 어느 부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남편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자신이 외출할 때, 함께 나서거나 차를 태워 주려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마 이럴 때 우스개소리로 ‘죽이고 싶은 남편’이 되어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가정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 들렀다가 모처럼 쇼핑도 하고 바람도 쐬고 들어오고 싶은데, 남편이 시시각각 자신의 행방을 궁금해 하고 동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논의는 제쳐두고, 현실적으로 가족의 중심인 부부 사이의 관계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결혼할 때 나 역시 막연하면서도 무척 궁금했더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방정식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뿐.
여기, 오랫동안 글을 쓰고 사진작가로 지내온 남편과 평생 종합병원 신생아실에서 일하고 은퇴한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내의 시간》에 등장하는 이들은 40년간의 결혼생활 중에서 13년을 별거하고 다시 동거를 시작하게 된 ‘별난’ 부부다. 작가 남편이 지난날의 부부관계와 가족의 모습을 돌아보는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의 후반기 삶을 응원하며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부부가 세 자녀를 오롯이 키워낸 후 어느 날, 작가의 아내는 별거를 선언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내의 홀로 생활은 13년간 온전히 자신을 찾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녀가 참여한 어느 모임에서 그녀는 퇴직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 차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진짜 나로 살기 위해’ 집을 나섰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가정이 범상치 않은 것은 이를 응원하는 남편과 자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부부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할지,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굴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떠해야 할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서울과 파주, 영국 등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가족 대화방에서 각자 그 시간의 하늘 사진을 찍어 올리고 대화를 나누었던 부분이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잠시 위를 올려다보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들은 서로의 의견과 지혜를 나누되 삶의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이 ‘특이한’ 가족의 소소한 행위는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이 올바른 가족, 혹은 부부의 모습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족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써 나누고자 했을 뿐이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경험을 통해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일이 서로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부부가 40년간 살아온 진솔한 모습과 지혜가 담겨 있었다. 이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일테다. 이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의 도반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언젠가 카페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남편을 험담하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이들의 남편 역시 아내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작가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경청하고 그를 ‘스승’이라 여겼다. 남편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아내의 생각을 경청했다. 여기에서 나를 비롯한 보다 젊은 세대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아내의 지혜로부터 말이다. 인생의 후반에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고 싶다면, 남편 역시 아내와 가족에게 ‘좋은’ 남편이자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 ‘좋음’을 찾는 일은 물론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듯,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가 되어야 했다. 이 명제가 바로 작가가 제시하는 이 부부의 지향점을 잘 요약해주는 듯하다. 부부는 애초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개별적인 존재임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듯하다. 꽃봉오리부터 짙은 향기를 내뿜는 치자꽃처럼, 부부는 각자가 나름의 향기를 품고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따로 또 같이’ 말이다.
부부, 그리고 가족이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행복할 수 있는 관계는 단순히 집안일을 50:50으로 분담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듯하다. 단연코 부부관계는 ‘나는 이만큼 집안일을 했는데, 너는 왜 이만큼도 안하냐?’는 태도처럼 왜곡되고 편협한 평등주의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 관계가 각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이 부부와 가족의 모습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현실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모습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실현하는지가 각자 삶의 탐구 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후반기에 있는 이 부부가 치열하게, 그러나 또한 물이 흐르듯 ‘지금-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따라, 나 역시 지금부터 그러한 삶을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신주의에 종속되어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1] "우리가 동거에서 고수하는 두 가지는 ‘간섭하지 않는다‘와 ‘단순하게 산다‘입니다." (23)
[2] "모든 배움과 독서와 경험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습니다. (...)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내 삶이 좋은 삶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그곳에 닿기 위한 징검다리인 셈입니다." (160) - 저자의 글쓰기 철학
[3] "남편은 오랫동안 사진을 찍어 왔고, 나는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프레임 속에서 무엇을 뺄지 고민하고, 나는 텅 빈 도화지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한다. 뺄 것을 염두에 두니 더하지 않는 마음이 좀 쉬워졌다." (189)
[4] "아내의 소유에 대한 기준은 없음으로써 있음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할 때 버리고 갈 것조차 없음에 도달하길 원합니다." (194)
[5]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만드는 일은 자신을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며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공부란 점에서 아내는 똑같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204)
[6] "두려움은 없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든 생각은 ‘이제 내 차례구나‘였다. 내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었다." (207)
[7] "이제 우리는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요." (212)
[8]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두려움은 바라보고 있으면 커지고 직면하면 사라지지요." (250)
[9] "43년 전 애인이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동전을 한 움큼 쥐고 벚나무 아래의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기가 그 동전을 모두 삼킬 때까지 통화했던 밤이 생각났습니다."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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