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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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아틀리에

: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열화당]

 



온 몸으로 생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고백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을 사랑한다.”(33) 장욱진 화백의 그림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읽고 남는 인상을 떠올리자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문장을 꼽겠다.


책을 펼치고 읽을 때 화백이 그림을 곁들여서 창작론, 인생론, 예술관을 조곤조곤 전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진정으로 그림과 술을 사랑한 화가였다.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은 범인(凡人)의 정의로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화백의 그림 사랑과 술사랑은 괴벽에 가까운, 혹은 자기를 혹사하는 행위 내지는 집착의 행위가 아닐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제와 균형이 선이라는 태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그림 사랑, 술사랑은 지나침 혹은 과잉의 한계 너머의 무모함에 가까워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방식이야말로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본성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59)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46)


 

장욱진 화백의 담담하고 명료한 믿음의 고백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강도와 깊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가 자신의 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겠다. 문명이 개개인에게 둘러친 관습 혹은 규범의 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문구일 테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환경, 만들어지고 관리 받은모범생 같은 이들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장욱진 화백과 같은 분들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인물의 유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린 낙서처럼 보이는 화백의 그림을 보다가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 폴 클레(Paul Klee)의 드로잉하고도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굴 벽화에 담겨있는 시원의 삶을 보여주는 듯 군더더기 없는 묘사 때문이었다. 일종의 상징 기호처럼 보일 정도로 간결한 선들만으로 표현한 사람과 산, 해와 달 등이 어우러진 배경을 보고서 말이다. 혹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뼈대만 남아 있는 조각상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문명이 인간에게 덧칠한 모든 흔적을 제거해버리려는 듯 본질만 남은 선, 간신히 인간임을 알아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선만 남은 모습들에서 묘한 연대 의식 같은 것들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그럼에도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는 인물의 표정이 보이고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인물 그림에선 의지와 인격, 그리고 역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고요와 고독속에서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경기도 덕소, 수안보, 신갈 등 현재는 관광지 내지는 도시 개발로 번잡해진 장소가 되었지만, 그가 작업하던 시기에는 외지고 한적한 곳이었다. 작업장 주변이 개발되어 그림 작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게 되면 그는 미련 없이 떠나 새로운 곳을 물색했다. 역설적으로 작가의 아틀리에 장소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면 아무것도 방해하는 것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후에라야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47)


 

저자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였을까. 무엇보다 이 행위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전제하는 일이었을 테다. 그는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러내며 나를 발산한다’(181)라고 자신의 그림그리기를 정리했다. 예술에 대한 나의 부족한 감수성과 이해력으로 주목한 작가의 예술관은 다음에 인용한 문장에 잘 정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이 표현에는 알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뜻이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은 무엇보다 현대 미술의 접근 방식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그 본질로 자기와의 대면을 언급한다. 결국 예술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기존의 질서 파괴 행위는 미술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 가보면 고민의 결과물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백의 표현대로 공유되는 전달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자기화한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4년에 걸친 미술대학 시절에 자기만의 언어를 획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자기만의 언어 뿐 아니라 동시에 공동한 언어를 잊지 않고 반영되려면 나와 마주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향하여 사회와 공동체, 타인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집요한 관찰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사회 문제와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감지하고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바로 자신만의 언어를 소통의 언어, 공동의 언어로 코딩하는 작업을 몸소 해야 하니까 말이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약속이자 기호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저자처럼 홀로 고립되어 작업을 한다고 해도, 예술가가 타자와 사회에 무관심하다면 그 또한 예술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테다. 여기에 예술행위의 기본적인 정치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므로 장욱진 화백이 언급한 자아의 발견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도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아닐까. 결국 예술가의 작업이란 자기에 대한 사랑’, 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알곡 없는 쭉정이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이 한 가지 과정만 해도 상당한 수련이 필요할 듯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장욱진 화백의 예술관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읽었다.


한 가지 더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사연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의 만남과 인연이었다. 마해송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홍난파 등과 교제하고 1924년에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한 분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아침마다 마주치는 노인 한 분의 외모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고 잠바를 입은 모습을 보던 화백이 마해송 선생에게 가서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은 가족으로 이어지고, 마해송 선생의 동화집 작업에 화백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선생의 아들인 마종기 선생은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것 같다. 훗날 마종기 선생이 본인의 시집을 낼 때, 장욱진 화백에게 부탁하여 표지 그림을 얻어냈다고 한다.


타인의 간섭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웃하고도 통성명을 하지 않는 요즘 도시 생활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서로 알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옅어지고 관계에 대한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기에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지키며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일은 요즘 현실에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해진다면 타인의 실수와 처지에 공감하기가 더 쉬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자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에세이보다는 우연한 인연이 등장하고, 그 관계의 발전이 있는 그런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장욱진 화백의 산문에는 화가 본인의 그림과 예술관, 내면세계가 담겨있지만 여기에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이 소개되는 이야기들이 더해져 다채로웠다.


저자의 연보를 보다가 특이한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1944년 겨울, 29세의 나이에 일제의 비행장 만드는 징용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곧바로 일본 관동군 해군본부 경리요원으로 배속된 후 9개월 만에 해방을 맞아 돌아올 수 있었다. 저자는 1918년생이므로 출생 후 30세까지 나라 없는 식민지 상태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셈이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토록 생을 사랑할 수 있었고, 예술에서 자신의 언어,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연보를 통해 청년 장욱진의 시절을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렇듯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는 삶을 온 몸으로 사랑했던 한 예술가의 담담한 고백이다.




 


 

[1] "검은 것과 흰 것, 그게 제일 힘든 거예요. 색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 흰 건, 이 빛에서 가장 단순하다는 게 아주 교묘한 거거든. (...) 우린 은연중에 흰 것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건 행복한 거예요. 내 환쟁이 바탕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25)

[2] "아기자기하게 닳고 닳은 조약돌에서 읽을 수 있는 세월의 엄청난 흔적과 자연의 기나긴 역사. 그 자연의 줄기찬 흐름 속에서 잠깐,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 이런 것들은 나에게 무한(無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인생은 덧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라지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으로써 나는 생(生)을 사랑한다." (33)

[3] "강가에 앉아서 물과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상은 어느새 막걸리를 사랑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46)

[4]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47)

[5] "인상파 이후의 그림은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자아의 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기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것이 오늘의 그림을 옛날의 그림과 구별 짓는 키포인트다.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즉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다시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일 때만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를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133)

[6]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 (146)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


[7]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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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1 08: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울 클레 그림과 자코메티의 뼈대를 떠올리는 데에 공감되어요. 열화당 개정판이군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담담한 예술가의 삶처럼 담담한 리뷰와 인용문도 참 좋습니다. 취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책 담아가요 ^^

초란공 2021-10-21 12:1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폴 클레라고 쓰면서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파울 클레‘ 때문이었네요 ㅋㅋ^^;;;

scott 2021-10-22 0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욱진 화백 그림 좋아 합니다
한국의 토속적 질감과 구도!

열화당 요즘 예술 서적 개정판 내면서
가격을 야금, 야금 ㅎㅎㅎ

초란공 2021-11-08 18:51   좋아요 0 | URL
ㅋㅋ 그래도 열화당은 예술 분야 위주로 출간하다보니
다른 출판사보다 여러 가지로 더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벤트성 리커버나 기념판 작업은 열*책들이 두각을 보이는듯 합니다. ㅋㅋ ^^;;
도스토옙스키 기념판을 지르지 못하여 아쉬워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고요 ㅋㅋ


scott 2021-11-0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초란공 2021-11-05 22:48   좋아요 4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요새 알라딘에서 보내주는 서재글 이메일의 주인공 분들이 댓들을 달아주시니 제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몇 년 간 방문자가 거의 없었거든요 ㅋ ^^;; 즐거운 주말, 가을 보내시길요!

mini74 2021-11-05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5 22:37   좋아요 3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알라딘 핵인싸분들이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으쓱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축하드려요~

초란공 2021-11-05 22:32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1-11-06 1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방문했던 용인에 있는 장욱진 고택은 한옥과 양옥으로 되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란공님의 글을 통해 서로 다른 양식의 두 건물이 조화롭게 하나의 집이 되었던 것처럼 화가 자신이 내면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 2021-11-06 22:44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장욱진 선생 고택을 이미 가보셨군요.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선생의 문구도 기억나네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초딩 2021-11-07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ㅜㅜ 요즘 제가 갑자기 바빠져서 왕래가 좀 뜸했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초란공 2021-11-07 11: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바쁘셔도 건강 잘 챙기시길요!

이하라 2021-11-07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란공 2021-11-07 11:3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1-11-07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1-11-08 18:53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격려말씀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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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Suga Atsuko)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문학이 되어버린, 한 인물의 삶이 담긴 에세이

 


스가 아쓰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 건 올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이면서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온 인물. 동시에 강경파 로마 세력으로부터 유약한 황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소설이었다. 이 놀라운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나중으로 미루어 둔다.


스가 아쓰코가 등장하는 대목은 그녀가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에 심취했으며, 그녀의 문학적 발자취를 찾아 가기를 꿈꾸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르스나르의 신발이란 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1929년에 출생한 여성은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문학도를 소망했다. 그리고 정말 배를 타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것이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조합 형식의 서점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까지 하며 10여 년을 지내고 귀국한 이력의 인물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탈리아의 지성인과 교류했고,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책과 서점을 중심으로 확장되어간 인연들의 이야기들이 그녀가 쓴 여러 편의 에세이에 묘사된 중심적인 화제다.


특히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이탈리에서도 유명한 밀라노의 짙은 안개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남편의 이른 죽음을 중심으로 가족같이 지내던 수많은 인연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적이고 절제된 형식으로 들려준다. 아쓰코는 남편의 죽음 이후 몇 년을 더 지내다가 13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이후 비교문학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하고, 많은 이탈리아 문학을 일본에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가 지닌 특징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문학 연구자로서 여러 문학적 논평을 포함한 지적인 면모와 그녀가 만나게 된 인연들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그런 면에서 저자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에세이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일을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 썼던 글이기에 균형감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이외에는 가진 것 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서로를 걱정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가진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해주었다.


본문 중에는 저자가 문학도로서, 좋아하는 일에 그토록 좋아서 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문학 번역작업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79)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는데, 그 가운데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교육을 받으면 곧바로 결혼을 하곤 했던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과 길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간 인물이기도 했다.


나라면 평생 문학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규범에 휘둘리고 나를 잃어버리기가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문학에서 시작해서 문학으로 끝나는, 문학의 삶 자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그녀의 삶은 곧 문학이 된 셈이다. 이번에 읽은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저자가 남긴 에세이 작품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의 나머지 에세이들도 모두 읽을 생각을 하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한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나폴리는) 일면에 자꾸 화를 내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도시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선 전체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살피다보면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73)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번역 일을 좋아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따라서 일종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79)

"책장을 메운 오래전 사건을 오늘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겹쳐보며 번역을 해나갔다." (119)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 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뷔베크에 사는 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 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195)

"오뉴월,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전철이 점점 산에 가까워지자 조토의 그림이 떠오르는, 주황빛으로 메마른 언덕에 핀 금작화가 보였다. (...)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나뭇가지가 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하얗고 커다란 아카시아 꽃송이를 지나쳤다. 연초록 이파리 사이로 아른거리는 하얀 꽃이 달리는 전차에 닿을 듯했고, 달콤한 향기가 열린 차창으로 들어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217)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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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10-20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송태욱 선생님 번역도 훌륭했고 스가 아쓰코 인생 이야기도 넘 좋았어요. :)

초란공 2021-10-20 13:10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 송태욱 샘 작업은 묻지마 구입하기로!

그레이스 2021-10-20 13:14   좋아요 1 | URL
👌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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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누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혹자는 아프리카 격언이라고도 하지만, 아프리카와 도서관을 연관 짓기는 어려울 듯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다듬어졌을 듯싶다. 한동안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에세이 몇 권을 읽었는데, 마침 아내가 읽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를 나도 읽으면서 앞에 인용한 표현이 떠올랐다. 올해 일흔이 되신 저자는 일찍이 패션계에서 경력을 쌓고 밀라노와 대한민국을 거점으로 평생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었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이가 든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장해야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저자는 사회의 어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분이란 인상을 받았다. 저자가 내 어머니와 같은 연세이기도 하고, 저자의 큰 아들 역시 내 또래여서였을까, 저자의 젊은 시절 관습과 편견을 극복하고 전력투구하며 나아갔던 행보에서 내 어머니의 삶도 보이는 듯했다. 한 문장마다 이야기를 듣듯이 찬찬히 읽어보았다.


저자의 말 중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227)는 문장에 눈길이 멈추었다. 삶과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생명이 주어졌다면 죽음은 어김없이, 정면으로 맞게 될 삶의 과정이다. 살면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을 떠올릴 때 내게 절실해진 화두가 된다. 저자가 나누는 지혜 속에 본인이 해야 할 역할과 몫은 본인이 해야 한다’(260)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저자가 삶과 대면하여 어떻게 살고자 했을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은 삶은 한번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존재다. 모든 단계가 처음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양육을 잠시 부모에게 맡겼던 것을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말하며 힘들게 배운 교훈이 바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할,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낸다는 말이 이처럼 생경하고 무겁게 다가온 적이 있을까. ‘부단히 노력하고 전력투구하고 난 뒤 삶을 돌아보는 저자의 모습에서 평생 한결같이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최근에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던 순간이, 죽음을 말하는 저자의 태도와 오버랩 되었다. 나 역시 살아있는 동안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내 몫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자의 말대로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과 경험을 보다 많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내 몫을 나름대로 해낼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일이 보다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이제는 내가 가진 부실한 것들도 좀 더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내가 가진 것 모두 언젠가는 버려지거나 타인에게 넘어갈 것이니까. ‘나는 자유다라고 외친 카잔차키스의 선언이 오늘따라 낯설고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책을 덮고서도 삶의 본질에 파고드세요라는 저자의 한 마디 역시 쉽게 떠나지 않는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관습과 유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지만, 내 삶은 어떠해야할지, 내 죽음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는 이제부터라도 살펴보고 돌보아야할 나만의 과제가 되어야 할 테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꾸준히 성찰하고 깨달은 지혜를 독자에게 나누어준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해온 방법을 소개한 책이었다.



"진정으로 럭셔리한 삶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 럭셔리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174)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의 말

"오늘도 나는 내 분신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214)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227)

"삶의 우선순위를 알고, 삶의 본질에 파고드세요." (260)

"인간에 죽음을 뛰어넘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글을 남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자식을 남기는 것이다." (261)
- 움베르토 에코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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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14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볼드답게 진하게 여운이 남습니다.
죽음을 생의 큰 한 단계로 볼 수 있는 것도 성찰을 통해 축복 받은 것 같습니다.
삶의 본질. 또 한 번 생각하게 하는군요.

초란공 2021-10-14 18:27   좋아요 2 | URL
초딩님을 오랜만에 뵙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잠시 마음이 바빠 댓글도 제대로 못달았네요.
건강하고 행복한 가을 보내시길요~

초딩 2021-10-14 19:20   좋아요 2 | URL
저도요 ㅜㅜ 방가 방가합니다 초씨 집안~ ㅎㅎㅎ
 
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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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 Ethan Frome

이디스 워튼 (Edith Wharton) 지음 | 김욱동 옮김 | [민음사]

 


사회 규범이 강요당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1년에 퓰리처상을 받게 된 순수의 시대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이다. 워튼의 또 다른 대표작 이선 프롬은 이보다 10년 전인 1911(당시 49)에 작가가 자신의 불행한 결혼을 염두에 두고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사랑, 결혼, 불행 혹은 죽음은 소설 혹은 예술의 형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삶의 본질을 반영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독특하게 액자소설의 구성 속에서 화자가 한 인물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선 프롬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농부로 대학공부까지 조금 맛보았던 남자다. 병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이선의 어머니는 친척인 지나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선은 지나의 보살핌에 고마워하면서도 그녀와 애정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 날에야 신랑·신부의 얼굴을 보았다는 우리의 전통 결혼 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충돌이 생겨났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맞이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평생을 다정한 친구처럼 금슬 좋게 살아온 노부부의 사연도 간간이 접하지만 그만큼 드물다. 부부 사이에 애정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이선 프롬은 바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작가의 아바타였다.


소설에서도 부조리한 결혼 생활이 배우자 사이의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결혼 제도는 사회 규범과 도덕적 인습, 구체화된 제도가 결합된 복합적인 공동체 유지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우자 사이의 갈등은 곧 개인과 사회의 대립 국면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혹은 공동체가 개개인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규칙과 역할은 애초에 어긋난 관계로 고통 받고 괴로움을 겪는 이들을 옭아매는 문명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이선과 지나의 무기력한 결혼 생활에 어느 날 지나의 사촌 매티가 등장한다. 매티는 이선의 하루하루에 활력소를 주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이선의 마음을 느끼고 이선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규범이 지배하는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손발이 꽁꽁 묶였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143)

 

한 집안이 가장이자 병든 아내를 돌보아야 하는 남편, 게다가 자신이 관리해야 겨우 돌아가는 농장의 주인 이선 프롬. 그는 이 모든 역할을 하루아침에 벗어 던지고 사랑을 택할 수는 없었다. 인용된 문장은 이선의 절망과 좌절감이 집약된 표현일 테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인습과 제도가 기대하는 역할을 집어던질 때 사회 혹은 공동체로부터 날아올 비난의 화살을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이탈자의 몫이 된다. 사회의 비난, 나아가 구성원으로서의 제약과 제재는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무섭게 짓누르기 마련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를 벗어난다는 것은 추방행위와도 다를 바 없다. 추방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살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인습과 제도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사랑과 자유를 추구하며 벗어날 수 없었던 고뇌와 고통을 이선 프롬의 행동과 입을 통해 표출했을 것이다.


지나가 매티를 내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이선과 매티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장벽으로 내몰린 셈이다. 부인 지나는 사회적 규범을 무기삼아 두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고 압박한 것이다. 사회 혹은 공동체가 강요하는 윤리의 테두리에 내몰리고 압박을 받는 구성원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다시 현실의 질서 속으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인습의 테두리를 벗어던질 것인가. 혹은 이러한 국면이 지나친 고뇌와 갈등 끝에 자기 파괴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선과 매티가 어두운 밤에 함께 썰매를 타고 동반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함께 한 것 역시 어느 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한 이들의 몸부림일 것이다. 역자의 표현처럼 인간은 작품 속 주인공처럼 실존의 감옥에 사는 수인인 셈이다. 이는 이선과 매티가 놓인 상황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고뇌가 여실히 반영된 이선 프롬은 길지는 않지만 묵직한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 사회 규범과 제도, 인습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역할과 기대와의 불화 혹은 대립에 관한 진실을 독자가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독자가 문학 작품을 통해 보편적인 진실을 접할 경우, 독자는 보다 현명해지는 것일까? 나는 가끔 이점이 궁금했다. 공동체의 규칙을 파악하고 준수하면서도 개인은 자유와 욕망을 추구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자신의 몸을 기차에 던지지 않고 그녀의 남편이 안나를 비난하지 않고 수월하게 이혼을 해주었더라면, 안나는 사랑과 아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을까. 소설 속의 선택은 현실 속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보여줄 뿐이다.


워튼의 시대와 나의 시대 사이에 100여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의 작품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 드러난 문제에 정답은 없다. 답은 각자가 내리는 것일 테니. 그러면 고전문학은 우리의 삶에 과연 어떤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각자의 해답 찾기 과정에서 여러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독자는 문학이 제시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국면을 검토하고 각자의 진실 찾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학은 독자 나름의 해답 찾기 혹은 진실 찾기 과정에서 멍석 까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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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0-04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여러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의 메시지가 어느 정도 검증 된 것이
대중매체의 그것과 다른 것 같아요 :-)
오늘은 날씨가 흐리네요
그래도 좋은 날 되새요~

han22598 2021-10-06 0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란공님 글은 무언가 잘 정돈된 글 같아요. ^^ (저랑 완전 정반대의 글인 것 같아요 ㅎㅎ)

시대가 변해도 비슷한 주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번민하는 자들의 존재가 중요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정답을 찾았느냐의 유무보다는 번민하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초란공 2021-10-06 22:36   좋아요 0 | URL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기 전에 했던 예상보다 묵직한 주제를 던지는 것 같아서 좋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시대와 무관한 거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레이스 2021-10-06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너가 생각나네요.

초란공 2021-10-06 22:42   좋아요 0 | URL
어떤 점이 <스토너>에서 생각났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보면 스토너는 밋밋하고 항상 패배하고 마는(?) 캐릭터 같았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스토너가 저와 비슷하단 생각도 들고 해서 공감이 가긴 했는데요
자세한 건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워낙 잔잔하게 다가왔던 소설이란 인상만 남아있어서요.^^;;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ㅋ

그레이스 2021-10-06 23:41   좋아요 1 | URL
제가 이 책을 안읽고 올려주신 스토리만 봐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하긴 소재가 되는 스토너의 삶이 워낙 많이 쓰여진 플롯이기도 하네요
그것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다른 감상을 전달하기도 하니까요^^
결혼, 또 다른 사랑, 하지만 순응...
그런 내용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이선 프롬을 읽어보면 다르게 다가오겠죠?
 
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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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범도

송은일 지음 | [바틀비]

 



우리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해준 독서


 

저 산 아래에는 나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적이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유해가 봉인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잃고 타국의 숲 속에서 싸워야 했을 그의 고뇌와 결의를 막연히 상상해보았다. 그가 아내와 큰 아들을 적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단장의 슬픔을 삼키고 국경을 넘은지 113년 만에 귀환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제작년의 3·1절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기로 했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들었을 때만해도, 나는 장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설가 송은일의 나는 홍범도를 읽고서야 장군의 업적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개인으로서 그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소년 홍범도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 홍범도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와 일본에 부역하는 상관의 명을 거부할 줄 알았던 까닭이다. 바람에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그는 부당하게 참수형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 있는 다른 인물의 도움으로 청년 홍범도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야할지 분명히 깨닫고 행동에 옮긴 인물이었다.


홍범도의 연보를 보면서 그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십 수 년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과 대적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여러 계층에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기득권자들과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했던 이들도 생겨났다. 오히려 더 이상 기댈 데 없는 사람들,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웠다. 특히 포수가 많았던 함경도에서의 저항이 거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봉오동을 품은 산 속에서 나날이 강해지고 거대해지던 적군을 보고 홍범도 장군은 수없이 회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기어코 시작하고 이어나간 사람은 위태로운 나라와 가족의 운명 속에서도 떳떳한 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전우들의 신뢰와 결의로 끝끝내 이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테다.


소설을 읽으며 홍범도와 나의 시공간에 가로 놓인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상상해보았다. 그의 결단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나라와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그만큼 더 고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은 무적의 장군이었지만, 그 역시 거대한 세계사의 물결과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하여 많은 동지들이 전사하고 러시아군에 강제 편입되었던 자유시 참변을 비롯하여,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수송열차를 타야 했을 장군과 고려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홍범도는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서거했다. 만약 그의 부대가 무장해제 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면 해방을 맞지 않았을까?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뇌했을까.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읽으며 새삼 우리 근대사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패배의식과도 같은 잔재를 내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같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작가의 고백은 현재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앞으로 더욱 알아가자고 격려하는 말로 들렸다. 의연하게 싸웠던 조상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절실히 잡아야할 호시기는 어쩌면 그릇된 역사관의 영향을 받은 패배의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호시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셈이다. 우리 후손에게는 나라를 침탈한 적들과 떳떳하고 용감하게 싸운 선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총을 들고 싸운 이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사람들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군은 의병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군에 대항하여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연합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 5천 여 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일본군의 대량학살과 비인간적인 만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양민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해방을 2년 남기고 서거했던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까지 장군의 묘역을 지켜온 고려인들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들이다. 지난여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서거 이후 유해 발굴 작업 시까지 정성을 다해 묘역을 관리해왔던 고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대가 우거진 척박한 타지에서 땅을 일구고 벼농사를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동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에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묘역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도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역사엔 고난과 애환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독서를 계기로 그와 의병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왔던 많은 양민들의 희생,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온 고려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후손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테다. 우리의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고, 올바른 길을 한 발씩 내딛는 일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이는 우리는 누구였고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 "내가 잡아볼까 하는 호시기는 조선을 향해 총질 해댄다는 왜국 종자들입니다." (34)

[2] "우리는 각자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껏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키면서 일본을 몰아내야 합니다." (109)

[3]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하는 것이다." (151)

[4] "눈 내린 벌판을 갈 때,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 일이다. 오늘 네가 간 자취를 따라 뒷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리니." (242)
- 여천이 신계사를 떠날 때 의성 대사가 건네준 족자의 글

[5]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적진에 가서 빌붙는데 누구는 무기를 치켜들고 적진으로 돌진한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가." (284)

[6] "구국일념 의병 전사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
하느님도 임금 영웅도 우리를 구제치 못하리.
우리는 다만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리. 자유를 누리리.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일제강도 무찌르고 우리나라 되찾으리. 꼭 찾으리.
간절한 의지 불굴의 용기로 싸우리. 빛나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303)
- 홍범도의 풍산 의병대가 붙인 의병 모집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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